이형빈 (전 광주여자대학교 교수)
최근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을 위한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입시경쟁의 관행 때문에 여전히 평가를 혁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 중심 평가’,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를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초등 평가와 중등 평가가 어떤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 이론적 근거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이제는 널리 알려진 일화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 인디언 아이들이 전학을 왔습니다. 시험 시간이었습니다. 백인 아 이들은 책상 사이를 벌리고 가림판을 올리며 시험 치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인디언 아이들 은 책상을 모으고 서로 상의를 하며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선생님이 야단을 치 자, 인디언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선생님, 저희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항상 도우 면서 해결하라고 어른들께 배웠어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평가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이었습니다. 핀란드 중학교의 시험시간에 학생들이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는 표정이었고 놀랍게도 그 학생은 선생님께 “이 문제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풀어요?”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 학생에 게 다가가서 “뭐가 어렵니? 네가 여기서 막혔구나.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볼까?”라며, 정답은 알려주지 않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요령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아, 알겠다.” 라며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이 두 장면에서 평가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디언 아 이들의 시험 장면에는 ‘또래학생과의 협력’이 있고, 핀란드의 평가 장면에는 ‘교사의 도움’이 있 습니다. 그리고 “아! 알겠다.”는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고츠키(Vygot- sky)의 유명한 개념인 ‘근접발달영역’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고츠키는 우리 학생들이 언제 비약적 으로 성장 발달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 한 학자입니다. 비고츠키는 우리 학생들에 게는 겉으로 드러난 실제적 발달수준뿐만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잠재적 발달수준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선생님이 도와주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을 바로 근접발달영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론에 따라 수업 시간에 다양한 협력적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은 협력적으로 진행하더라도 평가는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과거의 관행이었습니다. 이제는 평가에서도 이 개념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평가를 통해 ‘실제적 발달수준’만 확인했지만, 이제는 ‘잠재적 발달수준’, 즉 어디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돕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를 교육학에서는 ‘역동적 평가’라고 합니다. 제한된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의 평가방식만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수준만을 확인하는 것을 ‘정태적 평가’라고 합니다. 반면 ‘역동적 평가’란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여러 번 기회를 준다면’, ‘다양한 평가 도구를 활용한다면’, ‘친구들이 서로 도우며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준다면’, ‘교사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돕는다면’ 그 학생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잠재적 수준까지 확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이러한 평가가 가능할까요? 아마도 선생님들의 노력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중학교에서는요? 아마도 중1 자유학년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고, 중2∼3학년의 수행평가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부 수행평가 영역에서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럼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 구체적인 요소는 무엇인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에서 각각 시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 요소 (초등을 중심으로)
우선 초등학교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 요소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1)활동적ᆞ실제적ᆞ협력적 평가
- 학습활동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 학생의 실제 삶 혹은 이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평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수업 시간에 다양한 학습활동을 진행하는 과정 중심 평가를 진행해야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지금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활동적 평가가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때에는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자신들의 실제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 평가 (authentic assessment)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흔히 활용했던 지필평가는 말 그대로 ‘종이와 연필’로 이루어지는 평가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실제 삶의 장면과 가장 동 떨어진 평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학시간에 사칙연산을 배웠다면 이를 지필평가를 통해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생들의 실제 삶과 유사한 상황―예를 들어 상점 주인과 손님 의 역할극―을 설정하고 이 상황에서 사칙연산을 제대로 적용하는지를 확인하는 평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평가가 중요합니다. 앞에서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에 대해서 말씀드렸듯이, 학생들은 친구들과 서로 협력하는 경험을 통해 아직까지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던 발달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수업이 곧 평가다.”라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예 평가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수업이곧평가’라는 관점에 따라 별도의 평가과제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학습활동을 진행하면서 교사가 학생들의 활동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평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학생들이 제대로 배웠는지를 심화시켜 확인하는 평가도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는 학습활동지라든가 서술형 문항 등 간단한 평가 도구를 활용할 필요도있습니다.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실제 삶 혹은 이와 유사한 상황에 적용해보는 평가도 필요합니다. 이때에는 수업 중 활동과 연계된 수행과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등 심화된 평가 도구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교사가 목적의식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역동적ᆞ개방적 평가
- 여러 번 도전 기회를 주는 평가
-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는 평가
- 교사가 도움을 주는 평가
- 다양한 방식(문어적, 구어적, 시각적, 신체활동적)을 개방하는 평가
이전의 평가는 ‘정해진 시간 내에, 혼자서, 단 한 번만 기회를 주는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평가의 틀을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열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단한번만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여러번 도전할 기회를 주거나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는 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미도달’로 판정된 학생들도 다음에는 ‘도달’로 판정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교사가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평가가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의 평가 방식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성취기준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지필 방식(문어적 평가)으로, 때로는 구술 방식(구어적 평가)으로, 때로는 그리기나 역할극 등 표현 활동(시각적· 신체활동적 평가)으로 평가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성장 발달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사의 안목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힘들어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제법 잘 해내는구나.” 하는 점을 역동적·개방적 평가를 통해 확인해 내는 것이지요. 그만큼 교사들에게 새로운 평가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3)지속적ᆞ장기적 평가
- ‘스냅 사진’이 아닌 ‘사진 앨범’식 평가
- 교사가 오랫동안 지켜보는 평가
- 성장의 과정을 관찰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하는 평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은 단 기간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기간을 거쳐서 서히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장기적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는 비유컨대 특정 순간을 포착하는 ‘스냅 사진’이 아니라 여러 장면을 모아 인물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앨범’식 평가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한 학기 혹은 일년동안 다양하게 활동해 온 내용들을 축적해 가는 포트폴리오 평가가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 속 에서 ‘교사가 오랫동안 지켜보며’, ‘성장의 과정을 관찰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하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만큼 교사의 애정 어린 관찰, 성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안목이 중요하겠지요.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은 ‘학년군 교육과정’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학년군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이는 교과서 제도와 담임 제도 탓입니다. 교육과정 문서에는 성취기준이 학년군별로 제시되어 있으나, 교과서는 학년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한 매년 담임교사가 바뀌다 보니 어떤 학생이 이전 학년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수준을 보였 는지 다음 학년 담임교사가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년군 체제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1~2학년군, 3~4학년군, 5~6학년군을 ‘학교 안 작은 학교’처럼 운영하면서, 동학년군 선생님들이 일상적으로 협의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의 발달 과정을 긴 호흡으로 지켜보면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수월해질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 는 평가 철학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4)함께하는 평가
- 학생의 자기평가, 동료의 상호평가
- 교사의 평가와 학부모의 소통
학생의 자기평가나 동료의 상호평가도 평가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 이 스스로 자기의 학습과정을 점검하는 자기평가를 통해 앞으로 더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고, 학생들 사이의 상호평가를 통해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다시 학생에게 피드백함으로써 학생들이 앞으로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도록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평가의 과정입니다.
또한 평가의 결과를 가지고 학부모와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의 성적이나 등수를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요즘은 많은 학교에서 평가의 결과를 학부모와의 소통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자체적으로 제작한 통지 양식에 가정통신문을 결합하여 ‘학부모님께 드리는 부탁 말씀’, ‘자녀를 위한 부모님의 말 씀’ 등을 적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학부모 방문 주간을 활용하여 학생들 의 포트폴리오를 놓고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고, SNS를 통해 학교에서 진행되었던 수업과 평가의 결과를 즉각적으로 소통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학부모들이 점수나 등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평가 결과에 대한 교사의 기록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사가 필수적으로 기록해야 할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입니다만, 이것만 기록하기에는 입력 가능한 분량이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평가 통지 양식을 활용합니다.
요즘 학교마다 다양한 방식의 평가 결과 통지 양식을 개발하고 있으나 하나로 획일화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자율적 전문성에 따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이에 따른 평가를 시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선생님들의 협의를 통해 학년별 특성에 맞는 기록 항목들을 함께 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별 통지 양식을 개발하고 이를 공유하면서 더 바람직한 통지 양식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속에서 우리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과정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5)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는 평가
- 모든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제로 하는 평가
- 학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평가
- 도달하는 목표와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평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평가의 방향은 궁극적으로 학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주목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우선 모든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부족한 부분을 학교에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열심히 교육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성취기준 자체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성취기준이 지나치게 높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교사들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개정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은 협소한 성취기준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이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도 평가의 중요한 기능일 것입니다.
또한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개념에서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마다 도달하는 목표와 속도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개별화 교육과정(Individualized Education Plan)이라고 합니다.
이 개념은 특히 특수교육에서 일반화된 개념입니다. 학생마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가 다른 특수교육에서는 동일한 성취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 교육에서는 학생 한명한명의 상황과 발달과정을 존중하고 이에 맞는 개별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개별화 교육과정은 특수교육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라 향후에는 모든 교육에 확장되어야 할 보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는 향후에는 학생 한명한명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개별화 평가’로 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이러한 개별화 평가를 시행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실천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3.’과정 중심 수행평가’의 방향(중등을 중심으로)
초등학교와 달리 입시의 영향을 받는 중등에서는 평가 혁신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정 중심 수행평가’가 중등 평가 혁신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 평가의 영향으로,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 전형의 영향으로 수업의 과정에서 수행평가를 진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교사가 관찰하여 기록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과정 중심 평가 : 수업의 과정에서 진행되는 수행평가
교육부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에는 수행평가를 “교과 담당교사가 학습자들 의학습과제수행과정및결과를직접관찰하고,그관찰결과를전문적으로판단하는평가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서 는 마땅히 수행평가를 교수·학습의 과정과 연계하여 실시해야 합니다. 수행평가를 수업의 과정에서 진행하지 않고 별도의 과제 부여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밖의수단,즉사교육이나가정의도움을받게되고그결과수행평가의취지를상실하게됩 니다.
수행평가란 교수·학습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때 그 취지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발표, 글쓰기, 실험 등의 학습활동을 진행하고 그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교과서를 재구성해 학습활동지를 제작하여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활용하도록 하고, 이를 모아 수행평가의 자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학생활동중심의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온전히 평가에 반영하며, 그 평가의 결과가 다시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독려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수행평가는 기본적으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풍부한 학생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독서나 문화활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학생들, 또래집단속에서 리더의역할을 수행해 온 학생들에게 유리한 평가방식일 수 있습니다. 독서경험을 자연스럽게 해 볼 기회가 없었던학생들은 책읽기 자체를 두려워할 수 있고, 사회적 관계 맺기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모둠활동이나 프로젝트 활동에서 소외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간과한 채 수행평가를 교수·학습의 과정과 분리된 형태로 진행한다면 이는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수업시간에 끝내는 수행평가’입니다. 수업 시간의 활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교사가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혹은 학생과 학생들이 서로 협력 하는 속에서 수행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학 생들에게도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됩니다.
이런 점에서 ‘과정 중심 평가’로서의 수행평가는 교육적으로도 유익하고 사회학적으로도 정 의로운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많은 선생님들께서 “수업시간에 수 행평가까지 해야 한다면, 진도는 언제 나갈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 중심 수행평가의 전제 조건은 ‘교육과정 재구성’, 특히 ‘교육과정 적정화’입니다. 불필요 한 내용을 덜어내고 수업 시간에 수행평가를 끝낼 수 있는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확보해야 합니다. 덜어낸 자리에 본질적인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3시간 동안 빡빡하게 진도 나갔던 분량을 대폭 덜어내어 4시간 동안 여유있게 수업을 진행하고, 그 중 1시간을 다양한 학습활동과 수행평가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도 힘들고 학생들도 힘듭니다. 이처럼 ‘ 교육과정 적정화’야말로 수행평가를 내실 있게 진행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됩니다.
2)질적 평가 : 학생의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 확인하는 수행평가
선다형 문항 위주의 지필평가로는 학생들의 성적만 알 수 있을뿐 그 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까지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수행평가를 통해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학습활동을 수행하고, 수행평가를 통해 그 과정과 결과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기록하는 것이 질적 평가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두각을 나타나지 않던 학생도 연극이나 창작, 만들기와 같은 활동에서는 “저 학생이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학기 초에는 글쓰기를 무척 어려워하던 학생도 학기 말에는 글쓰기 능력이 놀랍게 향상될 수도 있습니다. 지필평가 성적은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 토의·토론 수 행평가에서는 남다른 논리력과 사고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 한 과정에서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현장에서는 여전히 폐쇄적인 기준에 의한 평가관행이 남아있어 질적 평가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명시적이고 세부적인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따라 평가를 시행하는 관행, 그리고 평가결과에 대한 민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명확한 채점 기준을 세우는 관행이 뿌리 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논술형 평가조차 매우 폐쇄적인 기준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질적 평가로서의 수행평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부적인 목표, 구체적 인 과제, 객관적 채점기준’을 중시해 온 평가의 관행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즈너(Eisner)라는 학자는 평가의 개념을 ‘비평’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그에 따르면 교 사에게 필요한 평가 전문성은 정답이 분명한 문항을 출제하고 엄격하게 평가 결과를 산출하 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복잡하고 미묘한 질적 특성을 감지할 수 있는 ‘교육적 감식안’입니다.
‘비평으로서의 평가’란 마치 비평가들이 예술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확인하듯, 학생들의 학 습 과정과 결과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수행평가는 이 러한 질적 평가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한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은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이 이에 해당합니다. 향후에는 평가 결과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정 중심 평가, 질적 평가의 취 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적 산출’을 넘어 ‘성장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1등급 학생만’ 기록해 주던 관행에서 벗어나 ‘9등급 학생도’ 기록해 주는 것이 필요 하고,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에만 기록해 주던 관행을 탈피하여 모든 학기에 기록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학급당 학생수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향후 교사에게 요구되는 평가 전문성은 ‘엄격한 출제 및 채점’이 아닌 ‘성장 과정에 대한 관찰과 기록’입니다. 따라서 ‘문제 출제와 채점에 소모했던 에너지’를 ‘과정 중심 평가와 기록을 위한 에너지’로 조금씩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제 교사에게 필요한 평가 전문성은 ‘오류가 없는 평가문항을 출제하여 명확한 기준으로 채점을 하는’ 전문성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 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돕는 방법을 찾는’ 전문성입니다. 그리고 그 전문성의 바탕에는 학생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들에게 잠재해 있는 가능성을 알아주는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의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