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3 여름호(251호)

[수기] 마스크를 벗고,
다시 잡은 마음의 손

정현진 (서울치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마스크 잠깐만 벗어도 돼요?”
깜짝 놀라며 돌아본 자리에는 이미 콧방울까지 마스크를 반쯤 내린 채 앞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축 처진 눈에 답답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대답하기도 전에, 주변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한 친구를 보챘다.

“마스크 빨리 올려야지! 빨리 제대로 써 줘!”
이렇듯 작년까지만 해도, 한 학생의 마스크가 코끝까지 내려온다는 건 교실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이었다. ‘학교에 연필 가져오기’나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 펼치기’같은 오래된 규칙처럼,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스크 쓰기’를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으로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옆에 있는 친구가 마스크를 들썩거리며 입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얼마나 불안하게 느껴졌을까. 더욱이 마스크를 썼음에도 군데군데 비어있는 아픈 친구들의 자리를 보면서 아이들의 걱정은 커졌을 것이다.

아이들의 걱정을 등에 업고 마스크는 아이들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거리두기로 곁에 있던 짝은 없어지고, 목말라하는 친구에게 물병도 빌려줄 수 없고, 지우개 한 번을 빌려주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워졌다. 급식실에서 마주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은 어쩐지 힐긋거리게 되었다.

3년의 시간을 이렇게 지나왔기에,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은 한겨울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는 일처럼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로 다가왔다. 올 초, 학교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다는 소식을 듣고 마스크를 벗어야 하나, 써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부터 마스크를 벗어볼까? 그래도 나만 마스크를 벗고 있는 건 조금 어색하려나? 수십 번을 거듭 고민하다 결국엔 마스크를 쓰고 3월 2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우리 반 모든 학생도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쓰고 새 학년 교실에 발을 내디뎠다. 마스크를 꼭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도, 혼자만 얼굴을 모두 내보이는 건 아이들에게 망설여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쭈뼛쭈뼛 선생님, 친구들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를 엿보기 위해선 마스크 위의 두 눈을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를 살펴보고, 조금은 힘을 담아 선생님을 향하는 반짝이는 눈들을 지켜보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들 속, 빠르게 흐른 첫날을 마무리하며 다음 날에는 마스크를 벗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실 안에서 진정성 있게 소통하며 함께 웃는 날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시도였다. 마스크 없이 수업을 시작하니, 한 명의 친구가 조용히 마스크를 벗어 가방에 넣어두었다. 2교시에는 한 명이 더,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는 세 명 정도의 친구가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도 마스크를 조금씩 벗어가기 시작했다.

3월 한 달을 보낸 후, 지금 우리 교실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이 꽤 많아졌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마스크를 ‘항상, 종종’ 벗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68%, ‘드물게, 안’ 벗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26%, ‘가끔’ 벗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6%를 차지했다. 3월 2일 첫날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을 때는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던 모습에서, 과반이 넘는 학생들이 마스크 없이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마스크를 ‘항상, 종종’ 벗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편해서’, ‘답답하지 않아서’ 마스크를 벗는다고 하면서, 마스크를 벗었을 때 느낌은 시원하고, 좋고, 상쾌하다고 이야기하였다. 마스크를 ‘드물게, 안’ 벗고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마스크가 익숙해져서’라고 답하며, 그때 느낌은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각자의 이유로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은 학생, 벗지 않은 학생이 섞여 있지만, 아이들 사이의 거리감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의무적 거리두기의 부담에서 비교적 벗어나면서, 올해 3월에는 아이들이 모든 친구와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학급 활동 구성을 시도했다. 서로 함께 만들어가는 학급 구성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모둠 활동을 갑자기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혼자서 하면 안 되나요?”
3월 초의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낯설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과 떨어져 지내면서 모둠원들과, 반 친구들과 힘을 모으는 경험에 익숙하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의 생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견해의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결코 원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과 계속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공동의 재료와 준비물을 나눠 쓰고,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 지키는 규칙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반복하며 학생들은 점차 협력의 소양을 길러갔다. 체육 시간에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동그랗게 모여앉아 팀 친구들과 진지한 전략회의를 하고, 모둠 친구들과 규칙을 지키는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모여 서로의 생각과 기분을 말하고 합의에 다다르는 기특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마스크를 벗고 난 이후 학생들은 함께함의 가치뿐만 아니라, 소통의 원활함도 체감하고 있는 듯하다.
“말소리가 더 잘 들려요.”
“친구들 표정을 본 다음, 같이 말하고 장난칠 수 있어서 신나요.”
“친구들이나 선생님 표정이 잘 보여서 정말 좋아요.”
특히 학생들은 표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전에는 상대방의 눈을 보거나 상대방의 말투로 미루어 짐작할 때가 자주 있었는데, 마스크를 벗은 친구들의 얼굴을 볼 때는 친구의 기분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전달된다고 했다.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해 주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웃으면 저도 웃고, 선생님이 웃으면 저도 웃게 됐어요.”
아이들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반응을 주고받고, 또 그 속에서 친구와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 마스크 없이 하는 의사소통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듯하다.

오늘 아침, 우리 반 한 아이는 밖에 떨어진 목련꽃을 주워 와 풍선처럼 후- 부는 공연 아닌 공연을 펼쳤다.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 위에 웃음을 참는 표정, 신기한 표정, 때로는 부러워하는 표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모두가 웃으며 기분 좋은 1교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함을 알아가는 올해, 모두가 함께 모인 교실에서는 소소한 기쁨을 쌓아주는 일상이 쌓여가고 있다. 마음의 손을 잡고 같이 웃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일 년 동안 행복한 기억을 가득 채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