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혜 (서울용동초등학교, 사서교사)
사람은 의사의 출생 선고와 함께 태어나서 의사의 사망 선고와 함께 삶을 마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 수명 약 8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내가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거나 미리 준비하지는 않는다. 죽음은 늘 입으로 거론되기에는 왠지 불길(?)하고 말하면 안 될 불쾌한 단어쯤으로 생각하는 사회 통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20년이 넘는 학교 교육 동안 죽음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사(死) 자로 연상되는 4층은 없어지고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 등 죽음과 관련된 것들조차 하면 안 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소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어느 날 교수는 제자 미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행복한 삶의 마무리는 바로 행복하게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하게 죽는 것, 즉 좋은 죽음은 첫째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둘째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 셋째 가족과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 넷째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 죽는 것1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80% 이상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온갖 연명의료 기기를 꽂은 채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여러 가지 법률적, 제도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교육이 학교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고양이 해결사 깜냥』 시리즈로 더 유명한 홍민정 작가의 책 『모두 웃는 장례식』을 처음 만났을 때 사실 나조차도 어린이용 책에 “장례식”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걸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혀도 될까?’, ‘혹시 이 책으로 수업한 후 보호자님의 전화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6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윤서는 엄마가 있는 상하이로 가서 방학을 보낼 생각에 잔뜩 들떠 있다. 방학하자마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상하이에 가서 방학을 보내겠다는 윤서의 결심은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 덕분에 차질이 생기고 만다. 유방암 선고를 받고 병원과 집을 오가던 할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다가오는 본인의 생일날 ‘생전 장례식’을 하자고 선언한다.
처음 가족들은 할머니가 치매가 왔나 죽은 다음에 하는 장례식을 무슨 살았을 때 한다고 하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할머니의 굳은 의지에 가족들은 하나 둘 생전 장례식을 준비한다. 신문에 부고를 내고 음식도 주문하고 영상도 제작하며 다가올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생전 장례식을 준비한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주변도 할머니의 마지막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가족들과 잔치같은 생전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생을 마무리한다. 할머니는 비록 암에 걸려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의 죽음을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마무리할 수 있어 어쩌면 행복한 삶을 사신 건 아니실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 책을 덮으며 내가 만약 80세 이상 산다면 80살 생일날에 생전 장례식을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내가 죽은 다음에 찾아오면. 아, 생각만 해도 눈물 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책 속 윤서 친구 혜원이의 말처럼 죽으면 아무 것도 모르니 미리 만날 사람 다 만나고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의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면 그것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 같다.
작가는 6학년 윤서의 눈을 통해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참 평안하게 그리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맞는 윤서는 너무 슬프거나 비통하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빛나는 건 할머니의 주체적인 죽음이다.
죽음을 너무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삶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연습과 교육이 필요하다. 서영 작가의 그림책 『여행 가는 날』을 보면 죽음은 그냥 설레는 여행일 뿐이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 집에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손님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날 할아버지는 장롱 밑에 모아 둔 동전도 챙기고 간식으로 달걀도 삶는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할아버지의 아내가 마중을 나올거라는 말에 면도도 하고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팩까지 하며 꽃단장을 한다. 혹시나 너무 늙어버린 할아버지 모습을 아내가 알아보지 못할까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까지 챙기는 할아버지. 여행지에서 그리운 친구와 부모님까지 만날 생각에 할아버지는 즐겁게 여행을 떠난다. “걱정말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란다.”라는 말을 남기며…….
죽음에 대한 그림책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밝은 그림과 제목을 보고 무심코 읽기 시작한 이 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다. ‘내가 맞이해야 하는 죽음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어떻게 죽음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밝은 색채로 설렘 가득한 여정을 그리고 있을까. 마지막 뒷면지에 그려진 할아버지의 여행 준비물만 보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할아버지의 설레는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의 삶의 마무리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진다면 이 그림책을 읽고 이별에 대해, 할아버지의 여행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두 웃는 장례식』, 『여행 가는 날』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겠다. 스콧 니어링과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의 인생과 기록을 담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에서 스콧은 80세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기록한다.
사람은 사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에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행복한 삶이 평생의 목표인 우리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육과정 속에 죽음에 대한 교육이 없으니 좋은 책으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간에게 늙어감과 죽음은 필연이지만, 후회 없는 삶과 평온한 죽음은 선택이자 부단한 노력”2이라는 박중철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