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지 (서울지향초등학교, 교사)
어릴 적 내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교사가 된 지금, 난 운이 좋게도 이 직업이 참 잘 맞아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학부생 시절까지만 해도 내 마음 속 한 구석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과 열망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내 진로를 찾겠다며 휴학을 하고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를 전전하며 10개 이상의 작품에 배우로 참여했고, 감사하게도 한 창작뮤지컬 극단에서 창작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배우로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뮤지컬 창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뮤지컬 작업은 긴 호흡의 협력 과정으로 수많은 소통과 인내, 조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참 쉽지 않지만, 또 그만큼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값지고 보람되고 뜨거운 감동이 있다. 눈물이 많지 않던 나도 공연의 커튼콜에서는 벅찬 감정에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 배우로서 뮤지컬을 실제로 경험하며 나는 뮤지컬 창작 그리고 공연의 가치와 교육적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교사가 된 후 학교에서는 내가 느낀 감동과 배움을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어 뮤지컬 창작 수업을 7년째 진행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뮤지컬과 교육 두 가지 모두 좋아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수년의 진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둘 다 평생 하고 싶어 두 가지를 합쳤다.
처음 창작 뮤지컬을 아이들과 만들었을 때는 그저 도전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뮤지컬은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인내가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아이들과도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겁 없던 나는 신규의 패기로 일단 시작했고, 좌충우돌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적인 공연을 맞이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손길이 모여 3.1운동을 주제로 한 20분의 뮤지컬이 완성되었고, 공연을 올렸을 때 배우였던 우리 아이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뮤지컬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과 뮤지컬을 만들며 나는 뮤지컬의 교육적 가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은 과정 속에서 협동심과 배려심, 세상을 바라보는 깊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한다. 또한 매년 학급과 동아리에서 창작 뮤지컬을 만들며 느끼는 부분이지만 뮤지컬 한 작품을 함께 만들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이 참 깊어진다. 농부에게 열매가 노력의 결실이듯, 함께 만든 뮤지컬은 학급과 동아리 아이들의 연결 고리이자 1년 우정과 성장의 결실이 된다.
교사 창작 뮤지컬 ‘거짓말 없는 세상’ 프로젝트의 시작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지도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저작권으로부터 활용이 자유로우면서도, 교육적 소재와 주제를 가진 뮤지컬 작품과 수업자료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뮤지컬에 대해 지도하려면, 뮤지컬 한 편 정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연 관람을 위한 현장 체험학습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고, 영상으로 제공되는 뮤지컬을 찾아도 교육적 주제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뮤지컬을 찾았다 하더라도, MR을 활용하거나 작품을 재구성하여 공연을 올리는 것도 저작권 문제에 조심스러워 당당하게 진행하지 못하는 점이 나에게는 늘 마음의 부담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수업의 교재로 활용될 수 있는 교육 뮤지컬을, 교육전문가인 선생님들이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2022년 봄 ‘거짓말 없는 세상’ 프로젝트가 시작되게 되었다. 몇 년째 운영하고 있던 교육 뮤지컬 분야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 ‘0교시 창작 시간’의 멤버였던 8명의 선생님, 그리고 경기도 지역의 두 분 선생님, 총 10명이 함께 모여 뮤지컬 수업에 교재가 될 교육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사들의 협력 종합 예술 프로젝트 교사 창작 교육뮤지컬 ‘거짓말 없는 세상’
이야기 창작 연수를 함께 들으며 우린 ’거짓말 없는 세상‘의 얼개와 구조를 함께 짜나갔고, 우리의 교육적 메시지와 대략적인 인물의 성격을 함께 설정했다. 창작 초기 2개월은 함께 모여 시놉시스와 줄거리를 구체화하고 교육적 요소와 소재를 함께 설계했다. 그리고 이야기팀과 음악팀으로 나뉘어 장별로 대본과 장면을 만들어나갔다.
이야기 팀에서는 각 장을 나눠 대본 초안을 써온 후 피드백 회의를 통해 완성도와 개연성을 높여나갔다. 피드백 회의에서 우리는 깔깔거리며 유머 코드와 에피소드를 쏟아내기도 했고, 때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의 개연성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며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매 만남마다 대본은 업데이트되었고, 완성되어 가는 대본을 보며 우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음악팀에서는 극에 어울리는 악기 구성과 콘셉트를 바탕으로 대본 회의 때 즉석에서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개별적으로 작곡한 후 연출적 구성을 함께 협의하며 각 장면을 완성해갔다. 뮤지컬 장면 특성 상 연출적 의도와 음악, 안무, 동선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 과정에서 음악 감독과 연출, 안무 감독의 협의가 많이 필요했다. 창작 과정에서 음악적 작품성을 높이면서도 연출 의도가 반영되도록 연출과 의견을 좁히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했고, 고민의 시간만큼 멋진 곡들과 장면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1년간의 대본 초안 작성과 4차례의 대본 회독과 대본 수정 피드백, 절반 정도의 장면 제작 시간이 끝난 후 연출과 조연출이 함께 모여 대본으로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여러 명이 함께 작성한 대본을 하나의 축으로 세우고, 교육자료로 활용될 뮤지컬의 특성을 반영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뮤지컬이 교재로 잘 활용되기 위해 학교 현장의 실정을 고려하는 것은 또 하나의 큰 고민이었다. 무려 20시간 이상이 걸린 최종 대본 정리 과정도 내가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머리를 많이 써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 공연의 개연성과 극 진행이 깔끔하고 탄탄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대본이 완성된 작년 초에는 우리 멤버 모두 많이 지칠 때였다.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대본 작성과 음원 제작을 1년 반 병행하고 나면 아무리 열정 있는 사람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2023년 여름은 사회적으로도 교사 모두에게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시기였다. 공연을 제작하는 데에 필요했던 비용에 비해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교육청과 지역 공연장에 문을 두드리며 우리 극의 제작 취지와 목적을 알리며 뜻을 같이 해주십사 호소했고, 감사하게도 서울특별시교육청 산하 구로청소년문화예술센터에서 공연장과 평일 연습실을 지원해주었다. 이외에도 공연 준비 과정 속에서 많은 분들이 우리 극의 의미를 높게 봐주시고 재능을 기부해주었다. 그렇게 우린 다시 힘을 모아 ‘거짓말 없는 세상’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을 통해 교사 창작뮤지컬에 배우로 참여할 선생님들을 모집했고, 너무나 멋진 19명의 선생님들이 우리의 여정에 함께 해 주었다. 배우 선생님들은 창작진만큼 우리 극을 소중히 여기며 열과 성을 다해 임해주셨고 극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든 사람들에게는 정성과 열정이 깃든 자식 같은 작품이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창작진들에게 배우 선생님들의 칭찬은 우리를 안도하게 했고 그간의 시간들이 보상받는 듯한 벅찬 감동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차올라 하나가 되어 온 마음을 다해 공연에 매진했다.
나는 이 모든 게 기적 같았다. 매 연습마다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함에 함께 웃고 우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사람들이 참 좋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의 극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우리는 6개월간 하나가 되어 달려갔고, ‘거짓말 없는 세상’은 여러 선생님들의 뜨거운 열정과 정성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지금, ‘0교시 창작 시간’은 ‘거짓말 없는 세상’을 활용한 뮤지컬 수업 방안을 2024년의 연구 주제로 삼고 계속해서 연구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종합예술의 성격을 가진 뮤지컬은 이야기와 음악, 연기와 안무, 무대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극이다. 극을 총괄하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그 연결 고리를 이어 나가는 연출의 역할은 내게도 큰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뮤지컬을 창작하며 ‘0교시 창작시간’의 선생님들은 뮤지컬 창작이 가진 전인적 교육의 효과를 몸소 느꼈다. 2년간의 제작 기간 동안 우리는 모든 과정에서 분업과 협력을 반복했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의지하며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얻게 되었다.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그 성장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던 내 인생 가장 의미 있는 예술 프로젝트였다.
뮤지컬은 점점 개인주의화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알게 하고, 개인의 내면을 성장시키며 예술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협력 예술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뮤지컬의 교육적 가치를 믿으며 앞으로도 현장에서의 교육 뮤지컬의 실천과 적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