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반포고등학교, 교사)
자립인가, 성장인가?
자립과 성장의 조화를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동안 학생들의 상급 학교로의 진학 또는 취업을 위해,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더 이상 ‘자립’만 고집하며, ‘성장’을 간과할 수만은 없는 시기에 와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가장 중요한 기술은 ‘어떻게 해야 늘 변화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살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렇다면 학생의 성장은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
질문이 생각을 키우고, 성장을 이끈다
필자의 기억 속에 질문을 자주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나름 고민 끝에 자신이 가진 개념이나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 교사의 의견을 묻거나, 심화하여 공부하다 이해가 안 되거나 잘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제기해 교사가 고민하도록 던져주고 가는 학생이었다. 또 바로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도록 반문하면 이를 해결해서 가져오는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그가 자신이 질문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질문이 생겨요. 그리고 질문이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질문이 좋아야 대화나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질문이 좋아야 생각을 날카롭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하고,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지혜의 출발인 것이다. 알면 알수록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늘어난다. 그래서 질문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하자
올해 1학기에 맡은 2학년 진로선택 과목인 <기하> 수업은 학생들이 이차곡선과 공간에 대해 이해하고 탐구하여 기하적 대상물을 대수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고등학생이지만 필요하면 직접 도형을 종이로 만들어 관찰하게도 하고, 교과서 문제나 준비한 평가 문항에 대해 그 풀이를 서로 발표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 진행하였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 외에도 교수·학습 방법 및 유의사항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기하>에서 ‘이차곡선은 원뿔을 절단해서 얻을 수 있는 곡선임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기하적 대상을 대수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위해 이차곡선과 원뿔곡선의 관계에 종이 팝업(입체가 튀어나오도록 하는 기법)으로 관찰하고 그 특징을 설명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한 학생이 의미 있는 질문을 하였다. 이차곡선(포물선, 타원, 쌍곡선)을 원뿔곡선의 모선의 기울기와 비교하여 구분하였는데 자신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발견하고 이를 질문한 것이다.
필자는 답을 제시하는 대신 다시 반 학생들에게 그 질문을 넘겨 생각하여 서로 발표하게 하였다. 결국 포물선이나 쌍곡선처럼 보였던 곡선은 타원의 일부였음을 학생들이 찾아내고 원뿔에서 세 가지 곡선을 그 특징별로 완전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은 실제로 도형의 모형을 관찰하며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이차곡선과 원뿔곡선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벡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때였다. 이중 정오각형의 외접원의 중심에서 각 꼭지점까지의 벡터의 합이 영벡터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간단한 벡터의 연산의 결과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학생이 문제의 조건이 왜 성립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보통은 제시된 조건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문제를 푸는데, 이 학생은 그것이 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의미 있는 것이었다. 좋은 질문임을 언급하며 다시 반 학생들에게 왜 그럴지, 그리고 이것이 정오각형이라는 조건이 아닌 다른 정다각형에도 성립할지에 대해 묻고 그 이유를 찾아내게 하였다. 이렇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수업을 고백(告白)하다, 수업으로 Go Back 하자
학생의 성장을 위해 교사는 스스로 수업을 고백(성찰)하고, 학생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를 다시 말하면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로도 말할 수 있다. 문서로만 존재하는 교육과정, 기술로 접근하는 수업, 수업과 동떨어진 변별 중심의 평가, 학기말에 하는 교사의 상상력에 의한 기록이라는 분절되고 왜곡된 교육활동에서 벗어나서, 교사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사 스스로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업하고 평가하고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덩어리가 될 때 비로소 수업은 학생의 성장을 위한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여기 필자의 수학 수업을 간단히 고백한다. 한 교사의 사례를 통해 수업으로 돌아가 학생 성장을 위한 수업의 모습을 생각할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사고하는 수학, 흥미롭게 배우는 수학
매해 다양한 수준과 기대를 가진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학생이 직접 참여하여 소통하고, 개념 이해를 충실히 하여 지식과 문제해결력뿐만 아니라 수학의 재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생각을 나누는 수학 수업’
[그림1] 학생들이 선정한 수학수업의 특징 키워드 예
이러한 수업 방향의 실현 여부는 학기말에 학생들에게 받아 보는 ‘선생님의 수업 특징 키워드 세 가지’라는 쪽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교사는 스스로의 수업을 성찰하고 다음 학기 계획에 반영할 수 있다.
올해 1학기에는 2학년 진로 선택 과목인 <기하> 수업과 3학년 인문·사회 계열의 <확률과 통계> 수업을 담당하였다. 2학년 기하 수업은 이과계열 선택 학생과 본교 과학중점반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다양한 접근을 통한 개념 이해와 서로의 발표를 통한 사고의 심화를 추구했고,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와 확률 통계 과목의 유용성을 인식시키고 그 개념을 충실히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학생들의 말을 통해 그 성취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한 흥미 유발, 개념·원리 중심 수업, 배움 성찰하기
“오늘의 수는 어떤 그림이?”, “오늘의 핵심 개념은?”
차시 수업은 날짜 수를 다양한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에서 출발하여 지난 시간의 복습, 차시 내용 학습, 차시 내용 복습으로 이루어진다. 날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수학의 관심은 수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수를 헤아리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가령 3월 5일을 인삼과 오이를 그려 표현한다든지, 6월 24일은 육고기와 이사 가는 짐차로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필자의 생각에 놀라며 수동적이었던 학생들이 점차 주변에서 연결시키며 새로운 결과를 찾는 창의적 생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지난 시간의 복습, 차시 내용 학습, 차시 내용 복습’의 구성은 최근 학원 등의 사교육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풍토에서 정작 수업에 있어 ‘예습-수업-복습’이라는 학습의 순환의 기본이 흔들리는 학생들에게 수업 중 이러한 과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에 방과후 생업으로 복습할 겨를이 없는 것에서 착안하여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어느 경우든 수업을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만들고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수업을 구성할 때 꼭 염두에 둔다.
“움직이고, 만들어요”– 체험 활동으로 개념·원리 깨우치기
본 수업에서는 교과와 단원의 성격에 따라 실험이나 체험을 통해 생각을 열며, 이를 개념과 연결시키거나 이미 학습한 개념을 확장시키는 데 적합한 활동을 구성하여 단원 도입 또는 말미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수학 교과를 공식의 단순 암기나 문제 풀이가 전부라는 생각에서 탈피, 수학을 사고하는 과목으로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다. 또 체험, 관찰, 추론, 표현 등의 과정을 거쳐 개념을 다각적이고 심도 있게 탐구하고 이해하면서 수학을 학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수행 과제 중심의 활동지를 개발하여 활용 할 때 교과서는 중요한 제재가 될 수 있다. 본교 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나 타 출판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제시된 도입부, 본문, 문제, 마무리 탐구활동 등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이 단원을 학습하는 목적을 이해하고 동시에 단원의 핵심 학습요소를 익히고 이를 활용하는 기본으로 삼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예를 들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수학Ⅱ, 미적분의 급수의 학습에서는 무한(등비급수) 책갈피 만들기와 문제 만들기 활동을 통해 ‘등비급수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는 성취기준을 달성하고자 하였고, 미분계수와 도함수는 움직임의 수학(몸으로 함수 그래프 그리기) 활동을, 정적분의 개념과 활용에는 구분구적법을 통한 넓이 구하기나 적분이모형 만들기 등의 활동을 구성하여 각 개념을 익히고 성취기준을 달성하고자 하였다.그 외에도 수학Ⅰ의 지수함수와 로그함수에서는 실생활 모델링을 하거나 삼각함수 학습에서 직접 삼각함수 그래프를 그리게 하는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개념과 원리를 익힐 수있도록 하여 3학년 교실에서도 체험하고 활동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올해 1학기에도 2015 교육과정 적용 진로선택과목 <기하>의 평가를 계획하며 같은 교과 선생님들과 ‘이차곡선을 동심원이나 종이접기 등으로 구성하여 식으로 연결시키는 활동’ 등의 10가지 과정 중심 평가 과제를 공동개발하여 활용하였다.
2학기에도 학생들의 공간 감각을 키우기 위해 공간 좌표계를 만들고,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입체 도형 모형을 만들어 관찰하는 활동 등을 통해 공간 감각을 키우고 차후에 대상물 없이도 상상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2차원과 3차원의 도형의 이해를 바탕으로 4차원 도형으로 확장하는 수학적 사고의 유용성을 느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그림2] 이차곡선과 원뿔곡선의 관계 탐구 활동지
소통과 나눔으로서의 수학
“다른 방법으로 풀어도 될까요?”- 학생 참여 중심의 교실 문화
수업 활동에서 학생들이 문제를 만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복잡한 활용문제를 접하는 데 있어 많은 수의 제시된 문제를 수동적으로 풀어보는 방법이 아니라 학생들이 2인 1조로 짝 모둠을 구성하여 세 단계의 활동(1차 문제 만들기→ 짝 문제 해결하며 수정 의견 제시하기 → 2차 문제 수정 및 모범답안 작성 )을 통해 자신이 관련 문제를 직접 만들어 수정하고, 자신의 문제와 짝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보는 경험을 통하여 활용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를 스스로 발견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서로 문제를 풀고 수정해줌으로써 문제를 세련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개념을 분명히 하는 데 짝과 협력할 수 있음도 깨닫게 된다.
중간고사 및 수학능력평가에 대비하며 교과서와 기출문제 등을 참고로 창의적인 문제 1문항 만들어 제시, 발표하기(평가 목표, 좋은 문제인 이유, 문제 제시, 문제 풀이 포함)를 제시하여도 좋다. 사전에 공지하여 문항을 만들어 오면 수업 중에 돌아가며 발표하고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풀이 제시, 문제 출제자의 풀이와 비교, 좋은 문제인지 토론하게 한다. 이때 문제 상황을 수학적 언어를 이용하여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주어진 문제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는지, 문제 상황에서 많은 아이디어나 해결 방법, 해답을 산출하는지 등을 평가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문제의 출제 의도와 평가 목표 파악을 통한 개념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기초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교사는 제작한 문제의 내용, 문제 제기 및 문제 해결에서 보인 의
미 있는 특징을 기록하였다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다.
수학 공책은 특정한 형식을 제한하지 않으나 수업 중 주요개념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수업중 함께 풀어보는 문제는 공책에 풀이과정을 쓰도록 하여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게 할 수 있다. 일종의 자기 자신과의 의사소통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잘 활용하면 교사와 의사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대단원 학습 후 정규 고사 기간 전 공책을 수합하여 평가하는데, 완성도를 평가하여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학생들의 정리 상태와 수학적 표현, 수업 중 관찰한 내용 등에 대해 교사의 코멘트를 공책에 직접 적어 돌려줌으로써 생활기록부보다 더 직접적으로 학생들에 피드백할 수 있다.
[그림3] 문제 만들기 학생활동 모습과 학생활동 예
연구하는 교사, 함께 성장하는 교사
끝으로 학생의 성장을 위한 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교사 스스로의 성찰과 학생들의 피드백 외에도 동료교사와의 수업 나눔을 제안한다.
교사의 발표가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서로 소통하며 수업 역시 성장시킬 수 있다. 동학년 또는 동교과 교사를 중심으로 교내에서 교원학습공동체를 주체적으로 구성, 과정 중심 평가를 위한 수행과제 개발 및 적용하기나 교외 교사연구회 공모와 교수·학습자료 개발 등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업이 곧 연구이며 함께 연구하는 속에서 교사 역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