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아 (녹천중학교, 교사)
여러분들은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힘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짧지만 강렬한 7일 간의 휴가 속에서 일 년을 잘 살아내는 힘을 얻습니다. 1학기는 여행을 준비하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이겨내고, 남은 2학기는 여행을 돌아보며 추억을 곱씹으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7일은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사진으로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기에 언제부턴가 그림으로 함께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여행의 인상적인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그림 그리는 취미는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여행 떠나기 전부터 이런저런 조언들을 들은 터라 긴장이 많이 되는 여행지였습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소문에 철저한 준비하에 이탈리아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사람의 편견이란 무섭더군요. 이탈리아 테르미니역에 내리자 모든 사람들이 다 잘생긴 소매치기로 보이더라고요. 사람들과 조금만 부딪혀도 바로 가방이 무사한지부터 점검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보니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이곳에서 긴장감은 자연스레 풀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친절함과 맛있는 음식에 매료되었습니다.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겠습니까? 단지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함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만이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 있는 곳이 촬영 명당이었는지 자꾸 제 뒤에 바짝 붙어서 사진을 찍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낯선 사람과의 스킨십이 너무도 불편했기에 자리를 피해드렸습니다. 가슴 벅찬 여운을 간직한 채 거리를 걷다가 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가방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지퍼 열림 방지용으로 채워두었던 클립을 여느라 그렇게 팍팍 치셨나 봐요.
다행히 귀중품은 전대에 차고 있었던지라 분실된 건 없었지만 너무 불쾌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가방 지퍼 앞에 클립을 3개씩 꽂고 다녔습니다.
클립 3개의 든든함과 함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바티칸과 콜로세움, 천사의 성, 판테온 등 로마의 곳곳을 누비며 역사 유적지로서의 웅장함을 몸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은 바티칸 투어였습니다. 미술책에서 보았던 그 그림들을 실제로 접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감동이었어요. 바티칸 교황궁 내에 있는 바티칸 미술관에 가면 입장권을 주는데, 입장권의 그림은 랜덤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입장권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실제 벽화에서 찾아 입장권을 맞대고 사진을 찍는 것이 바티칸 투어의 필수 코스랍니다. 바티칸 투어를 통해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나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디즈니 영화 오프닝 로고에 항상 등장하는 디즈니 성을 아시나요? 디즈니 성에 대한 환상을 품고 독일로 향하였습니다. GDP 세계 4위, 엄격한 법과 질서, 높은 시민의식 등 선진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였는데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관광 명소인 유로타워를 향해 걸었습니다. 청소를 안 한 듯 길거리 휴지통에는 쓰레기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그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공원에서였습니다. 스프링클러가 터짐과 동시에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와 이불을 깔고 누워있던 수많은 노숙자들이 화들짝 놀라 이불을 등에 둘러메고 우르르 뛰어갔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았던 독일 난민문제의 심각성을 실제 접하게 되니 당황스럽더라고요.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독일 시골 마을로 향했습니다. 시골 마을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퓌센의 노인슈반슈타인성은 그 명성대로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성의 모습을 담으려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린 후 낭떠러지에 위치한 흔들다리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죠. 디즈니랜드의 ‘잠자는 숲 속 미녀’에 등장하는 성입니다. 루트비히 2세 왕이 이런 산꼭대기에 성을 짓는 데 자신의 생애와 전 재산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요. 한 사람이 인생을 바쳐 만든 성인데 한두 시간 줄 서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일은 음악의 도시 뮌헨, 평화의 마을 하이델베르크, 2차 세계대전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다하우까지 여행할 곳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면 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바로 스위스 때문이었습니다. 알프스 산 밑 광활한 들판에서 하이디처럼 노래 부르며 뛰어보고 싶다는 환상이 있었거든요. 스위스는 만화 속에서 접했던 그 모습 이상인 곳이었습니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풍경들이 펼쳐졌습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알프스 융프라우요흐를 볼 수 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스위스는 날씨변화가 심합니다. 저의 선조들께서 덕을 많이 쌓으신 걸까요? 여행 마지막 날 딱 하루를 제외하고는 비가 전혀 오지 않아 안개와 구름 없는 선명한 알프스 산을 눈에 가득 담고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스위스의 모습은 바로 그린델발트(스위스 인터라켄에 있는 산악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20분을 올라가면 피르스트 전망대가 나오는데요, 곤돌라를 20분이나 타고 간다니 얼마나 높은 곳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전 올라가는 길에 멀미가 나서 좀 힘이 들더라고요. 워낙 긴 거리라 중간중간 이상이 생길 경우 곤돌라가 허공에서 멈춰 설 때가 있어요. 멈춘 곤돌라와 함께 제 심장도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과 멀미, 생명의 위협을 모두 물리칠 만큼 피르스트의 경관은 제 생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앞에 펼쳐진 광경에 주체를 못하고 얼마나 폴짝폴짝 뛰고 달리고를 했는지 결국 며칠 뒤에 스위스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 순간을 즐겼으니까요.
피르스트에서 약 3시간 정도 하이킹 코스를 걷다 보면 바흐알프제 호수가 나옵니다. 맑은 날씨와 더불어 바람이 잦아야만 호수에 비친 알프스 산을 볼 수있는 곳입니다. 그 순간을 스마트폰의 그림으로 남겨봅니다. 호수에 비친 알프스 산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경악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느낌이 제 삶에 큰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 같아요. 며칠 뒤 아픈 허리로 인해 여행지에서 고생스런 일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또한 여행의 일부가 아니겠습니까? ‘허리만 안 아프게 해주시면 불평 안 하고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으니까요.
여행지에서의 다짐과 함께 추억을 돌아보며 남은 학기를 또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에너지원을 찾으시기 바라고 남은 학기도 힘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