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 미양고등학교 교사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는 날, 2017학년도 미양 고등 학교 독서토론문예교육 자료집이 나왔다. 지난 1년 간 본교 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고 쓰면서 성장해온 기록을 소박하게 갈무리 해 놓은 책이다. 나무 책장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소녀 의 표정이 참 순하고 행복해 보인다. 엄마들은 잠자는 아 기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들 하는데, 미양의 교사들은 책 을읽고있는학생들표정이제일예쁘다.잠자는아기 가슴을 토닥토닥거릴 때 엄마들이 가장 행복하듯, 미양 의 교사들은 책을읽는학생들등을토닥거릴때참으로행복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읽어요-사제동행 독서토론
2017학년도에 눈빛 맑은 미양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사제동행 독서토론 교실에서 모두 8권의 책을 읽었다. 4월에는 과학 교사와 『인간 존재의 의미-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에드워드 윌슨 지음)를, 5월에는 국어 교사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 고 소는 신을까-육식주의를 해부한다』(멜라니 조이 지음)를, 6월에는 사회 교사와 『새로운 백년』(법륜 지음)을, 7월에는 수학 교사와 『돈키호테는 수학 때문에 미쳤다-괴짜 수학자 의 인문학 여행』(김용관 지음)을, 8월에는 사서 교사와 『엄마는 성장기 아이는 사춘기』(최 윤정 지음)를, 11월엔 일본어 교사와 『고민하는 힘』(강상중 지음)을 읽었다.
독서토론 모임을 하기 전에 학생들은 먼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한다. 토론은 방과 후에 도서관에서 모둠별로 진행하는데, 하브루타 토론 방식을 원용한 서울형토론모형을 근간으로 한다. 먼저 각자 토론하고 싶은 질문거리를 적어보고, 짝 토론을 거친 후 모둠별 로 토론할 주제를 선정한다. 모둠 토론은 대개 원탁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며, 모둠별 토론을 마친 후에는 각자 다른 모둠으로 이 동하여 한 번 더 토론을 진행하는 월드 카 페를 운영한다.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모둠 별로 토론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으 로 그 날의 독서토론이 마무리된다.
9월과 10월의 사제동행 독서토론은 캠 프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9월에는 서 울특별시교육청이 주관하는 파주 책마을 라이브러리 스테이 행사에 참가했다. 『유대인의 생각하는 힘』(이상민 지음)을 주제 도서로 선정하여, 책을 읽고, 질문거리를 만들고, 저자초청 강연회도 듣는 등 1박2일 동안 다양한 독서활동을 즐겼다.
(미양고 1학년 박혜빈)
책마을 라이브러리 스테이에 참가했던 학생의 소감문이다. 캠프를 준비하는 과정의 노고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0월에는 체육관에서 ‘학부모와 함께하는 미양가족 독서캠프’를 진행했다. 『살아 있는 것도 나눔이다』(전성실 지음)를 주제 도서로 하여 학부모와 함께 모둠별 독서토론을 전개 했다. “‘살아 있는 것’도 나눔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살인 등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사 람이 살아 있는 것도 나눔인가?”, “생태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기생 현상도 나눔이라고 볼 수 있는가?”등과 같은 토론 주제가 도출되었는데, 학부모와 함께하는 독서 토론이어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독서 토론 후에는 음악치료사를 초빙하여 즉석 ‘미양 별빛 오케스트라’ 합주를 맛보았다. 또 모둠별로 ‘내 삶에 적용하는 나눔’을 기획해보기도 했다.
– 미양고 2학년 김예지, 가족 독서캠프 참가 소감
일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미양고 사제동행 독서 토론. 과연 학생들은 그에 대해 총체적 으로 어떠한 평가를 내렸을까? 12월 마지막 평가회에서 발표된 한 학생의 소감을 공유한다.
사제동행 독서토론은 [양파] 이다.
준비하고 토론하고 또 다음 달 토론을 준비하는데, 까도 까도 끝이 없는 독서토론, 양파의 연속 성 같다. 그렇지만 끝이 있는 법, 난 오늘 고등학교 생활의 마지막 독서토론 모임을 가졌다. 비로소 양 파의 심이 되었다. 작년 포함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독서토론을 해왔다. 정말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 이 들면서도 막상 꾸준히 하게 되면 끝을 보게 된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는 것이 고1 때는 정말 낯 선 체험이었다. 책도 꾸준히 읽어 본 적이 없고 토론도 싫어하던 햇병아리 시절의 ‘나’. 지금은 고3 을 바라보며 마지막 독서토론을 참여하는 수탉이 되어 있다. 독서토론을 하면서 책에 흥미를 갖게 되 었고토론을통해사람앞에서말도잘할수있게되었다.한달에한번있는토론.정말준비하 기 힘들고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막상 토론은 한 시간 반 정도 되지만 말이다.
그 속에서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었던 독서토론은 미래에 두고두고 기억날 학교 활동 중 하나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미양고 2학년 구승현)
교과 수업과 연계되는 독서토론대회
2017학년도 3월 미양고 국어과 교사들은 교내 독서토론대회를 수행평가와 결합하여 진 행하기로 협의하였다. 독서토론 대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전 과정 을 수업시간에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교실 수업에서 1차로 진행되는 독서토론(예선)에 서 반별로 우수학생 20%를 선정하고, 이 학생들을 별도로 모아 본선과 결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독서 토론대회라 예선의 텍스트는 단편에서 골랐다. 1학년은 김유정의 소설 「봄봄」(논제: ‘장인’은 사기꾼이다.), 2학년은 이강백의 희곡 「결혼」(논제: ‘남 자’는 사기꾼이다.)이 선정되었다. 중간고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작품을 읽고, 입론서를 작 성한후찬성과반대를적절히배분하여한학급당6모둠을짠후원탁토론을진행했다. 그리고 모둠에서 1명씩 우수토론자를 선정하여 본선진출자로 삼았다.
본선은 1, 2학년 구분 없이 전광용의 소설 「꺼삐탄 리」(논제: 이인국의 처신은 처벌받아 야 하는 것이다.)를 대상으로 했다. 반별 예선을 거친 학생들을 한 모둠에 10~11명씩 총 여섯 모둠에 배치한 후, 원탁토론을 진행하여 한 모둠 당 두 명씩 총 12명의 결선 진출자 를 선발하였다.
결선은 디베이트 방식이다. 결선 진출자 12명은 한 팀 당 3명씩 네 모둠으로 재편성된 후 디베이트 교육을 받았다. 결선에 오른 학생들은 새로운 토론 방식을 익혀야 했고 또 팀 원으로서 협동심도 발휘해야 했다. 그렇게 40여일 간 숨 가쁘게 달려온 대망의 결승날! 입 추의 여지도 없이 꽉 들어찬 시청각실에서 청중들과 심사위원과 토론자들이 뿜어내는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양고 교사들은 학창시절에 남의 의견을 ‘새롭 게’ 듣고, ‘정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경험을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학생들이 만드는 미래의 한국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소통 가능하고 합 리적인 사회일 것이라고 믿는다.
심사위원을 울리다 – 독후감 발표대회
위에서 소개한 것 이외에도 미양고에서는 일 년 동안 문학 기행, 독서 퀴즈대회, 독서 관련 4(5)행시 짓기 등 다양한 독서 관련 행사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 고 싶은 행사는 바로 심사위원을 울린 행사, 독후감 발표대회이다.
독후감 발표대회는 10월 말 기준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3편 이상의 독후감을 올린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선 서면 독후감 심사를 한 후 발표대회에 참가할 12 명의 학생들을 선정하였다. 이 대회는 현대 사회에서 읽고 쓰는 능력 못지않게 말하기 능 력,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는 교육적 믿음 에서 비롯된 행사이다. 학생들이 들고 나온 책들은 참 다양하고 실팍했다. 사제동행독서토 론에서 같이 읽었던 8권의 책 외에도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82년생 김지영』, 『조선의 궁궐과 종묘』, 『대논쟁! 철학 배틀』 등 실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며 세 상을 해석하는 자신들만의 시각을 차분히 버려가 고 있었다. 원고 하나 없이 포인터로 화면을 넘겨 가며 자신이 무엇을 읽었고, 그것에서 무엇을 배 웠는지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게 밝혀나가는 학생 들의 모습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그 학생들이 너 무나도 자랑스러워 눈가를 훔치게 되었다.
“엄마, 미안하지만 난 엄마와 생각이 달라. 나는 안정된 직장보다는 일한 만큼 월급을 주는 곳에서 일할 거고, 결혼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지는 않을 거야. 난 내가 선택할래.”
제 결심은 단호했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무섭습니다. 내 이런 결심들이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릴까봐, 내 꿈을 포기하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그랬듯이 나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대한민국 평범한 아줌마의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눈물을 얼마나 삼키고 또 삼켜야 하는지 그녀의 삶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독후감 발표대회 금상을 수상한 2학년 박신후
‘무섭습니다.’ 학생의 이 말 앞에서 눈물이 났다. 우리 학생들이 앞날에 대해 때로는 자 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가장 솔직한 감정, 무서움. 무서워하는 어린 벗들 옆에 어른이랍 시고,교사랍시고해줄수있는것은많지않다.단지믿을뿐이다.학창시절읽은책한 권, 혹은 그 책 한 권을 친구들과 같이 나누었던 경험이 우리 어린 벗들이 설령 미로를 헤 매게 될지라도 그 길을 헤쳐 나올 지혜의 빛이 되어 줄 것이라고. 그 믿음이 있어 미양고 교사들은 지금도 어떤 책을 학생들과 어떻게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