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중평중학교, 교사)
설계 배경
우리들은 이야기에 매료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이 사랑하는 것, 그들이 추구하는 것에 공감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사랑한다. 그렇기에 학습 내용에 스토리를 입히는 스토리텔링은 매력적인 수업 방법이다.
과학은 규칙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모든 학생에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때로는 과학 수업이 따분하고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수업으로 아이들을 초대해야 할까?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예의 바르고 규칙을 잘 지키며 학구적인 편이다. 학업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 공부를 좋아하고 있을까? 그들의 삶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배우는 지식이 시험이 끝나면 더 이상 몰라도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수업이 되고, 배우는 내용에 감정을 입힐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스토리텔링 수업을 기획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어떤 이야기를 담아서 수업과 연결해야 할까’였다.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대이면서 누구나 알고 있고 호감도가 높은 등장인물을 찾아야 했다. 또한 ‘식물과 에너지’ 단원을 생태와 연계해서 스토리를 짜야했기에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식물이 있어야 했다. 고심 끝에 어릴 적 좋아하던 『어린 왕자』를 선택했다.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호감이 있으면서도 표현이 서툴렀다. 이 부분이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와 식물에 대한 무지를 이중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여우의 목소리를 빌려서 전달해주고 싶은 지식과 조언을 스토리에 입히기로 결정했다. 사춘기 어린 왕자의 고민을 담을 이야기인 만큼 제목은 ‘어린 왕자의 여름밤’으로 정했다. 자, 이제 교사 교육과정을 설계해볼까?
교사 교육과정 설계하기
STEP 1. 학습환경 및 교사 철학 돌아보기
교사 교육과정의 설계는 학생의 삶과 교사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학생의 학업 태도와 교육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학생 개개인이 처한 현실과 여건을 고려하고, 교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학생의 삶을 다양화하고 삶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과정 설계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STEP 2. 성취기준 재구조화
수업의 뼈대를 잡기 위해서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성취기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스토리를 구성하였다.
성취기준을 토대로 이 단원에서 학습해야 하는 핵심 내용과 질문은 무엇이며, 아이들이 학습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평가를 적용할지 결정했다.
단원 성취기준의 핵심 지식인 광합성에 대한 내용을, 시들어가는 장미를 중심으로 수업 내용에서 배울 수 있도록 스토리를 재구성하기로 했다. 어린 왕자는 시들어가는 장미를 돕기 위해 광합성이라는 개념을 배우게 된다. 또한 어린 왕자는 여우와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식물인 장미와의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식물의 특성과 환경의 관계성을 이해한다. 식물인 장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린 왕자의 질문인 ‘장미가 광합성을 하게 해주려면 장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주면 좋을까?’, ‘광합성을 잘할 수 있게 해주려면 나의 행성 환경을 어떻게 조성해주면 좋을까?’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과학적 사고력과 과학적 문제해결력을 키우고, ‘광합성이 일어나는 장소와 광합성의 산물’과 ‘광합성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 등의 탐구로 과학적 탐구 능력과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운다. 더 나아가 교과 내용을 생태와 연관 지어 기후 위기가 식물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이유를 분석하는 글쓰기 활동을 수행평가로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는 생태 수업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
장미에게 첫눈에 반한 어린왕자는 장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서툴기만 한 관계를 잘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지구에서 만난 여우에게 고민을 얘기하면서 수업이 시작된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과학 탐구 요소를 이끌어낸다. 식물과 에너지 단원의 탐구 실험은 실제 수업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되고, 실험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영상으로 실험을 대체하고, 실험 영상에서 제시한 데이터를 학생들이 해석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집중했다.
사춘기 학생들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수줍어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궁금하지만 차마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그 모습을 어린 왕자와 여우의 고민 상담 대화에 담아냈다.
수업의 마무리는 어린 왕자의 독백으로 채워 여운을 남긴다.
광합성이 일어나는 조건
어린 왕자 스토리의 등장인물 역할을 학생들에게 부여해주어 캐릭터에 맞게 지문을 읽도록 해보는 것도 수업의 재미를 높여준다. 즐거워하며 캐릭터의 성향에 맞게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어 주는 학생도 있고, 수줍어하며 사근사근 읽는 학생도 있다.
어린왕자의 고민에서 과학 탐구 요소를 이끌어 내 탐구 수업으로 초대한다. 시금치 실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시금치 잎 조각이 1% 탄산수소 나트륨 수용액이 담긴 비커에서 떠오르는 의미를 명확히 짚어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세 가지 그래프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혼자 찾아보도록 한 후 유의미한 관계를 도출하도록 지도한다. 그래프 분석을 유독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다. 백지를 주고 그래프에서 알 수 있는 모든 사실을 적도록 하면 그래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체크해서 피드백을 주기 좋다. 그래프를 분석한 후 내가 어린 왕자라면 장미를 위해 어떤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할지를 고민해보도록 한다. 이때 실제로 장미를 키우기 위한 온실의 조건을 추가 자료로 제시해주어도 좋다. 두 번째 스토리도 어린 왕자의 독백으로 마무리가 된다.
과학 글쓰기
교과 내용을 생태와 연관 지어 기후 위기가 식물의 생존에 영향을 주는 이유를 분석하는 글쓰기 활동을 준비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 변화 그래프를 해석하고 식물의 광합성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론하고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글을 작성하는 평가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기후 위기가 식물의 광합성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고, 스토리텔링 수업을 돌이켜 보며 어린 왕자의 감정에 아이들이 공감하며 생태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식물인 장미와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맺는말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어린 왕자가 무수히 많은 장미를 보며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고 닮지 않았어.”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나의 장미’였기에 특별했다. 이 행동은 효율적이지 않다. 가까이 있는 데다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장미들로 충족할 수 있음에도 ‘나의 장미’를 위해 다시 행성으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해내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격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식물을 ‘안다’에서 ‘이해한다’, ‘좋아한다’로 바뀌었으면 한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장미를 찾고 관심을 가질 때, 그 식물과 관련된 분야로 지식과 경험이 확장될 것이다.
‘감동은 비효율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교사 교육과정은 교사에게는 비효율적인 교육과정이다. 한 차시의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럼에도 교사 교육과정을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 개개인이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 두 인격체가 존재한다. 포스트잇에 덕지덕지 추억을 얹어 붙여놓은 여느 학교 앞 카페처럼, 말하고 듣고 함께하는 공간에서 생겨난 문화에서 공감대가 생성된다. 그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두 인격체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교육과정에 녹여내어, 배우는 내용이 삶에 파고 들어와 각자만의 의미를 만들 때 비로소 교사 교육과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참고문헌
• 생텍쥐페리(1943), 어린 왕자, 새움.
• 박지선 외(2022), 배움을 디자인하는 교사 교육과정,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