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태호(서울고덕초등학교, 교사)
전화위복-코로나19, 네 덕분에!
2020년에 학교에서 문예체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1인 1악기 교육 강사비, 예술동아리 운영비, 체육대회 운영비, 학예회 운영비, 교구 구입비 등 대부분의 예산이 남아있었다. 할 일이 줄어서 좋기도 했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더 컸다. 그래도 문예체부장으로서 선생님들께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서울특별시교육청(이하 서울시교육청)에서 1학기에 진행했던 ‘서울학생 온라인 스포츠한마당’이 떠올랐다. 이 대회에서 실시한 여러 종목 중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기 적합한 종목을 골라 진행하면 온라인 체육수업을 대체할 수 있고, 학생들의 신체활동에 대한 욕구도 해소하며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종목이 ‘저글링’이었다. 사실 저글링은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종목이었다. 모든 뉴스포츠 교구가 그렇지만, 저글링 공이 꽤 고가였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축구공 하나, 배구공 하나 마음껏 구매하기 어려운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추경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예산으로 저글링 공 60세트를 구입했다.
저글링 공은 준비가 되었지만, 저글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나부터 저글링을 할 수 있어야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었기에,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맹연습을 했다. 손재주가 없지 않은 나였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성취감을 학생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때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줄넘기 급수표, 리코더 급수표 등을 만든 경험으로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저글링 단계표’를 만들었다. 또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도 집에서 혼자서 연습할 수 있도록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탑재했다.
이 당시 나는 6학년 8학급의 교과교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6학년만 가르치기가 아까워 나머지 학년들도모두 돌면서 1시간씩 체험수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저글링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저글링 교육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우쿨렐레에 이어 제2의 전문분야가 생긴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저글링을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이게 다 코로나19 덕분이다.
저글링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행정구청에서 교육경비보조금을 추가 신청하라는 공문이 2020년이 다 끝나갈 무렵에 내려왔다. 저글링의 교육적 효과를 체감하고 있던 터라 교내 저글링 대회를 계획하고 과감히 예산을 신청했다. 서울시교육청 ‘온라인 스포츠 한마당’을 모방하여, ‘교내 뉴스포츠(저글링) 대회’라 이름을 붙였다. 충분한 예산 지원을 받아 170여 명의 참가자 전원에게 고가의 저글링 공 세트를 지급하였다. 온라인 대회 참가가 쉽도록 전국민이 사용하는 SNS인 카***채널을 활용하여 저글링 수행 영상을 올리게 했다. 온라인만의 장점을 활용하여 한 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간 내내, 기록이 좋아질 때마다 계속 올리도록 했다. 주변 동료 교사를 모아 심사위원단을 꾸렸고, 학생들이 올린 영상을 보며 하나하나 답글을 달아서 참여 의욕을 북돋웠다. 온라인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대회가 끝난 후에도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저글링을 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예전 우쿨렐레를 지도할 때의 뿌듯함을 저글링 교육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2021년에도 서울시교육청의 ‘온라인 스포츠 한마당’ 대회가 열렸다. 교내 저글링 대회 상위권 입상자들이 더 큰 무대에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욕심부리지 않고 참가에 의의를 두고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등교 수업일에는 방과후에 남겨서 연습을 시켰고, 온라인 수업일에는 SNS를 통한 영상 업로드와 답글을 통해 지도했다. 지겨울 법도 한데, 학생들은 기록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질 때의 희열을 느끼는지 즐겁게 대회에 참여했다. 심지어 가족여행으로 교외체험학습을 간 학생이 숙소에서 영상을 찍어서 올리기도 했다. 장래희망이 저글러(Juggler, 저글링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가 되겠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마침내 결과 발표 공문이 도착했다. 결과는 남초 저글링과 여초 저글링 두 부문 모두 우승이었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교직에 있는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경기에서 우승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올림픽 금메달 감독 부럽지 않았다. 경기에 참여한 학생들도 전교생 앞에서 상장 및 메달 수여식을 가졌고, 경기 영상도 학교 방송을 통해 방영되는 영광을 누렸다.
2학기에는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대회가 열렸다. 서울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기회였다. 서울시 대표 선발전이 있었는데, 당당히 남초 부문, 여초 부문 대표로 선발이 되었다. 전국대회이다 보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저글링의 고수들이 모였다. 큰 대회 참가를 통해 학생들의 시야와 경험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고, 학생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눈빛을 보며, 이런 경험들이 학생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련-성장의 기회
2021년은 저글링과 함께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글링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 수가 늘고, 저글링을 계속해 오던 학생들의 실력이 늘고, 나의 지도 능력도 늘었다. 이 학생들을 1년 더 가르친다면 전국 1위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계속 올라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내 저글링 경력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은 학교를 옮겨야 하는 해였다. 학교를 옮기면 저글링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내려놓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시련일 수 있지만, 이 기회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더 성장할 계기로 삼아 새 학교에서도 도전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로, 전에 만들었던 단계표를 수정보완하였다. 전에 만들었던 단계표보다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바꿨다. 특히, 저글링을 빠르게 익히기 위해서 구음을 사용하여 지도하면 효율적이어서 동작에 맞는 구음을 추가하였다. 보완한 단계표에 맞춰 영상도 다시 제작했다.
두 번째로, 모바일 게임을 모방한 등급제를 시행하였다. 저글링을 하다 보면 학생별로 배우는 속도가 차이가 난다. 빠르게 배우는 학생은 싫증을 느낄 수 있고, 느리게 배우는 학생은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학생들이 꾸준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아이디어를 낸 것이 등급제이다. 단계표를 모두 완료하면 ‘브론즈 등급’, 저글링을 50개 연속으로 하면 ‘실버 등급’, 100개 연속으로 하면 ‘골드 등급’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의외로 효과가 아주 좋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또 친구보다 높은 등급을 얻기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나중에 ‘골드 등급’을 훨씬 넘어서는 학생들이 생겼는데,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추가로 만든 등급은 ‘다이아’, ‘여의주’, ‘레인보우’ 등이었다.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학생들은 등급을 올리는 것에 진심이었고 도전을 거듭했다.
세 번째로, 매일 아침 저글링 30초 연습 시간을 가졌다. 잠깐이라도 공을 꺼내서 만져봄으로써 저글링에 관심을 잃지 않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명언을 저글링 교육에 적용하여 ‘하루라도 공을 만지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말로 바꾸어 실천했다.
결실-노력에 대한 보상
이렇게 5개월간 연습을 하고 ‘2022 서울특별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대회(비대면)’에 저글링 남,여 초등 단체부문에 참가했다. 연습 기간이 짧아 높은 순위는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1위였다. 2학기에 같은 성격의 전국대회인 ‘2022년 비대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전’이 열렸다. 이번에는 ‘저글링’ 종목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스태킹’1 종목과 ‘버피텐’2 종목에 추가로 참가하였다. 저글링 이외에 다양한 종목에 참여 해봄으로써 흥미를 잃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대회도 서울시교육청에서 예산 지원을 받았고, 이 예산으로 개인별 컵스택을 지급했다. 자신의 컵스택이 있어서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였다. 스포츠스태킹 개인별 기록을 학급에 게시했는데, 1학기에 저글링 등급에 열광하던 것처럼, 0.001초 단위로 단축되는 자신의 기록에 희열을 느끼면서 열심히 참여했다. 버피텐도 스포츠스태킹과 같은 방법으로 지도했다. 참가 신청을 할 때는 간단한 종목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의외로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힘이 듦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즐겁게 참여했다. 예선대회를 거쳐 통해 남초 저글링, 여초 저글링, 남초 버피텐, 여초 버피텐 4개 부문에서 서울시 대표로 선발되어 실시간 경기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실시간 경기는 유튜브로 전국에 생중계 되었는데,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열린 세상-비대면 온라인 교육
최근 몇 년간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온라인 교육을 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온라인이기에 더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했던 교육활동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학생스포츠클럽 대회’였다. 온라인이었기에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또 온라인으로 참여하다 보니, 한 번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자신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다. 전국 단위 스포츠대회 참여를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 경비가 든다. 그렇지만 온라인으로 실시간 경기를 진행함으로써 비교적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전국 단위 스포츠대회 참여가 가능했다. 온라인 대회 참여를 통해 학생들이 색다른 경험을 통해 즐거움도 느꼈겠지만, 마음속에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을 새겼다. 이 확신과 자신감이 학생들의 바라는 꿈을 이루는 데 밑거름으로 사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