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아
1. 그림책은 눈으로 보는 시(poem)
국어과와 미술과는 자기 표현적 성격이 강한 교과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적, 문자적 매체를 사용하여 내러티브로서 전달하는 한편 내면세계를 시각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국어·미술 융합프로젝트수업은 언어로 표현한 것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창조적 사고를 자극하는데,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삶의 표현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경험하도록 한다. 이러한 교과 영역간의 통합과 조화는 서로의 활동을 자극시키고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게 한다. 그림책을 ‘눈으로 보는 시’라고 표현했던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은 그림책의 그림과 글의 관계를 ‘리듬감 넘치는 단어와 그림의 당김음’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 때 글과 그림은 단순히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역동성을 가지며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소통적 관계를 가진다.
2. 국어·미술 융합프로젝트로서 그림책 창작 수업의 가치
이미지 스토리텔링 그림책 창작의 과정은 국어과와 미술과의 의사소통적 기능과 자기표현적 특성에 대해 상호 보완적이면서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한다. 그림책 창작의 주제는 실생활의 다양한 분야와 연계될 수 있으며, 작업의 과정에서 글쓰기, 비평, 그리기, 만들기, 디자인, 편집, 제본 등 여러 교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통합적인 기능이 요구된다. 이미지 스토리텔링 그림책 창작수업의 과정에서 아이들은 독창적인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자신의 언어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상상의 세계를 풍부하게 자극시켜 주며 독특한 발상을 만들어가게 한다. 스스로 어휘를 선택하고 스토리를 조직하며 이를 시각화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은 어린이작가에게 하나의 상상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값진 경험을 선사한다.
3. ‘이미지 거울’을 통한 나만의 내러티브 찾기
이미지 스토리텔링에 있어 ‘이미지 거울’에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는 것은 나만의 내러티브를 찾고 이야기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미지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어느 날 문득, ‘난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고 고백한다. 부모님이나 친구에 의해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했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 모습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이 들 때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해 알아보는 여행에 용기를 내는 것, 즉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확인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있는 놀라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4. 개인적 경험의 장면을 서사로 발전시키기
아이들의 ‘살아있는 언어’를 그림책에 담기 위해서는 삶 속에 스며있는 장면에서 소재를 발견하며 개인적 경험의 장면을 서사로 발전시키도록 한다. 수업의 첫 시간에 자신의 이미지를 ‘학사모’로 그려 소개했던 어린이작가 이혜승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에 주목하였고, 자신의 그림책 ‘학사모의 질문’에서 그 화두를 진솔하게 풀어내었다.
“요즘과 같은 5포시대에는 학사모를 쓰고 졸업을 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
그래서 뉴스에서는 이를 ‘우울한 졸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힘들게 공부해서 학사모를 써야 하는가?”
평소 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으면서 문득 품었던 질문을 그림책의 서사로 발전시킨 것이다. 서사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보고 들었던 미디어 자체를 그대로 그림책에 옮겨오는 콜라주의 표현 방식을 택했다. 관련된 신문 기사를 오리고, 인터넷 검색창과 뉴스 동영상의 화면을 캡처하여 붙이는 방식으로 오늘날 현시대에 존재하는 미디어를 있는 그대로 그림책에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어린이작가로 하여금 ‘많은 학생들이 꿈을 찾기 위해서 학사모를 쓰는 것이라면, 대체 꿈이 란 무엇일까?’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이어가게 했다. 꿈이란, 좋은 성적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는 것일까? 혹 돈을 많이 벌거나 취업을 잘하는 것이 곧 꿈을 이룬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고민의 끝자락에 지은이는 “이 5포시대에 나도 이렇게 포기, 포기, 포기하고 좌절하게 될까봐 두려워…”라는 말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으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꿈이란,
무슨 직업을 하고, 무슨 물건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
어떤 삶을 가꾸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닫는 마지막 말에 다음과 같은 지은이의 진심이 담겨져 있다.
“친구들아 우리,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현재 대한민국의 12살을 살고 있는 학사모의 진심어린 고민과 질문에서 우리는 따끈하게 살아 숨쉬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는 고민과 화두를 서사로 발전시켰을 때 이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5. 조형언어의 이해와 적용
때로 우리는 여행지에서 가슴 아픈 장면과 만날 때가 있다. 어린이작가 김유송은 자신의 그림책 ‘꾸뜻의 택시’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로 인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고 말한다. 바로 나를 친절하게 태워주었던 허름한 차림의 택시기사를 다른 여행객들이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 때의 심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선’의 조형언어를 지혜롭게 활용하였다. 마음이 쿵 내려앉은 것을 심전도의 오르내리는 선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의 흐름을 따라 글씨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쿠웅’ 떨어지는 선의 과감한 움직임으로 인해 당시 어린이작가가 느꼈을 가슴 떨림의 흔적이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마음이 쿠웅 내려 앉았다.
꾸뜻씨는 우리에게 친절했고, 부드럽게 운전을 잘하는 아저씨다.
그 좋은 아저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것이 싫었다. “
가족의 병상을 지키는 보호자는 환자의 심전도가 갑자기 뚝 떨어질 때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인다. 어린이작가 김유송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택시기사를 보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후벼 파는 듯 아픈 느낌, 그 느낌을 심전도의 뚝 떨어지는 그래프 선으로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심정을 그대로 공감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선 또는 색과 같은 조형언어의 지혜로운 활용은 작가의 심경을 보다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6.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발견하기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 실과 교과서를 통해서 ‘솎아내기’에 대해서 배운다. 실과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솎아내기’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은 ‘솎아내기’에 대해 배우면서 튼튼한 새싹들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작고 약한 것들을 미리 뽑아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금 작은 새싹이라고 해도 나중에 얼마나 크게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일찍부터 뽑혀나가는 새싹이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과 수업시간에 문득 가졌던 이 생각의 씨앗은 이미지 스토리텔링 그림책 창작 과정을 통해 사회에 대한 화두로 발전되어 갔다.
강한 새싹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 약한 새싹들을 뽑아내는 장면은 뉴스에서 보았던 입시경쟁 문제, 구조조정 문제를 떠올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이 담아내는 그림책의 장면들은 대학에 떨어지는 작은 새싹들, 구조조정으로 떨어지는 작은 새싹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솎아내기는 ‘새싹’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각종 노랑, 연두, 초록, 에머랄드 색을 종이에 흩뿌리는 표현방법을 택했다. 봄날 촉촉한 땅에 새싹이 돋아난 모습에서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또 실과 교과서를 실제로 오려 붙이는 작업을 통해 교실수업 현장에서 비롯된 화두를 그대로 살려 표현하였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은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 이 새싹들처럼 자신이 뽑혀져 버릴까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을것이라고 말하며 그 친구들에게 ‘우리 걱정하지 말고 좀더 힘내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지은이가 우리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이 새싹이 야기를 통해 발견한 인간과 삶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묵직한 통찰이다.
“식물은 솎아내기를 하지만, 사람은 강한 사람과 약한사람이 다같이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