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국가기초학력지원센터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수학습연구실장)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배움이 느린 학생의 성장 과정에 관한 연구1를 진행했다. 4년 동안 44명 학생의 성장을 종단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였다.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만나러 갔고, 한번 가면 2~3일에 걸쳐 등교에서부터 하교하는 시간까지 학생의 일과 속에 있었다. 때로는 함께 급식을 먹기도하고,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섞여 지냈다. 최대한 배움이 느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학생들이 원하는 것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확인하고자 했다. 4년 동안 개별 학생의 성장에 관한 엄청난 양의 자료가 수집되었고, 매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기록하고 분석하며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사실 지난 4년을 다시 돌이켜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정말 힘이 들었다.’이다. 나름 연구를 꼼꼼하게 설계한다고 노력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아이들이 툭툭 던져냈던 말들과 행동에 대해 연구자로서 미숙하게 반응했던 장면들이 떠오를 때면 불편해져서 눈을 질끈 감는다. ‘아, 왜 그걸 그때 깨닫지 못했을까?’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마주하는 것은 덩달아 전해지는 에너지의 소진을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연구진의 내공이 부족했음에 대한 후회도 생긴다. 그래서일까? 분명히 종료된 연구이고, 네 권의 보고서와 한 권의 별책(우리가 몰랐던 교실2)까지도 만들어 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생각이 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1. 고민의 시작 : 귀속변인과 공적변인의 싸움
이 연구는 2017년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 이렇게 3개 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비교적 학습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초등학교 3학년을 가장 어린 참여자로 설정했다. 연구자와 처음 대면한 어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원래 못해요. 1~2학년 때 저만 덧셈을 못 했어요.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고, 연구의 설계를 다시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라고,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아이의 말에 당황했고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쳤기 때문에 말뿐인 위로라는 것을 아이도 알아챘을 것 같았다. 그다지 적절한 대응은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 이 연구는 좀 더 이른 시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어야 했구나. 그런데 이 학생은 1~2학년 때 도대체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무엇을 경험하게 되면 “선생님 저는 원래 못해요.”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걸까?’
한두 번 정도만 덧셈을 못 했던 것은 아닐 것이며 여러 차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아채고, 주위의 친구들도 인지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모든 학생이 똑같이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반대의 질문을 떠올려봤다. 덧셈을 잘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서 잘하게 된 것일까? 최근 1학년 교실을 관찰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덕분에, 1학년 꼬맹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본적이 있었다.
“OO이는 글씨를 잘 쓰는구나. 어떻게 잘 쓰게 되었을까?”
“아휴~ 우리 엄마가요. 유치원 때부터 엄청나게 시켰어요. 맨날 맨날 읽고, 맨날 쓰고, 구구단도 외우고, 아휴~ 아무튼 엄청 했어요.”
생각지 못했던 아이의 대답과 어른스러운 말투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어쩌면 “선생님 저는 원래 못해요.”라는 말을 하게 된 상황 일부는 이처럼 이미 배우고 온 학생들 사이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형성된 귀속변인, 학습부진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이 이러한 귀속변인의 하나인 가정에서의 돌봄 부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덧셈을 못 하는 학생의 상황을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이는 학생의 탓도 아니고 학교의 탓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정의 탓을 하기도 어렵다. 어느 부모가 제대로 가르치고 싶지 않겠는가? 굳이 누구의 탓이라 할 수도 없고, 사실 탓을 할 필요도 없는 문제이다. 다만 고민해야 하는 포인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공적변인은 무엇일까?’이다.
2. 파생되는 질문 : 학생들이 원하는 공적변인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학습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고자 노력했고, ‘어려움’에 중점을 두어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연구를 마치고 그간 수집된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다가,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럼 학습을 잘하는 학생은 어떻게 해서 잘하는 것일까?
“선생님, 리코더는 지옥이에요.”라고 말했던 학생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리코더를 처음 잡았을 때 ‘미’만 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도 계속‘미’만 불었다. 리코더를 연주한다는 것은 소근육이 발달해야 하고, 악보와 운지법을 읽어 내야 하는 나름 고차원적인 활동이다. 이 학생은 이 복합적인 기능이 잘되지 않아서 리코더를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 반대로 리코더를 잘 부는 학생은 복합적인 기능이 잘 처리되니까 리코더 연주가 가능하다고 말해야할까? 사실 뇌기능의 작동 여부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니 차치하고 생각해봤다.
학습을 잘 해내는 학생의 뇌에는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는 것은 그냥 하면 되는 것’이라는 알고리즘이 있다. 하면 되는 것들이 쌓인다. 선생님이 시키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고 해보면 할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신뢰가 형성된다. 그런데 배움이 느린 학생에게는 다른 알고리즘이 있다.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해도 되지 않았던 경험들이 누적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알고리즘이 생겨버렸다. 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쌓여간다.
배움이 느린 학생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공적변인은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는 것은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면 되는 것’이라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알고리즘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학생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굉장히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적당한 노력으로 해낼 수 있는 과제를 꾸려내야 하는 과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해냈을 때, “거봐~ 해냈잖아.” 혹은 “그래~ 이거야. 이렇게 하는 거야.”의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연결해야 한다. 해낼 수 있도록 매우 잘게 쪼개는 것이 핵심이고, 잘 쪼개는 것이 전문성이다.
그렇다면 일단 부정적인 알고리즘이 형성된 학생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은 무엇일까? 자료를 다시 들춰보니 학생들은 ‘위로’를 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는 원래 못해요. 1~2학년 때 저만 덧셈을 못 했어요.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라고 말했던 아이가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은 “아 그래? 선생님도 1학년 때 덧셈 못했었는데, 나랑 똑같네?” 혹은 “선생님도 못하는 거 엄청 많아.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못하는 거 투성이야. 덧셈 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하면 되는 거야. 걱정하지 마 괜찮아!” 또는 “가장 멋진 게 뭔 줄 알아? 어제는 못 했는데, 오늘은 하게 되었다는 거다~”
지금 배워도 괜찮다는 ‘위로’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야했다는 후회가 든다. 최근에 ‘긴긴밤’3이라는 놀라운 동화책을 읽었는데,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3.생각하지 못한 구멍 :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건너뛰는 학습
중학교 3학년 학생과 면담을 하는 중에 수업 시간에 배운 ‘오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질문에 대해 대답을 못했는데, 왜 그랬는지를 알아내고자 다시 질문해봤다.
“밤하늘에 광명이 무엇일까?”
“광명이 뭐예요?”
“아, 광명… 사전을 함께 찾아볼까?”
사전을 건네주며, 찾을 시간을 주었다.
“찾았니?”
“…”
“왜? 못 찾았어?”
“찾았는데요, 사전에 광명이 여러 개라 어떤 건지를 모르겠어요.”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에 관한 문제점을 짚는 방송과 기사가 몇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어휘력이 어떻게 쌓이는지를 전문가에게 물으니 독서라는 답이 돌아 온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솔루션 이다. 그런데 솔직히 아프면 약 먹으라는 피상적인 말로 들렸다. 약 먹으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배움이 느린 학생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읽는가? 이 학생에게 초등학교 때 동화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물었다. 유치원 때 엄마가 읽어주셨던 것말고는 없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은 읽어주거나, 함께 읽거나, 읽을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즉, 한번 맛을 보게 해야 한다.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해서 봤더니, 재미있더라.’라는 알고리즘이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책을 읽어라.’ 라는 말로는 너무 부족하다. 어떻게 맛을 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섬세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그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전문가는 교사밖에 없다.
몇 해 전 수업 혁신 연구를 할 때, 어떤 중학교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를 가르칠 때가 되면, 일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도서관으로 간다고 한다.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에게 어울릴 만한 시를 찾는 활동을 시키는데, 왜 그 시가 친구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를 낭독하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친구와 딱 어울리는 시들을 찾아내는지 서로들 어찌나 깔깔대면서 즐거워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진행하는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급에서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수업 전에 배울 진도를 알려주고, 해당 단원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메모지에 적어서 달라고 한단다. 그리고 수업 시간 중에 그 학생이 모르겠다고 하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잘 적어주지 않았는데, 자신이 적어낸 단어를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꼭 한번씩 짚어주니 좋아하면서 점점 모르는 단어를 열심히 적어낸다고 했다.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고, 중심 문장을 찾아내고, 요약하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논술학원이라는 곳의 시스템을 들여다봤는데,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전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매일 반복하는 장면이 있음을 확인했다. 매시간 읽은 책의 중심 문장을 찾아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낯선 단어를 15개씩 찾은 후 사전을 활용하여 그 의미를 적게 하고, 읽은 내용을 몇줄로 요약하게 하는 것.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읽은 교과서 지문에서 중심 문장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단원 혹은 한 학기 했다고 생기는 능력은 아닌 듯하다.
글을 읽을 때마다 무엇이 중심 문장인지를 찾고, 자신의 말로 요약해보기를 한 줄, 다음엔 두 줄 이렇게 늘려가는 활동을 하면서 읽기 능력이 형성된다. 이러한 활동은 사실 초·중·고 학창시절 내내 계속해야 하는 기본적인 활동이다. 요즘은 가장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이것을 학원에 가서 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에서는 이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이유는 많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능력은 기본적으로 학교를 통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이래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보다는 기본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이야기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4.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 : 쉬워야 재미가 있는 것인데…
연구에 참여한 배움이 느린 학생들의 어휘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어휘력 검사지를 하나 마련했다. 초등학생용 검사였기 때문에 중학생 앞에 꺼내 놓기는 미안했다. 혹시 너무 쉬울 수도 있겠지만, 한번 해보자며 양해를 구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정답을 맞히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았고, 다 맞은 학생들도 있었다. 검사의 결과보다 의아했던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선생님, 이거 재미있는데요? 또 하면 안 돼요?”
“으응?? 재미있다고?”
이건 무슨 반응인가 싶어서 다른 학생에게 같은 검사를 몇 번 더 실시해보았다. 유사한 반응이다.
“다시 해봐도 되나요? 또 해보고 싶어요.”
아차, 너무나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쉬워서, 다 맞아서, 그래서 즐거웠던 경험이 그렇게 없었던 거니?’ 학생의 성장자료를 다시 훑어보니 정말 그랬다. 늘 어려웠다. 늘 실패했다. 늘 못하는 학생이었다. 쉬워야 재미가 있다는 것, 정답이 많아져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는 것은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면 되는 것’이라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쉬워서 즐거웠던 경험부터 시작해야 했다.
5. 학생들이 보내는 시그널 : 새로운 환경 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만난 OO이는 수업 중에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의자의 앞다리 혹은 뒷다리가 들린 상태로 앉아 있었으며,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은 총이 되었고, 늘 총 쏘는 흉내를 냈다. 수업 중 이루어지는 어느 활동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딱 한장면, ‘게임’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면 잠시 반짝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중학교에 올라가서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신입생의 모습을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누구도초등학교 때 학습을 어려워했던 학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고 교사의 말을 경청하는 학생이었다. 학교급이 바뀌고 주변 환경도 달라지는 상황 속에 초등학교 내내 학습이 부진하다고 달렸던 꼬리표를 떼고 새로운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으리라.
종종 이렇게 신호를 보내는 학생들이 있다. 문제는 ‘학생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는가? 그 신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이 학생의 성장 자료를 다시 훑어보니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4년 동안 유일했다. 교사들은 의지가 없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럼 이렇게 잘 보여주지 않았던 의지를 보였을 때 재빠르게 반응해 주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신호를 보내는 학생한테 해줄 수 있는 공적변인이 우리에게 있을까?
신호를 보내는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는 공적변인은 대단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는 것은 할만했고 진짜 하면 되더라’는 작은 알고리즘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다.
환경이 바뀐 상태에서 얻은 성취 경험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많은 학생이 학교급이 바뀔 때 의지를 보인다. 그래서 더 많이 돕고 지원해야 하는 시기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방 차원의 접근으로 초등학교 1~2학년에 하는 집중 지원을 중학교 1학년에도 제공하면 어떨까?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고, 학생들이 보내는 신호를 빠르고 민감하게 읽어 낼 수 있는 교사들을 더 배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도의 변경은 다양한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시도해야 하겠으나, 배움이 느린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분석하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44명 중에 4년이 지난 후에 자기 학년의 진도를 따라가는 학생은 6명에 불과했다는 것, 38명은 어제와 달리 오늘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의 성장은 했지만 여전히 자기 학년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했다는 것, 그래서 매번 실패를 경험하고 있고, 이렇게 쌓인 실패로 ‘나는 원래 못하는 애’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다.
6. 민감해야 보이는 학생들의 속마음 : 천천히라도 알고 싶어요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애들은 미리 배우고 온 거 아니에요?”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애들은 다 학원에 다닐걸요?”
“제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기초반에서는 천천히 알려줘요.”
연구자와 면담을 할 때 학생들이 했던 말들이다.
많은 학생의 말들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당시에는 통상적으로 하는 이야기려니 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짚어보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데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맞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세미나에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성인에게도 매우 고역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을 때 빠르게 합리화하는 방법은 ‘저들은 내가 하지 않았던 다른 것을 했으려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학생들도 자신의 문제상황을 빠르게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자 했다. ‘그래 나도 학원 다니면 쟤들처럼 수업 내용을 이해하게 될 거야. 그런데 지금은 별로 다니고 싶지 않고, 나중에 다니면 되겠지 뭐…’.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었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주면 좋겠다? 이해하고 싶다는 말이다. 기초반에서 천천히 알려준다? 천천히라도 알고 싶다는 말이다. 중학교 3학년인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상담을 받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한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냥 담임선생님께 상담 받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야.”라고 해줬는데, 자신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배움이 느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7. 꼬리는 무는 고민 : 학생을 오로지 학생으로 바라본다는 것
배움이 느린 학생의 성장에 대한 종단 연구를 마치고, 올해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평등’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문헌을 뒤적거리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아냈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듯하여 반성하는 마음으로 기록해 두었다
‘학생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가정이나 본성, 혹은 사회적 배경이나 특정한 목적으로 규정된 이미지에 고착되지 않는 평등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Masschelein & Simons, 2020:8)4
학생은 오로지 ‘학생(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즉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갖고 있던 귀속변인을 다 떼고 오로지 학생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다 필요 없고 그냥 학생이면 된다. 누구의 자녀도 아니고, 주어진 사회경제적 배경이 어떤가도 필요 없는, 그냥 배우는 사람이다. 누구의 말처럼 학교는 완장 다 떼고 맞짱 뜨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듯한 말을 왜 메모까지 하며 새기고 있는 것일까? 사실, 찔리는 부분이 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수업을 관찰했는데,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누가 가정의 손길을 많이 받은 아이인지, 누가 그렇지 못한지가 보였다. 귀속변인이 이렇게 잘 보인다는 것이 무서웠다. 해당 교실에 처음 들어간 순간 낯선 연구자의 눈에도 이렇게 확연히 보이는 귀속변인의 영향에 지배당하지 않고 학교를 통해 작동할 수 있는 공적변인은 어느 정도나 될 수 있을까?
학생을 학생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을 오로지 학생으로서 바라보고 있는가를 반성하고 귀속변인의 영향 때문에 자칫 공적변인을 스스로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매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