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미(월곡중학교, 교사)
세상에, 아직도 진행 중이라니…. 코로나19 말이다. 작년 한 해 우리를 큰 혼란에 빠트렸던 바로 그 코로나19. 잠시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팬데믹 상황이 1년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고, 그사이 많은 변화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혼란스러움에 휩쓸리지 않고, 격변한 세상에 발맞추어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처음 온라인 개학을 맞아 허둥지둥하던 필자도 원격-등교 수업이 병행되는 학교 현장에 활용 가능한 다양한 수업들을 생각해내게 되었고, 여기서는 그 중 언택트 프로젝트 수업인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STEP 1 고민 나누기
사상 최초의 온라인 개학, 원격수업,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플랫폼들. 코로나19로 인해 찾아온 교육 현장의 격변 속에서 필자는 헉헉대기 바빴다. 빠르게 새로운 플랫폼을 익히고, 새로운 수업을 구상하여 앞서 나가는 멋진 교사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져 ‘교직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자괴감에 빠진 채로 일 년을 겨우 버텨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가깝게는 바로 옆에 동료 교사가 있고, 학교 내 교원 학습 공동체, 동교과 교사들의 공동체가 있다. 이들과 고민을 나누었더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단 지성의 놀라운 힘을 경험하며 그렇게 나의 수업도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STEP 2 언택트 합창을 구상하다
처음 도전한 언택트 프로젝트 수업은 바로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이다.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는 방역 지침에 따라 대면으로 가창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노래하고 싶어서 만들게 된 학급 합창 프로젝트이다. 동료 교사가 보내준 국립합창단의 언택트 합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먼저 학급별 도전곡을 정하고, 원격수업을 통해 노래를 배운다. 학생들이 각자 집에서 노래를 하고, 개인 영상을 촬영하여 제출하면 이를 하나로 합쳐서 합창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소리로 만들어 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합창과는 사뭇 다른 형태인 언택트 합창. 이걸 합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팬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합창이며 새로운 형태의 만남이었음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STEP 3 사전 준비, 기술적 어려움
학급 합창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 기술의 부재였다. 여러 영상을 동시에 나오도록 합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막막한 일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PIP(Picture in Picture. 동영상 겹치기. 이하 PIP)가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찾기 시작했다. PIP가 가능한 컴퓨터프로그램으로는 Premeire Pro, Power Director, Vegas 등이 있다. 하지만 음악 교과 연수에서 몇 번 다루어본 것이 전부였던 영상 제작 초보자가 전문영상 프로그램으로 합창 작업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방법을 바꾸었다. 영상의 퀄리티를 내려놓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해결책은 원격수업을 위해 구입했던 아이패드. 아이패드용 동영상 편집 앱들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쉬운 구성으로 되어있다. 게다가 인코딩까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멋진 효과들을 만들어 낼 순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준비를 했다. 필자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루마퓨전이라는 프로그램이다. 4만원 정도로 구입이 가능하며, 한번 구입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교 예산으로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비를 지출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활용이 좋은 앱이기 때문에 강력 추천한다. 앱을 구입하고 유튜브 강의를 찾아 사용법을 익히며,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준비를 마쳤다.
STEP 4 프로젝트의 시작, 노래하는 교사들
QR코드를 인식시키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 외에는 모자이크 처리하였음을 감안해 주세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사전 준비를 끝낸 뒤 다가온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떻게 아이들을 노래하게 하나?’ 였다. 대면수업에서도 아이들을 노래하게 만드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언택트로 아이들이 노래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고, 언택트로도 멋진 합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동료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생들은 교사를 좋아한다. 축제 때 교사들의 무대를 향한 환호와 함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어떤 전문가들의 예시보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라면 관심을 이끌어 내고, 언택트 합창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로젝트를 위해 장위중학교 15명의 교사들이 함께 언택트 합창 예시 영상을 제작하였다. 각자가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따로 부른 노래들을 합쳐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을 담았다. 참가한 선생님들은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교사들이 제작한 합창 예시 영상을 통해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STEP 5 언택트로 노래하기 시작한 아이들
나의 파트를 찾아라
합창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파트를 찾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맞는 파트를 찾기 위해 구글 설문지를 활용하였다. 교사가 직접 학생들의 음역과 음감을 테스트할 수 없으므로 구글 설문지에 여러 테스트 영상을 예시로 넣었고, 테스트 결과에 따라 다른 과제를 제시했다. 테스트를 통해 본인의 음역과 음감을 파악하고, 변성기를 고려해 파트를 나눈 뒤 자신의 파트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매번 파트별 수업 영상을 따로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각 파트가 어우러져 만들어낼 하모니를 기대하며 수업 준비를 하였다.
합창에 어울리는 소리 만들기
다음 단계는 바른 호흡과 발성을 익히고 합창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대면수업이 전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원격수업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학생들이 연습한 영상을 촬영하여 제출하면 한 명씩 피드백하였다. 매 차시마다 같은 부분을 부르는 영상 200개 이상을 듣고 피드백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학생들의 목소리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베스트 가수 선정하기
교사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과제 피드백을 하면서 좋은 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찾아 다음 차시에 베스트 가수로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또래 학생들의 예시는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모델링이 되었고, 수업에 의욕이 있는 학생들은 베스트 가수에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름을 올리는 것 외에 다른 보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학생들의 예시로 합창 제작 과정 보여주기
이 프로젝트가 교사들의 합창 예시로 시작했다면, 프로젝트 진행 과정은 학생들의 영상을 합쳐 합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혼자 방구석에서 반주도 없이, 그 어떤 기기의 도움 없이 내 목소리만 들어간 노래는 보잘것없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명의 소리가 합쳐져서 울림을 만들고, 거기에 반주까지 들어가서 멋진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학생들은 노래에 대한 자신감과 언택트 합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었다.
STEP 6 프로젝트의 완성, 함께
완곡 촬영을 위한 준비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는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적용하여 완곡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먼저 각 파트별 완곡 가이드 영상을 올려주면, 학생들은 가이드 영상을 들으면서 똑같은 속도와 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한다. 개인 영상을 촬영할 때는 가이드 음원을 들을 기기와 촬영을 위한 기기 총 2개의 스마트 기기가 필요하다. 실제 녹음 현장을 예로 들어 보여준 다음, 학생들에게 가이드 음원은 이어폰으로 듣고, 촬영은 다른 기기로 하도록 하였다. 제출한 영상에는 본인의 목소리만 들어가게 촬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래 실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미소’
음악은 소리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한 예술이다. 특히 합창에서 표정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학생들이 미소 띤 얼굴로 촬영할 수 있도록 여러 번 강조하고, 좋은 표정으로 노래한 학생들을 뽑아 미소상을 수여하였다. 미소상에 선정된 학생들은 완성된 영상에 따로 삽입하여 학생들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도망칠 구멍, 코로나19 응원 메시지 카드 만들기
일련의 수업들로 인해 학생들이 노래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완성된 영상에 본인의 모습이 들어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는 학급 합창이었기 때문에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도망칠 구멍을 마련하였다. 얼굴이 나오는 게 싫은 학생들은 코로나19 응원 메시지 카드를 만들어서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다들 얼굴을 가려버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학생들도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지기 시작한 걸까. 학급마다 4-5명을 제외하곤 전부 예쁜 얼굴을 보여주었다. 도망칠 구멍을 마련함으로써 9개의 반에서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가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따로, 그렇지만 함께
각자 집에서 촬영한 영상을 하나로 모아 만들어진 합창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는 따로, 그렇지만 함께였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법으로 소통하고 함께 노래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혼자서는 보잘 것 없었지만, 함께 할 때 빛이 나는 경험 또한 할 수 있었다. 함께 부대끼고, 소통하는 것이 그리운 팬데믹 상황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함께’를 찾아낸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QR코드를 인식시키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하였습니다.
STEP 7 돌아보기
학급 합창 감상 및 자기 평가
수업의 마지막은 본인의 학급 합창을 감상하고 자기 평가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음악 수업에서 하기 싫은 분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창’ 영역. 언택트로 함께 한 합창 수업은 어땠을까?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학생들의 평가지 결과를 확인해보았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가 힘들었을 텐데도 많은 학생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었다.
학생들의 자기평가지 답변 일부
• 한 명 한 명의 소리가 모여서 이렇게 감동적인 노래를 불렀다는 게 대단하고 코로나 상황에서 이렇게 온라인 수업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게 자랑스럽고 대단하다.
• 완성된 합창을 보니 몇 주 동안 노력했던 나 자신이 생각나서 뿌듯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성도 있고 노랫소리가 조화로워서 놀랐다. 그리고 다들 웃고 있어서 이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렇게 각자 따로 녹음을 해서 붙여 놓으니까 같이 만든 느낌도 있고 1학년을 이걸 만들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고 1학년 친구들을 보고 싶으면 이 영상을 보면 되니까 1학년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 모두 지금까지 배운 걸로 나온 결과를 보니 전부 잘 수업을 들은 거 같습니다. 혼자 하다 여러 명이 같이 영상에 나와 노래를 부르니까 신기하고 듣기 좋았습니다. 다음에 다 같이 모여 부르면 어떨까 궁금합니다.
다음을 준비하며
사실 다음을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좀 더 빨리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함께 모여 노래하는 것이,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흡을 맞추는 것이 너무나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는 처음 도전했던 언택트 프로젝트이다 보니, 다시 수업을 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혹 이 글을 통해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에 도전하실 선생님들을 위해 아쉬웠던 점을 정리해본다.
첫째, 학생 주도적인 프로젝트이기보다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던 프로젝트였던 점이다. 학생들에게 도전곡에 대한 선택권 외에도 전체 영상의 구성들을 함께 고민하고 좀 더 많은 부분에 학생들의 선택권을 주었다면 학급별로 개성 넘치는 다양한 합창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상 편집 또한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편집방법들을 알려주고 학생들이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면, 교사가 편집한 것보다 완성도는 낮아도 더 큰 감동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PIP 편집이 가능한 프로그램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학생들에게 편집을 맡기기가 어려웠는데, 그사이 여러 프로그램에 PIP기능이 추가되었으니, 앞으로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완성된 학급 합창을 해당 학급 학생들만 감상할 수 있었던 점이다. 힘들게 완성한 학급 합창을 다른 학급과 공유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다시 학급 합창을 준비하게 된다면 충분히 학급 합창의 의미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전체 학년이 감상할 수 있도록 초상권 활용 동의를 받는 과정을 꼭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5반 학생이 “우리 집에 앵무새가 있어서 도저히 노래를 촬영할 수 없어요.”라고 하길래 앵무새 소리가 들어가도 괜찮다고했었는데, 정말 앵무새가 2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노래를 했었다(물론 새소리로 노래하긴 했다).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앵무새와 함께 노래한 5반의 특별한 영상을 5반 학생들만 보게 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으로 남을 듯 싶다.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올해 우리 반의 급훈이다.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팬데믹 속에서 거리두기가 중요한 방역 지침이 되고, 마스크로 인해 서로의 표정을 보기 어렵고,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일상이지만, 이 시간들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남길 간절히 바란다. <방구석 합창 프로젝트>가 누군가에겐 새롭고 의미있는 순간들을 만드는 데 쓰일 작은 아이디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