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4 여름호(255호)

[중학교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
경쟁이 아닌 공존을 위한 토론!

조수진 (옥정중학교, 교사)

나는 지난 20여 년간 협동학습을 실천해 온 사회 교사이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은 학생들을 모둠으로 구성하여 진행하는 수업 방법이기에 협동학습 방법에 익숙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토론 수업에 비해 그 절차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어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교실에서 실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토론은 성적이 높은 소수 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토론 절차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일부 교사들만의 수업 방법도 아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통해서라면 말이다.

1. 왜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인가?

일반적인 토론 수업에서는 찬성과 반대 팀에 있는 학생들이 각각 서로의 입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토론 수업은 좋은 성적을 얻거나 대회에서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이나 근거에 대한 오류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곤 한다. 그리고 토론에 임하는 자세보다는 토론 그 자체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중시한다. 아이들이 이러한 토론 문화 속에서 자라 어른이 된다면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여러 가지 사회 현안에 대해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경쟁과 대립이 심화되어 사회적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다양성과 갈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학생들이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현안에 대하여 논의하면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합의를 위한 과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이에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새로운 토론 수업 모형으로 개발하여 제안하고 있다.

2.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실천하기 전에

가. 4명을 한 모둠으로 구성하기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 모형에는 모둠형, 코너 학습형, 순차적 자료 분석형이 있다. ‘모둠형’은 자료분석부터 토론 활동 및 합의안 작성까지 모든 수업의 절차를 모둠으로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코너 학습형’은 학생들이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의 자료가 마련된 학습 코너에서 자료를 분석한 후에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순차적 자료 분석형’은 모든 학생이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의 자료를 순차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강조한 모형이다.

이러한 모둠형, 코너 학습형, 순차적 자료 분석형은 모두 기본적으로 4인 구성의 모둠으로 활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실의 학생들을 모둠으로 구성하여야 한다. 성별, 성적, 교우 관계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질적인 소집단으로 모둠을 구성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모둠 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 개개인에게 고유한 역할을 부여하면 좋다.

나의 경우에는 모둠의 리더로서 토론 활동을 진행하는 ‘이끄미’, 토의·토론 내용을 정리하거나 발표하는 ‘기록이’, 토론 활동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칭찬이나 격려를 하는 ‘칭찬이’, 토론에 사용되는 학습 자료를 배부하거나 걷는 ‘섬김이’ 등으로 모둠의 역할을 분담시켰다.

만약 학급 전체 학생의 총 인원수가 4의 배수가 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4명을 구성원으로 하여 모둠을 구성하되 한 개 또는 두 개 모둠 정도는 3명보다는 5명으로 하는 것을 추천한다. 모둠 안에서 찬성 팀과 반대 팀으로 나누어서 활동하기 때문에 3명을 한 모둠으로 구성할 경우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 토론 주제 선정하기

교실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토론 주제는 이미 서울시교육청에서 개발한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 안내서’에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이런 안내서에 수록된 토론 주제 중 하나를 교사가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나는 토론 주제의 영역으로 ‘환경 문제(기후 위기)’를 정하고, 3학년 학생들에게 토론 주제를 직접 만들어 보게 하였다. 각자 토론을 하고 싶은 주제를 질문의 형태로 육각형 카드에 적어 보게 한 후에 학생들이 작성한 질문에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3.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모둠형)의 활동 단계

이제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의 가장 기본적인 모형인 모둠형을 실행하였던 수업 사례를 소개하고자한다.

[STEP1] 토론 주제 파악하기

모둠형의 장점은 한 학급 안에서도 모둠별로 각기 다른 논제로 토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둠 안에서 선정한 주제로 토론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모둠에서 논제에 해당하는 질문을 구성하였으므로 토론 주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만약 학급에서 하나의 토론 주제를 정하여 활동을 하는 경우라면 교사가 논제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문답식으로 토론 주제를 파악하게 할 수 있다.

[STEP2] 1차 자료 분석하기

1차 자료를 분석하기에 앞서 모둠의 구성원 4명을 무작위로 찬성 팀과 반대 팀으로 나누었다. 이때, 학생들에게 토론 주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인지, 반대하는 입장인지는 미리 묻지 않았다. 이후 모둠별로 선정된 논제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정리한 자료를 균형 있게 분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 팀이 서로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들이 주장할 내용과 상대 팀을 반박할 내용을 모두 정리하도록 하였다.

[STEP3] 1차 토론: 찬반 논쟁하기

토론 활동을 진행하기에 앞서 토론 진행 방법과 토론에 참여할 때의 태도 및 유의 사항 등을 자세하게 안내하였다. 이후 전자 칠판으로 타이머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입론에 2분, 반론에 3분, 최종 발언을 하는 데 2분의 시간을 각 팀에 동등하게 부여하였다. ‘입론-반론-최종 발언’의 각 단계 전에는 작전 회의 시간을 2분 동안 갖도록 하였다. 토론 활동 단계에서 학생들에게 부여할 시간은 수업 상황이나 학생 수준 등에 따라서 교사가 임의대로 조정할 수 있다.

[STEP4] 2차 자료 분석하기

1차 토론 활동에서 찬성 팀이었던 학생들은 반대 팀으로, 반대 팀에 있던 학생들은 찬성 팀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2차 토론 활동을 한다는 점을 먼저 안내하였다. 이후 1차 토론을 토대로 2차 토론을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학생들이 생각해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 팀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상대팀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추가적으로 수집하여 분석하도록 하였다.

[STEP5] 2차 토론: 입장 바꾸어 논쟁하기

2차 토론에서는 1차 토론 때와는 다른 입장에서 ‘입론-반론-최종 발언’의 순서대로 논쟁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1차 토론 활동에서 자기 팀이 반박했던 상대 팀의 입장이 되어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을 다소 힘들고 혼란스러워했다. 토론 수업이 종료된 이후에 학생들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겹쳐 역할만 다를 뿐, 결국 같은 토론을 반복하는 듯했다.”, “비슷한 의견들이 많아서 똑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느낌이었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2차 토론’에서는 서로 입장을 바꾸어 논쟁하는 것 대신에 1차 토론에서 상대팀이 놓친 주장이나 반박 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는 활동을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

[STEP6] 모둠별 합의안 작성하기

‘모둠별 합의안 작성하기’에서는 토론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 보게 하고, 모둠 안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를 시도하여 정리하게 하였다. 만장일치로 합의를 하게 하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 결정하거나, 강제적 또는 협상에 의한 합의를 지양하기 위해서이다. 만장일치 과정에서 모둠 구성원이 하나의 의견으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수정안을 만들게 할 수도 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은 합의 그 자체가 아니라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과정,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4.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마치고

가. 교사의 관찰 평가와 기록

이제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기록을 어떻게 하였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총 5차시에 걸쳐서 실행하였다. 1차시에는 학생들에게 토론 주제를 질문의 형태로 구성하게 하고, 2차시에는 각 모둠별로 논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활동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수행 과제는 ‘토론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의 근거를 균형적으로 제시하였는가?’, ‘근거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였는가?’, ‘수집된 자료가 신뢰할 수 있으며, 정확한가?’ 를 평가 기준으로 설정하여 채점하였다. 3차시에는 1차 자료 분석과 토론 활동, 4차시에는 2차 자료 분석과 토론 활동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토론 진행 과정을 수시로 관찰하면서 피드백을 해주었다. 마지막 5차시에는 토론 주제에 대한 학생 개개인의 의견을 발표하고, 모둠 안에서 합의안을 작성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수업 과정에서 관찰했던 학생들의 활동을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 그대로 제시하였다.

나. 학생들의 수업 평가

새로운 토론 수업을 처음 하고 난 후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통해 주제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는 토론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분석하고, 찬성과 반대 입장을 모두 경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토론 전에는 주제에 대해 막연하게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가졌다가 토론을 마치고 난 후에는 완전히 다른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말한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1차 토론과 2차 토론을 거치면서 논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이 찬성인지 반대인지 모르겠다고 밝힌 아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일부 학생들이 겪은 혼란스러움을 줄이기 위해서 1차 토론과 2차 토론 사이에 적어도 1~2일 정도의 기간을 두도록 수업을 설계하는 것을 권유한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은 토론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모두 경험하면서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볼 수 있다. 이는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데 필요한 시민의 태도와 역량을 기르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다. 교사의 수업 성찰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차시 이상의 수업 시수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습량이 많은 사회과에서는 사실 부담이 되는 수업 방법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공존형 토론 수업을 적용하다 보니 수업 모형의 단계별로 시간을 안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상대 팀을 반박하거나 모둠별로 합의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올해에는 논제를 중심으로 사회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실천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였다.

사회과 교사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토론 절차인 ‘입론-반론-최종 발언’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모둠별로 토론 활동이 이루어지다보니 찬성 팀과 반대 팀이 각각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주장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지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AI 플랫폼인 ‘뤼튼’을 도입하여 학생들에게 토론 주제 파악을 위한 자료 정리, 토론 활동을 위한 ‘입론-반론-최종 발언’ 연습 등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학생들의 활동 결과물을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시각적으로 제시하게 한 후에 그에 대한 피드백도 수시로 해 줄 생각이다.

사과는 한 나무에서도 크기와 빛깔, 맛이 다르다고 한다. 일조량이나 바람, 영양분의 배분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은 이제 막 학교 현장에 밀알로 뿌려졌다.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그만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조량이나 바람, 영양분에 따라서 사과 품질이 달라지듯이 교사의 열정, 소통과 상호 작용, 교육에 대한 지원 정도에 따라서 공존형 토론 수업의 안착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공존형 토론 수업 나무에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