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4 여름호(255호)

[체험·문화·예술활동 Ⅰ]
예술의 언어로 소통하며 공동체를 이루다
– 중학교 맞춤형 예술 교육

홍소연 (덕성여자중학교, 교사)

들어가며

덕성여자중학교(이하 덕성여중)의 교정은 고즈넉하고 따스하다. 서울에 살면 한 번쯤은 안국역에서 소격동,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걸어보았을 것이다. 송현공원으로 들어와 아름다운 데이지와 여름꽃, 자작나무가 펼쳐진 길을 지나면 덕성여중 교정을 만난다. 감고당길 돌담 아래에는 다양한 버스킹과 프리마켓이 열리고 그 길을 걷노라면 누구나 여유로움과 따스함, 예술적 영감을 느낄 것이다. 학교 초입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있고 학교 뒤편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이어진다. 예술의 공기가 흐르는 이 길에는 교복 입은 여중생들이 꺄르르 웃으며 등하교를 한다. 덕성여중아이들은 시·공간 예술이 공존하는 유서 깊은 돌담길을 걸으며 풍부한 예술 언어와 감성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체화된 예술적 영감을 통하여 진심으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다정한 마음을 전달한다.

다정한 마음

“선생님, 저는 소연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채이는 노래를 너무 잘해요. 싱어송 라이터가 꿈이래요.”

아이들은 친구들의 재능에 감탄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친구의 재능을 응원한다. 예술은 이러한 다정한 교감을 이끌어낸다. 학교 현장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때가 바로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우정을 마주할 때이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예술 작업과 그에 관한 생각을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연구 과정을 거쳐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예술가이자 연구자로 성장하고 있다.

예술 교육은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목표를 향하여 가야 하는가?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예술 언어와 예술 감성이 풍부해지고 예술을 즐기고 누리며 예술과 더불어 성장하길 바란다. 아이들을 지도하며 글 속의 글, 그림 속의 그림, 음 속의 음을 발견한다. 연극에 진심이고, 악기 연주를 좋아하고, 그림을 사랑하는 본능적인 예술 감각들을 이끌어내고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예술 교육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을까? 예술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가장 깊숙한 본연의 자아와 마주할 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장 자신답고 솔직한 모습, 예술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이다. 덕성여중의 교사들은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예술 교육이 학교 현장에 어떻게 자리할 수 있을까?’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으로 삶 속의 예술 교육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인성, 협력적 소통 능력, 창의성, 사회적 연대에 대한 연구를 한다.

1학생 1무대를 목표로 하는 협력종합예술활동

일상에서 펼쳐지는 덕성여중의 협력종합예술활동은 1학생 1무대를 목표로 두고, 3년간 영화 시사회, 연극 공연, 뮤지컬 축제를 통한 삶 속의 협력적 인성 교육을 실천하는 학생 맞춤형 예술 교육 활동이다. 덕성여중은 학급당 11~16명 정도로 구성된 소규모 학교이고 무대 예술 수업마다 세 명의 교사가 지도한다. 수업 시 학생 한 명 한 명의 상상력을 존중하고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 시간을 충분히 가져 협력종합예술활동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가 높다. 또한 학생 개개인이 가진 강점을 잘 발견할 수 있어 다양한 실험, 아이디어 발표, 새로운 아이디어 시도 등 다양하고 학생 주도적인 창의적 공동 협력 작업의 세심한 구축이 가능하다.

중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3년 동안 학생들은 무대 제작자, 디자이너, 감독, 작가, 연기자로 활동해보는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무대 예술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1학년은 영화 수업, 2학년은 연극 수업, 3학년은 뮤지컬 수업을 진행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영화 17차시(1학년), 연극 17차시(2학년), 뮤지컬 34차시(3학년)으로 구성된 연간 교육과정 안에서 영화와 연극, 뮤지컬을 기획, 연습, 발표한다. 학생들은 무대 예술 공연을 다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고 기쁨과 슬픔의 추억들을 쌓으며 성장해간다. 창조적인 무대 예술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연기자와 청중이 되어 공연 무대의 진행 과정 및 연출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학생들이 직접 연출하고 참여하는 “영화 시사회, 연극 공연, 예술제 뮤지컬 축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무대와 친해지고 공연을 사랑하게 된다. 덕성여중의 공연예술 프로젝트는 모든 학생이 도전과 혁신, 협력을 경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순간순간 소중히, 예술 동아리 ‘챔버오케스트라’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밝은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흐르는 어느 봄날 점심 시간, 학교 도서관에 아이들이 모여있다. ○학년 학생 채우와 지민이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보았다.

작은 학교 안의 챔버오케스트라는 악기별로 10개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수업별 3~6명 정도의 학생이 악기를 배우며 맞춤형 예술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은 무대 공연을 상상하며 순간순간 소중히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며 성장한다.

마을 산책 드로잉과 미술관 연계 수업

‘그림과 산책’은 학교 근교의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명소를 산책하며 그림을 그려 보는 수업이다. 삼청동 인근에 위치한 학교는 북촌 한옥 마을, 경복궁, 창덕궁으로 둘러싸여 있고, 근교의 원서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 익선동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조화로운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학교 근교의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명소를 산책하며 유서 깊은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그림을 그려 보는 ‘마을 드로잉’ 미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한국 전통문화와 현대적인 도시 감성에 이르는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각적 예술을 느끼고 경험한다.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은 학교 앞 돌담길, 종로구 도시갤러리(흥인지문, 익선동) 등에 전시되고 특수한 전시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들과 예술적·정서적 교감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교과서나 화면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술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생생한 현장감과 실제를 느껴보는 미술관 연계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인근 지역사회 교육 자원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아트선재센터, 아라리오뮤지엄 등과 연계하여 미술 교과가 가지는 성격 중 하나인 내적 자아와 외적 세계(학교, 지역사회, 사회, 한국계 지구인, 글로벌 지구)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이루어낸다. 예술을 통해 성장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다양한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창의적 미술 교육 활동과 미술관 경험의 확장을 가능케한다. 또한 지역사회 미술관 연계수업은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예술의 가치를 확장시키고 예술과 함께 성장하는 미래 융복합 인재 양성에 목적을 둔다. 미술관과 미술교과 교육 과정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학생들의 문화 예술 감수성 증대 및 창의적 역량을 기른다. 전시, 소장품, 미술 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 향유권 확대를 목적으로 도슨트 감상 수업, 강연, 세미나, 워크숍, 미술관 체험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학생들은 예술 문화 관람 자세와 에티켓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미술관 연계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덕성여중 교사는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전시 및 학생 프로그램을 검색· 신청하고 자료 요청 및 수업 요일·시간을 조율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미술관 감상 연계 수업 활동 후 학생들의 소감이다. 미술관은 교실이 되고 작품은 교과서가 되고 학생들은 공감각적 예술 공간 안에 스며들어 예술의 본질을 느낀다.

생각을 키우는 문학과 그림의 만남

“질문과 탐구를 통하여 생각을 키우는 교실, 창작 동화와 에세이로 생각을 쓰는 교실, 드로잉으로 생각을 그리는 교실”

덕성여중은 국어과와 미술과의 다양한 융합 수업(창작 그림책, 고전소설 그림 여행, 에세이 드로잉북, 한글 타이포그래피 굿즈 제작 등)을 매년 진행한다. 문학과 그림을 이용한 창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경험과 사고를 유연하게 통합하고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무엇이 담기지 않으면 쓰레기가 될 처지에 놓인 작은 병의 이야기 『노래하는 병』 그림책에서부터 ‘창작 그림책 수업’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주스병이었지만 주스를 다 먹고 빈 병이 되어 버린 작은 병은 무엇이 담기기를, 될 수 있으면 좋은 것이 담기기를 원한다. 원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 예쁜 소리를 내는 실로폰 병이 되었다. 형태는 변하지 않고 쓸모만 달라지는 병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주변에서 하나의 사물을 골라 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대상의 가치와 소중함을 찾아보는 수업으로 연결시켰다. 우리 모두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위하여 “네가 왜 여기, 이 세상에 있는지? 넌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너란다. 넌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 네 삶은 너의 것! 아마도, 정말 아마도 너라면 지금 네가 꾸는 가장 멋진 꿈 그 이상을 이룰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은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간다. 글 속의 글을 발견하고 그림 속의 그림을 발견하며 작가이자 화가가 되어 본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라는 주제로 사진이나 그림을 찾고, 글을 쓴다. 나아가 자기 경험에서 얻은 심미적 인식을 글로 표현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일인가요? 어떤 경험을 했나요? 그때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들었나요?” 등의 물음을 던지며 열다섯의 감성 에세이 창작이 시작된다.

한 편의 에세이를 창작하고 나서 미술 시간에는 자기의 글을 바탕으로 에세이의 표지 드로잉과 스토리 드로잉을 이어간다. 자신만의 따뜻한 시선과 다정함이 담긴 글에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한 창의적인 그림체의 드로잉이 조화롭게 만나며 스며든다. 자신만의 에세이 드로잉 북이 만들어지고 마흔여섯 개의 작품이 모여 덕성여중 3학년 아이들의 ‘열다섯 감성’이라는 전자책이 제작된다.

마치며

우리는 154명의 아이들에게 연대를 가르친다. 개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나의 삶에 우리 공동체가,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비슷한 존재로 함께 살아가면서 동시에 다른 모습으로 산다. 보통의 사람들로 보편성과 평범함을 배우며, 마음 속에는 자유로움과 용기를 가진 채, 그렇게 같지만 다른 사람으로 잘 살아간다. 문학을 좋아하는 아이,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 댄스를 좋아하는 아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아이들 154명이 모여 예술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예술의 언어로 소통하며 덕성여중의 연대를 이룬다. 예술을 통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나, 너, 우리의 연대와 순수한 우정, 다정한 마음, 정의, 의리를 배우며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