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서울정심초등학교, 교장)
사계절 다른 향기가 나는 학교
3월 봄바람이 휘날리면 벚꽃비를 맞으며 등교하고, 더위가 시작될 때쯤이면 루드베키아 꽃길을 걸으며 멀리서 퍼지는 백합 향기를 맡고, 찬 바람이 불어오면 노오란 감국, 보랏빛 꽃향유가 가득한 교정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상쾌한 나무 향기와 향긋하고 상큼한 꽃향기를 느낀다. 등굣길, 방금 떨어진 고운 꽃잎 한 장 줍고, 작은 곤충의 꿈틀거림이라도 보게 되면 그날 아침 교실은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왁자지껄하다. 교실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를 화가로 만들기도 하고, 아름다운 새소리는 음악가가 되는 꿈을 꾸게도 하고, 상큼한 꽃향기는 저절로 시를 읊조리는 시인이 되게 한다. 네모난 교실을 벗어나면, 학교 안의 모든 공간은 학교 숲, 생태교육원, 생태 텃밭, 에코스쿨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수업자료가 된다. 매일매일 모습이 바뀌는 학교 숲의 꽃과 나무,새와 곤충 그리고 흙과 돌은 수업의 주제가 되고, 놀이터가 되고, 그림이 되고, 숫자가 되고, 사진과 동영상이 된다.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는 학교 안에 생태교육이 적합한 숲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초록이 넘치는 ‘스쿨 포레스트(School Forest)’가 조성된 곳이 있을까?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위치한 서울정심초등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본교는 정문에서 200m 정도 벚꽃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경사길을 올라가야 학교 건물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면서 눈 앞에 온갖 빛깔의 꽃과 나무,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학교가 펼쳐지는 곳, ‘정심 수목원’, ‘JS 가든(Garden)’이라고 부르고 싶게 하는 ‘정심 스쿨 포레스트’이다.
녹색 교육공간으로의 변화를 위한 첫 걸음
본교가 처음부터 생태환경이 잘 조성된 학교는 아니었다. 산 중턱 숲 속에 위치하였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는 적절한 생태교육 공간이 부족하였다.
‘어떻게 하면 숲 속에 위치한 학교의 장점을 살려 우리 학교만의 내실 있고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하며 창의적인 교육공간을 구성해 줄 수 있을까?’를 교육공동체가 함께 고민했다. 그 결과, 학교의 여건을 파악하고 교육공동체의 요구를 반영하여 ‘스쿨포레스트’를 만들기 위해 공간 개선이 필요한 세 곳을 선정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비탈지고 접근이 용이하지 못했던 에코스쿨1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학교 소유의 뒷산 1,087m2에 에코스쿨1을 조성하는 사업은 2013년 1차로 실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직포로 된 길은 미끄럽고 너구리, 고양이, 들개 등 야생동물은 수시로 출몰했으며 아까시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교육공간으로는 활용할 수가 없었다.
이를 생태교육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2018년 에코스쿨 사업을 재유치하였다. 학생, 학부모, 교원이 참여하는 교육환경개선위원회를 통해 설계에서부터 주탐방로와 보조탐방로의 위치, 묘목 선정, 식재 위치, 수량 선택 등 세부적인 것까지 의견을 개진하여 협의하였다. 그동안 불편했던 배수로 및 집수정을 정비하고, 보도블럭을 시공하는 등 학교 뒷산 통로도 정비하여 학생들이 언제든지 안전하게 에코스쿨을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에코스쿨에는 나무데크와 야자매트로 탐방로를 설치하였고, 탐방로 주변에는 사계절 꽃이 피는 야생화 군락지와 덩굴터널을 조성하였다. ‘정심정’이라는 야외교실을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에코스쿨이 새롭게 완성되었다. 이렇듯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던 학교 뒷산 공간을 안전한 생태교육 공간으로 조성하면서 녹색 생태교육의 환경이 구축되었고, 생태전환 녹색교육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방치되어 있던 장소를 학교 숲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크고 작은 창고와 방치되어 있던 장소를 정리하여, 쾌적하고 깔끔한 숲 놀이터, 숲 속 쉼터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급경사이면서 S자로 심하게 굽어진 위험한 진입로를 완화하면서 새롭게 생긴 유휴지에는 텃밭 및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하여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관찰할 수 있는 학습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학생들의 통행이 잦은 본관과 후관을 잇는 계단에도 작은 ‘상자 텃밭’을 조성하여 1인 1상자 텃밭을 제공하고 학생들 스스로 상추, 고추, 오이와 같은 채소를 재배하여 수확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였다.
세 번째는 이미 조성되어있는 환경을 개선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오래된 화단도 생태환 경교육에 적합하도록 적극적이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다. 정기적인 수목 전지, 연차적인 식재 계획과더불어 일년생보다는 다년생 초화류를 구입하고 예산 및 인력 절감 등에 꾸준히 노력한 결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화단이 되었다. 공간의 변화로 학생들이 마음껏 학습할 수 있는 안전한 녹색교육공간이 확대되었으며 생태교육이 적합한 학교 숲, ‘스쿨 포레스트’를 조성할 수 있었다.
마을과 함께 그린(Green) 교육
생태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스쿨 포레스트’에 좀더 다양한 생물종을 갖추기 위해 트리플래닛이 주관하고, 주한 핀란드 대사관과 주한 유럽연합이 후원하는 학교숲 조성 프로젝트인 ‘EU 숲’을 2019년에 유치하였다. 도심 속에서 보기 어려운 머루포도, 샤인머스캣, 대추나무, 뽕나무 등 직접 가꾸고 수확하여 맛볼 수 있는 유실수 중심의 ‘EU 숲’ 학습공간은 다양한 종의 수목을 접하며 생태교육을 하기에 유용했다. 덕분에 다양한 수종의 ‘스쿨 포레스트’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크게 되었다.
다음으로, ‘스쿨 포레스트와 함께 더불어 숲’이라는 비전을 중심으로 학교-마을 협력체제를 공고히 하는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마을에서의 삶과 학교에서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 학생들의 온전한 성장을 지원하는데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마을과 함께 하는 교육과정을 편성하였고, 마을결합형 교육과정 운영 사례 공유 및 일반화를 위한 학교 간 협력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학생 일일권 단위 정심 교육 민관학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학교와 마을의 협력방안, 학교교육과정 운영방안, 생태교육과정 재구성 등을 협의함으로써 생태전환 교육과정 재구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시 50+ 재단 소속 도시농부 텃밭지 원단 연계 학교정원 가꾸기, 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 수목 전지, 나무마음 협동조합 연계 우드버닝 체험, 금천 도시농업 네트워크 연계 생태교육, 독산 근린공원 및 선우공원 활용 생태수업 등 지역 내 교육 유관기관의 협력으로 녹색생태교육을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일구는 녹색생태교육
‘스쿨 포레스트’의 환경이 정비되면서 이를 교육과정에 활용하고자 하는 교육공동체의 요구가 높아졌고, 이에 ‘스스로 마음밭을 일구는 녹색 생태교육’을 학교 특색사업으로 정하게 되었다.
2019년 8명 교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려진 ‘생태전환교육 교원학습공동체’는 본교의 특색사업인 생태교육을 활성화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우리 학교에 있는 수목과 꽃의 사진을 실은 생태워크북 ‘초록숲 이야기’(2019~2021)를 직접 제작하여 전교생에게 배포함으로써 학생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초록숲 이야기’는 학생들이 휴대하기 쉽도록 소책자 형태로 만들었으며, 우리 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꽃과 나무 60여 종의 사진과 특징, 정심수목원 안내도 등을 넣어서 워크북만 펼쳐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워크북 덕분에 학생들은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고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이는 식물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생태감수성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근 학교, 학교 방문 교육관계자에게 배포·홍보하여 생태교육의 확산에도 기여하였다.
학년에서는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계하여 생태감성교육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생태감성교육 관련 행사도 활발하게 실시하였다. 더 나아가 풍부한 식물 종의 다양성이 넘치는 교육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교육과정 연계 생태전환학교’(2020, 2021)와 ‘우리가 꿈꾸는 교실’(2020,2021)을 운영하며, 생태전환교육의 교육과정을 체계화하였다.
학교특색사업, 교육과정 연계 생태전환교육, 생태워크북 ‘초록숲 이야기’와 같은 일련의 활동으로 생태활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에코탐험단, 에코몽과 같은 동아리명으로 집중 생태교육을 실시하였다. 동아리 시간, 방과후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 학교의 꽃, 나무, 곤충, 새 등을 집중 관찰하고 탐구하였으며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동아리 학생들은 전교생 대상으로 환경보호 캠페인을 실시하여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일도 하였으며, 씨앗심기, 가꾸기, 수확하기, 요리하기 등의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수확의 기쁨만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 생명의 소중함도 느꼈다.
스쿨 포레스트’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
오늘도 정심의 학생들은 꽃이름을 부르며 꽃사진을 찍고, 떨어지는 꽃잎의 동영상을 찍는다. 새소리가 들리면 어디에 앉아있는지 시선을 돌려 찾아본다. 정심 수목원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학생들의 웃음꽃, 수다꽃이 나무, 꽃, 새, 곤충과 함께 자라고 있다.
서울정심초등학교가 나아가고 있는 도심 속 ‘스쿨 포레스트’는 미래를 살아나가야 할 우리 학생들에게 초록이 넘치는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