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녹천중학교, 교사)1
마스크 안에서 작게 맴도는 말소리, 거리두기를 위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책상들, 점심 시간에야 겨우 볼 수 있는 서로의 표정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붙어 다니지 말라는 복도 경고문들.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한 요즘 학교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들이 다소 삭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기대하는 학교의 모습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좀 더 활기차고 신나고 재미있게 지내기를 기대한다. 서로 표정을 살피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는 방법을 배우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속감을 느끼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친구들과 소란스럽게 대화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 학교는 우리가 기대한 모습과는 꽤 다르다. 그래서 학생들이 성장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한 ‘비밀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해 주고, 학교가 다시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이끌어 내준 것이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 정책 중 하나인 ‘토닥토닥 키다리샘’이다.
‘토닥토닥 키다리샘’은 교사들이 어떤 비밀 작전을 펼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주고, 교사가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기본학력 책임지도제’, ‘협력 강사제’, ‘두리샘21’ 등과 같이 그동안 학생들의 학습 지도에 도움을 주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 정책은 많았지만, 유독 ‘토닥토닥 키다리샘’이 특별했던 이유는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지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공부 잘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알려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토닥토닥 키다리샘’을 시작하고 담임 반 학생들을 소규모로 지도할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친해지기였다. 정책 이름처럼 학생들에게 비밀 친구와 같은 선생님이 되려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들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선생님이랑 나들이 갈래?’라는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다. 혹시라도 귀찮아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학생들 모두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분명 귀찮아할 거라고 지레 겁먹으며 망설였던 순간들이 후회되었다.
자신감을 얻고 돗자리와 간식들, 보드게임과 공을 챙겨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에 나가 돗자리를 깔고 한참을 놀고 먹고 하다 보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리고, 하나둘씩 학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원격 수업의 힘든 점, 같은 반 친구들과 지내는 데 어려운 점, 각 과목들의 좋은 점과 싫은 점 등 학생들의 입장에서 요즘 학교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코로나19 상황과 원격 수업은 교사에게도 큰 변화와 도전이었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만 현 상황을 평가하고 고민하곤 했는데, 학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관심과 질문만으로 학생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들이를 했던 기억이 좋았던 덕분인지 이후 여러 가지 제안에도 학생들은 기쁘게 응해주었다. 하루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두고 질문 카드로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었다. 질문 카드는 ‘요즘 가장 고민인 것은?’, ‘좋아하는 음식은?’과 같은 소소한 질문들이 써있는데, 학생들과의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긴장을 풀고 편한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때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 카드를 고르게 하면 좋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이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학생들이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하게 되기 때문에 또래 상담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취미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혼자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에 크게 안심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다른 날엔 학습 전략 검사를 하고 학습 상담을 진행했다. 학생의 강점과 약점, 학습 전략의 유형 등을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추상적인 상담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과 감정을 점점 솔직하게 공유해 주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구체적인 고민거리들을 털어놔 준 덕분에 그 마음을 토닥여 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교사가 시간을 쏟는 만큼 학생들의 마음이 열린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다 같이 초콜릿을 만들러 나간 적도 있다. 처음엔 분명 심드렁해 했던 것 같은데, 초콜릿이 완성될 쯤엔 잔뜩 집중해서 포장 스티커를 붙이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만든 초콜릿을 소중히 들고서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단순히 초콜릿을 만들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성취감과 나누는 기쁨, 뿌듯함과 즐거웠던 기억을 덤으로 선물 받은 경험이었다.
학생들과 여러 시간을 보내면서 두터운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느끼고 그 신뢰 속에서 학생들은 물론 교사 역시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함께 키다리샘을 자처한 교사들끼리 효과적이었던 ‘비밀 작전’들을 고민하고 추천하면서 협력적인 학교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질문 카드나 학습 전략 검사도 다른 키다리샘과 상담 선생님의 추천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어떤 활동이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과정이 익숙해지고, 그것을 서로 추천하고 받아들이면서 교사들도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키다리샘을 시작하고 학생들이 먼저 고민을 털어놓을 때, 하고 싶은 활동을 앞다퉈 이야기할 때, 함께하는 친구들과 점점 친해지는 게 보일 때, 활동 후에 오늘 하루 정말 재밌었다고 감사 문자를 보내올 때 뿌듯함과 벅차오름을 느낀다.
키다리샘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교사는 그 다양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학교의 역할이 제한적일 때 ‘토닥토닥 키다리샘’과 같은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 정책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 정책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