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성(서울특별시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장)
학교, 원격수업의 역사를 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원격수업은 우리가 준비하고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현장에 찾아들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 미래교육을 위한 대비와 학교 수업의 보완으로 활용되었던 원격수업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필연적 대안으로 급하게 도입되면서 시행착오와 함께 많은 어려움을 겪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이 상황을 겪어낸 많은 선생님들이 처음 겪어보는 혼돈이었다고 하시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배움과 성장이라는 학교의 역할을 지켜내기 위한 교육계 안팎의 노력은 필사적입니다. 원활한 원격수업을 위한 학교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업의 질을 관리하며 새로운 일상으로 비대면 학습이 정착되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실로 원격수업 원년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의 노력과 헌신, 서울특별시교육청의 다각적인 지원을 통해 차차 안정적인 원격수업을 운영하게 된 것은 코로나19 상황 속 우연한 발견이 아닌, 치열한 고민의 결과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소프트파워에 주목하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감염병으로 인한 대면수업의 위기에 원격수업을 과감히 도입하며, 코로나19로 닥쳐온 현장의 위기를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어쩌면 큰 파고의 위기로 덮쳐 올 다른 문제들이 수면 아래에서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격수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인간관계의 결핍, 소통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 문제가 그러합니다. AI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대신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방치해두면, 수년 후 예상치 못한 사회 문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몇 해 전 그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앞으로의 시대는 심리학, 인간관계, 의사소통, 공감과 같은 소프트파워가 비즈니스에서도 승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 예측하였습니다. 그의 말처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은 더없이 중요하며,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소프트파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와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며, 학교와 같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사회성·관계성을 형성하는 적절한 교육적 처방이 제공되기 힘든 상황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아동발달단계이론에서 6~11세 아동들은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활동에 에너지를 쏟으며 사회성과 도덕성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라 하였습니 다. 이제 집단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한 학생들, 학령이 어린 학생들일수록 더 유심히 관심을 갖고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양한 공동체에서 각양각색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경험치는 기성 세대에게 코로나19로 인한 비자발적 고립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학생들에게도 ‘어울림의 추억’이 결핍되지 않도록 코로나19 상황이지만 공존과 공감, 소통이 있는 공동체성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이지요.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학습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예의, 배려, 존중, 관계맺기, 협력, 소통, 공감 등의 다양한 사회적 기술을 잠재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심지어 학생들 간의 갈등이나 사소한 다툼조차 때로는 서로 이해하고 사과하는 방법을 배우며 건강하고 바람직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비대면 학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던 ‘바람직한 인간성·인간다움’을 형성하는 잠재적인 교육활동들이 흐려지지 않을까 고민됩니다. 학교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성과 건강한 인성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미래교육 체제 전환을 위한 원격학습의 기반이나 방식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막중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다
2013년, 구글 출신의 엔지니어 ‘맥스 벤틸라’가 설립한 알트스쿨(Altschool)은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 유명 인사들이 거금을 투자한 대안학교였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테크놀로지를 교육에 최대한 활용하고, 개인화된 맞춤 커리큘럼을 도입하면서 당시 ‘공교육의 미래 모델’이라는 찬사와 관심이 대단했던 알트스쿨은 왜 결국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을까요? 알트스쿨은 학생이 자기 관심사에 따라 공부하고 싶은 내용을 온라인 강의로 들으며 학습목표량을 채우고, 모르는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공부하는 매우 ‘자발적’이고 ‘혁신적’인 학교 모델이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진도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체크하고, 카메라에 비춰진 학생의 표정을 통해 학습 내용 이해 정도를 모니터링합니다. 그리고 학생은 스스로가 자신의 학습이 완료되었다고 판단할 때 온라인 퀴즈를 풀고 교사의 일대일 피드백을 받는 방식의 선진 에듀테크 시스템의 학교였습니다. 얼핏 보면 완벽할 것 같은 교육 시스템인데 이 학교가 성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것은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이 자리잡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관심과 애정에 기반한 ‘사람’의 가르침이 없고, 학생과 교사, 학생들 간의 교류를 통한 ‘사람 사이’의 소통이 없던 교육현장에 온전한 성장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기술은 인류를 위한 도구여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교훈, 이는 비단 이 학교의 사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알트스쿨의 경우를 보면서 학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초기술, 초연결의 시대에도 학교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교가 콘텐츠만을 가르치는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수많은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사고를 확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하며 협업하는 미래 인재를 키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닥쳐왔다고 하여 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미래 인재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공감합니다. 아니, 더욱 더 중점을 두어 길러야 하겠지요. 바람직한 사회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공감과 소통의 공간, 만남과 사귐을 통해 관계성의 가치를 배워가는 곳, 그것이 학교가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코로나19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온라인으로 배움과 감성을 함께 나누고 있을지라도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의 난제를 함께 해결하며 긍정적인 공동체성을 알아가는 값진 교육이 일어나는 학교 공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의 교사들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나라의 건립자(national builder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제 코로나19를 겪어내는 우리 선생님들은 미래교육의 선구자(pioneers)입니다.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감사와 격려를 보내 드립니다. 학교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이기에 학교 안에 디지털 기술이 더욱 깊숙이 자리 잡아 배움의 방식이 변화 한다 하더라도, 바람직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건강하고 따뜻한 ‘부대낌’이 있는 학교의 존재 이유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휴먼터치의 시대를 기대하다
올해 초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출판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2021년 주목받을 만한 10가지 키워드 중의 하나로 ‘휴먼터치’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언택트 기술이 주목받는 지금의 상황에 서 역설적으로 접촉의 의미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 까요? 공감하고 소통하는 인간적인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해봅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닌 인간적 접촉을 보완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도 생각하게 됩니다.
따뜻한 교감과 관계 맺기, 즉 휴먼터치는 학교, 교육청, 또한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공동체와 조직의 문화 속에 소통과 배려, 공감과 이해의 모습으로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이클 폴란 교수는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리더들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 자신과 조직이 얻게 될 모든 이익에 집중하는 반면에, 구성원들은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변화를 통해 얻게 될 보상보다는 치러야 할 대가에 더욱 집중하기 때문에 학교혁신이 실패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변화의 과정에서 겪을 업무의 변화나 업무량의 증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지원하고, 구성원은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전문성의 신장을 위한 역량을 발휘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발전과 혁신을 거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마다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공동체성에 기반한 건강한 소통 문화 는 코로나19로 더욱 소중해진 가치가 될 것입니다.
맺으며
마스크를 항상 쓰게 되면서 서로의 표정을 읽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표정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데 매우 중요한 윤활유인데,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마스크가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가릴 수는 없습니다. 관계성은 만남에서 비롯되고, 공감은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서로가 힘이 되어 주는 인간관계, ‘따뜻한 휴머니즘’이 소중한 때입니다. 사람만큼 소중하고 값진 존재는 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신뢰하고 온정과 사랑의 손길을 주고받으며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행복한 일상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우리 교육 안에 활짝 꽃피우길 바랍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마종기, ‘우화의 강’ 중에서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참고문헌
다니엘 핑크, 김명철 번역(2020), 「새로운 미래가 온다」, 한국 경제신문사
티타임즈, 저커버그 등이 1천억 투자한 대안학교의 실패, https://post.naver.com/my.nhn?memberNo=17369166
마이클 폴란, 이찬승, 은수진 역(2019),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 는가」, 21세기교육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