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정 (영림중학교, 교사)
처음 구상은 사실 단순했습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 프로젝트 수업’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국어과 · 도덕과의 교과융합수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협력종합예술활동을 올해는 1학년이 맡게 되었으니 국어·도덕을 통해 공부한 것을 음악과와 함께 뮤지컬로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계획했습니다.
시작 전의 고민은 도덕과와 국어과에서 함께 가르칠 인권 영역 6개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것을 넣고 싶었으나, 중1 수준이나 학부모의 의견을 고려하여 빼게 되었습니다. 성 평등 영역은 인터넷 상의 남녀 갈등이 심각한 현실이라 필요성이 큰 반면, 여교사로서 남학생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만화로 만들어진 흥미로운 교재를 발견하면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최종 6개 영역이 이주노동자, 성 평등, 장애, 탈북, 갑질, 노인이었습니다.
음악과에서는 먼저 뮤지컬 맛보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매년 3학년에서 뮤지컬 발표회를 준비하며 학급에 갈등이 생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에, 맛보기 수업 후에 ‘뮤지컬’과 ‘영상 제작’ 중 학급에서 결과 발표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맛보기 수업은 드라마 대본을 제공한 후, 그 속에 잘 어울리는 노래를 개사해서 넣으며 뮤지컬로 각색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하면서 10개 반 중에 9개 반이 뮤지컬을 선택했는데, 뮤지컬을 선택하는 반에는 학급협력자금 10만원을 지원한다는 보상이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발표회 후 학생의 소감문에 있던 “돈이 무섭다, 돈 때문에 이렇게 힘든 일을 선택하다니……”라는 구절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국어과에서는 먼저 ‘쉴 권리’, ‘의·식·주 권리’ 등 다양한 인권의 영역을 마인드 맵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했던 일을 떠올려 수필을 쓰면서 ‘인권’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소중한 개념임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덕과에서는 세계 인권 선언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여 앞에서 정했던 6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내용을 만화로 표현해 보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사를 읽고 포스터로 그렸으며, 장애인과 노인의 권리에 대해서도 읽고 쓰기를 통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어과에서는 6개 영역과 관련된 단행본 3가지 중 학급에서 선택한 책을 읽고 토론하였습니다.
‘나도 몰라서 공부하는 페미니즘’을 5개반, 언어에서 드러나는 차별에 대한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3개반, ‘어른이 되면’이라는 장애 인권에 관한 책을 1개 반이 선택했습니다.
읽을 때는 궁금한 점, 기억하고 싶은 점, 비판하고 싶은 점 등을 간지로 표시하면서 읽고, 학습지에 기록하며 모둠별로 읽은 내용을 나누는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한 남학생이 ‘페미라고 해서 메갈이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며, 이 수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학생들의 편견을 조금 바꿀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많은 학급에서 ‘페미니즘’ 책을 선택했기에, 그 수업의 마무리는 징병제에 대해 토론하며 ‘여자가 밥 차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남자가 군대에 가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누구의 희생도 당연시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우리가 공부한 인권이다.’라고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9개 반 중 4개 반이 뮤지컬 이야기를 만들 때 주제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렇게 내용 학습이 마무리 되고 모둠별로 국어, 도덕 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 한 주제를 골라 이야기를 창작했고, 그 중에 좋은 내용을 선택하거나 아래 사진처럼 합쳐서 더 구체적인 내용을 모둠별로 논의한 후, 학급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작가들이 대본으로 옮겨서 9개의 뮤지컬이 완성되었고 학교 게시판에 뮤지컬 발표회 포스터를 붙여 알렸습니다.
반별 뮤지컬 내용을 살펴보면 1반은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2반은 회사에서의 선배 갑질, 3반은 학교에서의 선배 갑질, 5반은 여성이 명절 때 겪는 불평등을 소재로, 6반은 학교에서의 남학생 차별에 대해, 7반은 쉬는 시간에도 수업하는 교사에 대한 학생의 휴식권 주장, 8반은 발달장애인 동생을 가진 누나의 상처와 성장의 이야기, 9반은 동아리 선배의 갑질, 10반은 학교에서 겪는 남녀 차별에 대해 각 반의 개성을 살려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리허설 할 때까지만 해도 발표회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걱정했는데, 발표회 당일, 모든반이 어찌나 다 잘하는지, 모든 학부모님, 선생님들을 모시고 와서 자랑하고 싶은 팔불출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발표회 후 학생들이 제출한 소감문을 보면서 진지하게 반성도 했습니다.
‘인권 프로젝트는 ( )이다. 왜냐하면…….’ 이라는소감문에서 긍정적인내용을 쓴 학생들은 대부분,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반응이었던 반면, 어떤 학생들에게는 뮤지컬 연습 시간이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긍정 소감문]
즐거움, 뇌, 진화, 배움, 구원, 기.회, 쉬는 시간, 도전, 지식up, 영양제, (좋은)추억(쌓기), 자신감, 새로운 경험, 성장통 등
[부정 소감문]
힘든 것, 고통, 최악, 혼란, 지옥, 의미 없음 등
특히 부정적인 소감이 많이 나온 원인은 뮤지컬 강사님과의 갈등이었습니다. 발표일은 정해져 있는데 학생들이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자, 특히 산만한 남학생들을 답답해 하며 ‘역시 여학생들이 똑똑하다.’고 말씀을 했고 이에 대해 학생들은 ‘우리 극의 주제가 남녀차별인데, 강사님에게 직접 남녀차별의 말을 듣고 놀랐다.’는 소감문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며, 학생들이 ‘성차별’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배워서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살짝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5개월 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성찰 해보자면
첫째 협력종합예술활동을 준비할 때는 진행하는 교사들 간에 충분한 합의와 여유 있는 시간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극 연습에 활용된 시간은 학급 당 강사수업 10시간과 그 외 수업 약 5~6시간이었는데, 극의 난이도나 학생들의 열의나 재능에 따라 학급별로 필요한 시간에 차이가 났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연습은 국어, 도덕, 음악 외에 타 교과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종합예술활동’의 교육적 필요성을 학기 초에 학년 교사들과 합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연습과정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갈등을 미리 파악하고 중재하는 교사들의 노력과 대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습과정에서 일어나는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미리 파악되어 담임교사가 회복서클1을 진행했던 학급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크게 일어났음을 소감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좋지만, 실제로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는 상황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에 대한 효능감을 키울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셋째는 ‘학급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원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수에 떠밀려 하게 될 경우 얻게 되는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보다 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강사나 학생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발표를 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교육적이지는 않은지에 대한 교사들의 고민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넷째는 인권, 특히 성별 갈등이 심해지는 사회 환경에서 성 평등 수업 대중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자료 개발이 절실한데, 남녀공학에서 성평등 수업을 할 때 남학생들이 가지는 피해의식을 고려하여 수업을 세심하게 계획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인권 수업이 자기 인권만 주장하며 상대를 공격하거나, 피해의식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실천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겁 없이 뛰어들어 좌충우돌했던 시간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마음 잘 맞는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이 쉽지 않은 일, 협력종합예술활동을 서울 전역의 중학교에서 하고 있는데, 어떤 교과가 어떻게 ‘협력’하고, 그 안에서 어떤 배움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그 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