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구 명예기자 (청원초등학교, 교사)
우리나라 전국의 놀이터는 70,601개이다. 이 중 학교놀이터의 수는 6,315개로 전체 놀이터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학교놀이터는 보통 운동장 한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주로 미끄럼틀, 철봉, 시소, 정글짐, 그네 등 관리 편의성을 고려한 1~2개의 스테인리스 재질의 기구나 조합놀이대 1대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행정안전부, 2017).
2017년 10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초 1, 2 안정과 성장 맞춤 교육과정 운영」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놀러 오는 놀이터 만들기’ 시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시범 사업의 위원장을 맡았던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위원장은 “놀이터는 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놀이터 만들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아이들이 놀고 싶은 공간으로의 변신이 가능하다”라고 말하며 학생 참여형 놀이터를 기획하였다. 아이들의 놀 권리와 쉴 권리를 보장하는, 학생 참여형 새로운 개념의 학교놀이터인 ‘꿈을 담은 놀이터’를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서울신현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놀이의 주인공은 우리·놀이터가 완성되기까지
우리 주변의 놀이터로는 학교 밖 공원이나 주거 공간 가까이 있는 놀이터 그리고 학교놀이터가 있다. 학교 바깥의 놀이터는 어린이들이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지만, 학교놀이터는 이용에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편이다. 또한 놀이터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놀이 기구는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많고 철저하게 어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져서 획일적이다. 이런 점을 극복하고자 신현초에서는 꿈을 담은 놀이터의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의 전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놀이터를 직접 이용하는 학생들이 주인이 되도록 하였다.
신현초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시작 단계로 놀이터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실시하였다. 이 워크숍에는 1학년부터 5학년 어린이 중 희망자 25명의 어린이가 참여하였다. 워크숍은 1) 워크숍 준비, 2) 놀이터 디자인과 설계에 대한 소개, 3) 도담뜰 현장 조사, 4) 팀별 토론, 5) 팀별 모형 만들기, 6) 팀별 모형 소개하기, 7) 사후 놀이 활동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용할 놀이 기구를 상상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었다. 단순하게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로 모형을 만들어 보면서 적극적인 몸의 움직임을 생각하여 놀이터를 구체화시켰다. 어린이들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놀이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 워크숍 이후 교사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학교놀이터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놀이터 디자인은 다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최종 놀이터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기본적인 디자인이 끝난 후에는 구체적인 놀이터 조성 공사 전 과정에 대한 어린이 감리단이 조직되었다. 어린이 감리단은 시공된 놀이터에서 직접 놀아보며 완공되기 전 개선사항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2018년 4월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이 이용할 놀이터를 만들어나가는 전 과정을 점검하였다. 또 어린이 감리단은 자신들이 생각하였던 놀이터가 실제 시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완공 전 놀이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도 미리 알아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그 과정에 의견을 내고,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에 참여하면서 즐겁게 놀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드디어 △바람의 언덕 △레인보우 놀이터 △시끌벅적 놀이상자 △트리하우스 △하얀세상 △추억 놀이터 등 지금의 놀이터가 완성되었다.
꿈을 담은 놀이터 개장
2018년 7월, 드디어 서울특별시교육청 1호 ‘꿈을 담은 놀이터’(이하 꿈담터)가 생겼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놀이터인데 무엇이 특별하기에 꿈을 담았다고 표현한 것일까?
서울신현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하면 눈에 띄는 것이 운동장 한편에 있는 거대한 3개의 모래 동산이다. ‘지금 운동장 공사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언덕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직접 올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노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신현초 교감은 “꿈담터는 아이들이 사용 규칙을 만들었다.”라며 “스스로 만든 규칙이라 정말 잘 지킨다.”라고 말하였다. 놀이터의 각 이름도 아이들이 지었고, 각 놀이터를 이용하는 규칙도 아이들 스스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만들고, 아이들이 이용하는, 아이들이 주인인 놀이터였다.
학교 건물 사이 공간의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명절에나 하던 윷놀이를 확대해놓은 것 같은 그림인데 놀이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 공간은 ‘레인보우 놀이터’라고 하며 “기본적인 방향만 설정되어 있을 뿐 놀이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며 창의적인 놀이를 하는 놀이터”라고 한다.
‘꿈담터’를 개장한 후 신현초의 놀이시간은 기존 10분에서 20분이 늘어나 30분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놀이 공간을 마음껏 활용하며 학교에서 즐거움을 느끼라는 취지이다. 학교에서는 저학년은 중간놀이 시간을, 고학년은 점심시간을 늘려 한꺼번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예방하였고 학생들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놀이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이의 권리 – 쉼과 놀이
어린이는 친구와 어울리며 놀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받을 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어린이의 놀이가 ‘어린이의 기본 권리’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세계아동헌장 제25조에 따르면 모든 학교는 놀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5월,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하고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 이에 필요한 놀이터와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을 선언하였다.
근현대적인 ‘학교’가 생기고 나서 상당한 시간 동안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은 10분으로 고정되어 왔으나 위와 같이 최근에는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 10분을 ‘중간놀이’ 30분으로 늘리는 학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교실에서 놀이터까지 가기에 시간적, 공간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교실에서 실내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현초 ‘꿈담터’는 학교 곳곳을 놀이 공간으로 조성함으로써 10분이든 30분이든 언제든지 시간만 나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적 이점이 있었다.
‘꿈담터’는 기존의 기구 중심의 놀이터에서 벗어나 어린이 중심으로 만든 창의적인 놀이터이다. 학교가 배움의 공간이라고 해서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지식만 익히는 시대는 지났다. 신현초의 놀이터는 공간을 제공해주며 구체적인 놀이의 규칙까지 정해주지는 않았다. 이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면서 창의성이 길러지고 친구들과 함께 놀이 전 과정을 어떻게 할지 토의하며 협동심이 신장되는 효과도 있다.
‘꿈담터’가 개장된 후, 신현초 학생들은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노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요즘처럼 ‘쉼’과 ‘놀이’가 중요해진 시기에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부터 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놀이는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쉬고 즐기면서 어린이답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꿈을 담은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쉬고 뛰어놀며 스스로 꿈을 잘 키워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교육정책연구소(2017), 아이들이 놀러오는 학교놀이터 조성 방안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