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9 여름호 (235호)

학교급별 공간혁신 사례3-녹천중학교 다른 시선으로 본 교육 공간, 혁신의 씨앗을 품다

김소영 명예기자 (덕성여자고등학교, 교사)

2015 개정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은 교육계에서 되풀이 되었던 고민이다. 수업의 혁신이 현장에 자리 잡아감에 따라 뒤이어 요청된 혁신의 방향성은 학교 공간으로 향했다. 아무리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19세기 건물의 한계는 혁신의 방향을 가로막았던 셈이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학교 건물을 혁신의 시대라 하여 재건축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여기, 녹천중학교에서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공간 혁신의 시작은 소통과 나눔에서, ‘소나방’의 시작

녹천중학교에서 ‘소나방’을 기획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요소를 크게 고려하였다. 하나는 교무실에서 학생, 학부모와 상담하는 교사들의 모습이다.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진솔하고 깊이 있는 상담을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다른 하나는 교사가 건강해야 교육이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교사가 지치고 아프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가는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교사들이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은 학교 안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한 두 가지 경험이 결합되어 ‘소나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낮은 조도의 따뜻한 조명, 그 아래 편안한 의자들과 테이블, 그리고 공간을 둘러싼 클래식 음악은 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었다. 한편에 미리 구비 된 다양한 종류의 차는 선생님들의 재충전을 적극 지원하였고, 벽면을 채운 단체 사진에서는 선생님들 간의 끈끈함이 느껴졌다.
소나방을 이용한 녹천중 선생님들은 이곳의 공간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의 교직 생활에 선물 같은 곳이라는 선생님의 의견부터 마음 편하게 아이들과 상담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 그리고 지친 학교생활에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기존의 학교 공간이 지닌 한계를 극복한 소나방이 교육의 한 축인 교사에게 교육의 활력을 갖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공간에 적용된 다른 관점이 이끈 혁신

여느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녹천중학교도 학생 수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남는 교실
이 생겼고, 이 교실을 ‘문예 활동실’로 탈바꿈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토론, 토의 수업은 물론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도 지원할 수 있는 다용도 교실을 만든 셈인데, 작은 무대같이 꾸며진 이곳은 학생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견을 나누기도 좋았고, 교실 앞에 나오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그 시간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커튼을 열면 전면 거울이 부착되어 있어 댄스 동아리 학생들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은 문예 활동실을 소개하며 직사각형 모양의 교실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거리가 먼 디자인이 교육 현장에 정착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칠판의 위치를 현재와 다르게 배치하면 학생과 교사 사이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다. 문예 활동실의 교단 위치는 일반적 교실의 구도와 다르다. 실제로 문예 활동실의 교단에 서면 교사가 서 있는 곳이 학생들의 좌석과 굉장히 가까워,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며 소통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할 것으로 보였다. 한 사람이 품은 생각의 변화가 만들어낸 공간 혁신은 교사로 하여금 학생 주도의 교수·학습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고,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반 교실도 다른 학교의 그것과는 다른 작은 변화가 보였는데, 우선 서랍 없는 책상이 눈에 띄었다. 모둠별 활동식 수업이 잦은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서랍 있는 책상은 무게만 더 나가게 만들고 수업에 활용해야 할 전자 기기로 학생들이 몰래 다른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이에 따라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친 뒤 서랍 없는 책상을 전면 도입하였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어느 누구도 불만 없이 교실의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탈의실을 설치한 복도

대다수의 학교 공간에서 복도는, 교사에게는 이동 통로의 공간이며, 학생에게는 다른 학급에 배정된 친구와의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복도 양 끝에 남는 일부의 공간을 작지만 편리한 탈의실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복도 공간의 한쪽 끝에는 남학생 탈의실, 반대편 복도 끝에는 여학생 탈의실을 설치하여 학생들의 편의를 제공했다.
남녀공학의 학교가 갖고 있을 고민 중에 하나는 탈의실 설치 여부일 것이다. 체육 시간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학교 공간에 탈의실은 필요하다. 하지만 탈의실에서 예상하지 못한 비교육적 사고가 발생할 것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녹천중은 이러한 문제 상황을 소거함으로써 공간 확보의 당위성을 발견한다. 바로 탈의실 공간에 누군가가 있으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탈의실 전등이 깜빡거리게 만든 것이다. 빠르게, 그리고 오래 점멸하는 탈의실 전등은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교사들이 해당 공간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작은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학교의 자투리 공간이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교사에게 안전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홈베이스 구축을 통한 소통의 공간 마련

녹천중학교에서 복도에 대한 관점의 혁신적 변화가 일어난 또 하나는 학생들의 공유 공간인 홈베이스 구축이었다. 2층에서 4층까지 복도 한 편에 마련된 홈베이스는 3개 학년마다 특색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어 있었고, 학생들은 그 공간에서 학년별 소통을 이뤄나간다고 했다.
본래 홈베이스 공간은 창고로 사용했던 공간이었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창고이기에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창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고 했다. 학교 안에 방치된 공간을 학생들에게 돌려 주고자 노력하였고, 그렇게 음침했던 창고는 학생들의 활기로 가득 찬 홈베이스가 되었다.
2층은 3학년, 3층은 2학년, 4층은 1학년이 사용하는 홈베이스 층으로 설정하고 고학년은 차분한 분위기를, 학년이 내려갈수록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색상과 모양으로 벽면과 기둥을 꾸몄다. 또한 여러 개의 테이블과 의자, 소파를 설치하여 학년 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서로에게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각 층의 홈베이스는 굉장히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었는데, 학생 자치회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조성하면 아이들은 이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인다는 교육적 효과를 녹천중 홈베이스에서 발견한 것이다.
향후 녹천중학교는 홈베이스 공간 양측에 유리문을 설치하여 복도에서 홈베이스가 분리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수업도 할 수 있고, 학생 자치 기구의 회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학교 공간의 혁신을 꿈꾼다

수년 동안의 노력으로 녹천중학교는 곧 에코 스쿨로 또 다른 공간 혁신을 꿈꾸게 되었다. 교정을 푸른 나무들이 감싸고 건물 가운데에 잔디밭과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저마다 품고 있는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교장실이 학교의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학교의 중앙에 놓여 있는 학교, 학교의 각 층마다 목적이 다른 공간이 형성되어 아이들이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게 만드는 학교, 융통성 있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교류할 수 있는 학교……. 이러한 모습을 두루 갖춘 교육 공간을 여전히 꿈꾸는 녹천중학교에서 교육 혁신을 이끌어 내는 공간 창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