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 (서울흑석초등학교, 교사)
2023년에 6학년 4반 19명의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점심시간에 급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먼저 운동장에 나가 축구 골대를 차지하는 아이가 5학년이냐 6학년이냐에 따라 점심 시간 운동장을 차지하는 학년이 결정된다는 소문을 들은 참이었다. 학기 초부터 고학년 간의 신경전과 갈등이 야기될 수 있던 터라, 안전 교육을 이유로 3월 초는 교실에서 지내자고 이야기하며 첫날을 시작하였다.
솔직하고 표현에 거침 없는 아이들 중 일부는 선생님에게 뻔히 들릴 만한 거리에서 “야, 우리 왜 못 나가? 작년에도 안 다치고 놀았는데 갑자기 왜? 나가도 되는 거 아니야?” 하며 불만을 표현했다. ‘첫날부터 신경전을 해야 할 줄이야…….’ 상대방 아이는 “우리 서로 얼굴도 익히고 뭐 그렇게 아까 말씀하셨잖아. 아, 나도 잘 몰라.” 하며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하며 앞으로의 장기전에 대해 생각했다.
다음 날, 아이들에게 1학년 때부터 주구장창 아무렇지 않게 나가서 놀았던 운동장에 (당분간이지만) 나가지 못하게 하는 선생님의 취지를 알아주고 교실에서 지내며 안전하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어 고맙다고 표현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는 예정했던 기간보다 더 앞당겨 다시 운동장에 나가 신나게 놀고 시간을 지켜 돌아올 것을 약속 받고,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한 달도 지나기 전에 깨달은 것은 그 직설적이고 선생님의 기분을 꽤 불편하게 만들었던 아이가 아주 마음씨가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아이였다는 사실이다. 다만, 자기 감정에 많이 솔직한 아이였을 뿐이다.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공감’ 이다. 아이들이 왜 저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을까를 교사가 먼저 공감해 주어야 아이들도 선생님이 왜 저렇게 하라고 하실까를 공감해 준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에게 날리는 첫 질문
학기 초 아이들에게 우리가 함께 지내게 될 1년을 시작하며 우리가 엄청난 ‘인연’으로 만난 것임을 확률적으로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이 공간 자체가 부담스러워 긴장하고 서먹해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뻔한 자기소개보다는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을 자유롭게 적어 질문 비행기를 날리도록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열고 성의 있게 답해주며 3월 첫 주를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학급 세우기
그리고 첫 주는 ‘교과서 없는 오리엔테이션 주간’임을 미리 말해둔다. 학급 세우기 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학급 이름 만들기’, ‘우리 반이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 ‘우리 반에 필요한 학급 규칙’, ‘6학년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독서 시간과 배움노트 필기 양 정하기’ 등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학급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
학급 보상도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정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개인 보상은 쉬는 시간 추가권이었다. 나의 노력으로 학급 친구들에게 꿀 같은 10분을 선사할 수 있다. 친구들의 환성과 포옹은 덤이다. 학급 보상 중에는 우리 학급의 별칭을 따라 만든 ‘육개장 사발면’ 쿠폰도 있었다.
독서 시간을 정할 때는 학원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부터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는 아이, 그리고 책을 안 읽은 지 너무나 오래된 아이부터 어른 수준의 책을 읽는 아이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직접 모둠 토의를 거친 후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교사는 모둠 토의를 통해 나온 의견들을 모아, 학급 토의를 거치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우리 육개장 사발면반 독서활동은 하루 최소 20분 이상의 독서 시간을 목표로 하기로 하였고, 학급 소통망을 통해 학부모님들에게도 공지하고 협조를 구하였다.
독서로 통하는 생활지도
학부모님들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책을 조금이라도 더 읽었으면 하신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사춘기가 올 듯 말 듯한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게 잔소리로 들릴까봐 학원과 동시에 독서를 권유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독서 권유를 포기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놀 시간도 부족한데 왜 자꾸 책을 읽으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이들과 첫 시간은 꼭 ‘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사가 조금만 노력하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지루해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느낀다.
독서활동을 시작하고, 우리 반 독서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독서가 왜 좋은지 이유를 알고 난 다음 필요한 것은 독서하고 싶게끔 하는 책들을 주변에 많이 노출하는 것, 재미있는 책을 마구 소개해 주는 일이다. 6학년 아이들인만큼, 3월부터 친구 관계에 금이 가며 절교하여 마음이 불편한 친구들도 있고, 옆 반 친구들과 흔히들 말하는 어깨빵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여자 아이들끼리의 편 가르기는 물론이요,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학부모님들 귀에까지 들어가 아이도 부모님도 힘든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안다. 그런 인간관계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강해지길 원했다. 쉬는 시간까지 담임 선생님이 살펴주고, 모둠도 주기적으로 바꾸며 소외되는 친구가 없도록 최대한 지도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갔을 때,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지니길 바랐다.
그래서 ‘친구 관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기르기’에 초점을 두어 도서들을 선별하고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소개할 책을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읽는 편이다. 책 내용을 파악해 두고 앞부분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책을 향해 달려온다. 그런 분위기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소리 없이 천천히 퍼져 나간다.
그 외에도 교사 이름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서 글밥이 적은 것부터 많은 것까지, 분야도 다양하게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빌려와 소개해 주었다. 도서관 자체와 이미 마음이 멀어진 고학년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방법이다. ‘귀찮은 것은 선생님이 해줄 테니, 너희는 읽기만 해라.’의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아이들은 다음 도서관 수업 때 교실에서 접했던 책의 다음 편을 고르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렇게 책을 고르는 법을 서서히 배우고 손을 안 대던 책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자신이 읽은 책을 가져와서 재미있으니 제발 꼭 읽어보시라며 선생님 책상에 반강제로 두고 가는 아이들도 생겼다.
즐거운 우리 반 월별 테마 활동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매년 해오고 있고 아이들도 교사도 즐거운 활동을 말하자면, 우리 반만의 ‘월별 테마 활동’이다. 생활지도를 놀이로 접목한 것이다. 아이들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미덕에 대해 3월에 함께 이야기한 후, 그 중 좀 더 소중하고 우리가 경험해 보고 싶은 미덕을 몇 개로 간추려 본다. 이때도 역시 모둠 토의와 학급 토의를 거쳐 모두가 입을 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거나, 딱히 의견이 없더라도 모둠 친구 의견에 공감을 표현하여 간접적으로라도 꼭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반은 4월은 ‘우정의 달’, 5월은 ‘예의의 달’, 6월은 협동의 달’ 과 같이 월별 테마를 정한 후, 그에 맞게 마니또 놀이, 고미칭(존)1 미션과 체온 인사, 다양한 협동놀이들을 해보았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과 교사의 마음을 다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체온 인사와 고미칭 미션이다. 아침에 오면 같은 반 친구인데도 “안녕” 그 흔한 인사조차도 안 하고 자기 자리에 앉는 친구들이 꽤 많다. 선생님과의 그리고 친구들과의 인사도 하루의 첫 시작인만큼 신나고 즐겁게 하고 싶었다.
우리 육개장 사발면반은 체온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도 좋고, 주먹 부딪히기도 좋고, 서로 안아주며 인사를 해도 좋다. 다만 반드시 해야 한다. 몇 명 이상을 목표로 할지 역시 아이들이 정했다. 물론 인사를 안 했다고 주는 벌칙은 없다. 소심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러 선생님에게도 4월말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먼저 인사를 해주었던 우리 반 아이에게도 밝고 활달한 아이가 먼저 인사를 건네주기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란 없다.
‘예의’라는 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만이 아니라, 친구에게도, 그리고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예의를 조금 더 넓게 해석하여 감사 인사를 잘하는 모습이 얼마나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지도 느끼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마워, 미안해, 칭찬해(존경해)’ 미션을 실천해 보았다. 좋은 말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는 말에 모두 동의하여 하루에 몇 번 이상 “급식 많이 줘서 고마워~”, “내가 너무 잘 생겨서 미안해.^^”, “넌 너무 웃겨.” 등 조금은 장난스러운 말들도 오고 갔지만 의도적으로 미션을 실천하며 아이들에게 따뜻한 습관이 배어들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이야기 데이트
학교에는 너무나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다. 선생님들의 경험 속에, 오고 가는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지혜가 숨어있다. 어느 한 선배 선생님의 학급 경영을 듣고, 6학년 아이들 한 명 한 명과의 방과후 데이트를 해보았다. 학원 일정으로 어쩌면 교사들보다도 바쁜 아이들에게 생색을 내며, “선생님이 오후에 정말 할 일이많지만, 너희 한 명 한 명과 과자 먹으면서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고민이 있다면 고민을, 그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아무 할 말이 없다면 같이 과자 먹으며 힐링을 해보자. 가능한 시간을 적어서 내면 선생님이 조율해서 최대한 맞춰 볼게.”로 시작한 <선생님과의 이야기 데이트>. 20분 정도를 예상하고 시작했지만, 남자 아이 2명만이 20분을 기록했고 대부분이 30분 이상, 그리고 3명의 아이는 1시간 가량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친구 관계에 심각한 고민이 있는 아이도, 자신이 교회에서 아는다른 학교 동생(교사는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는 아이)의 못마땅한 이야기를 해준 아이도,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핸드폰을 보여주며 열심히 소개해 준 아이도 있었다. 4월에 작성해 둔 <인생 그래프>가 하나의 소재가되어 아이들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속에서 겪었던 3대 사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유치원에서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도, 매일 그냥 늦잠 잤다며 지각하던 아이가 사실은 학원에서의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새벽 2시까지 게임을 하다 자느라 지각한다는 솔직한 고백도 들어볼 수 있었다.
든든한 지원자를 만들어가는 학부모 소통
분명 아무리 노력해도 매년 어려운 아이는 있다. ‘이 아이가 올해 나의 숙제구나…….’ 하며 올해의 프로젝트 같은 느낌으로, 한 달 뒤에 조금 더 나아지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한 달 뒤에도 똑같다면 두 달 뒤,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한 학기 뒤,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으로 목표를 바꾼다.
다양한 아이들과 1년을 함께 하며 잊지 않았던 것은 학부모님들과의 소통이다. 사실 교육활동에 가정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학급 소통망을 통해 아이들과 하는 행사의 취지와 뒷이야기를 종종 알린다. 그리고 상담 신청이 오면 다른 일을 내려놓고 최대한 성의 있게 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버거운 상황들도 있다. 그래도 교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상황을 자세히 안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오죽 속상했으면…….’ 하면서 넘어갈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간혹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사의 노력을 알아주는 학부모도 있었음을 우연히 알게 될 때가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모두의 목소리, 아이들이 질문하고 답하는 교실
학업 면에서는 모둠 토의나 모둠 대화 시간에 하브루타를 적용한다. 아이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모둠 안에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하며, 그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하여 학급 다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일환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체크인 활동으로 주말 이야기나 아침 기분, 혹은 교사가 궁금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주어 15초나 20초씩 모두 말할 수 있도록 하여 모두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이나 단순 지식에 대해서도 “왜 그럴까?” 질문하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선생님이 꿈꾸는 교실은 ‘너희들이 질문하고, 너희들이 대답해주는 교실’이라는 말과 함께 매사 질문했고 짧게라도 꼭 아이들이 생각을 나눌 시간을 주었다. 교사는 그 안에서 조금 더 보완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들의 참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수업 방식이라, 학기 초에 듣고만 있던 아이들도 갈수록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말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진다.
칭찬으로 샤워하는 생일 파티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좋아했던 것은 소소한 생일파티 시간이다. 고학년이 웬 생일파티인가 싶겠지만,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편지라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생일인 친구에게 칭찬 샤워 활동으로 칭찬할 점과 생일 축하글을 함께 써주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칭찬 샤워 책받침을 선물하며 소소하게 축하해준다. 방과후 수업에서 배운 댄스, 평소 조용한 친구의 축구 기술 시범, 언제든 가능한 즉흥극, 물통으로 이루어진 난타 공연 등 친구들의 재능 기부로 이루어진 축하 공연과 과자는 필수다.
학급경영으로 성장하기
한 달에 1권 정도는 학급 경영이나 놀이 수업에 대한 책을 읽는다. 좋은 것, 적용해보고 싶은 것은 메모해놓고 시기적절하다 싶은 때에 바로 시도해본다. 그렇게 많은 선배님들과 동료 선생님들의 지혜, 그리고 책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으로 실천해보고 좋았던 것들이 쌓여 지금 나의 학급 경영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교사의 이야기나 가르쳤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갈등이 심할 때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시집 속 따뜻한 문구들을 가져와 읽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직접적인 잔소리보다 간접적인 눈빛의 영향력이 더 큰 법이니까.
내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감히 추천하고 싶은 학급 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여기까지다. 앞으로도 주변 선생님들의 이야기, 책 속에 담아주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그리고 매년 힘들게 하는 아이나 학부모님보다는, 이렇게 교사의 노력을 알아주는 그리고 느껴주는 아이나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며 올해도 힘차게 또 한걸음 디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