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룡 (공주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사용자 참여를 통해 사용자 및 미래교육이 요구하는 학교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사용자의 범위에는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 등이 포함되며, 그 중심에 학생과 교사가 위치한다.
사용자 참여 디자인(User Participatory Design)은 ‘계획 및 설계, 의사결정, 실행 그리고 전반적인 디자인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사용자가 직접 계획과 디자인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1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된다. 이는 사용자가 학교 공간 설계에 대한 계획 및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창출하고, 디자인 품질에 대한 확신과 만족도를 높이며, 지역의 공동체의식을 증진시키는 등 장점이 많은 디자인 방법이라 하겠다.
이 글에서는 공공시설사업에서 사용자 참여의 필요성과 외국 학교들의 사용자 참여 설계 사례를 살펴보고, 교육부가 진행 중인 학교 공간 혁신 사업에서 학생과 교사의 참여방법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왜 사용자 참여가 필요한가?
사용자 참여 설계는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디자인 방법이며, 전문가 중심의 획일적인 디자인 가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후 주민 참여 디자인에 대한 연구와 해외 사례 소개 등을 통해 시범사업으로 이루어졌으며, 공공 시설사업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최근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공시설 사업을 위한 주민 참여 디자인, 주민 참여 예산 제도, 주민 참여 사업 공모, 주민 참여 도시재생사업 등 지역 주민의 직접적인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왜 이처럼 공공시설사업에 대한 사용자의 직접적인 참여가 활성화되고 있을까?
가장 큰 원인은 공공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시설이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설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공동의 자산이라는 지역 주민의 주인의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복잡하고 다양해진 사회적 요구를 소수 전문가의 직관이나 경험에만 의존하기엔 한계가 있다. 20세기에는 대가(maestro)들에 의해 기념비적 건축물들로 도시를 빛나게 하였다면, 최근의 공공건축에서는 구성원들이 커뮤니티(community) 활동을 통한 공동체 참여 디자인 방법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시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2012년 서울시 주민 참여 예산제도 사업으로 시작하였는데 은평도서관 마을협동조합, 주민 동아리, 구산동 주민 참여 위원회 등이 사업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주민 설명회, 공간 설계 협의, 인근 도서관 현장 탐방 등을 통하여 그들만의 마을도서관을 만들어갔다.
만약 예전의 방법대로 설계공모를 통해 전문 건축가가 도서관을 설계하였다면 웅장하고 스펙터클(spectacle)한 도서관이 건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때묻은 벽돌들에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고, 전봇대가 있던 자리가 서가가 되어 옛 추억들이 드리워진 현재의 도서관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멋진 건축물을 짓는 대신에 기존의 주택들을 그대로 두고 건물 사이 골목을 북 갤러리(book gallery)로 조성하는 등 마을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전혀 다른 시각의 마을 도서관 모델을 만들었다.
이는 무언가 새롭고 훌륭한 것을 창조할 것을 강요받는 전문가로서는 감히 생각지 못하는 건축 방법이다. 이 마을도서관은 일상의 삶과 함께하는 따뜻한 도서관을 갖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이게 우리가 바라는 좋은 건축(good architecture)이 아닌가? 학교 건축도 학생과 교사가 행복할 수 있는 건축이어야 하지 않을까?
외국의 사용자 참여 학교 만들기 사례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디자인 기법이다. 최근 사용자 경험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UI(User Experience), UX(User Interface) 디자인 기법은 자동차 디자인에서부터 웹디자인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학교 디자인에서 사용자 참여는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설계에만 머물지 않고, 학교시설 기획, 시공, 운영 및 관리 단계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건축에서의 사용자 참여 디자인 특성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영국은 ‘학교시설 디자인 품질지표(DQIfS, Design Quality Indicator for School)’를 활용한 사용자 참여 설계, 독일은 ‘사용자 참여 학교 만들기’로 지칭되며 다양한 학습 공간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학교 만들기+마을 만들기’를 통해 지역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영국은 DQI카드나 디자인 품질지표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의 요구분석 및 설계안을 체계적으로 평가하여 학교 설계를 진행하며,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사용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독일은 설계부터 시공단계까지 장기간 사용자를 직접 참여시켜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시공 완료 후에도 학교운영에 지역민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독일 학교의 사례만을 살펴보면, 독일의 참여 디자인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며, 에반갤리쉔 종합학교(Evangelischen Gesamtschule)의 경우는 저자가 방문하였던 2012년 9월까지 12년째 진행 중에 있었다. 대학교수인 피터 휘브너(Peter Hübner)의 주도하에 건축가, 교사, 학생의 의견이 반영된 참여형 설계방법으로 진행되었고, 설계 전에 3개의 원칙을 설정하였다. 첫째, 다양한 사회, 문화, 종교 및 인종을 포함하는 다문화 교육을 실시한다. 둘째, 환경 교육과 생활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을 구현한다. 셋째, 지역사회와 학교 간 연계를 통하여 주민에게 개방하고 종일 운영하는 학교(all-day school)를 설계한다.
그리고 에반갤리쉔 학교 건축의 특징은 친환경 설계와 단위 교실 계획에 있다. 교실동은 학년별로 분리되어 있으며, 단위 교실마다 다락(loft) 교실을 가지고, 화장실, 정원, 수납공간, 교사실이 함께 구성되어 1개 교실 완결형 모듈 시스템으로 계획되었다. 그림과 같이 다락 교실은 건축가와 학생들이 모형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완성하였다.
이와 같이, 독일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학생, 교사 및 지역주민들이 설계 및 시공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직접 공사 과정에 참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독일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학생과 지역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 발전을 위해 함께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 나라 학교 건축의 변화 요구
우리의 초·중등학교 시설은 어떠한가? 학습 환경에 대한 교육 수요자들의 높아진 기대 수준에 부응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현재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천편일률적 공간으로는 학생들의 정서적·심미적 요구뿐만 아니라 미래 교육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요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교육계 내·외부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비판받는 가장 큰 원인은 학교 건축의 주체가 공급자 즉 담당 공무원 혹은 전문가에게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학교 건축과 관련한 정책 형성, 주요 의사결정, 기획, 설계 및 시공 등의 의사결정 단계에서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적으며, 학생과 교사,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은 여전히 수동적 수혜자 입장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교육과정, 교육 환경 및 교육서비스 등에 대한 사용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당 공무원 혹은 전문가의 학식과 경험에 의해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성과 경제성의 이유로 공급자 위주 시설 행정이 이루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난날 학생 수용 위주 학교시설사업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학교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바뀌어야 할 시대적 요구가 있다.
이러한 자각은 전문가나 교육부 혹은 교육청 단위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학교 설계에 사용자가 참여한 사례는 경기도 남한산초(2001년), 서울시 돈암초(2007년), 서울시 은로초(2012년) 등에서 선도 사업 성격으로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용자 참여 설계는 2015년 이후 각 시·도교육청에서 시행한 다양한 공간 재구조화 사업이 아닌가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꾸미고 꿈꾸는 화장실(2015~2016년) 사업을 필두로 강원도교육청의 감성디자인 교실 사업(2016~2018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꿈을 담은 교실 사업(2016~2018년), 광주시 광산구청의 엉뚱 공모 사업(2016~2018년), 광주북초등학교 개축 사업(2017년~), 부산시교육청 별별 공간 사업(2017년~) 등이 그것이다.
이는 학생과 교사들이 주도하여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하고 교실을 변화시키고자 한 일대 사건이었다. 각 교육청마다 특색 있게 추진한 이 사업들은 학교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과 태도를 근본부터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 전문가가 없이 사용자의 의견과 아이디어만으로도 기존 학교에 즐거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학교를 살아있는 장소로 재창조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전문가 중심에서 학생·교사 중심으로
교육부가 현재 추진 중인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위에서 열거한 교육청의 각 공간 재구조화 사업들이 모태가 되었다. 소위 밑에서 위(Bottom-up)로의 정책 형성 방식인 셈이다.
공간 혁신 사업의 목적은 학교 공간을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장소로 바꾸어 나가자는 데 있다. 학교를 감독과 감시의 공간에서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 바꾸고, 학습공간 위주의 목적적 공간을 휴식, 놀이 등 일상의 삶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가꾸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는 마을학교로 만들어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이 함께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첨단 ICT를 활용한 교수·학습 환경, 지속 가능하고 안전하며 쾌적한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만들기에는 사용자 참여 설계가 필수적 기제가 된다.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이 외국의 사용자 참여 설계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교사의 역할에 있다. 선진 외국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나 공공 디자이너(master planner) 등이 주도하여 사용자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공간으로 구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공간 혁신 사업의 사용자 참여 설계는 학교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이루어지며, 교사는 퍼실리데이터와 더불어 참여 설계를 기획하고, 공간 교육과 워크숍 등을 함께 실시한다. 이때 교사는 공간 사용자로서의 역할과 공간 창출 촉진자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된다.
현재는 교육청에서 공간(영역) 단위사업들 위주로 추진되고 있지만, 6월 이후 개축 사업, 그리고 내년도 신축 사업까지 사용자 참여 설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준비 중에 있다. 이처럼 공간 혁신 사업은 공간 재구조화 사업을 뛰어넘어 증개축, 신축 등 전 학교시설사업에서 학생과 교사가 주인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용자 참여는 설계 단계뿐만 아니라 학교시설 기획 및 목표 수립, 시공, 운영 및 관리 단계까지 확대하고, 설계자 선정 과정에도 사용자가 참여하도록 한다. 이미 일부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의 설계자 선정위원회에 학부모가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교사, 지역 주민 더 나아가 학생들까지 설계자 선정에 참여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참여 설계 사례를 통해 전문가보다 일반 대중의 의견과 아이디어가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보아왔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학교시설사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학생과 교사 중심으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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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y Spinuzzi(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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