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거성 명예기자
코로나19라는 불청객과 함께 2020년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황금 빛으로 물든 논은 추수를 끝냈고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 속담 에 “벼는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관심과 애정을 쏟을수록 농작물이 잘 자란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로 얼굴 보고 일상을 함께할 수 없는 요즘 아무래도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것만 같아 아쉬울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어려움을 뚫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부단하게 움직이는 선생 님들의 발자국 소리를 쫓아 대림중학교를 찾아보았다.
2020 기본학력책임지도제
대림중학교(교장 김시영)는 재학생 40% 정도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다. 부모님이 모두 외국인인 경우도 있어 학교의 한국어 강사가 학부모와의 의사소통을 돕거나 중요한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중국어 등으로 번역하여 함께 배부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어휘력이 부족하거나 기초학력 향상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아 교육 활동에 제약이 많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2020 기본학력책임 지도제 사업>을 온 학교가 힘을 모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선생님
담임선생님, 교과선생님과 학생들 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학생들이 학교 와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다른 학교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교무행 정부장 김희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선생 님, 이 수업 재미있다는데 저도 해도 돼요?’라고 찾아와 묻는 아이들이 생 겨서 수업 인원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사 김정아
대림중학교에서는 진단 검사와 담임교사, 교과교사의 관찰 내용을 활용하고 인지 적, 정의적 영역을 모두 고려하여 학습지원 대상 학생을 선정한다. 선정된 학생들에게는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는 다양한 종 류의 기본학력 향상 프로그램 목록이 제공되며 원하는 것을 선택하 여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5명의 소인수로 수업을 진행 하며 교과뿐만 아니라 학습상담과 미술치료, 미술과 독서 수업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학습 동기가 떨어지기 쉬운 학생의 특성상 학생들이 억지로 떠밀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교과교사나 담임교사가 학생들과 교류하며 프로그램을 안내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선택하고 싶은 수업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학교 교사들의 유기적인 협업으로 인해 가능하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기본학력 보장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코로 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학년 비대면 연수를 시행하며 ‘기본학력책임지도제’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또한 모든 수업을 학교의 교과교사가 준비하고 진행하며 프로그램의 목적과 운영 과정을 학생들의 개인적 특성들을 고려하여 설계 운영하였다. 그 결과 올해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교실, 또래학습멘토링과 별도로 15학급 57명이 자발적으로 기본학력 책임지도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학교 분위기
본교 아이들은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코로나19 로 등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간식이나 도서 배부 등으로 등교 할 때면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관계를 통 해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선생님께서 시도하시는 다양한 교육 활동들은 무엇이든지 최대한 지원해드리고자 노력 하고 있습니다.
교감 김선미
학교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신뢰는 교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다양한 심리정서 지원 프로그램이나 Dream up 프로그램, 자유학기제 주제선택활동, 사제멘토링 등 교육활동을 설계할 때 최대한 교과교사나 담당교사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한다. 실제로 2020 기본학력책임지도제 학 습지원 프로그램을 두 학기에 걸쳐 운영하며 기존의 수립된 계획 을 고수하기보다는 지도교사들의 의견을 신속하게 반영하여 수정 하였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논술이나 영어 독해 수업에서 학생들이 거부감을 덜 느끼는 독서나 영어 동화책 읽기 등으로 수업을 바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학기에는 주로 교과 학습 위 주의 도서를 선정했으나 학생들의 요구를 가장 잘 아는 교사의 의 견을 반영하여 학습 동기 부여를 위한 도서를 구입하거나 간식비를 증액하는 등 프로그램을 수정하였다. 또한 대림중학교에서는 10월에 기본 학력 을 위한 등교 확대 방침이 나오기 전, 프로 그램 담당 교사들이 1~5인의 소인수 수업 을 위해 학생들을 등교시키고 학습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이 학년 초에 계획했던 수업량과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처럼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시로 교육의 현장을 위협하던 위기의 순간 교사들에게 허락된 자율성은 유연하게 수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서로 돕는 학생들: 또래 학습 멘토링, 다문화 멘토링
담임교사가 ‘또래 학습 멘토링’에서 멘토 로 활동할 학생과 멘티로 활동할 학생들을 지원을 받거나 추천한 뒤 활동에 배정하면 멘토-멘티 학생은 방과후 시간이나 점심 시간 자습시간 등을 이용해 학습 멘토링 활동을 진행했다. 학교에서는 멘토링 활동 을 지원하기 위해 간식이나 학습 플래너를 지원하고 담당교사가 활동일지를 점검하며 활동을 감독했다. 매년 해 오던 이 활동이 올해 등교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원격수업 수업에서 빛을 발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 교사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쉬운 멘티 학생을 멘토 학생이 즉각적으로 파악하여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거나 과제 수행 등을 챙겼다. 멘토학생의 활약으로 수업 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는 교사의 부담은 줄어들었으며, 수업에 따라오지 못해 방치되기 쉬운 학생들도 소외 되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대림중학교에서는 한국어에 서툰 다문화 학생이 수업을 듣는 데 도움을 주는 ‘다문화 멘토링’도 이루어지는 데, 다문화 멘토링의 멘티 학생이 수학 교과의 멘토 학생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성장하는 모 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과학을 읽고, 쓰다’ -마인드맵과 받아쓰기
아이들이 ‘핵’이 맞는지 ‘헥’이 맞는지 질문했을 때 참 막막했습니다. 과학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하는 말 속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어려움이 컸습니다. 단순한 어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아이들이 많아 아이들의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사 김정아
과학 교과 김정아 교사는 아이들과의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려한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들의 어휘력과 표현력이라고 답했다. 기초문식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교과 내용에 접근하여 흥 미를 잃지 않도록 수업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기울이고 있다 고 했다.
김 교사의 자유학기제 주제선택활동 수업인 ‘과학을 읽고, 쓰다’는 ‘글 읽기(중심 문장 찾기, 중심 단어 찾기)’, ‘단어 기억하기(교과서 단 어 빙고 게임)’, ‘표와 그래프 읽기(게임 활동)’, ‘쓰기(마인드맵 그리기, 문장 쓰기)’ 단계로 진행된다, 얼핏 국어 수업이라고 느껴질 정도 로 읽고 쓰는 활동을 중심으로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교과서 속의 과학 용어와 설명하는 내용을 찾아 쓰며 학생들은 모르는 단어의 뜻 을 반복해서 읽고 쓰게 된다.
학생들의 과제물을 점검하는 교사도 과학 개념과 맞춤법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어휘력을 평가하고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표현들을 지도하게 된다.
‘미술과 독서’ – 교과통합형 수업으로 문식력 향상하기
교감 선생님께서 독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고민 하셨습니다. 실제로 간단한 글도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활동 자체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삽화를 통해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 또 그림으로 표현력도 보완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교사 이주희
기본학력책임지도제에서는 중학교 학생 들을 위한 목표로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는 국어 교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문장 을 이해하기 위해 보통 짧은 글 읽기부터 긴 글 읽기로 단계별 독서 활동을 기획하는데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적절한 난이도의 텍스트를 선정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또한 독서 활동 에서는 학생들이 이해한 텍스트의 내용을 구술하거나 서술하는 활동이 후행되는데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흥미를 잃기 쉽다.
대림중학교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다. 우선 독해력과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쉽게 독서를 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그림책 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그림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고 자신의 감상을 간단한 글이나 삽화로 표현하면서 어렵지 않게 독서 과제들을 수 행하게 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 과 등교수업을 혼합하여 진행하였다. 각자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읽은 내용이 다르다 보니 평소 수업 시간에 말이 없는 아이들이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0 기본학력책임지도제에 대한 제언
처음 시작할 때는 ‘원격수업으로 기초학력 수업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 문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막상 운영해 보니 원격수업으로 수준 차이를 고려한 수업이 가능했다고 자평합니다. 진단평가 내용을 바탕으로 수준별 과제를 부 여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은 수준별 학습에 유리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의외 로 새로운 시도에 쉽게 적응하고 노력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사 김정아
생각보다 기본학력책임지도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선생님들이 많이 협조해주셔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잘 대응해 주셔서 계획했던 일정들을 잘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하게 계획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올해 교내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지다 보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내년에 는 문화체험을 위한 기회들을 제공해 주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무행정부장 김희영
기초학습, 기본학습, 두드림학교 등 명칭은 변해 왔지만 기본 학력책임지도는 계속해서 해 오던 것입니다. 다만 명칭, 시대, 정책에 따라 중요성이 강조될 때와 아닐 때가 있었던 것 같아 아쉽 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활동인 만큼 일관성있 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교감 김선미
기본학력책임지도제를 운영하고 있는 교사들은 학생들에 대한 애 정과 책임감, 소명의식 없이는 이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 그것을 당연시하는 순간 의욕과 사기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기본학력책임지도제가 교사들에게 ‘기본학력을 책임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는 순간 프로그램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모 든 사회 구성원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교사들의 자발적 애정과 책임을 존중하고 인정해 줄 때 2020년 새롭게 출발한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는 우리 아이들의 기본학력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