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I. 서론
교실 붕괴, 학교공동체 붕괴 사태는 갑작스런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문제이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문제의 핵심이 된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과 갑질 및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 교사의 교육권 침해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은 직접적으로는 학교장과 교육청, 교육부, 국가인권위원회에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법을 만들면서 교육 붕괴 가능성을 도외시한 국회, 아동학대 신고나 고발 시에 조사 목적이라며 과도하게 교사를 괴롭힌 경찰과 무리한 기소를 한 검찰,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린 법원 등 사회 총체적인 시스템에 책임이 있다. 물론 새로운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 문화에 적합한 교육활동을 하지 못한 교원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러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제대로 밝혀야 해결책 탐색이 용이할 것이다.
상당한 부분은 제도와 법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와 법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관련된 구성원들의 생각과 문화가 바뀌지 않거나 서로 배려하고 돕는 공동체 문화가 강화되지 않으면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학교공동체 와해에 영향을 미친 것은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 이외에도 최근 3년간 지속된 코로나19로 인한 공동체 문화의 해체,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고,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적 흐름,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 등의 영향도 크다.
이 글에서는 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학생 성장, 나아가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학교공동체 강화에 대해 그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II. 학교공동체의 이해
1. 학교공동체의 의미
공동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의는 다양하다. 하지만 공동체라는 것이 생물학적 인간의 생존과 사회문화적 이상 추구를 위한 활동 무대(강대기, 2001: 179), 즉 ‘생존을 위한 욕구충족과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해 아주 다른 견해를 취하고 있는 접근도 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에서는 공동체를 동조적인 협동 체계로 보지 않고 생존을 위한 희소 자원의 획득 과정에서 파생하는 이해 갈등의 현상으로 본다(강대기, 2001: 82-83). 강영혜(2003: 34)는 사람들이 교육공동체라는 개념이 교육계 갈등과 문제를 풀어 줄 만병통치약인 양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는데, 공동체라는 용어는 어떤 의미로 정립되느냐에 따라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성과 개인 단위로 분열되고 집단이기주의에 멍들고 있는 교육계의 난제에 대한 대안적 해결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교육공동체와 관련된 연구를 보면 교육공동체와 학교공동체는 때로는 유사한 개념으로, 때로는 상이한 개념으로 넘나들며 사용되고 있다. 양자를 구분하는 입장(이종재, 1999: 164)에서는 학교공동체는 교사, 학생, 행정가, 학부모를 그 구성원으로 하고, 교육공동체는 학교공동체 외곽을 이루고 있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교육 통치 구조 요소와 학부모, 언론, 사회 각계 인사 등 다양한 사회집단을 구성원으로 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학교공동체에 초점을 맞춰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학교공동체의 가능성과 한계
학교공동체는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조직 내의 갈등 완화를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인가? 학교라는 조직에서 각각의 주체들이 맡고 있는 직분과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리와 의무, 책임이 분명한 형태로 드러나는 조직에 공동체 개념을 적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억지스러운 일일 수 있다(강영혜, 2003: 43-44). 각 교육주체들 간 혹은 교육주체 내의 갈등 수준이 아주 높고, 제대로 된 학교공동체의 경험이 일천하여 짧은 시간에 역할을 재정립하고 각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이다.
학교, 특히 공립학교는 국가 기관이라는 조직적 특징으로 인해 자연적인 공동체가 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은 조직 운영 규정, 구성원 참여 등 상당한 부분에서 제약을 받고 재원은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조직의 장은 조직 구성원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기관이 정한다. 조직 구성원(교직원, 학생과 학부모) 역시 학교 외부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그 한계를 이해하며 학교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조직 구성원의 경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은 상호존중과 신뢰를 쌓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학생을 대하는 마음에서,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상호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강영혜, 2003: 53). 학교공동체 형성을 통해 학교 조직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갈등을 완화하고, 구성원들이 행복감 속에서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시도는 느긋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학교공동체의 필수 성공 조건은 교육의 질과 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구성원들의 책임 의식, 구성원들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상호존중, 교육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 그리고 자치 체제, 학교장의 민주적 리더십 발휘 등이다.
이러한 조건 마련을 위해 국가와 교육청 차원에서는 자치권 강화에 필요한 제도 정비와 행·재정적 지원, 문제 발생 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 구성원 대상 연수와 컨설팅 제공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학교 차원에서는 학교 상황에 맞는 시스템 구축, 구성원들의 공동체 역량 및 문화 강화 및 적극적인 소통 시도, 갈등 발생 시 이를 관리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 등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학교공동체는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이다.
3. 학교공동체의 지향점: 수정 공동체주의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이유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개인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 조직이 학교공동체로 거듭나면 그 안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경영자, 직원 등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 받고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노력을 칭찬하고 나아가 서로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함으로써 학교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기가 용이해진다.
과거의 학교공동체는 학교 전체의 이익과 질서, 집단의식을 강조한 획일주의와 권위주의가 두드러진 획일적 공동체 성향이 강했다. 공동체의 특성 또한 학교장에 의해 좌우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문화에서는 개별성을 무시하는 획일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학교 구성원의 특성에도 맞지 않다. 학교공동체에서의 단체성 강조는 획일화로 이어지고, 자발성 유도에 한계를 보이며, 강제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학교 조직에서 단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과 ‘연대성(공동체성)’을 중시하는 공동체 주의를 따르는 것이고,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를 따르는 것이다(손철성, 2007). 학교 조직에서의 개별성 존중은 결국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권용혁, 2014).
학교공동체는 혈연·지연 등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적 공동체(게마인샤프트, Gemeinschaft)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 공동체(게젤샤프트, Gesellschaft)에 가깝다.이익 공동체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를 방치하면 이익공동체는 와해된다. 학교공동체가 목적을 달성하고 구성원도 조직 안에서 행복하려면 극단적인 이익 집단의 형태가 아니라 최대한 자연적 공동체의 특성을 띄도록 재구조화하고,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방법은 이익공동체로서의 특성을 살리되, 학교가 결정권을 가진 제반 규정, 조직 구성 등에 대해서는 자연적 공동체처럼 모두가 참여하여 결정하는 제도와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구성원들의 평등성과 개별성을 보장하면서도 공동체적 성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 중심적인 ‘차가운 개인주의’가 아니라 학교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정체성도 유지하고 있는 ‘따스한 개인주의’가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권용혁, 2014: 120).
소규모 학교일 경우에는 중요 사안에 대해 전체 구성원이 참여하고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두어 학교 경영의 핵심 사안을 심의하는 것은 학교공동체에 따스한 개인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교육청은 교장 공모제, 학교구성원별 조직(학부모회, 학생회, 교직원회)을 만들고 이 조직을 통해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구성원들의 조직 선택권을 조금이라도 보장하기 위해 교사 배치 과정에서 교사들의 희망원과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성천(2024)은 학교공동체 모델이 교육부와 교육청, 혹은 학교장으로부터의 자유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사적 이해관계, 욕망, 이기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 공적 자아와 공공의 가치 지향, 협력을 전제로 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따스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학교공동체는 필립 코틀러(Kotler, 2015: 215)가 제안한 ‘수정 공동체주의’와 유사하다. 수정된 공동체주의는 ‘독재적 권력구조와 계층화,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등의 결함을 가진 전통적인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참여, 대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방임적 개인주의나 독재적인 집산주의 사회(集産主義 collectivism)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 사회적 질서와 책임이 균형 잡힌 사회이다. 집산주의 사회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성취에서 자존감을 얻는 사회로 개인의 권리가 일부 침해되더라도 사회적 조화를 중시한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타인에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교사회, 이슬람, 중동 국가들이 일부 여기에 포함된다(Kotler, 2015: 213). 학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공동체는 전통적인 공동체, 집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따스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수정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III. 학교공동체의 갈등 관리 방안
공동체가 공통의 목표 달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갈등 발생을 줄이며, 이미 발생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갖출 때 공동체의 구성원은 윈윈하게 될 것이다.
[표 1]은 학교공동체 내의 갈등 요인을 인간의 한계에 기인하는 근본 요인, 현대 사회와 학교 및 구성원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 요인, 그리고 학교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기인하는 학교공동체의 특성이라는 세 가지로 나눠 제시하고 있다. 근본 요인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공동체의 한계’ 등의 둘로 나누었다. 상황 요인은 ‘집단 간/집단 내의 충돌과 불신’ 및 ‘현대 사회의 일반적 변화 추세 유입’ 등의 둘로 나누었다. 학교공동체의 특성은 ‘전문적 관료조직’ 및 ‘느슨한 조직’ 둘로 나누었다. 각각의 요인을 다시 구체적으로 나누고, 요인별로 간단한 예시를 제시하였다. 이는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갈등의 모습과 요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에 해당한다.
이상의 갈등요인을 바탕으로 학교공동체 구성원 간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교원과 학생 사이
최근에 발생한 문제의 대부분은 급변하는 상황 변화에 대한 부적응, 제도 미비,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문화 형성 시간 부족 등 상황 요인에 의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법과 제도 변화에 따른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 의식 향상 및 과도한 권한 행사,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교권침해에 대한 대응 시스템 부재 등의 상황 요인이다.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이 문제가 어느 정도는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사와 학생의 교육권과 학습권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새로운 법과 제도를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권 침해 학생을 분리하고자 할 경우 이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면서 생활지도를 동시에 해줄 프로그램, 이를 운영할 인력과 공간, 소요되는 예산 등이 마련되어야만 부작용이 아닌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2. 교원과 학부모 사이
학생 교육은 학교(교사)와 지역사회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교육의 성패는 학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학부모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학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의 성과도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가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되어 협력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제기와 그로 인한 교사의 과도한 스트레스 문제도 적절한 절차와 문화, 학부모 민원 해결 시스템 부재 등 학교공동체 작동 오류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최근에 제시된 해결책을 통해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문제는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소통이 어려워지면 교육목적 달성의 어려움, 학부모의 불만 상승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유로운 소통망이 갖춰지고, 왕성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공동체의 소통망은 우리 몸의 신경계와 비슷하다. 물론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 즉, 갈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완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만일 신경계 작동 오류로 자꾸 통증이 발생한다고 하여 신경계를 절단해 버린다면 해당 부분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교 간의 소통 오류를 탓하며 소통망 자체를 폐쇄하거나, 소통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면 교사와 학부모 공동체는 새로운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문제는 거기에 맞춰 해결책을 모색하되, 일반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소통망은 더욱 세밀하게 설계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소통 창구 재정비를 통한 교사·학부모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만들어져야 할 제도는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 대한 국가, 교육청, 학교 차원의 세밀한 제도와 절차, 그리고 필요한 인력과 예산 마련 등의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다. 악성 민원 학부모 문제가 완화된다면 교사들도 학부모와의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사·학부모 공동체 활성화의 주 책임자를 교사 개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교사들이 제기한 또 하나의 문제는 교장이 교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성 민원 제기 학부모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온 일본의 2013년 문부과학성 조사에서 학교장의 고충 1위가 ‘학부모 대응’이었을 정도로 학교장들도 학부모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의 학부모 민원 해법 전문가(오노다 마사토시, 오사카대 명예교수)의 제안(최진주, 2023)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한 제안의 요지는 학부모들을 괴물 취급하지 말 것, 민원의 유형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악성 민원인지, 학부모의 요구사항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다. 지역교육청이 변호사, 의사, 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교 문제 해결 지원팀‘을 만들어 학부모와 갈등하는 교사와 학교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오노다 마사토시는 학부모의 요구를 1) 정당한 요구, 2) 학교의 업무 영역은 아니지만 대응 가능한 불만성 요구, 3) 무리한 요구 즉 악성 민원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에 적절히 대응해야 함을 강조한다. 가령, 학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학생 특성 배려는 정당한 요구에 속한다. 학생이 학습지체 현상을 보이니 수업 진행 시 배려해 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검사를 통해 확인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해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요청 사항이 정당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경우에는 학교 차원에서 먼저 협의를 하고, 필요 시에는 학부모와 관련 전문가가 참여한 확대 협의회를 개최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당한 요구 사례가 쌓이고, 범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결정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너무 번거로워 보이지만, 큰 흐름에 비춰보면 이러한 과정을 밟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 허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학교 학생들이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많이 노는데 위험하니 못 하게 해 달라’는 요구는 2)에 해당한다. 학교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졸업 앨범에서 우리 아이 사진을 한가운데 배치해 달라’는 것은 3)에 해당하니 사진 배치 원칙을 설명 해주되, 요구는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깨면 교사·학부모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부모들이 ‘가정 교사’ 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자녀교육법, 소통, 상담, 디지털 기기 활용 역량 등)을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연수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사·학부모 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한 학부모의 책임과 의무 및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연수 실시, 대면 회의 활성화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교사·학부모 공동체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 결국 학생 성장을 위한 교사 노력의 효과는 반감되고, 교사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결국 학부모와의 관계에 허비하게 될 것이다. 교사·학부모 공동체는 그 특성상 교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학교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학부모와의 협력은 필수 조건이다.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교사는 가능하면 많은 학부모들이 교사·학부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3. 교원과 행정 지원 인력 사이
상황요인에 의한 갈등의 다른 예로는 학교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행정실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 인력과 교원 사이의 갈등을 들 수 있다. 행정실 직원 및 다양한 지원 인력의 노조 결성, 높아진 권리 의식에 부합하는 중재 시스템과 업무분장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다 보니 학교 차원에서의 갈등이 더욱 커지고, 이는 교육활동 저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학교 단위에 떠넘기면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교육청 차원에서, 만일 교육청도 해결이 어렵다면 국가 차원에서 합의된 안을 만들고,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만 학교공동체의 갈등이 줄어들고 학교의 생산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4. 교사와 학교장(감) 사이
교사와 학교장(감) 사이의 갈등 또한 법 제도 변화와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제도 미비, 새로운 문화 형성 지체 등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면 1997년에 초·중등교육법을 신설할 때 한편으로는 교장의 교사에 대한 지도권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의 교육권을 강화했는데, 이는 결국 학교장과 교사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갈등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에 대한 명확한 유권 해석을 내리고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학교장이 교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지도·감독권의 범위, 교사가 학생을 교육할 때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동 규정에 대한 유권 해석이 내려지고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더라도 갈등 완화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학교 안에서 관습으로 굳어진 교장의 감독권 범위 및 행사 방식, 교장과 교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교장의 오랜 인식 등은 쉽게 변하기 어렵다. 법이 현실 세계의 복잡한 상황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다. 그리고 법이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새로운 관습으로 굳어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에는 관련된 갈등이 지속될 것이므로 적합한 새로운 문화 형성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비롯한 장기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5. 교사와 교사 사이
교사와 교사 사이의 갈등은 교내 인사 관련 문제, 신구 세대 문화 차이, 전반적인 개인주의 문화 강화, 워라밸 중시 문화의 형성 등 다양한 상황 요인에 기인한다. 일부 학교의 경우 보직, 학년 배정 등과 관련된 교내 인사 관련 갈등으로 인해 교사공동체가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 문화의 강화는 타인과 조직 행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결과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친목회에 참가하지 않는 구성원이 생겨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면서 동학년, 동교과 교사들 사이의 모임도 크게 줄어들고 있고, 심지어 공식 회의마저 힘들어져 가고 있다. 워라밸 강화 문화에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역할을 하려는 문화 확산 등이 포함된다. 여러 이유로 교사 사이의 소통, 협력이 약화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게 된다. 군중 속의 고독이 교사 사이에 점차 퍼져가고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교사공동체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7년 초 대구 대봉초등학교에 강연을 갔더니 교장선생님께서 그 학교의 ‘꽃방석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전입교사에게 선호 업무와 학년을 양보하는 제도이다. 그러면 전입 해에 선호 업무를 양보 받았던 교사들이 1년 후에 다시 전입교사들에게 선호 업무와 학년을 양보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업무 분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때 신규교사에 대한 배려도 신구 세대 갈등 완화 및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배려를 받은 신규교사는 경력이 쌓이면 그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신규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맡아 하고, 선배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적극 돕는 그러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사람 내음이 나는 살만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IV. 결론
서이초 사태를 계기로 제도 개선과 함께 학교 문화를 포함한 학교공동체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구성원은 상위 기관에 법과 제도 변화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상황 변화에 부합하는 구성원 간의 배려와 협력 문화를 만들고 이에 필요한 규정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 조직에 적합한 학교공동체가 강화된다면, 학교 구성원들은 행복한 가운데 학생 성장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