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근원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이 글은 서근원(2012, 강현출판사)의 「해석주의 사회학 탐구」의
제5장 “교수부진 학교” 가운데 일부를 수정하여 전재한 것이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 학교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학습부진 현상을 학생의 전반적인 삶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히 학업성취도 검사 결과만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습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단순히 학업성취도 검사 결과를 높이는 데만 한정 지어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학생의 전반적인 삶의 맥락을 고려하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학습을 지향하도록 그들의 삶의 조건과 인식 체계와 언어 등을 구조적으로 전환하고,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학습부진의유형에따라서다르게접근해야한다. 무엇보다도 학습이 부진하지 않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그러나 현재 학교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학교에서 학습부진 학생에게 의미있게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은 학습이 우수한 학생에 비해서 훨씬 적다. 어느 면에서 보면, 학교의 교육은 의도 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습부진 학생을 양산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점은 학교의 일상적인 수업의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학습부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충수업을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그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학습부진 학생 양산의 토대: 학교의 체제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는 공식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학습부진 학생을 양산한다. 학교가 학습부진 학생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의 체제가 학생을 중심으로 운영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을 비롯하여 학교의 교육과정에 따라서 운영되고, 교육청 등과 같은 상급 기관의 감독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학교는학생의학습보다는계획에따라서교육과정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상급 기관에 실적을 보여주는 것을 우선시 한다. 그리고 교사들 역시 그런 학교 체제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학습부진 학생을 바라보고 대한다. 그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교육과정의 기계적 운영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이라면 특별히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만 6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만 15세가 되면 중학교를 졸업한다. 그 기간 동안 학교는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의 규정에 따라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의 내용을 해마다 190여 일에 걸쳐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학교는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 교육과정, 과목별 연간 진도 계획, 월간 수업 계획, 주간 수업 계획, 차시 수업 계획 등을 편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서 수업을 운영한다.
학교가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다수의 학생들을단기간에효율적으로학습하도록하기위해서다. 학교가 학생의 학습 내용, 학습 방법, 학습 시기 등과 관련된 계획을 미리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다수의 학생들을 일시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학습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하나의 공간에 많은 학생들을 일시에 수용해서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시간 동안 동일한 방법으로 가르친다.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와 교사의 계획에 따라서 수업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학교가 지정한 날짜에 입학하고, 학교가 지정한 시각에 등교하고, 학교가 지정한 시간 동안 학습하고, 학교가 지정한 내용을 배우고, 교사가 설명하는 하나의 내용을 듣고, 학교가 지정한 시간 동안 쉬고, 학교가 허락하는 시각에 하교하고, 학교가 인정하는 시기에 진급하고, 학교가 지정한 날짜에 졸업한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학교가 계획한 내용을 학습했을 것으로 인정된다.
학교가 이처럼 사전에 계획을 수립한 상태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모든 학생이 학습했다고 믿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학교의 계획이 기대하는 학습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타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와 교육청 등은 전문가 등의 연구를 통해서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 교과용 도서, 교육 방법 등을 엄밀하게 검토하여 설정한다. 다른 하나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의 교육 계획에 따라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적절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될 때 학교에서 학생들은 학교가 계획한 내용을 적절히 학습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는 이 두 가지 전제가 갖추어져 있다고 간주하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운영한다.
2) 학생의 다양성
그런데, 학교의 현실은 앞의 두 가지 전제를 모두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특히 학생의 측면에서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일 학교급 동일 학년에 재학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학생의 지적인 능력, 학습에 대한 관심, 가정의 형편 등이 서로 다르다.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어떤 이유에서건 학교가 계획한 내용을 학습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동일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선천적으로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거나, 현재의 학습에 필요한 이전 학습이 부족하거나, 학교 학습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학습을 비롯하여 모든 생활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지원이나 관심이 부족하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은 학교가 미리 세워 놓은 계획에 따라서 학습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학습부진 학생이 될 개연성이 크다. 학교는 애초부터 이런 학생을 염두에 두고 교육 계획을 수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학교는 다수의 일반적인 학생을 상정한 채로 교육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학생들은 학습부진 학생이 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제7차 교육과정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준별 교육과정 또는 수준별 수업을 도입했지만, 수준별 수업이 실효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실효성 있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평가는 다른 학생과 동일하게 함으로써 여전히 이러한 학생들은 학습부진 학생으로 규정되고 머무르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학교에서 학습부진
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수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은 그 점에 대한 지적이다.
면담자 : 거북이 반 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김시연 : 아침 자습 시간에 1시간 하고 1시간은 방과 후에 해요. 1주일에 2시간 정도해요, 그런데 맹점이 평가야. 어차피 수준별 수업을 들어도 나중에 평가는 다 똑같이 하니깐 어려워지죠. 매일 기초만 배우는데 평가는 어려우니깐. 전 정말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수준, 정말 쉬운 개념과 문제를 풀어줘요. 그래서 그건 잘 해도 다시 평가로 돌아가면 소용이 없어요.
(대전 신당중학교 교사)
「학교시험을 보면 그게 아니잖아요. 그니까 학교시험은 당연히 찍는 것이고 ‘그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라고 보면 되죠. 평가까지도 그러니까 어렵죠.」
(김정이 교사, 전남 수황중학교)
그렇지만 우리 학교에는 엄연히 위의 학생들과 같이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지나친 점을 지닌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정이 해체된 학생들이 많아지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많아짐으로써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학습부진의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가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그 학생들은 실지로 학습부진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에는 일부 학교에서 학교혁신 사업의 일환으로서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를 일체화하고, 과정을 평가하고, 학생 활동 중심 수업 등의 시도를 하지만, 그런 시도들 역시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과 일부 학생들의 부족한 조건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관한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일부 학생의 처지에서 보면 여전히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도록 요구하는 셈이다.
3) 학교의 성과와 업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교사들로 하여금 학습부진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전념하도록 지원하지 않는다. 물론 교육청의 예산을 받아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데 사용하고,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기 위하여 특별보충수업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학교는 오히려 교사가 학습부진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의 학습지도 마저도 소홀히 하도록 만든다.
학교장이 학교를 경영 하면서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학교의 성과다. 학교의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의 학업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의 각종 특색사업이다. 학교장은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대외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자 한다.
학교가 학업성적과 관련해서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수한 학생이 많아서 그들이 유수의 상급학교에 많이 진학하거나, 학교의 평균이 높아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많이 육성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함께 학습부진 학생에게도 관심을 갖지만 그것은 학생 개인을 위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전체 평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서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가 학습부진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아래의 곽형석 교사의 말이 그 점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대체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은 전체 평균이 나아지거나 우수한 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등입니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부진 학생을 지도함에 학교에서 느낄 수 있는 성과가 거의 없는 편이지요. 보람의 여부도 그에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국어과의 예를 들어도 부진 학생에게 필요한 언어 이해력을 올려 주었다 해도, 실제 성적이나 평균에 크게 도움은 안 되니 사실 성과는 거의 없는 거지요.」
(곽형석 교사, 경기 양현여자중학교)
위에서 곽형석 교사는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일도 성적이나 평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성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성과가 될 수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로서 드러날 수 없는 것이라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이러한 성과 중심의 인식은 학생들 사이에도 동일하게 반영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친구의 학습부진을 염려하기 보다는 학교나 학급의 평균을 먼저 염려한다. 친구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기 보다는 학급의 평균을 위해서 공부하도록 자극한다. 아래가 그 예이다.
면담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 했던 적은 언제야?
채수혁: 애들이 반 평균 좀 깎아 먹지 말라고 구박 했을 때 3일 열심히 한 적이 있는데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애들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대전 신당중학교 3학년)
이와 함께 학교는 또 다른 종류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다양한 특색사업을 전개한다. 그것은 시범학교 운영일 수도 있고, 연구학교 운영일 수도 있고, 학교의 고유한 교육중점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건 그것은 학교의 일상적인 교육활동과는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특색사업들은 대부분 학교의 교사들이 감당한다. 교사들은 그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별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교사들에게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 않은 이상 다른 어디선가 그 시간을 나누어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이 가장 많이 쪼개 쓸 수 있는 시간이 수업과 관련된 시간이다.
교사들은 수업 준비에 필요한 시간, 심지어는 수업 시간마저 쪼개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한다. 그로 인해서 교사들은 학습부진 학생을 위한 수업을 충실하게 할 수 없고, 일반 수업에서도 학습부진 학생을 고려하여 수업하는 일이 더욱 불가능해진다. 아래의 안상천 교사의 말은 그 점을 보여준다.
「올해 학교 일이 더 많아졌어요. 학교 일이 쉬지 않고 왔거든요. (부진 학생을 지도)할 틈이 없었어요. 퇴근도 개인적으로 늦게 하고. 다른 일도 있고 하니까. 제가 칼퇴근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더라구요. 저를 개발하기 위한 연수를 가더라도 아이들을 남겨야 하는데, 3시에 출장을 가면 아이들을 남길 수 없는 상태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작년에도 대단히 많이 힘들었거든요. 제가 어딘가를 가서 다른 일을 해야 하면 아이들을 남길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꾸준히 해야 하는데 자꾸 일이 생기니까. 그게 좀 많이 힘들죠.」
(안상천 교사, 서울임하초등학교)
위에서 안상천 교사는 학교의 바쁜 업무로 인해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의 업무 때문에 일상적인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그 사례다.
「선생님의 가장 주된 업무가 학습지도인데 다른 업무가 먼저일 때가 있어요. 수업이 있는데 회의가 있으니까 교무실로 내려 오세요 이런 거. 개인적인 용무로 수업 시간에 부르실 때. 교사들은 가끔 있는데, 부장 선생님들은 자주 있어요. 학부모들은 우리 애가 부장 담임이다 그러면 ‘올해 망했다’라고 생각할 정도에요. 잡다한 업무 때문에 애들을 버려두고 교무실에 가야 하는 일이 제일 … ….」
(오화순 교사, 서울이후초등학교)
즉, 학교의 현실은 교사들이 계획한 중간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일마저도 쉽지 않으며, 이런 현실 속에서 교사들이 일상의 수업을 통해서 부진 학생을 고려하여 수업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농부가콩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편, 교사들은 이러한 학교 현실 속에서 일상 수업을 준비하거나 자신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업무를 기피 하기도 한다.
「업무 지정도 문제입니다. 연구부장 직책도 바쁜데 업무상 과중하게 되는 겁니다. 교과 부진아도 마찬가지인데, 학년에서 솔직히 부진아 지도를 희망하는 교사가 없구요. 타의에 의해 지도를 맡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방과 후 지도를 하기에는 다른 업무 처리 시간을 쪼개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지숙 교사, 인천 청덕초등학교)
그리고 교사들 가운데 일부는 학습부진 학생에게 관심을 갖고 지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매일 네 시간 또는 다섯 시간 동안 수업을 해야 하고, 거기에 덧붙여서 학교의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시간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소진되어서 학습부진 학생을 충실하게 지도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다.
「저희가 하루에 수업을 한 4시간, 5시간씩 하거든요. 그러면 오후에 걔네들은 따로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수업을 하게 되면 선생님들도 지쳐요. 왜냐면 업무도 있고 담임도 있고 그러니까 그 애들 지도할 때쯤 되면 좀 많이 힘들죠. 걔네들 지도할 때는 다른 학생들보다 인내심도 많이 필요하고요, 다른 학생들 보다.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는 … 너무 힘들고 그러니까 한 학기 20시간밖에 설정을 안 해요. 그니까 실은 애들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수학이 한두 시간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김정이 교사, 전남 수황중학교)
요컨대, 학교가 외적인 성과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데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학교 속에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일은 또 하나의 성과일 뿐이다. 즉, 학생은 학교 또는 학교 관리자의 성과를 알리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이러한 학교 속에서 학습부진 학생의 부진이 누적되고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4) 4순위로서의 학습부진 학생
이러한 학교 속에서 학생들, 특히 학습부진 학생들은 교사의 눈에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교사들이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자신이 담당한 업무와 수업 계획이다. 학교에서 교사는 주어진 업무를 기한 내에 처리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 한다. 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2순위로 미뤄두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교사의 말이다.
「네. 시간이 없어요. … 가르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매일 잡무 처리하다가 시간 다가요. 너무 많아요 그런 게. 그런 게 항상 스트레스죠. 수업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업을 하는데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매일 보고하고, 보고도 적당히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최걸우 교사, 서울 석청여자중학교)
그리고 교사가 설령 수업을 한다고 해도 교사가 먼저 고려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이 아니라 계획대로 진도를 나가는 것이다. 교사는 수업을 할 때 학생이 교과 내용을 학습 했는지 보다 계획한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학생보다 계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교사의 진술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야 되는 건지. 사실 그렇지 않으면 계획한 교육과정을 나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곱셈, 나눗셈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수학이 곱셈, 나눗셈만 하는 게 아니니까.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곱셈, 나눗셈이 필요한 건데.」
(조지연 교사, 서울임하초등학교)
또한 수업의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을 고려해서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학습부진 학생은 주요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수업에서 교사는 다수의 학생들이 학습한것으로확인되면학습부진학생들이이해하지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과정으로 수업을 이행한다. 결국 학교, 그리고 학교의 수업에서 학습부진 학생은 교사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되는 대상인 셈이다.
5) 아이에 대한 무지
이런 학교의 상황 속에서 교사가 아이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각각의 아이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면담에 참여한 교사들은 대체로 아이들에 관하여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어느 교사는 자신이 아이에 관하여 잘 모르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면담자: 그럼 그 학생은 지금 어디에 사나요?
박윤식: 모르겠습니다. 아파트는,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면담자: 아니요.
박윤식: 네. 수국이요, 음-. 선택적 주의집중이라는 건,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네요. 일반 잡무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기억하고 있습니까. 어, 선생님도 교육학을 전공하고 계시니까 선택적 주의집중이라는 말을 알아들으셨을 겁니다.
(광주 안전초등학교 교사)
위 말을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일반 잡무가 많은데다가 성과와 업무를 우선시하는 학교 현실에서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즉, 학교가 교사로 하여금 학생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기회와 이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 점에서 위 말은 학교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교사가 학생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생의 가정 환경이나 몇 가지 성격적 특성에 관하여 모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그 조건 속에서 어떤 삶을 지향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일상과 인식체계와 언어세계를 어떻게 구성해 가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아이는 자신과 다른 언어세계와인지체계를 소유함으로써 교사가 하는 말이 아이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교사는 수업의 과정에서 아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할 수밖에 없고, 교사가 아무리 애써 가르쳐도 아이는 항상 학습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점을 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을 많이 읽는 거 보면 국어는 안 떨어질 것 같은데 요점을 잘 파악을 못해요. 읽기는 읽지만 핵심을 모르니까 제가 질문을 했을 때 그거에 대한 대답이 엉뚱한 것이 나오는 거에요.」
(안상천 교사, 서울 임하초등학교)
위에서 학생이 교사의 질문에 대해서 엉뚱한 대답을 했다는 것은, 학생이 적어도 그 질문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를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 생각에 비추어서 대답을 찾아 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교사가 할 일은 아이가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된 과정이나 이유를 찾아서 그것을 수정하거나 교정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내면의 사고 세계를 알아야 한다. 교사는 아이가 자신이 하는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알아야 한다. 아이가 어떤 인식체계에 의해서 교사가 하는 말을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반응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교사는 아이 앞에서 독백할 수밖에 없고, 아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는 그 말을 “이상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의 반응을 엉뚱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면담자: 어떤 과목을 싫어해?
채수혁: 도덕이요, 졸려서 싫어요.
면담자: 수업을 어떻게 해주시는데?
채수혁: 이상한 말씀을 해주시긴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저만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대전 신당중학교, 2학년)
2. 학습부진 학생 양산의 과정: 교실의 수업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 교사들은 위와 같은 학교의 체제 속에서 수업을 한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수업을 할 때 학교의 체제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수용하지 않을수 없다. 그로 인해서 학교의 체제가 요구하는 조건을 먼저 고려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학습부진 학생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수업하느라고 학습부진 학생을 수업의 계획에서 제외하거나, 학습부진 학생이 학습하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교사가 수업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학습부진 학생을 숨죽이거나, 학습부진 학생의 학습 부진을 구제하기 위한 보충 수업에 의해서 학습 부진을 낙인 찍는 일 등이 그 예다.
1) 제외하기
일상의 교실 수업에서 교사는 자신의 수업 계획, 또는 진도에 따라서 수업을 전개한다. 교사들은 교실에 다양한 수준의 학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특히 자신의 계획대로 학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생들이 교실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미 사전에 계획한 진도에 따라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그 진도를 따라서 학습할 가능성이 없는 학생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교사의 수업 계획 속에서 제외한다. 따라서 수업에서 학습부진 학생은 처음부터 교사의 교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두고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중간 수준에 맞추어서” 수업을 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달리 하면 ‘학습부진 학생은 제외하고’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교사들의 진술이다.
「그러니까 그게 구성원들이 다양하다 보니까, 참. 이제
일제식 수업할 때는 그런 학생들은 사실은 배제하고 신경을 별로 안 쓰죠. 왜냐하면 그 아이들 신경 쓰다 보면
수업이 막히고 중단되고 매끄럽지 못하게 되어 원활하게 흘러가지 못하게 되면서 수업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짜증을 내요.」
(박인환 교사, 전남 수황중학교)
면담자: 수업을 일반적으로 하실 때는 포커스를 어디에
두세요? 아이들 수준이 다른데.
백예지: 가운데에 두죠. 못하는 애들 기준으로 할 수
는 없으니까.
면담자: 그럼 어차피 마음 한 편은 포기를 하고 가셔야겠네요. 몇 명은.
백예지: 숙제를 내주는 것도 그나마 옆에 있는 애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겠지 하고 내주는 거지 수업 시간에
걔네들이 다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요.
(서울 원두중학교 교사)
위의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들은 교실에 다양한 수준과 특성을 가진 아이들, 특히 학습부진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고려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하여 수업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단지 다른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방해하지만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교실에서 학습부진 학생들은 유령과 같은 존재로서 머무르게 된다.
2) 포기하기
학습부진 학생들은 수업의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수업을 마친 다음에도 교사의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교사는 수업을 마친 다음에도 학습부진 학생이 교과의 내용을 학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따로 고려하여 지도하지 않는다. 다음 시간에 가르치도록 계획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는 학습부진 학생을 포기하고 “중간수준” 학생을 대상으로 다음 시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이 점을 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수학은 일단 쉬운 개념은 반복해서 설명하는데, 마지막까지 이해가 안 되는 아이들은 포기하고 넘어가야 하더라구요. 벌써 이해한 애들이 있으니까. 일단은 중간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해요. 근데 이해가 안 되니까 떨어지더라구요.」
(오화순 교사, 서울 이후중학교)
이런 수업 속에서 학습부진 학생은 항상 포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는데, 계획한 일정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뒤쳐지는 아이를 버려두고 길을 재촉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의 수업 속에서는 이런 일이 매 시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자신이 아이를 버려두고 길을 떠나는 엄마와 같다고 느끼기보다는,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아이들이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숨죽이기
물론 교사에 따라서 또는 경우에 따라서 수업 시간에 학습부진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학습과 관련이 없는 주변적인 것이거나, 학습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해도 본격적인 학습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사들은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하게 되고, 학습부진 학생은 자신도 교사의 관심 범위 안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동시에 학습부진 학생이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미연에 스스로 방지하도록 한다. 그 점을 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별히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대로 놔두고, 그 다음에 일제식 수업이 아니라 모둠이라 해서 조별로 수업할 때는 그런 학생, 모둠 구성원 중에서 약간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 또는 학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학생에게 과제를 부여해 주죠. 과제물을 걷어오게 한다든가 또는 숙제를 검사하게 한다든가. 그럼으로 인해서 자기가 그 구성원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겠지요. 그럴 때는 쪼끔씩 활동을 하니깐 그럴 수 있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본인에게 뭔가 분석하게 하는 것이나 쓰게 하는 것은 안 되니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활동을 조금만 시킵니다.」
(박인환 교사, 전남 수황중학교)
위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수업의 과정에서 학습부진학생들은중요한학습의과정에서는제외되고, 과제물을 걷거나 숙제를 검사하는 일 등과 같은 주변적인 활동을 할 때만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학생의 학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며, 단지 교사의 입장에서 수업을 원만하게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활동일 뿐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교사는 학생이 한편으로는 자신이 교사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학습부진 학생이 수업에서 제외되고 포기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는 일탈이나 저항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교사의 계획대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 낙인찍기
이렇게 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것이다. 학생의 학습부진이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데는 일반학생들의 학습에 필요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학기당 20시간, 즉 한 학기 동안 주 1회 1시간씩의 학습을 통해서 읽기, 쓰기, 셈하기의 기초 능력 또는 특정 교과의 기초적인 교과 내용을 학습 하기를 기대하기는무리다. 거기에다가그러한기초적인 내용을 학습하게 됨으로써 더 수준 높은 내용을 학습하고 있는 다른 학생과 같은 수준의 내용을 학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아래의 백예지 교사의 말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백예지: 사실 저런 아이들 지도 할 때는 매일 지도해야 겨우 겨우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일 주일에 한 번이면 정말 힘들잖아요.
면담자: 몇 시간 정도씩이요?
백예지: 저희가 일 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정도거든요. 더 많이 부족하죠.
(서울 원두중학교 교사)
이와 함께, 그나마 이루어지는 부진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수업 역시 충실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는 실제로 보충지도가 필요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학습부진 학생들 중에 일부 학생만 선정해서 지도하고, 선정된 학생들마저 일부만 수업에 참석한다. 아래의 말은 그 점을 보여준다.
면담자: 가르치실 때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뭔가요?
백예지: 출석이요. ··· 안 와요. 부끄러워하는 것도 있고요. 부진아반에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애들도 있고요. 그리고 그런 것을 챙겨서 하는 애들이었으면 아마 성적이 좋았겠죠. 워낙 챙기지 못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워낙 순수하게 그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가는 애도 있고요. 하기 싫으니까 그냥 가는 애들도 있고요.
면담자: 그런 애들 많아요?
백예지: 많죠. 많이는 지도를 못하니까 필요한 애들 다 하면 한 50명 정도 되는데 그렇게는 못하고 보통 10명에서 15명 사이에서 뽑거든요. 그 중에 반 정도는 안 나오구요. 오늘 안 오면 가만 안 두겠다 하죠. 협박하다시피 해서.
(서울 원두중학교 교사)
또한 그 수업마저도 학생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충지도는 많은 경우에 문제지를 풀게 하거나 영어 단어나 문장 외우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시간마저도 교사가 학교의 다른 일로 바쁘면 학생들에게 맡겨두고 자리를 뜨기도 한다.
「애들을 수업이 끝나고 공부를 시키려고 해도 잡무 및 회의가 자꾸 있어서요 애들을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고 지도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학습지를 풀고 책상 위에 놓고 가라고 하는 것 밖에 없어요.」
(오순지 교사, 대전 안윤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워낙에 바쁘시다보니깐 그게 안되고, 하더라도 잠시 학습지 위주로 이걸 해라 이렇게 말하지, 수업시간 같이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1:1로 하기는 힘들더라구요.」
(고성미 교사, 광주 안전초등학교)
학습부진 학생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학습부진의 늪으로 빠져들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학습부진 학생을 구제하기 위한 보충 수업마저도학생의학습부진을구제하지못하고오히려학습부진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학습부진 학생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든다. 아래 교사의 말에서 “만났던 애들을 거의 계속 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면담자: 그런데 이것을 하다가 성과가 나거나 업그레이드가 된 친구들이 있나요?
백예지: 잘 없는데. 만났던 애들을 거의 계속 보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일 주일에 한 번 뿐이잖아요. 가르치는 게 시험이랑 직결되는 것을 가르칠 수 없으니까. 그 많은 시험 범위에서 아주 기초적인 것을 하는 거니까 시험 문제에서 이대로 보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제가 시험 문제를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
(서울 원두중학교, 교사)
이처럼 학습부진 학생을 구제하기 위한 보충수업은 실제에 있어서는 학습부진 학생의 부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결과적으로는 부진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러한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상급학년에 진학하게 되고, 중학교에 이르러서는 학습부진 학생으로 고착되게 된다.
요컨대, 학습부진 학생은 학교의 수업을 통해서 학습부진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습부진이심화되고학습부진학생으로낙인이찍히게되는 것이다. 결국, 학교는 한편으로는 인재를 양성 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동시에 학습부진 학생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