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8 겨울호 (233호)

화해로 나아가는 평화와 공존의 통일교육

송두록 남북교육개발원 사무국장

지난 평창올림픽 때 일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발표를 접한 젊은이들의 반응이 너무 싸늘해서 정부가 크게 놀랐다. 이로 인해 단일팀 구성은 여자 아이스 하키팀에 국한된다는 주무 부처 장관의 기자회견이 잇따랐고, 대통령이 진천의 올림픽 선수촌을 방문해서 격려하고 직접 위무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당시 북한이 수시로 미사일을 쏘면서 핵실험을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온 국민이 열광할 것으로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관련 연구기관, 단체, 언론사 등에서 2030세대의 통일의식에 대한 다양한 워크숍과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통일문제보다 출전 엔트리에 따른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권리 박탈 문제를 좀 더 중시했던 세대적 특성이 있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기존의 통일교육이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방향으로 논의의 틀을 형성해 나갔다. 지금까지의 통일교육은 전문가들의 지식을 텍스트 중심으로 전달하는 주입교육이었다는 것이 주로 지적되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이전에 안보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북한을 위협적인 적으로만 보는 견해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시각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요즘 떠오르는 ‘평화·통일교육’은 2000년대 이전의 반공교육 패러다임, 2000년대 들어서의 통일·안보교육 패러다임에 이어 최근 새로운 통일교육 패러다임으로 강조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검증된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현장에서는 평화·통일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이는 지도 기관인 통일부나 교육부 그리고 각 시도 교육청 담당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개략적 접근을 통해 그 목표와 내용, 교수 방향과 방법 등에 대해 윤곽을 그려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 통일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통일교육의 주요 내용인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 차원에서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 주된 기조였다. 북한과 남한의 정치와 경제 체제의 차이점을 상기시키고 그 특성을 이해하며, 나아가 분단 역사와 남북한의 통일 방안들을 분석하고 분석내용을 설명하는 식이었다.

물론 그 내용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 똑같거나 거의 비슷한 내용을 계속해서 듣게 되는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그저 지루한 내용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게다가 가르치는 방식도 텍스트 위주의 주입식이다 보니 학생들이 혹여 밖으로 나가서 무슨 전망대라도 가거나 옛날 6.25전쟁 때의 북한 탱크라도 보면 새롭고 신기해서 반짝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바쁘다보니 그런 기회를 자주 갖기도 어려워서 시간이 지나면 ‘아. 나도 그런 델 한 번 다녀왔지. 재미있었는데….’ 하는 과거지사가 되고 만다.
우리가 흔히 하는 통일인식 조사도 그렇다. 그 조사 결과 및 평가에 따라 통일교육방향과 내용이 좌지우지되는 것인 만큼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질문 내용이 너무 뻔하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 이유가 뭐냐, 북한이 적이냐 동포냐, 통일할 때 비용이 들면 낼 생각이 있느냐 등 전형적인 문제들이 나열되어 있다. 통일의식조사를 담당하는 국가연구기관 연구원이 이 문제들을 빼고 나면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다원화되고 다층화되어 있다. 통일이 되면 그야말로 각계 각층에서 정말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학박사, 경제학박사, 북한학박사 몇 명이 모여서 통일인식 조사 설문지를 만들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통일교육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너무도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교육을 보자. ‘먼저 온 통일’인 탈북학생들이 남한에 와서 어쩔 줄 몰라한다. 북한에서 온 걸 밝혀야 하나 강원도에서 왔다고 해야 하나부터, 저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긴 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고, 옆의 남한 학생에게 물어보려니까 왠지 주눅이 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간 집안 분위기는 침울하고 휑뎅그레하다. 책도 손에 안 잡히니까 게임이나 하다가 어른들에게 늘 혼나기나 한다. 마땅히 같이 놀 친구도 없어서 집 밖에 나가기도 싫고, 나가서 영화나 보려니 돈 들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다.

우리들 주변에는 개인적 이유 또는 종교적 이유로 이러한 탈북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나 북한 교육에 대해 관심 있는 선생님이나 연구자들 또는 대안 교육 실천가들이 교재를 만들고 커리큘럼을 구성해서 가르치고 있다. 통일인식 조사지를 만들 때 이러한 분들이 참석해서 같이 북한 교육이나 통일 이후의 남북교육통합에 대해 각론 성격의 조사 문항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통일교육은 Down-Up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법조인은 법조인대로, 언론인은 언론인대로, 경찰, 군인, 행정공무원, 건축가, 기업인, 금융인, 교사, 미술인, 체육 선수, 조각가, 작곡가, 가수, 중소 상공인, 공사장 노동자, 과수원 경영 농민, 버스 운전사, 택시 운전사 심지어는 아르바이트 학생, 주부 등 각 분야의 사람들이 통일 이후에 북한에 가서 살게 되면 또는 북한 주민이 우리 남한에 와서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통일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가르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혀 의도하지 않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반통일주의자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이번에 새롭게 시작되는 평화·통일교육 패러다임을 기획·지도하는 통일부나 교육부 그리고 서울특별시교육청을 비롯한 각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은 사회 각계 각층사람들이 통일 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들을 억눌림 없이 마음껏 말하고 들을 수 있게 하면서 평화롭고 번영된 통일 조국을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2. 길러야 할 통일 역량

그럼, 평화·통일교육 패러다임 하에서 통일교육 시간에 우리들이 길러야 할 청소년들의 역량이 과연 무엇일까? 다음은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발행한 2018학년도 통일교육지침서인 ‘통일평화교육 방향과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일교육 중점 방향들이다.

무려 열다섯 가지가 되는 중점 방향들이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이 중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정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다른 내용들도 중요하겠지만 통일 이전과 통일 과정 그리고 통일 이후를 생각해 볼 때 11번째 제시된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남북 발전’이 현실화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통일교육이 아닐까 싶다.

남북이 화해하면서 협력하는 가운데 상호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것은, 서로 간의 특수관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자유와 복지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는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미래인 통일을 남북 주민들이 합의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이뤄나가는 순기능을 가질 것이고 따라서 국제적 지지를 얻기가 훨씬 수월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나머지 열네 가지의 중점 통일교육 방향을 거의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남북 발전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현재 북한이탈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1), 우리가 통일하고자 할 때 우리 사회 구성원 그리고 북한 사회 구성원 누구나 갖춰야 할 것이 남북 주민들 간에 그리고 스스로들 간에 의사소통 능력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남북한의 구성원들 모두가 그 역량을 갖추게 될 경우 우리 한반도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할 경우, 이념의 차이로 인한 남남갈등만으로도 힘든데 통일 과정에서 남북 간의 편견과 차별에 따른 남북갈등이 덧붙여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3. 갈퉁(J. Galtung)과 하버마스(J. Habermas)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의사소통 능력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역량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을 제시해주는 갈퉁의 평화론과 하버마스의 담론 철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르웨이 평화학자 갈퉁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나누면서 우리들에게 소극적 평화와 함께 적극적 평화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소극적 평화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갈퉁은 우리가 그것만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빈곤하거나 환경이 오염되고, 착취당하거나 억압을 받고 있으면 불안해지는 것에 착안해서 그러한 문제를 초래하는 모든 구조적, 문화적 폭력까지 사라진 적극적 평화를 추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전에 나치 독일이 유대인 수용소를 관리한 것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대인
수백 명을 수용하는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연병장에 단 두 칸만 설치했다. 그리고 그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이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도록 교육받지는 않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보기 바란다. 수용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리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큰 죄악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한반도 땅 어디에서도 이러한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우리들로서는 학급 내에서의 왕따나 차별은 물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차별이나 편견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치 독일 시대에 소년기를 보낸 하버마스는 현대 유럽의 시대적 지성을 이끌던 독일 철학자이다. 그는 검증되지 않은 고정관념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합리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우리들은 누구나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장(場)에서는 누구도 상대방의 질문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의사소통의 장에서 참되고 진실된 말을 해야하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주장을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평화·통일교육의 장에 투사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우리 학생들이 통일이야기한마당이나 통일토론대회 등에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저 사람이 이 주제에 대해 뭘 이야기하나, 왜 그렇게 생각할까, 그 주장의 밑바탕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끝까지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이념을 갖고 있네, 저 사람은 나의 친구가 아니야, 지금 저 사람이 말을 못 하도록 해야 해. 이렇게 되면 2000년대 이전의 반공교육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된다. 내용상 반공을 강조하지 않고 평화를 이야기할 뿐이지 그 형태는 똑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성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통일교육의 장에서 자신이 믿는 이념에 따라 허위의 사실을 지식으로 포장해서 맹목적으로 강조한다거나 상대방의 합리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되풀이해서는 더 이상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사소통을 상호주관의 만남으로 보고 있는 하버마스에 따를 경우 우리가 평화·통일교육을 위해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남북의 화해를 추구해야지 상대의 고집에 따른 일방적인 양보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1991년에 남북이 공동으로 발표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식 명칭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지 ‘남북 간의 양보’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화해와 양보는 엄연히 다른 행위이다. 화해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으로 더 나은 관계를 지향하는 이성적(理性的) 행위라면, 양보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되 더 이상 내 요구를 하
지 않겠다는 다분히 동정적이고 정의적(情意的)인 언행으로서 상호적이지 않은 것이다. 어느 한 쪽의 주관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의사결정은 합리적이지 않을뿐더러 무엇으로 포장되든 간에 그 결정 내용이 실질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4. 화해지향적 평화ㆍ통일교육

여기서는 갈퉁과 하버마스의 가르침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평화·통일교육을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1976년 정립된 서독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따른 교육 원칙을 준용하는 것이 크게 도움될 듯하다.(자세한내용은 다음 페이지 참조)

2014년에 독일의 어떤 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강당에 독일 남녀 고등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고 단상 위에는 백발의 노신사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동독 시절 고위 경찰이었던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동독 정부에 항거해서 시위를 주동했던 목사 출신이었다. 그 두 사람이 학생들 앞에서 당시 상황에서 각자가 했었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었고 학생들은 그 내용을 자유롭게 경청하면서 질문하고 답변 듣고 또 질문하고 했었다. 참 신선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보이텔스바흐 3원칙이 반영된 정치교육이었다.

앞으로 평화·통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내용을 선정해서 강제적으로 주입하듯이 교육하지 않았으면 한다. 특정 내용을 어떤 동영상이나 텍스트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그 내용 또는 주제에 대한 반대 논거나 주장을 같이 제시해주는 통일교육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통일문제가 자신이 근접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게 하지 말고 주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고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중학교 고학년이나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에게는 통일 관련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시키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핵문제가 첨예하게 쟁점이 될 때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각자 역할을 부여해서 모둠별로 토론하게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누구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외무성부장, 노동신문 기자, 전방 인민군 하전사가 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외교부장관, KBS기자, 전방 철책소대 병장이 되어서 각자의 입장에서 핵문제에 대해 보는 시각을 설명하게 하고 토론을 하면 2014년 독일에서 본 것과 유사하게 유의미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북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에 대해 가질 법한 편견을 깨뜨리는 방법을 제안하게 하는 교육이나 다양한 각계 각층의 입장에서 통일의 장단점을 설명하게 하는 지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북한에서 만든 영화나 만화 등을 보여주고 또래 탈북학생 또는 탈북주민을 초빙해서 시청한 동영상 자료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유의미할 듯하다.

이상에서 최근 평화·통일교육 패러다임이 대두된 배경을 살펴보고 비록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지만 평화·통일교육 패러다임에서 추구할 수 있는 교육목표와 방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평화·통일교육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과 함께 북한 사회 구성원들 역시 통일과 관련해서 의사소통 능력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알 수 있었고, 하버마스와 갈퉁을 통해 그 교육목표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을 알아보았다. 또한 양보가 아니라 화해 지향적 평화·통일교육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 구체적 방법을 선택·결정하기 위한 보이텔스바흐 3원칙을 생각해 봤으며, 실제로 기획해서 실행했던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평화·통일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요컨대, 통일교육은 지난한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하고자하는 교사의 진정성 있는 의지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통일수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 남북하나재단의 ‘2017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남한 사람들로부터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네 사람 중 한 명 꼴이었다. 그리고 차별과 무시를 당한 사람들 가운데 74.3%가 말투와 생활방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통일 이후 남북 주민들 간의 의사소통문제를 지금부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