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3 겨울호(253호)

개념기반 교육과정으로 디자인한
국어과 수업

나희정(서울봉현초등학교, 교사)

1. 왜 개념기반 교육과정인가?

2022년 12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의 확대, 불확실성으로 대변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미래 사회에서 필요한 역량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개념기반 교육과정(concept-based curriculum)은 학습자가 탐구 과정을 통해 학습한 지식을 다른 상황에 일반화할 수 있도록 개념적 수준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더 나아가 전이 가능한 지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여 궁극적으로는 역량 함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예를 들어, 교육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교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웠던 내용은 현장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개념기반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배우는 핵심 내용이 한 교과의 단편적인 지식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변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 적용되고, 마주한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에듀테크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최근 인공지능이 가미된 에듀테크는 강력하다. 아직 교육 현장에 깊숙히 들어오기에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있지만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은 교사에게는 꽤 효율적이고,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선보이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기술을 따라가기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익히고 나면 자유로운 수업 설계를 할 수 있으니 한동안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수업에 푹 빠져 있었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수업을 한 후, 학생들의 결과물을 살펴보니 성취수준이 여실히 드러났다. 에듀테크가 수행 내용을 드러내는 형식을 상향 평준화하니 학생들의 결과물에 담긴 내용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에듀테크의 화려함보다는 학생이 학습한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학습한 개념을 어떻게 구조화하여 산출물을 만들었는지 의도가 보였다. 기술의 효율성 덕분에 학습 목표에 담긴 핵심 개념의 이해 여부와 개념 간 구조화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핵심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은 에듀테크를 활용하더라도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고, 개념 간 구조화를 바탕으로 한 융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수업은 교사가 개념을 지도하는 데 도구로써 유용하지만 학생이 학습한 개념을 구조화하는 데 만능은 아니었다. 더불어 필자도 그동안 인공지능 활용 교육을 하면서 교육의 알맹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개념과 원리를 융합교육으로 체험하고, 일상생활에 통합·적용하여 핵심 아이디어1가 내면화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기존 교육과정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전이’ 과정일 것이다. 앞으로 학생들이 살아가는 미래 사회의 변화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이는 학생이 배운 지식을 깊이 이해하여 학교 밖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념기반 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 3학년 국어과 수업을 디자인해 보았다. 핵심 개념인 ‘인과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여 다른 교과를 학습하면서 전이가 일어나고,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이 개념을 능숙하게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수업을 설계하였다. 이 글은 수업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기록한 일기이자 수업 이야기이다.

2. 수업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개념기반 교육과정으로 디자인한 국어과 수업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따르되, 2022 개정교육과정의 핵심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설계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국어 6단원 <일이 일어난 까닭>은 ‘인과관계’가 주요 개념인 단원이다. 관련된 2015 개정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에서 이 단원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유형의 담화, 적절한 전략 중 ‘원인과 결과’에 따른 의사소통 전략이 이 단원의 핵심 개념이다. 이에 따라 내용을 생성하고 조직하여 표현하고 전달하는 과정과 기능을 익힌다. 정리하면, 이 단원의 목표는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의사소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구조 및 전략을 사용하여 듣고 말하기’이다. 학습은 ‘순차적·유기적으로 연결된 개념을 기반으로 탐구하는 과정’으로 보고 개념망2을 작성하였다.

위와 같은 개념망을 작성하여 학습 단원을 좀 더 세분화하고 개념들을 구조화한 스트랜드3(strand)를 파악하였다.

<일이 일어난 까닭> 단원의 수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였다. 모든 교과는 의사소통을 기본 전제로 학습이 이루어지며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따라서 타교과 학습에서도 국어시간에 배운 인과관계 개념을 적용하고 활용하게 하였다. 국어과에서 배운 개념과 의사소통 전략을 충분히 익히면 타교과에서도 자연스럽게 전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전이가 일어나도록 하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해 보도록 기회를 틈틈이 주려고 노력했다.

3. 실행 과정

3-1. 원인과 결과 알기

교과서에 제시된 ‘쓰레기 정거장’ 만화를 읽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찾아보며 ‘인과관계’ 개념의 의미를 이해한 후, 다음 차시의 ‘행복한 짹짹콩콩이’ 이야기로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에서 제시된 글을 보고 안내된 발문에 따라 원인과 결과를 찾아낼 수 있으나, 교과서 글을 벗어나면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거나 원인과 결과에 따라 듣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조를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기도 했다.

또는 사건에 따른 자신의 감정을 원인과 결과 구조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왜냐하면’, ‘때문이다’와 같은 이어 주는 말을 사용하여 크게 어색하지 않으면 원인과 결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넓게 보면,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 감정의 변화가 생긴 것도 인과관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원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 구조로 보고, 인과 관계 전략을 사용하여 의사소통하는 것이 단원의 주요 내용이었다.

국어과 전공이 아닌 필자로서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교과서에 제시된 제한된 글과 예시 문장으로 학생들의 오개념을 바로 잡아주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필자의 개인 비서인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ChatGPT)을 이용하여 원인과 결과 개념을 익힐 수 있는 학습지를 수준별로 만들어서 제공하였다.

수준별 학습지는 ChatGPT4.0을 이용하였으며 교과서의 제시글을 학습시켰다. 구체적인 조건으로 대상 학년, 학습 목표, 글의 구조를 설정하고, 교과서의 제시글과 비슷하되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글을 생성하도록 프롬프트(prompt)를 작성하였다. 학생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문학, 비문학 제재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생성된 글에서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프롬프트를 추가로 입력하여 수정하기도 하였다. 최종적으로 교사가 글에서 어색한 표현과 문맥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서 학습지에 넣을 제시글을 완성했다. 학생들은 학습지 제시글을 읽고 원인과 결과에 해당하는 사건을 찾아보는 연습을 했다. 인공지능과 함께 학습지를 제작해 보니 다양한 주제의 글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이야기를 생성해 내는 동안 교사는 학습 목표 달성을 위한 발문을 준비하고, 학생과 상호작용을 통해 오개념을 바로잡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선호도에 따라 제시글을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하니 학생들은 자율성을 존중받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학습 활동에 자기주도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3-2. 의사소통 방법

의사소통 전략 중 하나로 원인과 결과를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하여 원인과 결과 문장을 주고받는 짝활동 놀이를 계획하였다. 교사는 사전에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에 학생과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문장을 이어가도록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학생이 원인이 되는 문장을 말하면 인공지능 챗봇은 결과가 되는 문장을 말하고, 그 문장이 다시 원인이 되어 학생은 결과가 되는 문장을 말하며 계속 원인과 결과가 되는 문장을 이어가는 놀이이다.

이 활동은 학생 2명과 챗봇이 한 모둠이 되어 대화를 이어가는 것으로, 활동 중에 과정중심평가도 진행하였다. 짝 친구가 입력한 문장을 보고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문장이 맞는지 판단하게 한 것이다. 이는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동시에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의 오남용을 막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챗봇을 ‘인공지능 선생님’으로 부르고 높임 표현을 쓰게 하며 사전에 인공지능 윤리 교육도 하였다. 간혹 챗봇이 잘못된 결과 문장을 생성하여 “선생님, 인공지능 선생님이 만든 문장이 (원인과 결과 구조에) 안 맞아요!” 라는 말을 할 때에는 오히려 제대로 판단한 학생들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생성형 인공지능 선생님은 항상 옳은 답변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제일 가능성이 높은 문장을 말한다는 설명도 살짝 곁들였다.4

개념기반 교육과정에 기반한 수업에서는 경험과 체험 활동 후, 학습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개념을 일반화하는 성찰의 과정이 있다. 그래서 수업 활동 말미에는 학습한 내용을 개념화하는 시간과 성찰의 시간을 넣었다.

3-3. 이야기 흐름에 따른 글쓰기

개념기반 교육과정의 꽃은 다른 상황으로의 ‘전이’라고 생각한다. 국어 교과에서 개념을 충분히 익히고 타 교과에서,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해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에 따라같은 시기에 배우는 사회과, 과학과 수업에도 적용해 보았다.

이 시기에 과학 3단원 동물의 한살이를 배우면서 동물의 특징이나 동물의 한살이 과정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정리해 보도록 하였다.

학습 목표에 특화된 제시글이 아니라 과학 도서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려울 것 같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수행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처럼 동물의 생김새, 특성이 원인이 되어 동물의 행동 특징, 생존 과정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찾아 동물의 한살이를 이해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과학 도서를 읽으면서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이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해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사회 교과에서는 우리 고장의 옛이야기를 배우고 있었다. 지역화 교과서와 인터넷으로 조사하여 우리 고장 옛이야기 소개하는 활동이 한창이었다. 옛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이 포함되기 마련이므로 인과관계를 적용하기에 적절했다. 브릭(블록)으로 우리 고장 옛이야기 장면을 꾸미고 학생의 선호도에 따라 네 컷 만화나 글로 표현하도록 하였다. 이때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도록 하였다. 옛이야기에는 이미 줄거리가 있으므로 학생들이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어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3-4. 사건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표현

지금까지는 줄거리가 정해져 있는 내용에서 원인과 결과 구조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후로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생각을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글로 표현해 보는 창작의 시간이 필요했다. 3학년 2학기 국어 3단원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요.’에서 마지막 차시에 ‘우리 반 소식지 만들기’ 활동이 있다. 학습지에 경험한 일을 원인과 결과로 정리해 본 후, 구글 클래스룸에서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게 우리 반의 이야기를 쓰도록 개인 과제를 부여했다.

우리 학급 알림장의 맨 마지막은 언제나 ‘오늘 내 기분은 ( )’ 이다. 알림장을 쓰는 시간은 주로 학교 생활의 마무리 시간이므로 오늘의 기분을 쓰면 학생의 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에도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게 문장을 구성하라고 하였더니 삶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학습한 개념이 녹아 들어가는 듯했다.

국어 교과의 한 단원의 핵심 개념이 학생의 일상생활에 쏙 들어가게 여러 가지 활동으로 시도하였다. 이처럼 성취기준과 학습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에듀테크를 적절한 시점에 이용하고, 학교에서 배운 핵심 개념이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적용되도록 뒷받침하였다.

4. 마무리하며

몇 년째 인공지능 융합수업을 한 후, 한 해 한 해 누적된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 활용 수업을 하며 수업의 본질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다소 어설프고 허술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한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찾은 것 같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구조화하여 사고의 능력을 극대화해가기를 바란다. 어떻게 변할지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탄탄한 역량을 기초로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1. 2022 개정 교육과정 각 교과 해당 영역의 내용 체계표에 제시된 것으로 학습을 통해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진술한다.
  2. 학생들이 단원 학습의 결과로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해해야 할 중요한 개념 목록을 만든 후, 2개 이상의 개념 간 관계를 설명한다.
  3. 단원명을 책의 장이라고 한다면, 스트랜드는 그 장을 구성하는 소제목들이다. 탐구의 범위로서, 학습 단원을 좀 더 세분화한다.
  4. 이 수업을 할 당시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생성형 인공지능챗봇을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연령 제한 때문에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지금은 POE나 Get gpt를 사용하여 가능한 통제된 상황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