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3 여름호(251호)

[경희여자중]
공존을 위한 첫걸음,
교실 속 언어 회복

이민재 명예기자

교실 속 갈등은 대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곤 한다. 무심코 내뱉은 욕설이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소한 말들이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담긴 편견, 차별, 무시, 혐오가 듣는 이에게 비수가 되어 꽂히고 이는 더 큰 갈등과 폭력으로 이어져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모두가 함께하는 따뜻한 공존교육을 위해 아이들의 언어가 바로잡혀야 한다. 망가진 언어를 회복하고, 언어의 품격을 높이려는 노력을 통해 이와 같은 공존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에 교실 수업 속의 언어교육을 넘어서 학교 전체 차원의 언어문화개선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경희여자중학교(이하 경희여중, 교장 차은경)의 노력을 들어보았다.

말은 꽃이다, 언어순화교육

경희여중의 언어순화교육의 시작은 무려 2012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이 매우 거칠어진 사회 현상을 발견한 강용철 선생님(연구부장)은 이것이 비단 경희여중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인식하였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언어 개선 운동을 제안하여 당시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가 전국 최초 언어순화 동아리가 되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관련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강용철선생님께 언어순화교육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점을 들어 보았다.

<경희여중 언어순화동아리 ‘너나들이’>
너나들이는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사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성찰에서 반올림으로

언어순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top-down 방식이 아닌 bottom-up, 즉 학생들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나쁜 언어 사용의 단점을 강조하고 ‘줄여’, ‘쓰지마’라며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언어 습관을 느끼고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강용철 선생님께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라는 주제로 진행하신 언어 수업에는 ‘경험담을 통해 성찰해보는 시간’이 있다. 성찰의 시간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사용하거나 들어본 언어를 칠판에 모두 써 내려간 후에 가만히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칠판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바라만 보고 계시는데, 처음에는 킬킬거리며 장난스럽던 학생들도 어느새 조용해진다고 한다. 자신들이 무감각하게 사용하던 언어를 고스란히 마주하며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쁜 말을 직접 바라보며 성찰하는 활동은 “왜 욕을 쓰면 안돼요?”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으며, 차별과 혐오 표현의 사용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며 계도와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도 일상생활에서 욕을 많이 쓰는 학생들은 어휘력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욕을 일상 언어와의 구별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욕설이나 혐오 표현은 듣는 사람뿐 아니라 사용자의 뇌에도 상처를 준다고 한다. 욕설이나 기분 나쁜 말을 직접 사용한 사람의 뇌 전두엽과 측두엽의 활성화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기존 뇌과학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성찰, 그 후에 이어지는 반올림의 시간을 통해 또래 집단 내 언어 사용의 심각성을 되돌아보고 서로가 서로의 언어 사용을 인식하고 견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 수업 장면>

교직원 모두가 협력하는 언어순화교육

언어문화개선교육은 절대 일회성이나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지속적이고 중장기적인 흐름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교육을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노출해 하나의 거대한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절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강용철 선생님은 교내 언어문화개선교육에 있어 교과적 접근이 아닌 전체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정 교과의 소관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교직원 전체가 협조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언어문화를 만드는 것에 모두가 앞장서고 있으며 ‘합의’와 ‘공지’라는 커다란 줄기를 통해 교직원 모두가 협력하여 언어순화교육의 꽃을 피우고 있다.

언어순화교육에서 인성교육까지

언어순화교육이라는 큰 줄기와 함께 흐르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경희여중의 인성교육 프로젝트도 소개하고자 한다. 경희여중에서는 창의체험부와 학생안전부 주도의 언어순화 캠페인과 함께 ‘매일 하나씩 실천하는 경희 인성’을 복도 게시판에 부착하며 학생들이 매일 한 가지 덕목의 인성 주제를 생각하며 삶에서 실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2학기 말에 학교의 인성교육 활동을 종합하여 인성신문(온새미로)을 발간한다. 이는 인성교육 전반에 대한 성과를 공유하고 더욱 발전된 인성교육 활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다짐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월별 핵심 인성덕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올바른 인성 함양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독서인성기록장을 작성한다. 인성 부분은 도덕 및 사회과에서 교과 시간에 검사하고 피드백을 제공한다고 한다.

문자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한글날과 연결지어 ‘말과 글’이라는 주제로 활동을 하기도 하였는데, 교직원들의 협력이라는 큰 흐름 하에 언어순화교육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아이들은 주시경 선생님의 말씀인 “나라의 말과 글이 내려가면 나라가 망하고, 나라의 말과 글이 올라가면 나라가 올라간다.”에 관해 생각해보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어떻게 우리의 품격이고 국격이 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또한 한글날 티셔츠 만들기, 책갈피 제작 등 다양한 활동과 캠페인을 통해 내가 쓰는 언어가 나만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될 수 있고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희여중 한글날 캠페인>

가정과 사회를 넘어,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언어순화교육

학생들이 언어를 주로 흡수하는 곳으로는 또래집단 외에 가정이 있다. 제아무리 학교에서 언어순화교육을 진행해도 가정으로 돌아가 나쁜 언어를 흡수한다면 언어순화교육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경희여중에서는 교육공동체 모두가 함께하는 언어순화교육이 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에 월별 인성 덕목 주제를 선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매월 1일 인성 편지를 발송하여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올바른 인성 함양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교육공동체 모두의 단합된 목표 공유를 위해 학기 초 학부모님들께 학교 인성교육의 방향에 대한 안내와 함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교육과정에 대한 안내 교육을 진행한다.

나의 언어 속에서 나를 만나라

그렇다면 경희여중의 위와 같은 노력 끝에 경희여중 학생들의 언어습관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시간’에 있다. 언어는 문화이자 습관이기 때문에 결코 단시간에 바뀔 수 없고 그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언어순화교육이 결과 중심의 교육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순화교육에 대한 접근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언어순화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욕을 쓰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의 언어 속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즉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때로 교육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 자체의 부정적 현상만 보고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부정 언어에 대한 대책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언어 속에서 스스로를 만나는 언어순화교육’은 아이들이 쓰는 따뜻하고 좋은 언어에도 관심을 가진다. 아이들이 매일 쓰는 따뜻한 언어, 희망 있는 언어, 품격 있는 언어를 잘 가꾸고 효과적으로 쓰도록 돕는 것, 나아가서 교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런 언어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언어순화교육이 진정으로 목표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긍정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