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3 여름호(251호)

느슨하게 이어지는 곳,
카페 더 休

최지윤 (서울전농초등학교, 교사)

교사에게 카페 타임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어릴 적, 직장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면 늘 그리는 장면이 있었다. 오전부터 숨 가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늦은 오후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잠시 숨을 돌리는 어른. 교사가 되어 보니 숨 가쁘게 일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늦은 오후 카페에 앉는’ 게 어려웠다.

복무 시간 중 카페에 나가려면 먼저 외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실 학생 하교 후에도 각종 회의, 업무로 외출할 시간조차 없는 선생님들이 많다. 그래도 어쩌다 하루쯤은 오후 외출이 가능하다고 해 보자. 조퇴하지 않는 이상 학교로 돌아와야 하니 멀리 나갈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우리 학교 보호자님들이 계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학군지 한 가운데의 카페에 가야 한다. 이처럼 망설이게 되는 이런저런 조건들이 있지만,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날엔 어떻게든 간다. 어떻게든 해내는 건 교사들의 주특기니까.

카페에서 주문하는데 질문이 들린다. ‘드시고 가세요, 포장하시겠어요?’ 어디선가 우스갯소리로 들었던 ‘교사는 동네 비호감 연예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아무 의미 없는 시선도 나를 보는 것 같고, 괜히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자의식 과잉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선생님들이라면 이 기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교육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내 연가 시간을 활용하는 데도 왠지 눈치가 보인다.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나? 답답하다.

교실로 돌아오면 뭔가 아쉽다. 커피도 커피지만 이 공간 말고, 일과를 잠시 잊고 숨 돌릴 수 있는 다른 공간에 있고 싶었는데……. 어느 소설가가 그랬던가,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고. 교실엔 기쁨도 행복도 있지만 상처도 해야 할 일도 진하게 묻어있다. 이것만 마시고 업무 연락드려야겠다, 저쪽 구석에 쓰레기도 좀 치워야겠고, 그렇게 가져가라고 했는데 책상 위에 두고 간 걸 보니 부글부글, 언제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도해야 고쳐질까, 어린 학생들인데 그런다고 말을 듣는 게 더 이상하지, 학생 마음은 이렇게 위해주는데 내 감정은 누가 생각해주나. 이런 생각들로 순식간에 머릿속이 꽉 찬다. 일 생각은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딱 10분 만이라도 숨 돌리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나도 쾌적한 카페 가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고 다시 열심히 일하고 싶다! 어딘지 모르게 서러운 마음을 꾹 삼키고 다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엔 카페가 있습니다

2월 초, 전보 명단이 나고 새로 가는 학교가 정해졌다. 긴장감에 뱃속이 꿈틀거렸다. 처음 뵙는 분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한다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전 직원 소집일,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마주칠 때마다 정신없이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교장선생님께서 먼저 인사 말씀을 하셨다. 학교 경영관과 학교 소개, 안내 사항 등을 듣고 있는데 문득 한 마디가 낯설었다.

“… 1층엔 우리 학교 카페가 있습니다. 2월 출근일 오픈 예정입니다.”
카페라고? 휴게실? 회의실? 아니면 진짜 카페? 선생님들께서 다 비슷한 표정이었는지 확신에 찬 몇 마디가 이어졌다.

“그저 그런 수준으로 할 거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일반 카페처럼 선생님들 차도 드시고, 이야기도 나누시며 편안히 쉬실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 중입니다. 학교에서 카페 만드는 것, 가능합니다. 출근일에 오셔서 확인해 보세요.”

그 후 업무 및 학년 발표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학년 연구실에 앉아있었다. 반을 뽑고, 학년 업무를 배정하고, 마지막 학년 회비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카페 이야기도 나왔다.

“저희 회비로 연구실에 간식도 비치해 둘까요? 선생님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까 학교 카페가 있다고 그러시던데, 그게 어느 정도의 공간인지 알면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 카페’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정확히 어떤 공간인지 아시냐, 어떻게 관리하냐, 공사라면 예산이 많이 들 텐데 가능하냐……. 나만 궁금한 게 아니었구나 싶어 귀를 쫑긋 열었다.

학년부장님께서 생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저희 작년부터 학교 카페 만들려고 준비해왔어요. 많이 노력했어요. 그 과정 한번 들어 볼래요?”

‘카·만·추’의 결성과 추진 과정

학교 공동체를 위한 제대로 된 휴게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2022년 하반기 ‘전농초 카페 만들기 추진위원회(이하 ‘카·만·추’)’가 결성되었다. 교장선생님과 각 학년 대표 교사 1인이 모여 다수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수렴하고자 하였다.

휴게 공간 구축도 쉽지 않은데, 카페 공간 구축이 가능할까? 예산이 충분할까? 협의 과정을 거쳐 추가 학교기본운영비 및 각종 협의회비, 업무추진비 등을 모았다.1 카페 공간을 구축하기에는 ‘티끌’처럼 턱없이 모자랄 것 같았던 예산을 모으고 모으니, ‘태산’이 되었다. 학교 예산만으로 카페 차리기, 가능했다!

다음으로 위치를 정해야 했다. 1층 현관 앞 전시장 공간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건물 1층의 현관 앞에 있어 교직원의 주요 이동 동선에 있으며, 현재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공간이므로 다른 용도로 활용해도 괜찮겠다는 이유였다.

틈틈이 출장 조사도 진행했다. 학교 카페가 있다는 서울시 내 초등학교, 중학교 및 경기도의 중학교까지 탐방하였다. 인상적인 부분, 참고할 점, 우리 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을 꼼꼼히 찾으며 기록하였다. 개인적으로 일반 카페에 방문할 때도 학교 카페 설치를 생각하며 공간을 살펴보았다. 촬영하고 메모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고치고 발전시켰다.

이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을 차례였다. 새로운 학교 카페 공간이 갖추었으면 하는 점에 대해 의견 조사를 했다. 공간의 성격, 시설, 가구, 설비, 용품,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메뉴, 카페 이름까지 모든 주제에 대한 공동체의 생각을 모아 갔다.

<학교 카페 공간 구상 및 의견 수렴>

카페 차리기 쉽지 않구나

카·만·추 위원들의 열정과 선생님들의 지지에 힘입어 학교 카페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에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였다. 설계 도면을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고쳤다. 안 되는 것도 많았고, 몰랐던 점도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시공 업체와의 협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원했던 것과 다르게 시공되는 사항을 하나하나 짚으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추가 설치 또는 수정이 필요한 작업도 짚어야 했다. 일정이 밀리기도 했다. 어느새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카페 공간에 들어갈 가구와 비품 주문도 행정실의 큰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쉽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공들이며 카페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학교 카페 설계 구체화 과정>

차곡차곡, 함께 쌓아가는 공간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23년 2월, ‘전농초 카페 더 休’가 문을 열었다. 오픈 첫날, 집기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카페 테이블은 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교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많은 분들이 한 번씩 방문하셨다. 창가 쪽 테이블에는 노트북을 배치하여 급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고, 문가 쪽에는 긴 탁자가 있어 협의회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셨고, 새로 오신 분들은 한 분 한 분 얼굴을 익혀갈 수 있었다. 서로 만날 예정이 없던 사람들이 만나게 되었고, 간단한 인사 한두 마디를 나누며 자연스레 어색함도 풀렸다. 메시지나 전화로 몇 번 오갈 이야기도 우연히 카페에서 만나면 물 흐르듯 나눌 수 있었다. 갓 전입한 교사로서는 참 감사한 공간이었다. 학교 카페가 문을 연 지 하루 만에 업무 추진에까지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몇 번의 설치와 보수 공사를 더 겪고 나서 ‘카페 더 休’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갔다. 커피를 드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차가 들어왔고, 미니 간식들도 입고되었다. 농담조로 회사 탕비실의 믹스 커피를 한 움큼 숨겨 가던 모 드라마 주인공이 되진 말자며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오죽 먹고 싶으면 잔뜩 챙겨가겠냐며 그냥 두자는 여유도 생겼다. 회의실 밖에서도, 회의 시간이 아니어도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오가게 되었다. 구성원들이 함께, 카페 공간에서 유대감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완공된 카페 더 休>

느슨하게 연결되는 곳, 카페 더 休

오지 않았으면 싶다가도 얼른 지나갔으면 했던 3월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신체 리듬을 ‘학기 중 모드’로 맞춰야 했고, 새로운 학급 학생들의 특성을 빨리 파악하고 적응해야 했다. 교사도 바짝 긴장해서 3월을 맞는다는 걸 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학교 카페에서는 잠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복무 상신도,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교과전담 시간, 학생들의 활동물을 검사하거나 보호자와 급한 상담 전화를 하기에도 좋았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긍정적으로 느끼셨는지 자연스럽게 동학년 협의회를 카페에서 하게 되었다. 슬픔도 화도 묻지 않은 새로운 공간은 오히려 원활한 업무 진행에 도움이 되었다.

곧이어 삶은 달걀과 마들렌을 구워주시는 오전 간식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늦게 가면 없으니 출근길에 들러서 가져가라는 조언이 들렸다. 마들렌은 사 오시는 건가?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교장선생님께서 마들렌 반죽을 젓고 계셨다. 보기만큼 쉽지 않은지 힘을 잔뜩 주고 계셔서, 웃음이 났다. 옆 반 선생님 챙겨드리겠다며 간식을 한두 개 소중히 싸 가시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이런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을까?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는 모두 느슨하게 연결되었고, 기분 좋게 웃으며 하루를 잘 지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오전 간식 이벤트>

‘느슨함’을 강조한다고 해서 혹여라도 본교 구성원들이 업무를 미루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학교 카페 설립 자체가 본교 교직원 간에 서로 최선을 다해 맡은 업무를 처리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실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 특히 교사에게는 느슨해질 수 있는 시간조차 얼마 없다. 숨 돌린다고 해 봤자 5분, 10분이다. 여기에서는 긴장을 덜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이 교사로서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했다.

더 많은 학교 카페가 생기길 바라며

학교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3월 초는 일명 ‘신학기 집중 적응 기간’이다. 교사들은 새로운 1년의 학급이 평화롭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응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계획한 활동을 함께 하며 어색함을 풀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기를 수 있다.

교사들에게도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싶다. 공립 학교의 경우, 해마다 구성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를 옮겨 보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단합대회를 하자는 건 아니다. 2월은 숨만 쉬어도 바쁘고, 혹 시간이 난다고 해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1년을 준비하기도 벅차다. 우리에겐 활동보다 공간이 필요하다. 잠시 숨 돌리며, 느슨하게 유대감을 쌓아갈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느슨하게 우리를 연결해줄 수 있는 학교 카페가 더 많은 학교에 생겼으면 좋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예산 확보, 관리자의 의지, 구성원들의 협조와 배려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힘든 준비 과정은 함께하지도 않고 완성될 때쯤 학교에 와서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좋은 건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학교 카페 공간이 하나의 문화가 되길 소망해 본다

 

 

 

 

 

 

  1.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여러 예산의 종류와 사용 가능 여부를 알아보는 일도,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뜻을 모아 주신 전농초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