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봄호(246호)

[서울숭곡초등학교병설유치원]
놀이에 대한 진심을
공간과 관계에 담아내다

정정윤 (서울숭곡초등학교병설유치원, 원감)

쉽고도 어려운 말 ‘놀이’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우리 유치원은 한부모, 조손, 맞벌이 등 돌봄이 꼭 필요한 양육환경에 처한 유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의 방과후과정보다 미술학원, 문화센터, 학습지 등의 사교육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방과후과정이 끝나는 4시 이후에 하원을 하면 학원 수업 시간을 맞출 수 없고, 공립유치원은 가르쳐주는 것(특기적성 전문강사에 의한 수업)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유치원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양육자에게 놀이의 가치, 놀이를 통한 성장, 놀이와 창의성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지만, 유아 모집 기간이면 여전히 눈에 보이는 기능적 성과와 놀이를 통한 유아의 지적 능력 신장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놀이를 통한 배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그저 <우리만의 리그>일까? 누구나 아는 말 ‘놀이’, 하지만 ‘놀이’ 속에 담겨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탄탄하게 깔린 ‘진짜’ 놀이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다. 놀이가 ‘왜’ 그토록 불안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지 고민을 시작으로 공간과 관계의 변화를 통해 진짜 놀이를 찾아 나간 우리 유치원의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놀이 하자’고 말을 건네는 공간 만들기

우리 유치원은 개원한 지 20년이 넘어 시설이 매우 낡았다. 복도 가득 일렬로 채워진 사물함과 낡은 시설물들로 가득한 답답한 공간 속에서 유아들의 놀이도 제한적이었고 바깥 놀이터는 조합놀이기구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이 중에 화장실을 가려면 건물을 빙 돌아서 유치원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는데 가는 도중 유아들은 소변 실수를 하기도 했고, 지원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바깥놀이를 중단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환경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학교 재구조화 사업을 신청하여 2020년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루어지고, 원격수업이 실시되는 시기에 실내·외 공간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한 공간 개선의 테마는 ‘놀이하자고 말을 건네는 공간’이었다. 실내·외의 모든 공간에서 아이들이 주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놀이가 숨 쉬는 바깥놀이터를 구성하고 싶었다. 재구조화 사업을 통해 우리 유치원은 도화지같은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먼저 실내는 아이들이 상상하는 대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는 마법같은 공간으로 알록달록한 교실과 아이들의 놀이 시선을 이어주는 작은 쪽창, 동굴이 되었다가 터널이 되었다가 노래방으로 변신하기도 하는 작은 공간 그리고 친구와 나란히 앉아 웃을 수 있는 그루터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우토반처럼 무한 질주가 일어나는 기다란 복도는 매일 매일 새로운 놀이 이야기를 그려내는 하얀 도화지 같은 공간이다. 특히 교실 쪽 벽은 밝은 불을 밝히는 빈 공간으로 구성함으로써 유아들의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했고, 외벽 쪽 복도벽은 전면을 자석 화이트보드로 만들어 유아들이 맘껏 그리고 꾸밀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다음으로 바깥 놀이터는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흥미진진한 곳이 되길 바랐다. 동화 속 요정의 집 같은 놀잇감, 보관함을 열면 유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모래놀이 도구와 동물 피규어, 그릇들이 가득하고, 모래놀이 옆으로는 유아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늘막을 설치한 넓은 나무 데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하나, 둘, 셋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공룡과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상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모래 놀이터에서도 여러 놀이를 한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이 쑥쑥 자라는 텃밭에서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마음껏 뛰놀고 있다. 꿈꾸는 대로, 상상한 대로 유치원의 모든 공간이 매일매일 우리 아이들에게 함께 놀자고 말을 건네고 있다.

저절로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 복도

복도는 이어지는 공간이다. 놀이가 이어지고, 생각이 이어지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이어지는 창작의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이다. 긴 복도를 통해 형님들의 썰매놀이에 동생들이 타기도 하고, 펼쳐진 가게 놀이에 참여하는 등 서로의 놀이가 연결되거나 확장된다. 교사들은 학급을 구분 짓지 않고 복도에서 함께 놀이하는 유아의 놀이에 대한 관찰 사례를 나누면서 유아들이 즐겨하는 놀이에 대해 이해하고 지원방안을 논의한다.

유아발달회복지원 시간강사 운영사업은 우리 유치원처럼 여러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놀이를 세밀하게 지원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시간강사는 담임교사의 임장 하에 복도에서 만나 놀이하는 유아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유아들이 필요로 하는 놀이자료를 제공하거나 공간의 변형을 지원했다. 교사는 유아들이 펼쳐 놓은 놀이 공간을 수용해야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안전하게 지원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놀이를 제한하기도 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시간강사 운영을 통해 교사가 미처 보지 못한 놀이 장면에서 유아의 상호작용, 표현 방법, 놀이 제안, 참여 형태 등을 공유함으로써 교사 대 유아의 비율이 높은 학급에서 유아 개별적인 요구를 반영하는 질적인 놀이가 펼쳐질 수 있었다. 놀이상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게시하거나 QR코드로 제시해 줌으로써 유아들은 다양한 놀이를 시도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특히나 마스크를 쓰고 하는 유아들의 흐린 말을 교사가 이해하고 올바른 발음으로 전달함으로써 의사소통으로 인한 갈등이 매우 줄어 들었다.

가정연계: 놀이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선 나누기

코로나19 상황에서 교육기관은 예전보다 양육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닫힌 공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심한 ‘놀이 예상안’과 ‘놀이 이야기’를 배부해도 양육자는 여전히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너무 궁금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실제 학부모가 교실에 입실하여 교실 놀이를 관찰하는 것처럼 놀이를 중계함으로써 아이들과 교사가 어떻게 호흡하며 성장해 가는지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학급별 네이버밴드를 통해 실시간 라이브 방송 <교실에서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세요?>를 진행하였다.

원활한 라이브 방송을 위해 원감은 노트북으로 교실 한 곳에서 놀이가 펼쳐지는 장면에 대한 놀이 해설(예: 00가 거미줄에 걸린 친구를 도와주고 있어요.)을 하고, 실무사는 스마트폰을 들고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촬영을 했다. 자유롭게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놀이를 읽어주는 시선을 통해 역동적인 놀이장면이 편집 없이 송출되고 그 장면이 갖는 다양한 교육적 의도(신체 움직임, 표현력 등), 교사의 발문, 유아들의 반응을 댓글로 해설함으로써 유치원 놀이중심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참관 수업의 본래 목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

유아와 가정과 유치원이 함께 만드는 놀이생태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놀이’는 가족 놀이를 소개하는 방식의 가정연계 교육이다. ‘가족 놀이’가 ‘우리 반 친구 놀이’로 다시 재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놀이를 모아서 e-알리미 서비스로 웹진을 전송했다. 또한, 유치원 스마트기기 보급 예산을 활용해 구입한 탭을 교실 내에 내어주고 유치원 복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놀이> 코너에 전시된 놀이소개 QR코드를 탭으로 인식해 보도록 했다. 다른 학급, 다른 연령 놀이 동영상을 감상하여 서로의 놀이를 공유하고 직접 놀이를 즐겼다. 유아, 가족, 교사 모두가 놀이에 참여하여 재미난 놀이를 만들어내는 ‘생산자’이자 그 놀이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는 놀이생태계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었다.

살짝,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놀이가 스며들었다

유아 놀이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교사는 세면대, 복도의 책 읽는 공간, 옷 정리함 등 유아가 관심을 보이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유아와 함께 개방적인 태도로 놀이를 지원했다. 때론 불을 끄고 놀이하듯 밥을 먹기도 하고, 바깥 놀이터에서 하루종일 놀기도 했다. 놀이의 시작과 끝을 유아들의 관심과 흥미에 맞추는 노력도 하였다. 번개처럼 흥미가 사라지고,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놀이가 시도되는 상황에서는 <내버려 두기 또는 놓아주기>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유아 스스로 놀이를 창안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선택과 결정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동영상 촬영 및 교사의 저널 속에서 유아들은 비구조화된 인적·물적 환경(인위적이지 않은 공간) 속에서 스스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놀이를 창안해 나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유아들의 시선 끝에 닿아있는 흥미의 가치를 존중하며 각각의 놀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 흐른지 벌써 2년…오늘도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놀이에 진심인 아이들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교사의 마음속에 아이들의 놀이가 살짝 스며들었다. 이대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학부모님의 감사한 편지에서 가정과 유치원 모두 어느새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놀이로 물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불안함’이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성장의 씨앗이라는 믿음으로 그 놀이를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2022학년도에는…우리 모두 더 즐겁고

2021학년도는 종이상자, 줄, 나뭇가지, 냉장고, 비닐, 조명, 빅 블록 등이 얼마나 신나고 다양한 놀이로 변신할 수 있는지 유아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놀이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우리 교사들은 유아·교사·놀 이 속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색깔로 구분지어 정리함으로써 유아의 자유로운 시도와 도전의 과정을 관찰하며교사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놀이를 지원해 주는지 기록했다. 1년 동안 유아와 교사가 함께한 생생한 놀이 장면이 담겨있는 놀이 기록은 유아들의 행복한 ‘성장’ 이야기이며, 교사에게는 놀이가 열리는 공간 운영, 함께 놀이 관계 맺음에 대한 소중한 경험이 담긴 실천적 지식의 기록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오늘도 수업 후 모여앉아 지난 2021학년도 기록을 바탕으로 알록달록 놀이가 탐스럽게 열릴 수 있는 2022학년도 서울숭곡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 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다.

놀이로 하나 된 교사들은 오늘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참 많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감 가득한 교사들의 반짝반짝 눈빛을 타고 따뜻하고 향기 가득한 2022학년도, 새봄이 벌써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