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3 겨울호(253호)

[서평] 국경의 남쪽에 머무르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

이민재(염경중학교, 교사)

‘엇갈린 운명의 연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해보는 독자라면 무심한 홍보문구에 하루키의 소설을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열면 펼쳐지는 주인공 하지메의 나약한 모습(토끼 같은 자식, 사랑스러운 아내를 두고 어린 시절 첫사랑에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끌려가는 내용) 역시 그저 흔한 로맨스 소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과 같은 하루키의 역작을 접해본 적이 있다면 부디 책의 말미까지 공을 들여 읽어 주기 바란다. 이야기 내내, 안정적인 가정의 뿌리를 통째로 뒤흔드는 충동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던 주인공 하지메는 소설 말미에서 불현듯 원래의 현실로 돌아가 정착한다. 단순히 불륜을 앞에 두고 제정신을 차린 남자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소설 속의 상징이 예사롭지 않다.

주인공 하지메의 평화롭던 인생에 어느 날 등장한 25년 전 첫사랑 시마모토는 사실 하지메 그 자신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마모토는 하지메의 유년시절 기억의 총 집합, 상실과 사랑으로 대변되는 지난 세월을 압축한 향수인 셈이다. 안정적이고 단단한 결혼 생활을 누릴 뿐 아니라 장인에게 물려받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인 하지메가 이토록 정신없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 아마 시마모토는 그가 지독히도 그리워한 과거 혹은 이루지 못한 꿈인 듯 싶다.

작품에서 국경의 남쪽은 멕시코 농부들이 매일 일구는 땅을 상징한다. 그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 밭으로 가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는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연한 벌판의 지평선에서 불타오르는 황혼을 넋 놓고 바라보던 한 농부가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하지메도 시마모토를 따라 아마 영영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친다. 그가 가는 길에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불타오르는 태양 속에서 그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글을 읽는 독자는 알 수 없다. 주인공 하지메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국경의 남쪽에 남는 것을 선택하니까.

다만 독자에게 남는 의문은 ‘왜 그가 돌연 국경의 남쪽에 머무르기를 선택하는가?’이다. 사실, 필자의 좁은 문학적 소견으로는, 꿈이 아닌 현실에 대해, 이상이 아닌 정착과 안정에 대해 노래하는 시와 소설은 많지 않다. 예술의 지평선은 대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서부터 펼쳐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 소재를 누구보다 사랑한 대가를 들어본 적 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프로스트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하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인은 길게 늘어진 자작나무를 타고 지상에서 하늘 위로 높이 오른다. 하늘은 ‘나’가 지구라는 안정적인 토대를 벗어나 꿈을 꾸는 곳, 상상하고 부풀어 가는 곳이다. 그런데 웬걸. 자작나무에 올라 하늘로 오르던 시인이 종국에는 지상이 더 좋다며, 이곳이야말로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며 지상에 머물기를 선언한다. 프로스트의 다른 유명한 작품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에서도 같은 정서가 엿보인다.

숲은 아름답고 어두우며 깊다. 그 깊은 곳으로 ‘나’는 들어가고 싶다. ‘나’에게 숲은 안식이자 환상,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기에 현실의 모든 것을 저버리고서라도 닿고 싶은 초월적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나’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말은 방울을 흔들며 까닭을 묻고 ‘나’는 이내 숲을 저버리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자작나무를 타서 오르고 싶던 높은 하늘도, 어두운 숲도, 그리고 태양의 서쪽도 모두 환상이다. 이들은 삶의 무의식이자 꿈이다. 작중 시마모토처럼 이 환상은 매혹적이다 못해 지나치게 강렬하여 현실의 단단한 토대를 버리고서라도 우리를 떠나고 싶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시와 소설에서 꿈을 꾸던 이들도 모두 지상으로 돌아가고, 가던 길을 재촉하며, 국경의 남쪽에 머무른다.

프로스트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환상에 가고 싶다.’는 환상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로버트 프로스트 모두 삶의 궁극적 결론을 현실에서 찾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아 판테온에 오른 것을 보면 결국 우리는 “태양의 서쪽으로 가지 않는다. 국경의 남쪽에 남아 현실의 밭을 일궈야 한다.”는 것을 많은 철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일련의 인생실험을 통해 이미 깨달은 것은 아닐런지.

꿈과 환상은 때로 환상으로 남을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나를 묶어두는 현실, 하루하루 열심히 일구는 남쪽의 밭이 실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든든한 지지대였음을 말이다.

매일 시간표에 맞춰 흘러가는 학교생활과 조각 맞추듯 완성해가는 한 해 한 해가 지겹다고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퇴근길 노을 풍경에 가슴이 뻐근히 저려오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무언가 그리워져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게는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전에 돌아갈 곳이 있다. 내일도 내가 가진 남쪽의 밭을 일구어야 한다.

학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조용하다. 언제나처럼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다 문득 운동장 한가운데 길어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일의 수업, 내일의 아이들, 내일의 학교를 더 아름답게 꽃피우리란 결심을 해본다. 같은 결심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남쪽 사람들에게도 이 글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