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3 가을호(252호)

[서평] 죽음 수업 두 번째 이야기
–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을 읽고

하정원(서울명신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 마음 깊이 공감하며 보았던 프로그램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VR(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가족과 남겨진 가족의 만남을 보여주며 감동을 전했다. 프로그램을 보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죽음의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은 때로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대하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주제는 다루기가 참 어렵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주제가 주는 무거움 때문에 회피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면 죽음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선명하게 알아야 지금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나를 사랑하고 기적처럼 주어진 생을 소중히 여기며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죽음을 피하고 싶어 노력한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진시황이 찾아 헤맨 불로초는 오늘날에 뉴럴링크와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되려 하고 있다. 이 기술은 인간의 생각을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뇌에 이식하는 것인데 완성되면 자신의 뇌 속 정보를 새로운 육체에 계속 갈아 끼울 수 있기에 영원한 삶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의 힘이 이루지 못한 진시황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

하지만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기술들은 아직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생각 끝에 찾아본 책이 바로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다. 이 책에는 33가지 죽음 수업이라는 말도 함께 붙어 있다. 죽음 수업이라니! 학교에서는 들어 보기 힘든 단어이다. 33가지의 죽음 수업을 통해 우리는 마지막까지 우아하게 그리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내과 의사이자 노인 의학 전문의이다. 그는 의사로서 여러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경험하며 괜찮은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33가지의 죽음 수업을 통해 그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통찰이 있듯이, 의료 현장에서 여러 죽음을 목격한 의사에게도 특별한 통찰과 견해가 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저자는 현재로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하고 있다. 인간의 세포는 50여 차례 분열된 뒤에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는데 이것이 바로 헤이플릭 분열한계이다. 우리 세포의 한계로 인해 더 분열하지 못하면 젊었던 세포가 노화해 결국 사멸한다. 저자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우리는 괜찮은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책은 여러 죽음들을 담담히 다루고 있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 특히 알츠하이머와 자기 결정권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의 어머니도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자는 울지 않았는데 기억을 잃은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평균 기대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알츠하이머병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나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아무르’가 떠올랐다. 노인이 된 후 자신의 자존감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 그 무력감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노년의 제한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치매에 걸려 나의 인식이 예전처럼 건강하지 못해 원하는 결정을 하지 못하면 어떤 감정이 밀려올까. 기대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 노년의 삶을 살게 될 것인데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되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생전 진술서, 생전 유언장을 써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의사 표현이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어떤 치료를 원하는지 자기 결정권을 미리 준비한 계획서인 것이다. 저자는 내가 원하는 치료와 죽음이 무엇인지 미리 고민해둘 것을 강조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치료와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아직 낯선 주제이기에 준비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수많은 죽음의 경우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 생의 끝도 생각해보게 된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기에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아직은 어렵지만 괜찮은 죽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름의 답을 찾아가 볼 생각이다. 학교에서도 죽음에 관한 주제가 성숙하게 잘 다뤄지길 기대하며 함께 고민해 볼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