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봄호(246호)

[선사고]쉼과 느림 속에서 무르익는
관계성의 승화, ‘선사인(sunshine)’으로
빛나는 선사고등학교

박거성 명예기자

존 듀이(John Dewey)는 학교가 학생의 삶의 전형적인 모습과 닮아야 하며 학교는 삶이 단순화된 형태의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속에서 학생들은 앞으로의 삶에 필요한 것을 ‘경험’ 하고 ‘실천’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을 위한 수업』의 저자, 마르쿠스 베른센 역시 ‘젊은 어른’ 인 학생이 교육의 주도권을 갖고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자유보다는 절제와 책임이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요즘, 학생들에게 ‘경험’과 ‘실천’을 보장하며 행복한 학교문화와 학생자치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선사고등학교 (교장 권재호, 이하 선사고)를 찾아보았다.

나누면 더 커지는 권한, 의결권이 명문화된 ‘교무회의’

“혁신 학교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학생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분과적인 수업과 활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상에 대한 고민과 그러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교육과정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그 교육활동을 이루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이벤트적인 수업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우리 학교가 지향하는 인간을 위한 교육과정을 구축하기 위해 전 교직원이 협력하는 학교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 김영혜 선생님(혁신부 대표)

선사고에는 부서 업무를 지시하는 부장 교사와 이를 따르는 기획, 업무담당 교사가 따로 없다. ‘배움과 돌봄의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지향하기에 설립 초부터 수평적인 교사 관계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교장→교감→부장→평교사 순서의 위계적 업무 조직이 아닌 평교사의 의견을 대표하는 대표 교사가 한 팀으로 존재한다. 대표 교사는 업무 부서의 수장으로 부서를 이끌어나가는 것보다는 함께 부서 업무를 담당하며 부서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부서원의 의견을 대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학년부 담임 업무와 기획 부서 업무를 철저하게 분리하여 교사 간 업무의 고른 분배를 중시하고 있으며, 2시간의 창체 수업을 담당하는 담임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담임 교사는 기획 부서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단순히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업무들을 추진할 때마다 사업의 시작부터 함께 고민하는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렇게 유연한 업무 조직을 갖추고 있어 비주기적으로 TF팀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소회의들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일찍 수업을 마치는 금요일에 실시되는 교무회의에서 학교 운영과 관련한 교사들 간의 대면 협의가 매우 중시되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수평적인 협업 분위기 속에서 교사는 학교 업무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를 통해 누가 어떤 업무를 맡게 되어도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한다는 믿음이 생겨 3년 업무 순환 원칙이 비교적 수월하게 지켜지게 된다. 또한 ‘그동안 해 오던 일이니 해야 한다’는 관습적인 사고가 아닌 지금 우리 학교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게 된다. 위에서 결정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께 결정하기에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지는 교직 문화는 ‘사회현안 프로젝트 수업’이나 ‘주제 통합 수업’ 등 학교에서 다양한 교원학습공동체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주제통합수업 교원학습공동체 모임>

<우공달(리는 부했고 지구는 라졌다.)(2021년 주제통합) 교원학습공동체 모임>

또한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개교 초창기부터 중요 현안들에 모든 교사들이 자유로이 안건을 제시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에 전 학년 전면등교와 같이 큰 책임이 따르는 결정들도 구성원들 간의 토의와 토론을 거쳐 뚝심 있게 결정할 수 있었다.

<교사 회의>

<학급회의록>

 

<교원회의 토론 자료 – 등교방식 결정>

2021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매 수업은 오프라인 수업 30분과 온라인 수업 20분을 혼합하여 오전에는 3학년, 오후에는 1, 2학년이 등교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학년 매일 등교수업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결정하고 실행하였다. 모든 선생님들의 긴밀한 협조가 없었다면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교무회의에서 단순히 업무의 공유가 아닌 다양한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한 토론과 토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예 2021년에는 전교원 ‘교무회의’를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사항을 의결할 수 있는 기구로 명문화하여 민주적인 학교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철학을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누면 더 커지는 목소리, 학생 퍼실리테이션 교육

“우리 학교에 와서 처음 느꼈던 것은 학생 자치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학생자치를 핵심 기조로 강조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자기주도성이 내재된 학생들을 많이 길러내고 있습니다. 지금이 11대 학생회인데 학생회 학생들도 작년에 했으니까 올해 또 해야겠다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학교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각 반에서는 어떤 것들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듣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행사 중심의 자치가 아니라 일상에 내면화하고 있는 역량을 발견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김유진 선생님(자치문화부 소속)

교사 자치는 자연스레 학생 자치로 확장된다. 학생들은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주체로 자율성과 동등성을 보장받는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의 1교시 2시간은 학급 자율 시간으로 보장하는 등 자율활동을 중시하고 있다. 창체활동시간에 자율활동을 실시하는 경우 일주일에 학급 자율활동이 4시간이 되는 주가 있는 등 학급 자율활동이 교육활동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급 회의의 결과는 학급회의록으로 작성되어 대의원회의나 3주체 포럼 등 다른 회의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학급 퍼실리테이션 활동>

<학생 퍼실리테이터 교육 모집 공고>

회장, 부회장 중심으로 몇 명이 주도하는 학급 회의가 아니라 학생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학급 회의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학생 퍼실리테이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교육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상대적으로 퍼실리테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교육 기간에 학급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모으며 교사와 친해질 수 있는 활동을 조직하고, 다양한 퍼실리테이션 기법과 절차들을 익힐 수 있도록 기획한다. 이후 매년 3월에 각 학급에서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싶은 학생들을 모집하여 정기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회복적 서클 학급 활동>

학급 당 모둠 수를 고려해 6명 정도를 권장하며 학년별로 50~80명 정도를 선발하여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듣도록 한다. 학급 회의가 주 2회 정도 고정적으로 열리기에 퍼실리테이터들은 학급에서 충분히 토의를 경험하며 자신의 역량을 계발할 수 있다.

나누면 더 즐거운 학교, ‘3주체 생활 협약1’ 등 다양한 의견 표출 창구

“3주체 생활 협약 포럼을 준비하며 학부모 대표, 학생 대표, 교사 대표가 기존 약속의 중요도와 약속이 잘 지켜졌는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추가하고 싶은 항목이 있는지 등을 조사합니다. 학년 초부터 준비 과정을 거쳐 1학기가 마무리 될 때 설문조사를 근거로 문구를 수정하거나 보완합니다. 만들어진 생활 협약은 교사회의에 발의한 뒤 확정 과정을 거치거나, 학생들의 찬반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에너지를 쏟고 무엇인가 기획한 것을 학교에서 받아 들여 주는 과정 자체가 학생들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고 느낍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이러한 만족감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주 선생님(인권상담안전부 대표)

선사고는 개교 초부터 ‘ㄷ자 구조’로 교실을 디자인하여 학생 참여형 토의, 토론 수업을 강조하며 차별을 지양하고 인권을 강조하는 학생 자치를 지원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이 학부모, 학생, 교사가 생활 협약을 다짐하는 ‘3주체 생활 협약 포럼’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모든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지켜야 할 약속들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최근 들어 학급회의와 대의원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합하고, ‘3주체 생활 협약 포럼’에서 문구를 작성한 뒤 다시 학급회의나 교무회의 등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주체의 협약을 승인하는 대의적 방식으로 한시적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학년 초부터 반복된 학급회의를 통해 ‘생활 협약’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기에 우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된다.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교사-학생 간담회’ 역시 선사고의 개방적인 학교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행사이다. 학생이 다른 교육 주체들을 초대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에 있는 다양한 개선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화를 하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자칫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불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갈등의 씨앗을 누구라도 먼저 이야기하고 해소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의견개진의 창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

“구성원들이 다양한데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양한 생각의 구성원들이 토론과 협의 속에서 어떤 하나의 방향을 정했을 때 같이 갈 수 있는 문화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으로서 올해 선생님들을 보는 것이 좋았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그런 학교를 보고 높은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올해는 구성원들이 1/3 이상 바뀌게 되는데 올해 교육의 방향을 우리가 정해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원들과 같이 협의할 부분입니다.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선사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권재호 교장선생님

<3주체 생활 협약 일정>

 

<교사–학생 간담회 자료①>

<공동체 생활 협약–교사>

<공동체 생활 협약–학생>

<교사–학생 간담회 자료②>

선사고 권재호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에게 ‘권셰프’란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일종의 공유 주방인 ‘선사의 부엌’에서 협의회를 진행하거나, 학부모 간담회, 대안 교실인 ‘아름다운 교실’ 등을 운영하며 솜씨를 발휘하곤 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함께 참여하며 행복할 수 있는 활동을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를 이러한 애칭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수업나눔카페’에는 다양한 교원학습공동체의 수업계획표와 언제나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션에 필요한 각종 교구재들이 놓여있다. 이와 더불어 학교 곳곳에 위치해 자유로운 어울림의 장이 되는 홈베이스 역시 학생들의 행복한 경험을 위해 다양한 교육의 주체들이 협업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즐거운 공간,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선사고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어사전에 자치(自治)란 ‘「2」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이라는 뜻보다 앞에 ‘「1」 저절로 다스려짐’이라는 뜻이 먼저 실려 있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존중하고, 누구라도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열려있다면 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선사의 부엌>

 

<홈베이스>

 

<수업나눔카페>

  1. 3주체 생활 협약은 교육의 3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공동으로 규정을 정하고 자율적으로 책임지는 약속이다. 2011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수평적인 상호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각 주체들이 자주적인 자정능력을 키우며 소통하는 선사고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는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