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3 가을호(252호)

[수기] 조식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하루!

김나래(선일여자중학교, 교사)

우리 학교 5층에는 ‘꿈둥지’라는 학생 복지실이 있다. 원래 교실 1/3 크기 만한 작은 공간이었는데, 작년에 공간 재구성 사업을 하면서 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교실 2개 크기에 주방을 갖춘 멋진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멋진 공간이 생겼으니 이 공간을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조식 시범 학교를 운영하면 어떻겠냐는 교장 선생님의 제안이 있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걱정도 많이 하시고, 우려도 많았는데, 한 학기가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식 사업이야말로 학생들이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게 되는 선물과 같은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조식 사업은 기존에 사회 배려 계층 학생들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지역사회전문가 선생님께서 담당하고 계시던 사업이었다. 특정한 대상의 학생들만을 위한 사업이다 보니 비밀 유지가 중요했는데, 종종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아서 학생들이 낙인 효과로 인해 참여율이 저조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니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전교생의 1/3 정도가 매일 참여하는 사업이 되었다.

아침 메뉴는 간편식으로 주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와플, 소떡소떡, 핫도그, 주먹밥 등이 제공된다. 이 사업을 담당하시는 진로복지상담 부장교사의 전공 과목이 기술·가정인 것이 또 신의 한수였다. 본래 전공을 살려 다양한 메뉴와 플레이팅으로 아침을 근사하게 대접받는 느낌이 들도록 준비를 해 주신다. 나도 가끔 5층에 올라가서 도와드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의 메뉴 선정과 또 그것을 정말 맛있게 내어놓는 솜씨를 보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 학생들도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정성껏 준비해 주신다는 걸 알고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소문이 나다 보니 학부모님들께서 제일 만족해 하시고, 선생님들께 고마워 하였다. 선생님들께서 학교 업무로도 바쁜데 조식까지 신경 써 주시니 업무를 좀 줄여 드리고자, 학부모님들께서 조식 사업에 직접 봉사를 하고 싶다고 제안해 주셨다. 하지만 현재 우리 학교는 진로복지부장 선생님, 지역사회전문가 선생님, 학교 지킴이 선생님 그리고 교장, 교감 선생님 5분께서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 없이 오롯이 조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감있는 사업 진행으로 인해, 처음에 반발이 있었던 선생님들의 불만도 없어졌고, 특히 조식 사업으로 인해 지각생 수가 줄어들어서 이제는 모두 조식 사업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맞벌이를 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아 학생들이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학교 매점도 없어져서 학생들이 오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웠다. 조식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학생들이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하루를 시작하니 오전 수업 시간에 집중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말할 때 정말 뿌듯하고 기뻤다.

조식 사업을 한 달여 정도 진행하고 나서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참여한 학생들의 90% 이상이 조식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 한다고 답하였고, 특히 조식을 준비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진솔한 소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전에는 아침마다 일찍 학교에 오는 게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 조식 메뉴는 뭘까?’ 기대를 하며 부푼 마음을 안고 학교에 온다는 아이들의 소감문이, 교사에게는 힘든 조식 사업이지만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조식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우려했던 점은 학교가 가정이 아닌데 돌봄의 개념인 조식까지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침밥은 가정에서 부모님과 얼굴 맞대고 먹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는 청소년기 자녀를 키워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아침밥을 꼬박꼬박 먹던 녀석이 고학년이 되고 나니 갑자기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침밥 먹는 시간보다 아침잠을 선택하겠다고 했으며, 엄마의 아침밥 대신 학교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성스럽게 아침밥을 준비하고 고민하던 나에게는 무척 충격이었지만, 이것 또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아침밥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생각났다. ‘우리 학교 아이들도 우리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구나.’하고 말이다. 물론 아이들마다 가정환경이 모두 다르고 워낙 다양해서 나의 사례를 일반화할 순 없지만, 아침밥은 가정에서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변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친구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정에서 부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아침밥을 먹기보다는 친구들과 만나서 학교에 와서 조식을 먹는 게 더 좋을 수 있다고 말이다. 거기에다 정말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조식을 먹을 수없는 학생이 학교에 와서 아침밥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해결하기까지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조식 사업의 당위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식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력 문제뿐만 아니라 예산의 문제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오늘도 조식을 먹으면서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 사업이야말로 지속해야 할 숙제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꿈둥지에 와서 조식만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인사하며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과 교우 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편하게 이야기할 때가 많다. 그야말로 조식당이 아침 상담실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조식을 통해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 사업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