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3 겨울호(253호)

[테마별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 Ⅳ ]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
나는 이제 ‘P’에서 ‘J’가 된다

왕회정(세종과학고등학교, 교사)

나는 ESFP이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많은 사람들은 나를 외향적이고 현실적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요즘은 MBTI 유형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의 성격을 가늠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질문이나 유형 자체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나의 MBTI 유형 중 ‘P(인식형)’는 상황에 따라 목표와 방향을 융통성있게 수정해나가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생활 양식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방학 중의 내 모습을 반영한다. 학기 중에 쌓인 피로를 무념무상의 생활과 함께 날려버린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책임감은 무작정 나를 ‘P’로만 살게 두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나의 수업에 대한 반성으로 각종 연수에 참여한다. 연수는 나의 게으름을 고쳐주는 특효약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구나’를 다시금 깨닫고, 새로운 수업·평가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나의 DNA 속 ‘교사’ 유전자가 ‘TURN ON’된다. 그렇게 『2월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이 시작된다. 이 시기가 되면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J(판단형)’가 된다. 목표와 방향에 따라 계획을 세운다. 기저에 깔린 ‘P’가 언제든 불쑥 나타나 계획을 미룰 수 있기에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을 구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동연구가 시작된다.

신학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에는 나의 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 공립학교의 경우 새로이 오신 선생님들과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고, 올해는 무슨 과목을 담당하고 어떤 학생들과 1년을 어떻게 함께 보낼지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하다. 그래서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에는 매우 바쁘다.

최근에는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에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직무연수로 인정해준다. 그런 만큼 감사하게도 연수를 준비하는 연구부에서 최근 교육 이슈나 교수·학습 및 평가와 관련된 강의, 각종 협의회 및 교원들 간의 토의, 교원학습공동체(교학공) 구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신다. 대표적으로 이 세 가지를 잘 활용하면 1년의 수업 구상에 큰 도움이 된다.

수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교수·학습 및 평가 관련 강의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 중 기억에 남는 강의는 백워드 교육과정 설계와 인공지능(AI) 활용 수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2015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백워드 교육과정 설계에 따른 과정중심평가 및 수업 계획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다른 연수를 통해서도 해당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이때까지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 강의식 수업이 주를 이루던 내 수업을 바꿔보고자 했던 나에게 이 강의 내용이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백워드 설계를 통해 과정중심평가와 그에 맞는 수업을 실천해보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AI 활용 수업에 관한 강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작년에 접하였다. 정보 교과 교사 출신의 교수님이 AI에 대한 개념부터 AI를 이용한 실제 수업 사례까지 정말 쉽게 설명해주셨다. 당시 증강현실(AR) 콘텐츠 제작 수업과 같이 정보 관련 기술을 활용한 융합 수업과 관련 연수에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AI를 이용해 어떤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동교과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한 관심과 수업 연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일부 학교의 경우 전체 교사 대상 이외에 교과별로 교수·학습 및 평가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교과별 강의 연수에 강사로서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과만의 특징에 맞는 수업·평가 사례에 선생님들께서 많은 관심을 보였고 질의응답을 통해 토론의 장이 되었다. 각자의 수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나의 수업에 대해 토의하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1차 교과별 협의회를 통해 수업배당표를 작성한 뒤 이와 같은 교과별 교수·학습 및 평가 강의 연수를 진행하고, 이후 평가 및 수업 설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면 선생님들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덧붙여져 1년 교육 활동의 큰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생각한다.

짝꿍 교사와의 소통의 시작이 되는 교과 협의회

교육 활동의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한다면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의 교과 협의회일 것이다. 이 협의회에서 내가 1년간 가르칠 과목과 시수, 학년, 짝꿍 교사는 물론,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 결정된다. 내 전공인 생명과학의 경우 학급 수와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2~3과목을 담당하게 되므로 이 시기의 결정 사항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짝꿍 교사와 수업 방식 및 평가 방법에 대해 조율하고, 공립 학교의 경우 새로 오신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의 학습 수준 및 태도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일반고에서의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2학년 대상 생명과학Ⅰ(4학급)과 1학년 대상 과학탐구실험(4학급)을 담당하였고, 짝꿍 교사는 각각 1명과 2명이었다. 운이 좋게도 생명과학Ⅰ 짝꿍 교사는 직전 해 같은 과목의 짝꿍 교사로 손발이 척척 맞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과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였다. 작년 수업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과정중심평가를 고안하고자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신학년 시작 후에도 여러 번의 토의를 거치며 다듬어 나갔다. 짝꿍 교사와 수업 계획을 공유하기 위해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하여 학급별 수업 시수와 수업 진도표를 만들었다. 또 당시 학년 초에 학생 참여 중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 있을 경우에는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통해 수업 일정과 평가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과학탐구실험의 경우 다른 전공의 선생님들과 함께 하였다. 역시 찰떡궁합이었다. 평가는 수행평가 100%로 계획하고, 성취기준에 맞는 다양한 소재의 활용과 실험 편성이 가능한 만큼 평가 영역에 따른 수업 내용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다. 이때 의견 제시에 소극적인 선생님들을 위하여 수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어떠한 아이디어라도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취기준과 실험실 환경, 통합과학과의 연계성, 학사 일정 등을 고려하여 수업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재구성하여 1년의 수업 활동을 간략히 조직하였다. 백워드 설계에 따라 성취기준에 따른 평가 계획과 수업 내용 선정이 모두 이루어지면 이상적이겠으나 현실적으로 수행평가 100%인 과목에서는 쉽지는 않다. 성취기준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위주로 결정했다. 그리고 수업의 구체적인 구상과 활동지 및 채점기준표 제작, 예비실험 등을 위해 공강 시간을 이용한 주 1회 모임을 약속하였다.

자발적인데 강제적인 성장을 도와주는 교원학습공동체

‘P’인 내가 계획적인 교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메타인지를 통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고, 이를 통해 계획을 강제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선택했다. 교원학습공동체(교학공)가 그것이다. 과학과 교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업·평가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눌 선생님들을 모집했다. 같은 과목 담당 선생님들이 주를 이루기는 했으나 과목별 모임을 넘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수업과 연계하는 등 사고 확장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서로의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아이디어에 대한 경험을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더불어 교학공 직무연수를 신청하여 월 1회의 정기적인 모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자발적 강제성을 부여하고 우리의 활동을 기록하며 서로가 성장하는 기회로 삼았다.

신학기 준비기간에 시작된 교사의 공조는 학기 중에도 계속된다

교사의 공조는 학기 중에 더욱 활발해진다. 같은 과목을 하든 다른 과목을 하든 지속적으로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나누는 것은 서로 간에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 향상은 물론, 전문가로서 교사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당시 학교에서는 같은 과목에 대한 교사별 수업 방식이나 내용의 차이가 많을 경우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학생 중심 수업과 과정중심평가는 교사에게 이러한 부담을 조금 더 안겨 주었다. 학기 내내 수업· 평가 계획에서의 치밀함이 필요했고, 학사 일정 및 상황에 따라 계획을 변경해가며 학생 중심 수업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했다. 주 1회 이상 만나 수업 내용과 학습지 및 보고서 구성, 채점기준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예비 실험, 수업 관련 영상 제작 등을 틈틈이 진행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해당 과목의 수업·평가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지 않도록 조율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의 높은 참여로 이어졌고, 과학교과 학습과 수행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낮추고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높였다.

과학과 교사 중심의 교학공은 각 과목의 평가계획과 학습지, 교수₩학습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수업 지도안 공유와 수업 공개를 통해 상호 피드백을 하며 수업·평가에 대한 시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특히 지속가능한 생태전환교육을 테마로 채식 및 업사이클링 체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심어주기 위한 수업에 대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다. 멸종위기종 AR(증강현실) 콘텐츠 제작과 기후 위기 관련 독서활동, 기후행동 실천, 양말목과 바다유리를 이용한 업사이클링 등을 구상하고, 과목별로 수업에 적용한 후 각자의 소감과 수업에 대한 제안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작심일년이 되는 공조를 시작해보자!

교사에게 2월은 새로 시작(리셋, reset)하는 시기이다. 때로는 한해 동안 정들고 익숙해진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생들과 함께 시작한다는 부담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새 다짐과 함께 내가 실패했거나 해보지 않았던 무언가를 사람들과 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월 동안 1년 계획을 잘 설계해서 ‘올해는 무슨 일이 생길까?’라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올해는 무엇을 해볼까?’라는 능동적인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혼자보다는 주변 선생님들과의 공조를 추천한다. ‘P’들이여, 공조를 통해 ‘J’가 되어 작심삼일을 작심일년으로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