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3 겨울호(253호)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고]
고교학점제, 잠든 학생을 깨워서
스스로 꿈꾸게 하는

이세주 명예기자

카메라에 담긴 교실 안과 학교 밖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두 편1은 학교의 안팎을 여과 없이 비추었다. 카메라에 담긴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잠들어 있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려 애쓰는 학생이 더러는 있었으나 많은 학생은 아예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책상 위에 엎드린 상태였다. 잠든 학생을 깨워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교사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기록한 이 영상은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다른 카메라는 학교 바깥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았다. 그곳은 ‘대한민국 사교육 일번지’라고 불리는 학원가였다. 우스갯소리로 편의점, 패스트푸드 매장, 학원, 오로지 이 세 곳밖에 없다는 이 지역에서 학생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오직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가정 환경과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벌어지는 교육 격차의 불편한 진실을 추적한 이 영상은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반성하게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이며 우리 학교의 맨얼굴이라면 지나친 비관일지도 모르겠으나,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임은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등학교 현장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 2025학년도부터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하는 ‘고교학점제’가 바로 그것이다. 새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목적은 현재 학교 현장이 직면한 문제를 타개하고 교육의 질을 고양하기 위함일 터, 2021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를 운영 중인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이하 동대부여고, 교장 민보경)를 찾은 이유다. 고교학점제가 교실에서 잠든 학생을 깨워서 스스로 꿈꾸게 하는 제도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고교학점제의 원활한 도입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일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기존 제도와 관습에 익숙한 조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학교는 그 성격상 체제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강한 조직이기에 학교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하는 일 역시 녹록지 않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과 제도를 도입하려는 취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동대부여고는 고교학점제 연구·선도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고교학점제의 정의, 도입 배경, 필요성, 운영 단계, 기대 효과 등에 대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왔다.

우선 제도의 혜택을 직접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가 무엇인지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학생이 본인의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교과목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이수하여 누적된 학점이 기준에 도달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상반기에는 개별 학생을 대상으로 전공 적성 검사를 한다. 하반기에는 학생이 자신의 희망 진로와 전공에 기반해 수강 과목을 선택하는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이는 다른 학교가 시행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동대부여고의 특별한 점은 모든 교사가 학생의 과목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교육과정 전담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교육과정 업무 담당 교사와 학년부 담임 교사의 개별 상담이 일과 중에 수시로 운영되는 것은 물론이요, 부족한 상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대부여고 교육과정 품앗이’라는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24시간 실시간 상담도 이뤄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학교에서 직접 제작하여 전교생에게 배포하는 『선택과목 안내서』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디자인도 섬세하게 구성했다. 한마디로 누가 봐도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들어 가독성을 높이고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다음으로 학부모를 대상으로 선택 과목에 대한 설명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해 고교학점제의 도입 배경과 취지 및 세부 운영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학생이 학교에서 과거와 같이 단순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개척해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 개척 역량을 신장하기 위해 도입되는 제도임을 역설하며 학부모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교사. 교사는 새로운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주체다. 다른 한편으로 교사는 학교의 완고한 조직 문화와 익숙한 관습에 젖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주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동대부여고의 교사 대부분은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운영에 발 벗고 나섰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교육과정, 학생의 진로 역량을 키워주는 수업, 학생 맞춤형 교육을 통해 깨어 있는 교실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모든 교사가 힘과 뜻을 모았다. 여기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긍정적 반응, 공교육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교사의 공감대 형성, 그리고 학교 관리자의 든든한 지원과 행정적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대부여고 교사들은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인 ‘CDA 전문가 되기’를 구성하고 알차게 운영해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고교학점제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 업무를 재구조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교무부, 연구부, 학생부 중심의 세 축으로 이뤄진 일반적인 학교 업무 구조를 교육과정 중심의 업무 구조로 재편했다. 학교 업무 재구조화를 위한 ‘교육과정 TF팀’을 구성하고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교육과정 전담팀이 운영될 수 있었으며 학생의 진로 및 학업 설계 지도를 위한 교사 간의 원활한 협업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에 따라 담임 교사는 학생의 진로 및 과목 선택에 대한 이해를 돕고 과목별 학습 방법을 코칭하며 학업 성취 및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안내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과 교사는 사전에 교과목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개별 학생의 학업 설계 및 이수 과정을 지도하며 최소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보충 지도한다. 고교학점제에 기반한 진로 교육을 총괄하는 진로전담교사는 담임 교사와 긴밀히 협력하여 교육과정과 연계된 학생 맞춤형 진로 설계 상담을 강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무엇보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 지정하는 과목을 최소화하고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을 최대화한 교육과정으로 편성해야 한다. 실제로 동대부여고의 교육과정에는 교사 수급을 비롯해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설정하는 ‘교과(군) 칸막이’가 전혀 없다. 교육과정을 완전히 개방한 상태에서 학생들이 듣고 싶은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론 교사는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기 전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입시 제도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를 권장한다. 또한 등급과 성취도를 고려해 특정한 과목으로 학생들의 선택이 몰리는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학년별로 개설된 과목의 학점을 동일하게 편성하는 노하우도 발휘한다. 예컨대 2학년 선택 과목은 모두 2학점으로, 3학년 선택 과목은 모두 3학점으로 편성하는 것이다. 소인수 과목을 개설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폐강하지 않고 연구·선도학교 예산을 활용하여 강사를 채용해 수업을 운영한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은 온전히 보장된다.

한편,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은 자신이 속한 학급에서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과목에 따라 이동하며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학교 공간의 혁신, 과목 특성에 따른 교실 디자인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동대부여고는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를 운영하면서 1학년 필수 이수 과목을 포함해 모든 교과를 이동 수업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행정 학급 중심 교실을 교과 수업 중심 교실로 바꾼 이유다.

우선 이동하는 학생의 동선과 편의를 고려해 홈베이스를 마련하고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휴카페를 설치했다. 매 시간마다 이동해서 수업을 받아야 하므로 행정 학급에 장시간 머무를 수 없는 학생을 위한 배려다.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한 도서관에서는 독서, 자료 탐색, 자기주도학습, 과제 탐구 활동 등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AI교실과 스마트교실은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한 교수·학습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거기엔 노트북, 스마트캠, 드론, RC카, VR기기 등이 구비되어 있어 IT기술을 활용한 교육이 가능하다. 진로활동실에서는 다양한 진로 탐색 활동을 비롯해 진로 진학 및 과목 선택과 관련된 상담이 언제나 이뤄지고 있다. 교사의 수업 연구와 수업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공간으로는 수업나눔카페를 설치해 교사들이 수업에 대해 동료 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교 업무의 재구조화, 학생 선택을 온전히 보장하는 개방형 교육과정, 교실 공간의 변화 등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고교학점제의 성패는 사실상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수업과 평가의 변화에 달려있다. 학교 공간과 교육 제도가 완벽히 혁신되어도 그 안을 채우는 내용, 그러니까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수업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앞선 변화는 큰 의미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대부여고는 고교학점제 도입 목적에 맞는 수업의 내실화, 평가의 다양화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2월에 있는 신학년 집중 준비 기간을 활용해 과정 중심 평가, 성취 평가 관련 연수를 충실하게 진행한다. 평가 전문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평가 방법의 다양화를 모색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평가와 관련된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가 구성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교원학습공동체에 속한 교사들은 언제나 교실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있으며 수업에 대한 동료 교사의 피드백을 통해 수업의 질을 제고한다. 또한 학년 초에 학교 자율 교육과정에 대한 연수를 진행하여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교과 교사가 협력하여 진행하는 교과 간 융합프로젝트 수업을 구성해 운영한다. 한국사, 통합사회, 영어 교사가 협력하여 학생들이 우리 문화유적지에 대한 홍보 자료를 제작하는 수업을 예로 들 수 있다. 미술 시간에 ‘테이핑 아트’를 제작하고 통합사회 시간에 ‘저출산 현상 극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윤리와 사상 시간에 ‘나만의 철학 사전’을 만드는 것 또한 블렌디드 수업이 활성화된 결과이다.

여기에 더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우선 ‘자기 이해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잠재력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후 ‘나만의 교육과정 만들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안내한다. 나아가 학생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다양한 특강을 개최하고 해당 분야의 직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진로 체험도 운영한다. 아울러 총 6차시에 걸쳐 진행하는 ‘고교학점제 이해 진로캠프’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찾고 교과목을 선택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고등학교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입시다. 대학 입학이 고등학교 교육의 절대적 목적은 아니지만 입시를 경시한 채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는 어렵다. 특히 올해부터 학생부 기재 항목이 대폭 축소되고 대학에 제공되는 학생에 대한 정보도 줄어들었다. 따라서 입시를 염두에 두고 학교 교육과정을 전략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동대부여고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을 위해 진로 및 전공과 연계된 과목을 선택하고 충실히 이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진로 방향에 부합하고 전공 적합성을 높일 수 있는 학업 계획을 수립한 뒤, 교과 수업 시간에 그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탐구 활동을 하도록 안내한다. 또한 교내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진로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는 학생이 탐구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속적이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 결과를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개별화해 기록한다.

잠들었던 교실이 깨어나는 공간으로

동대부여고에서 고교학점제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의 이와 같은 고백은 어쩌면 새롭게 도입될 제도의 핵심을 간파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고교학점제란 수업 시간에 잠든 학생들을 깨워서 수업의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것, 교사의 목소리만 반향 없이 울리던 고요한 교실이 학생의 참여와 반응으로 소란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 궁극적으로 학생으로 하여금 잠들지 않고 스스로 꿈꾸게 하는 것이라고. 이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둔 학교와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1. EBS 다큐프라임, <다시, 학교 8부, 잠자는 교실>, 2020년 1월 21일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qBv9iKR5oHc)
    EBS 다큐멘터리K, <교육격차 1부, 격차의 조건>, 2023년 8월 26일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_h5SVNcp898&t=49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