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가을호(248호)

[한서고] 배움이 느린 학생을
위한 정성스런 응원,
방과후 프로그램

박거성 명예기자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학습부진학생, 기초반, 기초학력반, 디딤돌반, 서울 두드림학교 사업 등은 조금씩 초점은 달랐지만 수월성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적합한 교육을 받고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며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잠재능력을 발현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에게 자원과 관심을 집중하기 쉽고, 자신의 능력보다 어려운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제 고교학점제에서도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학생들의 기본학력을 책임져 주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학생들이 교과 수업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수업을 이수하고 졸업할 수 있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학생들이 학업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하여야만 해당 수업을 이수하고 이수 학점을 채워야만 졸업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에서는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를 통해 학생들의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학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서 다양한 과제들과 더불어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수준별 방과후 프로그램과 정서 지원 프로그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한서고등학교(이하 한서고, 교장 김종희)에서 기본학력 보장을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교 풍토 조성을 위한 다중지원팀의 노력

학교에서 교과 교사의 가장 큰 정체성은 ‘수업’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교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수업 진행의 방식에서 교사들은 더 많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중등교육 기관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이 학생 ‘선발’과 ‘상급 학교 진학’이라는 점에서 수업은 ‘수월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학력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책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이를 중요시하는 공감대와 분위기일 것이다.

2019년에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이후 다양한 핵심 연구과제를 수행해 온 한서고에서는 기본학력 책임지도제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선정하기 위한 다중지원팀 모임은 교원학습공동체를 기반으로 정례화되어 있다. 다중지원팀에는 11명의 교사가 소속되어 있는데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학교 관리자와 총괄 부장 이하 모든 선생님들이 다중지원팀의 취지와 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선정하고 관리하는 데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참여하고 있다. 특히 학습지원대상학생들을 선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선발된 학생들이 실제 방과후 프로그램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수업을 참관하거나, 사제동행 멘토링 활동에 멘토 교사로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교육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방과후 프로그램 동료장학이나 수업 부적응 학생에 대한 고민을 쉽게 나눌 수 있는 풍토가 형성된 것이 한서고의 가장 주요한 강점으로 뽑힌다. 이러한 풍토는 학생들의 학교와 수업에 대한 만족도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더욱 토대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학습지원대상학생 선발

보통 학교에서 입학 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참고하여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선정하는 데 반해 한서고에서는 2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실시한 진단평가 결과를 활용하여 미리 대상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후 3월에 개학하자마자 담임교사나 교과 교사의 관찰 내용을 바탕으로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선정하여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2월에 대상자를 미리 선정하여 3월 2주차부터는 바로 방과후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어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채워 줌으로써 학생들이 정규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서고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2학년 학생 선발도 신학년 시작 후 학업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새롭게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1학년 때 선정된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참여하되, 1학년 때의 교과 성취도를 고려하여 새롭게 지원할 학생을 신학년 시작 전에 추천하는 등 학년초부터 최대한 빠르게 기본학력 보장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이렇게 미리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지원대상(학업성취율 40% 미만)에 해당되지 않지만 경계선에 위치한 학생들에 대한 정보들이 교사의 면담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는 등 선제적인 학생 관리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이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방과후 프로그램: 적절한 형성평가의 활용

일반 교과 수업보다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에서는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도 다양한 교수 방법을 동원하여 보다 쉽게 가르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학습 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메타 인지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학습 과정을 좀더 면밀하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서고에서는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매 수업 형성평가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형성평가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배워야 할 학습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스스로 습득하였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되며, 수업에서 제시된 학습량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달성하고자 하는 경쟁심이 자극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어 방과후 프로그램에서는 ‘클래스 카드’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평소 암기한 단어 학습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확인하거나, 수업 시간에 스피킹, 매칭, 크래시 등의 게임을통해 학습한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또한 제한 시간 내에 발음을 듣고 단어 맞히기, 사진을 보고 해당되는 단어 맞히기 등 랜덤으로 각각 다르게 출제되는 퀴즈 배틀은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학습 내용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수업 이후에는 ‘자기 점검 일지’를 작성하며 학습한 읽기 자료에서 어려웠던 부분, 개별 진도 상황,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격려와 반성의 이야기를 짧게 쓴다. 이처럼 다양한 평가 방식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생 수준별로 세분화된 수업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고, 적당한 수업량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A반(학업성취율 20% 미만)과 B반(학업성취율 20% 이상 40% 미만)으로 이원화하여 운영한 것 역시 한서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학력 보장 프로그램은 한 차시에 많은 수업 내용을 넣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학생들마다 선수 학습 내용의 이해 정도가 달라 단순히 학업성취율 40% 미만의 학생들로 단일 그룹을 형성하면 수업의 효과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학습지원대상학생들도 A반과 B반 두 수준으로 세분화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수업의 효과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같은 반에서도 학업성취에 차이를 보이는 학생들이 있는 경우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개별화 학습이 일어날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 수업에서는 ‘구문 분석’과 ‘문제 풀이’ 활동에서 해당 문제를 완벽하게 푼 학생에게 마스터 권한을 부여하고 권한이 있는 친구에게 전담으로 배울 수 있는 동료 교수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가이드를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준다.

<방과후 기초반 수업>

다양한 정의적 영역 관리

한서고에서는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학생들이 정서적인 지지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꼽고 있다.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는 학생들의 긍정적인 자기 인식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기에 학생들에게 유능감과 목표의식을 심어 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면 학생들의 삶이 다면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서고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작은 양말 선물과 간식을 나누며 소속감을 다지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참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프로그램의 활동 취지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들을 나누고 목표를 공유하며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했다. 한서고에서는 이처럼 학생들에게 즐거움과 만족감 그리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고민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기본학력 보장 방과후 프로그램 담당 교사들은 교과 수업 이외에도 학생들의 멘토로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시험 기간 이후에는 영화 단체 관람을 하며 학생들과 멘토 교사들이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학기에는 사제 동반 등산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사제 동행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멘토 교사들과 계속해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이렇게 형성된 친밀감을 바탕으로 시험기간 이후에 수시로 상담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문제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학기 말에는 다양한 멘토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한서고 졸업생 출신 대학생 멘토들을 섭외하여 교내에서 멘토링 활동을 실시하였다. 대학생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학습 방법이나 명확한 목표의식에 대해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과 진로에 대해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감상 체험활동>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를 거쳐 올해부터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로 지정된 한서고에서는 앞으로 기본학력 책임지도제를 준비하는 교육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미리 겪으며 해결책들을 연구하고 있다. ‘공교육의 최후의 보루는 교사이다.’, ‘기본학력에는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 교사가 학생들을 일관성 있게 따뜻하게 바라본다면 학생들은 변화하게 된다.’는 우직한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정성이라면 변화시키지 못할 학생이 있을까? 한서고에서 본격적으로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시작한 작년 1학기에 비해 2학기에 학업성취율 40% 미만 학생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감소하였으며, 방과후 프로그램에 추가로 참여하길 희망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학교가 뒤처진 학생들을 내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열정적인 모습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방과후 프로그램에서도 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 선생님이 더 좋아졌습니다.”와 같이 프로그램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학생들의 반응은 교사의 지속적인 정성과 노력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중학교로 학교 홍보를 나갈 즈음 고등학교 홍보 담당 선생님이 자연스레 품는 질문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보통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 우수한 졸업생, 진학률, 교육환경을 홍보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우수한 학생을 위한 학교의 노력만이 강조된다. 그렇지만 이제 고교학점제의 도입으로 모든 학생들이 수업을 모두 정상적으로 이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학생들의 기본학력을 책임져 주기 위한 학교의 노력은 어떠한지도 평가받게 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기본학력 책임지도제의 도입이 학교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