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3 여름호(251호)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
학교라는 무대에서
모두가 주인공인 학생들

이세주 명예기자

학교가 ‘배경’이 되어버린 시대에

<SKY 캐슬>, <지금 우리 학교는>, <일타 스캔들>, <더 글로리>,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 방영된 드라마 제목이다. 이들 드라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요한 사건이 전개되는 공간이 모두 ‘학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시각에서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유독 의아하게 느껴지는 점이 하나 있다. 교실에서 교사가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성 교육을 위해 교사가 학생과 상담하거나 대화하는 장면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화면 속에 비춰진 학교에서 학생들은 옆에 있는 친구보다 더 높은 내신 등급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일쑤였다. 때로는 친구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거기엔 이렇다 할 이유가 없었다. 카메라는 이런 학교를 정물처럼 무심하게 비추었다. 교실에는 경쟁이 난무하며 학교는 폭력을 배태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덧칠되어 있다. 사회의 축도이자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가 이제는 학교를 소재로 만들어지는 서사에서조차 무대(Stage)가 아니라 배경(Background)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대가 되어주는 학교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고 간 지난 3년 동안, 학교 안에서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됐다. 온라인으로 수업하거나 격주로 등교하면서 학생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줄어든 까닭이다. 등교하더라도 교사와 학생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서로 표정을 읽고 마음을 헤아리며 소통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거나 성장기의 고민을 나누는 학생도 점점 줄어들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사와 학생이 언제나 깊이 있게 소통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학교가 있다. 선생님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섬세하게 상담하여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예방하는 학교, 학생들이 행복하게 생활하며 온전하게 성장하는 학교, 성북동 북한산 줄기에 자리 잡은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이하홍대부고, 교장 김헌재)가 바로 그곳이다.

홍대부고의 교육활동은 한 마디로 모든 학생을 학교라는 무대 위에 세워 주인공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홍대부고 모든 교사들은 오랜 기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상담 프로그램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전문상담교사가 주관하는 상담 및 이와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대부고의 특별한 점은 전문상담교사가 주축이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교사가 뜻과 힘을 모아 학생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학교를 학생이 주인공인 무대로 만들기 위해 홍대부고가 쏟고 있는 노력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홍대부고 김헌재 교장 선생님은 학교장 경영관에 “학교폭력 예방과 생명 존중 등의 각종 교육을 통해 건강한 학교 환경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이는 모든 폭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학생의 건강과 생명을 존중하여 학생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니며 꿈을 찾아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통한다.

이를 바탕으로 홍대부고는 올해 두 가지 중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는 학생의 진로·진학 역량 강화다. 둘째는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안전한 학교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사업은 선후를 따지거나 경중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해야 진로를 발견할 것이며, 진로를 설정해야 학교생활도 의미 있고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등교 시간에 학생들을 정문에서 맞이하고, 교장 선생님은 점심시간 급식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의 분위기는 즐거워진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닫혔던 마음도 쉽게 열리는 법,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놓인 두터운 마음의 장벽은 등교시간과 점심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얇아지게 마련이다.

한편, 홍대부고는 2021년부터 모든 학년이 등교 수업을 진행했다. 2021년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감염 위험이 엄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교장 선생님과 홍대부고 교사들은 학교 교육은 대면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명제를 확고히 붙잡고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전면 등교 수업을 추진했다. 또한 학생 및 학부모와의 간담회를 수시로 열어 학교 운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그 내용을 학교 운영에 실제 반영했다. 이를 통해 학교에 대한 학생, 학부모, 지역 사회의 신뢰도가 매우 높아졌으며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도 예방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홍대부고는 전문상담교사를 주축으로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한다. 일회성 행사를 지양하고 전문상담교사를 중심으로 모든 교사가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공부하는 모임인 교원학습공동체 ‘어울림과 함께하는 상담 연구회’에서는 학교폭력예방교육지원센터의 어울림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다. 올해는 국어, 체육, 정보, 사서, 보건 교사와 전문상담교사가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공유된 교과연계 학교폭력 예방교육 사례들을 활용하여,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보다 개별화되고 체험적이면서, 학교 특성을 고려한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또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6대 역량으로 ‘공감, 의사소통, 갈등 해결, 감정 조절, 자기 존중감, 학교폭력 인식 및 대처’를 설정하고 학생들이 이를 학교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교육한다. 이처럼 교육과정과 연계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 중심으로 진행되어 실효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면, 등굣길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실시한다. 학생회는 학생 눈높이에 맞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재미있게 진행한다. 인근 학교 학생들과 함께 ‘행복 수업’을 진행하고 ‘마음 튼튼 힐링 캠프’도 운영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한다. 홍대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기울이는 이와 같은 노력은 단지 학교폭력만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홍대부고가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며 협력적 인성을 함양한다.”는 목표 아래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와 덕목을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 반영해 운영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점이다. 다시 말하면, 홍대부고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돕는 교육활동을 진행하여 학생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무대가 되어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 튼튼 힐링캠프 포스터>

<마음 튼튼 힐링캠프 중 ‘찐행복 찾기’ 프로젝트 수업>

<마음 방역 힐링캠프>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학생들이

그럼 이제부터는 학교가 만들어준 무대 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차례다. 우선 홍대부고 학생들은 실천적 인성 교육을 통해 5행 5무, 즉 바른 인성을 함양한 학생으로 성장하기 위해 ‘인성 10개 덕목’을 배우고 익힌다. 학교생활 중 반드시 지켜야 할 예절과 실천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사, 효도, 성실, 배려, 겸손, 인사, 고운 말, 친절, 청결, 독서가 바로 그것인데, 이를 통해 배우고 익힌 덕목은 머릿속 지식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 다양한 실천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실천 사례는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동아리 ‘또래상담반’이다. 또래상담반 학생들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솔리언 또래상담 교육을 이수해 친구들을 상담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습득한다. 이후에도 심화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또래상담자가 지녀야 할 역량을 강화한다. 지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왕성한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의 고민 중에는 담임교사나 상담교사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이때 같은 학급 안에, 우리 반 친구 중에 나의 고민을 들어줄 또래가 있다는 것은 위기에 처한 학생에게 든든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또래상담반 학생들은 학급 내에서 사소하게 발생하는 갈등은 물론 언어폭력과 사이버폭력, 나아가 심각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전초 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래상담반 학생들도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 대한 상담 활동을 진행하며 자신이 “학교폭력의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가 되었다.” 는 데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동아리 발표회 ‘홍익제’에서의 또래상담반 학생들>

또래상담반 학생들은 일상적인 상담 활동 이외에 여러 가지 특별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매년 5월 실시하는 ‘고미사 데이’도 그중 하나로, 평소에 전하지 못하는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뚝뚝한 남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하겠어?’라는 의구심도 있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많은 학생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직원도 동참하여 학생과 학생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마음의 끈을 단단히 이어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과 데이’도 진행한다. 학교 내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다. 이 행사는 ‘미안하다’는 마음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 결과 언어폭력과 사이버폭력을 비롯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고미사 데이 운영안>

<고미사 데이 활동 사진>

두 번째 실천 사례로, 홍대부고에서 갈등과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여러 주인공 중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 ‘라이키’다. 라이키는 ‘Life Keeper for Friends’를 뜻하는데,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생명 존중을 실천하는 학생 서포터스 그룹이다.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한 학급에서 딱 한 명씩만 선발해 운영한다. 특히 올해는 삼성생명, 한국생명의전화와 연계하여 ‘마음이 건강한 학교 문화 만들기 사업시범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라이키 소속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우선 라이키로 선발된 학생들은 활동을 위한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라이키 양성 캠프’에 참여한다. 이 캠프에서는 건강한 마음 만들기, 공감적 소통하기,삶의 비전 탐색하기 등의 과정을 이수하여 생명 존중 활동의 기초 소양을 쌓는다. 이후에는 ‘라이키리더 캠프’도 진행하는데 그곳에서는 리더십을 키우는 방법, 팀워크를 다지는 기술 등을 익힌다. 이렇게 상담 역량을 갖추게 된 라이키 학생들은 학교에서 멘토 역할을 자임하여 또래 가운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그들의 적응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라이키 그룹을통해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여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학교폭력도 예방하고 있다.

만드는 행복한 학교의 모습

<2023학년도 생명사랑 라이키 양성캠프>

인터뷰 말미, 전문상담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일화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홍대부고의 건학 이념을 새삼 떠올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홍익인간(弘益人間)’,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때 이롭게 한다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홍대부고의 교훈인 ‘참된 사람, 부지런한 사람, 튼튼한 사람’과도 맥락이 닿는 말이었다. 교훈으로서는 매우 명료하고 직관적인 슬로건인데, 여기에는 학생이 바른 인성을 함양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를 지니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홍대부고의 교육 철학이 담겨 있다.

혹자는 홍대부고가 학급당 학생 수가 적어서 갈등과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 게 비교적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학생을 향한 홍대부고 교사들의 열정이 드높은 까닭이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홍대부고 학생들의 마음이 반듯하기 때문이다. 학생 수는 적지만 행복 지수는 높은 학교, 홍대부고는 ‘홍익인간’ 정신을 오늘도 이렇게 실현하고 있으며, ‘마음이 건강한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