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재 명예기자
2023 서울국제교육포럼은 ‘학교에서 길을 찾다: 학교공동체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주제로 하여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의 주관으로 11월 23일(목)과 24(금) 양일간 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포럼은 2023년에 발생한 사회적 이슈와 관련하여 국내외 교육전문가, 교원, 교육학자 등 교육관련 종사자 등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며, 연인원 500여 명이 참여하여 서울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기 위한 탐색과 열띤 논의의 장으로 운영되었다. 2023 서울국제교육포럼은 호주, 미국, 영국 등 3개국 4명의 국외 연사를 포함한 총 20명의 국내·외 교육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기조강연, 주제강의, 사례 발표, 토론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으며, 세션별로 세부 주제를 ‘상처와 회복’, ‘나와의 소통’, ‘안전지대’, ‘긍정적 행동지원’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포럼의 첫째날인 11월 23일(목)에는 ‘관계의 교실’ 저자이자 호주 디킨대학교 교수인 필립 라일리(Philip Riley) 교수의 ‘건강한 관계 육성하기: 교육 분야에서의 애착 이론에 대한 이해’라는 기조강연으로 시작하여 세션 1에서는 ‘상처와 회복’을 주제로 학교공동체의 관계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세션 1에서는 미국의 로스 그린(Ross. W. Greene) 교수, 명지병원의 김현수 교수가 주제강의를 하였으며, 주정흔 교육연구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의 진행으로 강의자와 일선 초・중등 학교의 교감과 수석교사가 참여한 자유 토론이 이어졌다.
CPS 접근법으로 문제 행동 해결의 실마리를 찾다
매일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학급 활동에서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고 흥분하는 아이, 교사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하고 때론 욕설도 서슴지 않는 아이. 티비의 금쪽 상담소 프로그램에 등장할 법한 사례들 같지만 실은 3월, 학기가 시작하면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순간들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2일간 진행된 서울국제교육포럼의 첫 번째 세션은 바로 이런 문제 행동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론으로 시작하였다. 2023년 서울국제교육포럼에서는 미국 버지니아 공대 교수이자 <학교에서 길을 잃다>의 저자인 로스 그린(Ross. W. Greene) 교수와의 만남에서 해결의 단초를 찾았다. 로스 그린 교수가 창시한 CPS(collaborative and proactive solutions)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의 협력과 선제적인 대처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접근법이다. 아이들이 가진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CPS는 아이들이 특정 기대를 달성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로스 그린 교수는 그간 문제 행동 해결의 초점이 아이들이 일으키는 행동, 그 자체에만 맞춰진 것을 지적한다. 소리 지르기, 욕설하기, 폭력 행사하기 등과 같은 문제 행동을 즉각적으로 수정하고 개선하기 위한 보상과 처벌의 방법에만 치중해 왔다는 것이다. 로스 그린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인 CPS 접근법은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문제와 그것의 해결에 집중한다. 물론, 기존의 방식이 효과가 없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상과 처벌을 통한 기존의 행동 수정 방식이나, 행동을 일으키는 문제를 미리 대처하여 해결하는 CPS는 모두 행동 자체는 개선 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자는 문제 행동의 본질적인 원인은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로스 그린 교수에 따르면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곧 소통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일으키는 문제 행동이좌절과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반응이란 것을 인식하고, 교사나 보호자는 행동 수정가가 아닌 문제 해결사로서 아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미해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먼저 ‘ASK THE KID MODEL’를 제시하는데 이는 아이들을 문제 해결의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어른이 해결책을 정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힘과 통제의 방법론에서 벗어나 아이 스스로 무엇이 그들을 어렵게 하는지, 자신의 기대 충족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도록 하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제1의 파트너로서 당사자인 아이를 초청하고 개입시킬 때 아이들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는 사전에 예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로스 그린 교수는 뒤처진 능력 및 미해결 문제 평가 도구(ALSUP)의 사용을 제안한다. 문제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아이가 언제 힘들어할지, 기대에 대한 좌절 반응으로서의 문제 행동이 언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스 그린 교수는 잠들기 전 이 닦기를 거부하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이 닦기를 거부하고 반항하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부모는 여러 종류의 달콤한 보상, 때로는 벌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물론 이를 통해서도 아이의 행동을 개선하고 이를 닦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 교정만으로 문제 행동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사례의 문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아이는 양치를 할 때 자신의 얼굴에 물이 튀는 것을 견딜 수 없던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는 아이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아이 스스로 ‘양치 전에 수건이나 천 등을 사용하여 얼굴에 물이 닿지 않게 하기’라는 해결책을 생각해 내도록 도울 수 있다.
결론적으로,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CPS 접근법을 통해 아이의 뒤처진 능력과 미해결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당사자와 협력하여 해결법을 고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문제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서 예측 가능하며 통제 가능한 것이 되고 교사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문제 행동에 선제적 대처를 할 수 있게 된다며 로스 그린 교수는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 간 건강한 관계 맺기의 방안 중 하나로 CPS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문제 행동 아이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뒤이어 진행된 자유토론에서는 문제 행동 학생의 증가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슈가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립 라일리(Philip Riley), 호주 디킨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호주의 교육 상황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호주의 교사들도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하며 겪는 어려움을 지원 받지 못하는 고충이 있다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호주 교사들 중 5년 안에 사직하는 교사는 50% 이상이며 유럽, 미국, 영국, 뉴질랜드, 핀란드에서조차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 관한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의 증가와 교사가 겪는 어려움이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교육 이슈인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시스템의 사회구조적 변화라고 토론 참석자 모두는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사회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가르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데, 교사를 지원하는 정부나 국가의 시스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사회의 급속한 발전을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지체 현상, 고장난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명지병원 교수이자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의 저자인 김현수 교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를 지적해왔다고 한다. 현재 사회는 아동학대를 포함한 양육환경의 문제, 지나치게 경쟁적인 환경 등으로 인해 아이들의 우울과 불안이 높고 정서행동 위기 학생이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한다. 가르칠 수 있는 적절한 교실 환경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결코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 관한 이슈가 마치 교사 개인의 무능 때문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교사들의 정신 건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현수 교수는 정서행동 위기 학생의 증가가 결코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교육부와 교육청 차원의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한다.
이는 최근 대두되는 신규교사들의 어려움과도 연결된다. 필립 라일리 교수에 따르면 앞서 밝힌 5년 안에 사직하는 50프로 이상의 호주 교사 중 대부분이 초기 2년 안에 사직을 결정한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신규교사들의 어려움 역시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김현수 교수는 앞선 주제강의 <교사의 관계맺기 – 상처와 회복, 신규교사 멘토링을 중심으로>에서 우리나라 신규교사들이 관계 맺기의 중요한 키워드를 유능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일단 교사가 되고 나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기’와 ‘유능하게 보이기’를 관계 맺기의 주된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신규교사들의 이러한 고군분투에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을까. 탈리스(TALIS, 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들과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신규교사들은 학생과 함께할 시간 자체가 현저히 부족하며 신규교사를 지원하는 연수도 발달이나 생활지도에 관한 것보다는 주로 교과교육, 교수・학습에 관한 것이 많다고 한다. 관계 맺기에서 유능함을 중요시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필요한 관계 맺기 기술이나 지식은 교육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치이며 노력하는 우리나라 신규교사들의 실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현장에 무작정 투입된 교사들이 어려운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절망하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시간이 흘러 치유된 줄 알았더라도, 마음속에 상처를 묻은 채로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대두되는 교육 이슈와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사례들에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교사들도 있을 것이다.
김현수 교수는 무엇보다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교사는 대한민국에서 업무시간 이후에도 마음껏 전화를 걸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며, 욕설에도 묵묵히 들어야만 했던 집단이다. 이는 위로할 문제가 아니라 교사 스스로 분노할 문제라는 것에 포럼에 참석한 일선학교의 많은 교사들은 깊은 공감을 하였다. 교사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으며 사회적으로 무너진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모두가 협력하는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김현수 교수는 현재 상황의 주요소로 유능한 담임 신화, 전능한 담임 신화를 꼽는다. 교실에서 문제 행동 아이들을 대면하고 이를 스스로 해결까지 하며 심지어 나머지 아이들마저 돌보는 전지전능한 담임이란 존재는 있을 수 없음을 교사를 포함한 학교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인식하고 공감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학교 상황에서 매우 필요하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내가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면 무능한 담임으로 비춰질까 고민해서는 안 된다. 나 스스로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의 문제, 학교의 문제, 나아가 교사 집단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관계하고 연대하며 다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결코 문제를 확대하거나 일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의 초석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교사의 안전지대는 누구일까
포럼의 두번째 날에 진행된 세션 2에서는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학교장(감)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와 대담이 진행되었다. 세션 2에서 주로 논의된 대상은 학교의 리더로서 학생과 교사들을 관리하고 학교의 목표와 방향성을 좌우하는 교장(감)이다. 학교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한 교장(감)의 역할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포럼의 두번째 세션의 키워드는 바로 ‘안전지대’이다. ‘안전지대’란 내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변함없이 지지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관계를 일컫는다. 학교에는 수많은 안전지대가 있다. 학생들의 안전지대는 당연히 교사일 것이다. 선생님이 자신을 믿고 사랑해준다는 믿음 아래 학생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사회적 책임의 영역을 확장 시켜나가며 성장한다. 그렇다면 교사의 안전지대는 누구일까? 필립 라일리 교수가 말하는 교사의 안전지대는 바로 학교의 교장(감)이다. 연구에 따르면 튼튼한 안전지대를 지닌 교사일수록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독려하며 성장을 이끈다고 한다. 학생은 안전지대로서 교사를 필요로 하고 교사는 안전지대로서 교장(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물론 교장(감)에게도 안전지대가 필요하며, 그것은 교육청, 교육부로 대변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안전지대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마치 물의 흐름과 같이 흐르는 것이며 이 중 하나의 안전지대라도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안전지대가 망가져서 생기는 ‘불안’ 역시 물처럼 흐르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불안이 전염되고 흐르며 점차 커져 사회 전체의 불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이 큰 사회에는 트라우마가 도처에 흐르며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통받는다. 학생과 교사의 안전지대 확보를 위한 시스템적 안전지대확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립 라일리 교수는 시스템적 안전지대 확보에 관한 논의에 앞서 학교에서 교장(감)이 어떻게 교사의 안전지대로써 기능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먼저 학교의 교장(감)은 교사에게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늘 가까이에 존재하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세심히 파악하고 필요하면 상황에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교장(감)도 역시 당황하거나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장(감)이 교사의 안전지대로서 적절히 역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차분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교장(감)은 교사가 전문적으로 성장하고 교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해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멘토 같은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립 라일리 교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교장(감)이 교사에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을 예시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좋은 질문이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학교에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의 불안이 높은 교장(감)들은 빠른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느라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질문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스스로의 불안을 줄이고 교사 스스로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교사가 느끼는 불안함이 가능한 낮아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닫힌 질문이 아닌 열린 질문을 해야 한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는 닫힌 질문은 이미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상황의 사실 여부만 다시금 확인하게끔 하는 것으로 그저 관리자의 권위를 확인하고 불안만 높이는 질문이라고 한다. 교장(감)은 열린 질문을 통해 교사가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다른 나쁜 질문의 유형으로는 바로 왜?로 시작하는 질문이다. 교사에게 왜 그렇게 대처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관해 묻는 것은 일종의 심문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교장(감)은 교사의 안전지대이지 검사가 아니다. 또한, 교사의 말을 마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듯이 호기심으로만 대하여서도 안 된다고 한다. 교장(감)이 교사의 안전지대가 되기 위해서는 반응이 아닌 대응을 통해 함께 문제 해결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장(감)은 교사들의 안전지대로서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교사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시간과 충분한 여유를 두고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린 후에 교사 스스로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외부적인 사건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교사의 내면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들여다보고 교사들이 다음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처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안전지대로서 교장(감)의 역할이라고 필립 라일리 교수는 말한다.
교사의 안전지대가 되는 관계 맺기 사례
호주의 교장 선생님이신 윌마 컬튼 PSM은 그 누구보다 튼튼한 안전지대이자 울타리인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서 애착 장애가 있던 세 명의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교사와 학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세 명의 아이들은 학교나 교사에 굉장히 적대적이란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규칙을 수시로 어기는 아이,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으며 어떤 관계 형성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 겉으로는 성적도 높고 품행이 단정하나 내면의 누적된 불안으로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 등 각기 다른 애착 장애 유형을 보였다고 한다. 언급된 아이들 모두 한국의 교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장 선생님은 호주의 교사들도 학생들의 문제 행동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으며, 일부 선생님들은 매일 집에 가서 눈물을 흘리거나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하는 등 가르치는 기쁨이 괴로움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애착 장애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윌마 컬튼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는 호주의 학교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이의 긍정적인 애착 형성을 돕기 위해 사랑앵무를 기르게 하기도 하고, 기본적인 욕구조차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를 위해 교감 선생님께서 매일 아침 자신의 교감실에 아이를 불러 함께 아침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학교가 끝나고 매일 혼자 남는 아이를 교감실로 데려와 부모가 올 때까지 있도록 했다고 한다. 교사, 교장(감), 학교공동체 모두의 노력으로 결국 세 명의 아이들 모두 닫힌 마음을 열고 학교를 믿고 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에 학교 전체가 나섰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안전지대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며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연대를 통한 우리 모두의 안전지대 확보
세션 2의 주제강의 후 진행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적절한 안전지대가 없는 환경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직스러운 안전지대로서 교사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돕는 교장(감)도 있지만, 교사의 마음에 작은 공감조차 해주지 않는 교장(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은 교장(감)도 입장에서도 안전지대가 필요한데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그런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교사의 안전지대도 되어주지 못하고 스스로의 안전지대도 찾지 못하여 불안감을 느끼는 교장(감)도 있을 것이다. 사회구조적 변화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시스템이 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인내하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할까? 발표자가 대담에서 제시한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전지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특정 권위나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안전이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위협받지 않는다는 신뢰 관계만 공고히 형성된다면, 그 누구도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 동료 교사, 교장(감)을 포함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무한한 안전지대가 되어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시 한번 ‘연대’, ‘연대’, 그리고 ‘연대’이다.
안전지대를 주제로 한 세션 2를 마무리하며 김현수 교수는 기내 응급상황을 떠올려 보기를 권유했다. 기내 응급상황 대처요령에 따르면 반드시 어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는 기내 압력이 낮아지면 산소 부족으로 순식간에 의식을 잃을 수 있는데 아이가 어른의 산소마스크를 씌워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의 마스크를 먼저 씌워주다 의식을 잃어버리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고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다. 그러므로 어른과 아이 모두 안전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며 안전지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교사 개인의 안전지대가 확보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안전지대를 확보해줄 수 없다. 따라서 교사가 아이들의 든든한 안전지대로써 기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들의 안전지대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교사의안전지대 확보를 위해 교장(감)이, 더 나아가서 교육 시스템 전체가 학교의 안전지대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교권이 아닌 인권, 나를 주체로 하는 소통
세션 3은 영국 국립 정신과 심리치료사인 안젤라 센(Angela Sen)의 주제강의인 <나를 지켜야 우리를 지킵니다: 교사를 위한 건강한 소통>으로 시작되었다. 안젤라 센은 앞서 진행된 첫째 날의 세션 1과 둘째 날의 세션 2에서 논의된 이야기에 무척이나 공감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안젤라 센은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이 교사 개인의 소통방식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앞선 논의와 마찬가지로 교육분야의 현재 상황이 관계와 역할에 대한 기대조정과 경계 설정의 실패로 일어난 일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청중 모두가 이에 많은 공감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학생을 교육함에 있어서 문제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안젤라 센은 우선 ‘교권’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우리는 종종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거나 교권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실은 교권의 문제가 아니며, 교권이기 전에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젤라 센은 지적하였다. 욕설을 듣지 않을 권리, 희롱이나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중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것들은 교사로서의 권리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안젤라 센은 소통 방식으로 ‘나를 주어로 말하기’라는 방법을 조언한다. 이 화법은 나의 생각, 감정, 요구를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진정성, 단호함, 배려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진정성의 측면에서 교사들은 나의 생각, 감정, 요구를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단호함의 측면에서는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나 감정을 공격하거나 그러한 것에 공격당하지 않고 분명하게 거절하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할 수 있다. 이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감정을 책임지거나, 혹은 무작정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지만 언제나 나의 인권과 교사로서의 리더십을 먼저 고려하고 무리한 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나를 주어로 하는 화법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여기서 교사들은 ‘거절하기’ 자체가 지닌 순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거절하기’는 바로 경계를 설정하고 기대를 조정하는 행동이다.
학부모의 지나친 요구에 대해 ‘거절하기’라는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학교공동체 구성원인 교사와 학부모 간의 건강한 소통 방식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업무시간 이후에 전화해서 끊임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주어로 사용하여 ‘저는 학부모님이 업무 시간 이후에 전화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곤란함을 느낍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상대방을 배려하며 나의 요구를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말씀해 주신 문제에 관해서는 업무시간에 다시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분명한 경계를 설정하고 기대를 조정하며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건강한 소통이 회복되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주제강의 후에 진행된 대담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말을 하거나 상처를 주며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학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안젤라 센은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답변을 하였다.
민원의 의도와 목적을 상실한 민원, 교사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휘둘린다는 자괴감만 들게 하는 악성 민원은 괴롭힘이나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소통을 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소통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건강한 소통을 할 의사가 없고 그저 교사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괴롭히기 위한 의도만 있다면 교사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대화를 종료하거나 민원의 영역을 상급자에게 과감하게 이전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이러한 민원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있어야 한다. 세션 2에서 논의된 내용처럼 부장교사 또는 교장(감)은 이러한 민원에 대하여 해당 교사의 안전지대 역할을 해야 건강한 학교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안젤라 센은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긍정적 행동지원(PBS) 통한 건강한 관계맺기
2023 서울국제교육포럼의 마지막 세션인 세션 4는 정서행동 문제 대응 방안으로서의 ‘긍정적 행동지원’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관련 연구를 맡아 진행 중인 박상현 서울교육정책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정서행동 위기학생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정서행동문제’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ADHD, 반항, 품행장애 등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신체적 공격, 욕설 등의 문제 행동을 표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교사들의 87% 가까이가 이러한 위기학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하니 위기학생 관련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정서행동 위기학생의 숫자가 나날이 증가하여 교사가 일일이 해당 학생의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기에는 더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내 갈등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며 법에서 규정하는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의 범위도 명확한 기준이 없고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한계로 인하여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와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교내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위클래스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초등학교는 부족한 상황이고 위클래스 상담 인력만으로 위기학생 한 명 한 명을 면밀히 파악하기 어려우며, 기존의 생활교육 방법으로 주로 사용하던 ‘회복적 생활교육’과 ‘학급 긍정 훈육법’으로는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긍정적 행동지원(PBS)은 행동에 기반을 둔 체계적 접근방법으로 원래는 1990년대 초, 장애학생 통합교육의 걸림돌로 지적되던 문제 행동을 중재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이다. 이는 학생의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학생을 세밀하게 관찰 및 기록하고 원인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종합적 중재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타 접근법들과 차별점을 지닌다고 한다. 또한 긍정적 행동지원(PBS)의 최종 목표는 교내 문제 행동을 줄이고 긍정적 학급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며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둔다는 점과 문제 행동의 심각성에 따른 위기적단계적 모델을 제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적용 사례1 – 초등학교
먼저 서울 남부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며 2018년도부터 학급 차원의 긍정적 행동지원(PBS)을 적용해온 문수정 선생님의 사례 발표가 진행되었다. 6년 전, 문수정 선생님은 지적장애,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학생의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교실 이탈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이던 학생으로 인해 굉장히 고생하며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처음 PBS를 접하고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긍정적 행동지원(PBS) 관련 선례가 전무 했기 때문에 의구심을 품은 상태에서 시작한 PBS의 효과는 해당 학교의 주변 교사들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심각했던 문제 행동 중 하나인 교실 이탈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을 뿐 아니라 학생이 제자리에 앉아 학습에 참여하게 되는 등 놀라운 행동 변화를 가져왔다. 이외에도 매일 같이 물건을 부수던 아이가 물건을 정리하는 아이가 되고 사회적 기술 부족으로 또래들과 소통하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는 긍정적 행동지원 프로그램은 문제 행동 해결에 매우 큰 효과를 보였다. PBS를 통해 해당 학생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고 다른 학생들과의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효과를 느낀 문수정 선생님은 PBS가 잘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교사 혼자만 진행하는 PBS는 역부족이며 관리자의 협조와 부모교육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문수정 선생님께서 처음 PBS를 진행하실 때 몇몇 학부모님들은 PBS의 효과에 의문을 보이거나 PBS를 마치 아이의 문제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트집 잡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PBS의 효과를 경험한 부모님이 행동계약서 작성 등 가정 내 PBS 실천을 통해 가정과 학교가 연계된 PBS 교육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 학교 차원의 긍정적 행동지원 구축으로 행동 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당 학년의 PBS 종료 이후 다음 학년에서도 PBS를 요청하는 학부모님들이 계셨으나 학교 전체 차원의 PBS가 부재하는 현재로서는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PBS가 필요하다. 셋째, 안정적인 PBS 운영을 위해서는 교사의 행정업무 감소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PBS는 결코 단기간에 효과를 보는 방법이 아니므로 반복적으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수시로 관찰하고 해당 내용을 기록하며, 이를 분석한 후에 중재계획을 투입하는 과정은 교사의 절대적인 시간 할애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교사의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줄이고 관리자와 교육청의 충분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문수정 선생님은 <개별 중재> 이전의 <보편집단 중재>와 <표적집단 중재> 단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교내 위기학생 아이들은 외딴 섬처럼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학급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학생만 개별적으로 집어내어 문제 행동을 수정하려 하기보단 해당 학생이 긍정적으로 변하도록 도와주는 학급 아이들의 존재, 튼튼하고 긍정적인 공동체 환경의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은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하였다. 가령, 수업 시간에 항상 노래를 부르며 수업을 방해하던 아이가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박수를 받은 뒤 변화를 보이거나, 큐브와 색종이 접기에 재능이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친구들의 인정을 받고 문제 행동을 고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PBS 진행 과정에서 또래 친구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경험이 소중한 마중물이 되어 긍정적인 후속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적용 사례2 – 고등학교
그렇다면 과연 중고등학생들에게도 PBS의 적용이 가능할까? 사례 발표자인 엄익환 선생님은 학급 내에서 욕, 친구들을 향한 인신공격, 선생님들의 외모 비하 등 언어적 문제 행동을 지닌 아이에게 PBS를 적용하였다. 관찰, 검사, 기능적 행동평가, 중재, 수정 및 재계획 등의 PBS 과정을 거치며 아이가 욕을 하는 이유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관심 얻기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PBS 전략을 적극 적용하였다. 그 결과, 욕설 사용의 급격한 감소와 눈에 띄는 행동 변화를 확인하였으며, 이를 통해 PBS가 특수학교뿐 아니라 일반 학교에서도 신속하고 명확한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엄익환 선생님도 초등학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탄탄한 보편집단 중재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는데, 보편집단 중재 방안으로 선택한 ‘존중언어 캠페인’과 ‘집단 보상 전략’이 학급 전체 아이들의 긍정적 행동 변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은 문제 행동 아이의 행동 변화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적극적으로 보상하며 해당 학생이 자신의 긍정적 행동으로 친구들의 관심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엄익환 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의 PBS 효과성을 높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였다. 첫째, PBS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발성을 허용해야 한다. 행동 계약의 기준과 강화물을 정할 때 학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 학생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고 반영하면 고학년 학생도 PBS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PBS는 위기학생의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고 한다.고학년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대개 해당 행동으로 오랜 기간 주변으로부터 지적과 질타를받았을 확률이 높다. PBS를 통해 긍정적 관심을 얻는 경험이 해당 학생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 문제 행동의 개선뿐 아니라 교사와의 긍정적 관계 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PBS가 단순히 문제 행동을 수정하는 방법론을 넘어서 교사와 학생의 신뢰를 회복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긍정적 관계 맺기의 이상적 형태라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3 서울국제교육포럼을 통해 우리는 학교공동체의 건강한 관계 맺기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