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우
견문발검(見蚊拔劍)이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성내어 덤빔 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밤잠을 설치며 그 녀석들과 대적을 하다 보면 빈대 잡으려다 초 가삼간 태운다 한들 별반 아쉬울 게 없으렸다.
웽웽거리며 귓전을 맴돈다. 막 잠에 빠져 비몽사몽인데 이놈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더듬대 며 공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초저녁부터 늦은 저녁밥을 지으려고 문이란 문 을 다 열어놓고 환기를 시킨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아니면 늦가을 쌀쌀한 날씨를 피해 인 간의 공간으로 생존의 터전을 옮긴 그놈들의 도발적 행동이 사단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잠 을 설친 건 분명 사실이다. 천근의 무게로 침몰하던 몸뚱이를 일으키려니 짜증이 ‘훅’ 올라 온다.
모기가 흡혈 대상을 찾을 때 생명체가 발산하는 이산화탄소, 체취, 체온, 습기 등을 이용 하는데, 1~2m의 가까운 거리에서는 체온이나 습기로 감지하지만, 10~15m의 거리에서는 바람에 살랑 대는 이산화탄소로 대상을 찾는단다. 이것들은 발칙하게도 날개를 달고 나오 자마자 짝짓기를 한다. 해질 무렵 수컷들이 떼 지어(모기 기둥) 공중을 날다 날렵하게 씨를 주면 암컷은 수정낭(受精囊)에 보관하고서는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대는 흡혈귀(吸血鬼)가 된단다. 그러니 무는 모기는 분명 암컷에게 한정되니 ‘놈’ 이 아니라 ‘년’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아무리 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놈’이라 지 칭해 본다.
후각이 예민한 그놈들은 이불 속에 웅크려 단잠을 재촉하는 나의 냄새를 찾아 고공비행부 터 저공비행, 그리고 활강까지 하다 이내 시체처럼 너부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기어이 통쾌한 한방으로 승리의 쾌재를 만끽하며 너불너불 춤을 춘다. 가만히 누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다니! 벌떡 일어나 불을 켠다. 주섬주섬 안경을 찾아 쓴다. 신발장 속에 숨겨둔 파리채도 찾는다. 고얀 놈! 기어이 초전박살하리라. 결기를 돋우고 방안을 왼쪽부터 오른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훑는다. 녀석은 은폐, 엄폐에다 심지어 위장술까지 펼치며 쉬 모 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점잖은 색상이라며 월넛(walnut)을 추천해 준 가구점 주인이 얄밉 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 길이 험난하다 할지라도 이후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정신 을 단단히 끌어안고 허공을 응시한다. 횅댕그렁하다. 애쓴 보람은 없고, 그리 얼마간이 지 나자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어렵게 잠을 청한다.
하나 이번에는 목덜미를 제대로 공격 받는다. 가렵다. 그래도 긁으면 괜찮겠지……. 하나 점점 가려움은 심해지고 은연중(隱然中) 부아가 치밀어 올라 뒤척이던 자리에서 이부자리 를 박차고 일어난다. 내 너를 가만두고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으니 너와 사생결단을 내리 라. 우선 가려움증을 내리기 위해 찬물에 비누칠을 해 씻은 다음 연고를 바른다. 그러나 가 려움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심해지는 나의 앙탈과 짜증에 그 녀 석이 놀랐는지 허공을 가로지르며 난다. 옳다. 드디어 나의 포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가 왔음이 분명하다. 두 손바닥으로 녀석을 덮친다. 아뿔싸. 너무나 힘을 주었나? 허공을 가 르는 나를 뒤로하고 보르르 달아난다. 바빠진다. 거푸 손짓을 휘두른다. 몸이 휘청한다. 침 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제대로 들이받았다.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내 정녕 너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으리라. 물파스를 바르고 전열을 재정비한 다음 쌍심지를 돋우고 녀석을 찾 는다. 포식을 한 녀석이기에 분명히 어디서 늘어지게 쉬고 있으리라. 도끼눈을 했다. 위장 술에 넘어가지 않으려 장롱을 샅샅이 검문하는 중 시야에 포착된 엉덩이를 살포시 들고 색 색거리는 녀석! 이생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하는구나 싶다. 두 손을 번쩍 드는 순간 어찌 알았는지 폴폴 날아오른다. 어이구머니! 정녕 이를 어쩌란 말인가? 녀석과의 사투를 30여 분이나 했으나 기어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내일이 더럭 걱정이 되고, 굳이 내가 녀석 을 잡을 수 없다면 깨끗하게 포기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잠시의 망설임을 접고, 오늘은 작 전상 후퇴, 내일을 기약한다.
잃어버린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 거실로 나간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을 가족들에게 방해 되지 않으려 살금살금 걷는다. 불도 하나만 켠다. 덮는 이불 하나에 의탁해 소파서 잠을 청 한다. 한바탕 소란을 치루고 난 뒤라 쉬 잠이 오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출근 걱정에 눈을 질끈 감는다. 잠이 채 들기 전 또 다른 녀석이 양쪽 귀에서 웽웽거린다. 이럴 수가 있나. 더 는 못 참으리라. 내 모든 걸 걸고 너희들과 최후의 일전을 치르리라. 분기탱천한 눈에서 불꽃이 튄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한 손에는 파리채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모기약을 잡고 웅크 린다.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라 했던가. 살금살금, 파닥파닥, 지옥에서 천당까지, 온 세 상을 한 바퀴 도는 심정으로 그 녀석을 찾아 나선다. 양손에 완벽하게 챙겨든 무기로 인해 용기백배하고, 두 눈에 심어놓은 레이더로 거실 형광등 주변을 차근차근 수색한다. 없다. 소 파 위를 살핀다. 한 녀석이 벽에 걸어둔 수묵화 액자에 앉아 있다. 차분하게 내려친 파리채 에 한 녀석은 기어이 세상과 하직했다. 피 맛을 제대로 본 후라 대범해진다. 텔레비전 위 벽 에 앉은 놈도 포착된다. 휘두른다. 낭자한 피가 하얀 벽을 선명하게 장식했다. 마블링, 데칼 코마니. 치기어린 장난처럼 벽에서 피어났다. 한 생명을 해하고도 이리 통쾌함을 느끼다니 마음 저 밑에 잠재한 원시적 욕망에 이끌린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떠받들고 미친 듯 살아 오면서 익숙해진 살기(殺氣)가 발한 것인가? 무섭고 두려워진다. “세무난즉교사필기(世無 難則驕奢必起,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라 하였는데, 인간의 교만이 한 생명의 즉살(卽殺)로 이어진 것이리라.
2㎎에 불과한 몸무게의 모기가 제 몸무게보다 50배나 무거운 100㎎에 달하는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멀쩡히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엄청난 무게의 빗방울에 달라붙어 함께 움직 이다가 균형이 흔들릴 때 재빨리 몸을 굴려 다른 빗방울 위로 올라선다는 것이다. 이렇듯 몸 을 따라 빗방울을 굴리는 방법으로 접촉 시간을 늘려 50배나 되는 빗방울의 충격을 2배 정 도로 줄인다니 모기의 생존을 위한 본능은 지혜롭다. 이런 모기를 해(害)하다니…….
모기나 인간이나 살아남기 위한 지난(至難)한 몸짓거리에는 별반의 차이가 없고, 자신이 살기 위해 때론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 이를 정당화 해보려는 오만한 태도는 피차 매양 한 가지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저리 처참하게 도륙을 내고나서야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 다니? 의식 저편에서 한 마리의 모기가 된다. 몽롱한 졸음 속에서 녀석을 본다. “이놈아, 나 에 대한 원망을 버리고 부디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렴.” 산산이 부서져, 육신을 버림으로 서 얻는 니르바나(nirvāṇa)에 대한 염원을 담아 합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