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화 (서울중현초등학교, 수석교사)
챗GPT의 등장이 던진 질문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챗!챗! 하며 챗GPT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정말 신기하던데요. 세상 참…”
“와, 대단해요. 수업에서 꼭 써보고 싶어요. 토론수업에 쓰면 좋겠어요.”
“이거 학생들이 쓰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막아야 해요.”
“얘가 거짓말을 많이 하던데, 유료를 써야 할까요?”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에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을 읽으며 먼 미래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챗GPT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벌써 미래가 다가왔구나 하며 놀라게 되었다. 챗GPT의 말을 보고 잘 모르면 가짜를 진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 있으니 인공지능 세상에 대한 염려가 피어올랐다. 문득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미래 세대 핵심 역량으로 디지털 기초 소양이 강화되고 정보교육이 확대된다고 하는 말이 더욱 크게 와닿으며 인공지능 교육에 관심을 쏟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어떤 것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인공지능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어떤 윤리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인공지능 교육,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다
우리 학교는 일반학급이 10학급으로 올해부터 서울형 작은 학교이며 인공지능 선도학교이다. 작지만 강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전교생 모두가 컴퓨팅 사고력, 디지털 문화 소양, 인공지능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23 신학년을 준비하면서 큰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먼저 학교의 여건을 생각해 보았다. 메이커실, 디지털미디어실, 컴퓨터실이 있으며, 태블릿 PC와 노트북 PC를 넉넉히 갖추고 있다. 햄스터봇과 마이크로비트가 각각 30개 이상, SW교육을 위한 보드게임, 저학년용 뚜루뚜루도 10세트가 있다. 무엇보다 서울형 작은 학교와 인공지능 선도학교의 예산이라는 든든한 자본이 있기에 전교생의 디지털 기초 소양을 높이는 일은 걱정이 덜했다.
이런 물리적 환경이 0이라 하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함께 고민을 풀어갈 동지였기 때문이다. 2021년에서 2022년까지 약 3개월간 우리 학교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추진한 정보(SW, AI)교육 교사연구회를 운영하였는데 무려 60% 이상의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올해에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자발적으로 학교 안에 인공지능 교육 교원학습공동체를 만들며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전교생의 디지털 소양을 키우기 위한 큰 그림 중 하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당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 버스가 와서 우리 반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어린이회관으로 갔다. 소풍도 1시간 넘게 걸어가던 시절이었는데 영광스럽게도 멋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하얗고 둥글게 생긴 근사한 지붕이 있는 건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물 안에 들어가 극장처럼 생긴 큰 공간에서 의자에 앉자 전깃불이 꺼졌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갑자기 천정에서 달과 별들이 총총 떠다니기 시작했다. 와!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밤하늘을 비추면 별자리가 펼쳐지는 스마트폰 앱이 처음 나왔을 때도 신기함에 놀랐었다. 하지만 약 50년 전 체험한 그 놀라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날 경험한 밤하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행복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이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디지털 체험에 담아 전교생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이런 활동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 기꺼이 함께 해주셨다.
또 하나의 큰 그림은 컴퓨팅 사고력, 디지털 리터러시, 인공지능 소양의 기초를 모든 학생에게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천천히 한 단계씩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도록 기초를 닦는 것에 중점을 두고, 교과와 연계하여 일상의 수업을 어떻게 설계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선생님들의 지도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에듀테크를 활용한 혼합(블렌디드) 수업과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을 위한 공개수업을 매주 실시하며 수업 나눔을 통해 다양한 수업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계획하였다.
디지털 기초 소양을 기르는 데에는 이미 구비한 기자재나 웹, 앱 등을 활용하거나 추가로 도구만 더 구입하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여 한두 번 사용 후, 사용하지 않고 잠드는 일이 없도록 기자재 구입 시 활용성과 교육 효과를 고려하였다.
전교생 모여라! 토요 동아리
“소쿠♪ 바치♪ 비라 ♬”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손 유희를 하는 토요 동아리, 과연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동아리가 맞을까? 정답은 ‘맞다’이다. 노래와 동작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컴퓨팅 사고를 하도록 한 것이다.
토요 동아리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년 수준별로 조직하였다. 주로 코딩 로봇으로 실생활과 관련된 신나는 활동을 하며 오디오 감지, 음성 인식, 사람이나 사물의 영상 인식, 모델 학습, 머신러닝 등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과 용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와, 귀엽다.” 라며 코딩 로봇을 손에 쥐고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이들이 마을 지도 위의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코딩 로봇을 보며 분주히 움직이더니, 어느새 로봇의 가격을 검색하고 집에 가서 사달라고 할 것이라고 한다. 토요 동아리 첫날 맛보기 체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렇게 오전 내내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맛보기 체험시간 이후에는 홍보 배너를 보고 ‘빨리 참여하고 싶다, 언제 모집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하였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학부모 연수
“아주 넓은 바다에서 온통 사방이 벌겋게 물들었는데, 시뻘건 바닷물이 출렁대더니 갑자기 바닷속에서 큰 뱀이 솟아 올라와서는 혀를 낼름낼름 내밀고 있었어.”
바다 괴물이 나타나는 공포 영화 장면이 연상되는 이 이야기는 나의 모친의 태몽 이야기이다. 웬 이런 무서운 태몽을 꾸셨는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여러 번을 반복해서 들려주셨다. 이 태몽은 내 몸에서 에너지가 방전되었을 때 슬며시 떠올라 힘을 불어넣어 주는 마력이 있다.
자녀에게 들려주는 태몽은 인성과 진로지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태몽의 장면을 미드저니(Midjourney)나 DALL.E 2로 그려서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다. 에듀테크 도구를 활용하여 e북을 만들어주거나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준다면 자녀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학부모 연수는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지난 4월 3일 실시한 첫 연수에서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교육의 중요성과 방향을 인식하도록 하고 챗GPT를 사용해 보았다. 7월에는 자녀와 함께 하는 토퍼아트 디자인을, 9월에는 앞서 말한 태몽이야기를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그림으로 그리고 책으로 엮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 동네 체험 시설: 앤드월드, 찾아가는 앤드센터
학교에서 30분만 걸어가면 우리 지역 최고의 디지털 교육 시설이 있다. 시립노원청소년미래진로센터(앤드(&)센터)는 VR, AR, IoT, 드론, 로봇, 홀로그램/3D스캐닝, 디지털 드로잉, 1인 미디어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4월, 6학년 학생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드론체험, 자율주행, 스마트홈 IoT 로봇 체험, 디지털 드로잉 활동을 하였다.
“난 자율주행이 제일 좋았어.”
“디지털 드로잉을 더 하고 싶은데 아쉬워.”
“IoT 로봇 조작이 마음대로 되진 않았지만 재미있었어.”
“선생님, 더 하고 싶어요.”
다양한 활동을 고루 체험하며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체험 소감이 들려왔다. 2학기 소프트웨어 교육 주간에는 찾아오는 앤드센터 부스가 설치될 예정이다. 보다 풍성한 축제 부스를 지원받아 전교생에게 신문명의 축제를 즐기도록 할 것이다.
잊을 수가 있을까? 100년의 기억을 심다
와! 아! 헉! 오! 잉?
“나중에 가족들과 또 놀러 오고 싶다.
이 체험을 통해 내 꿈에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블록과 허브, 모터를 사용하여 메뚜기봇을 조립하고, 스크래치 블록코딩 프로그램으로 조건에 따라 지정한 속도로 움직이도록 코딩을 하며, 메뚜기봇 달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또한 철봉하는 사람을 조립해보고 철봉하는 사람을 한 바퀴 돌려보면서 작용과 반작용 원리에 의해 바퀴가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학의 원리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조립 블록은 몰입을 유도하며 문제해결력, 공간지각능력을 키워주는 창의적 학습도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하여 로봇 전략 시뮬레이션이 펼쳐지기도 하고, 놀이와 스토리텔링이 함께 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추진하였다. 인공지능 선도학교 예산을 활용하여 4월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핸즈온캠퍼스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으로 녹여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너무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 말이지만, 교실마다 높이 달려 있는 와이파이 기계와 보관함 속의 태블릿 PC, 노트북 PC 등을 볼 때마다 이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구비된 환경이라도 수업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교사에게 달려있으니 유용하게 잘 사용해 보리라!
3학년 이○○ 선생님은 인공지능 수학 ‘똑똑수학탐험대’를 활용하여 수학 학습을 관리하니 색다른 학습 방법에 학생들 눈빛이 더욱 초롱초롱 빛났다. 정○○ 영어 선생님이 ‘AI 펭톡’으로 말하기 연습을 시키니 원어민 선생님이 위기의식을 느끼시나 보다.
과학전담 선생님은 여러 가지 센서를 장착한 미세먼지 경보 로봇 코딩 수업으로 과학자처럼 탐구하기 단원을 흥미롭게 펼쳐갔다. 과학적 사고를 코딩으로 표현하는 교과연계 코딩으로 학생들은 문제해결력을 키우고 있다.
4학년 하○○ 선생님은 블록 조립 체험학습을 가기 전 간단히 코딩 실습을 해보았다. 기초 단계에서 한 단계씩 함께 코딩을 하고 설명을 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컴퓨팅 사고를 차근차근 익힐 수 있었다. 5학년 학생들은 작년 6학년 선배들이 졸업 전에 만들어 놓은 생태전환교육 메타버스 방에 들어가 구경을 하며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어서 하게 해주세요.” 라며 독촉을 하였다.
디지털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태도 학습을 위해 인터랜드에 접속했다. 비밀번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척척 바꾸는 모습을 보니 설명식 수업보다 게임학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다 환경을 위한 인공지능(AI for oceans), 티처블머신(Teachable machine) 등 인공지능 원리를 탐구하는 수업에 독서 활동을 연계하고, 생활의 문제를 통해 데이터를 시각화해 보기도 하였다.
보드게임 등 다양한 언플러그드 활동에서부터 인공지능 코딩까지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은 엎드려 있는 학생, 하품이나 잡담하는 학생, 보건실과 화장실에 가는 학생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흥미로운 수업으로 이끌 수 있었다.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아 둔 학생은 비밀이 보장되는 개인 큐알 코드를 살며시 들어올림으로써 걱정없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작고 귀여운 코딩 로봇이 세계여행을 하는 1학년 수업에서도 문제를 분해하여 절차적 사고를 하고, 알고리즘으로 표현하는 기본적인 컴퓨팅 사고가 저절로 작동하였다. 미션을 성공한 기쁨의 감탄사가 교실에 퍼지고 다른 모둠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협력이 이루어진다.
꿈꿀 수 있다면 실현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에듀테크 도구를 사용하여 모두가 참여하며 협력하는 수업,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가 저절로 자라나는 수업,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자주 바뀐다 해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우리 학교의 노력은 계속 되고 있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서로 협력하고 나누며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꿈을 꾸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체험학습을 다녀오며, ‘꿈꿀 수 있다면 실현도 가능하다’는 월트 디즈니의 한마디를 생각해보았다. 우리 꿈자람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꿈꾸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