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현 (잠실중학교, 교사)
출근 후 쏟아지는 업무에 시달리다보면 수업 준비는 항상 맨 마지막 순서고, 어느새 다음 차시 수업은 코앞으로 닥쳐있다. 정신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다 문득 내 마음을 뜨겁게 했던 교사로서의 사명감은 어디로 간 건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반성과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욕이 공존하던 5월, 교육청에서 온 IB 탐색학교 설명회 공문을 보게 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IB
IB는 국제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자로 비영리 국제 교육재단인 IB에서 1968년부터 운영하여 발전시켜온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미래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주도적인 평생 학습자를 기르는 학교 교육 체제와 개념 기반 교육과정 및 역량, 탐구 중심 수업과 평가가 특징인 교육이다.1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지식, 탐구심, 배려심이 풍부한 평생 학습자 양성”을 목표로 10가지 학습자상을 제시한다. IB 탐색학교 설명회에서 IB에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IB 교육이 지향하는 바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단편적 지식의 암기를 지양하고 각 교과목의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학습을 깊이 있게 설계한다는 점, 학습 내용을 실생활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교에서의 학습이 학생의 삶에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되도록 한다는 점 등 IB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수업을준비한다면 잊고 지냈던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B와의 첫 만남
2024년부터 점진적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 도입된다. 또 교사로서의 나에게 수업과 평가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IB 탐색학교에 도전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고 했던가, 설명회 이후 학교에 돌아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동료 교사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3학년 수업을 담당하고 있던 터라 동학년 교과 선생님들에게 작업(?)을 시작했다. 교사들은 본능적으로 ‘업무’가 늘어 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아한다. IB 탐색학교를 운영하게 된다면 업무 부담없이 IB 교육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학습 공동체를 운영하면 된다고, 특별히 협의회비도 넉넉히 지원 되기에 몸과 마음을 모두 살찌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IB 교원학습공동체 구성 및 준비
나의 작업에 넘어온 선생님은 교장, 교감 선생님 포함 국어, 수학, 영어, 사회, 역사, 과학, 기술, 미술 8개 과목 모두 12명이었다. IB가 교복 회사 내지는 은행 이름인 줄 알았다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주관한 ‘IB 탐색학교 맞춤형 연수 기초 과정’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일과 시간 이후 오후 5시부터 8시(어떤 날은 9시)까지 총 16시간의 연수를 이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실에서 방배동 교육연수원까지 오가며 우리의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수업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우리를 지탱해주었다. IB 기초 연수는 말 그대로 IB에 대한 개괄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 연수였다. 16시간이나 연수를 들었지만 IB의 윤곽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IB 운영학교 방문: 잊지 못할 제주 워크숍
지금까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IB에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실제로 IB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립학교도 제주와 대구에 가장 많다. 기초 연수를 통해 어렴풋이 밑그림만 그려진 상태였기에 우리는 실제로 제주도에서 IB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 가보기로 하고,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하여 제주도에 있는 표선중학교에 방문하였다. 표선중학교(이하 표선중)는 2022년 3월부터 IB 프로그램 인증을 받아 2년째 IB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학교였다. 표선중에 도착하자 커다란 IB 인증 마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학습자상과 학습접근방법(ATL)도 인상적이었다. 복도 한쪽 벽에는 IB MYP2 교과군별 평가 기준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었다. 학생들의 생활 공간에 어떻게 학습해야 하고, 그 학습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적어도 교과목 시간에 어떤 것들을 배우고, 그것을 왜 배우는가에 대한 이해는 가능할 것 같았다. 나아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학습자상으로 성장할 아이들도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환경을 둘러본 뒤 2023년도에 IB 코디네이터 역할을 담당한 선생님을 만나 직접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IB 인증학교를 운영하며 겪었던 어려움, IB 교육을 도입한 이후의 변화된 지점들, 학생들의 피드백 등 여러 가지 실질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IB의 프로그램은 교사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한다.’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지금까지 교육과정이 수차례 개정되었지만 그때마다 현장의 교사들은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새로 도입될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훌륭한 교육과정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래서 그것을 현장에서,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여전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IB 교육과정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실행 체계로 적용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B 인증학교 탐방 이후 숙소에서 우리는 밤이 깊도록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었다. 제주 워크숍을 떠나기 전 각자 공부했던 IB 관련 서적의 내용을 발제하는 시간을 가진 뒤 표선중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나누기도 하고 IB의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새벽부터 시작된 워크숍 일정으로 다들 체력적으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만큼은 다들 피곤한 줄 모르고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우리는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나는 ‘교사’였다.
협업을 통한 IB 교육
2학기가 시작된 뒤 맞춤형 연수 기본 과정이 시작되었다. 기초 과정 연수가 IB 프로그램의 철학, 운영 목적, 학교 조직 문화 등의 이해에 관한 1단계 연수였다면, 기본 연수는 IB 프로그램 기반의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평가 설계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는 2단계 연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IB 프로그램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IB MYP 유닛 플랜(Unit Plan)을 실제로 작성해 보는 실습형 연수를 총 15시간 진행하였다. 유닛 플랜(Unit Plan)이란 교육과정을 이끄는 단원 계획안으로 교과군별로 1학기에 평균 2개 정도를 작성하게 된다. 이는 MYP의 교육철학과 교육과정 실행을 위한 강력한 장치로서 MYP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집약되어 있으며, ‘탐구(Inquiry)-행동(Action)-성찰(Reflection)’의 단계로 구성된다.3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양식의 단원 계획안을 작성해야 하다 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함께 머리를 모아 최선을 다해 연수에 임했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서로 피드백을 주었다.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 패들렛을 사용하여 결과물을 모두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였다. 다른 선생님이 작성한 유닛 플랜(Unit Plan)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며, 서로의 유닛 플랜(Unit Plan)을 정교화할 수 있었다. IB 탐색학교 운영 기간 동안 우리가 작성한 유닛 플랜(Unit Plan)을 바탕으로 실제 수업을 실행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해서 단원 계획을 작성하면 분명 수업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했다. 한 학기의 기본 연수를 통해 더욱 확신한 것은 수업 연구는 ‘함께여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IB 교육을 너머 KB(Korean Baccalaureate)로
2024년도에도 우리는 IB에 대한 공부를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 더욱이 올해에는 학기 시작 전 유닛 플랜(Unit Plan)을 미리 작성하고, 작성한 유닛 플랜(Unit Plan)을 바탕으로 실제 수업을 진행하며 평가 결과를 수행평가에 반영해 볼 계획이다. IB 프로그램이 과연 공교육에 적합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대신 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 등의 논란이 존재하지만 우리 교육이 IB에 접근하는 것은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 패러다임을 찾기 위한 노력임은 분명하다. IB 교육이 지향하는 바와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가 유사하고, 이 둘 모두 역량 기반 교육과정, 탐구 중심 교육과정 등의 동일한 이론적배경 위에 있기 때문이다. IB 프로그램의 탐구와 적용을 통해 현재 우리의 수업과 평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수업에서 열 가지가 변화되는 것보다 열 사람의 수업에서 한 가지씩 변화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교육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믿는다. IB는 우리에게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 우리 교육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