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영림중학교, 교사)
기대 반 걱정 반, IB가 우리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 학교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 수업’의 질적 변화에 집중했고 이를 위한 학교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매주 월요일을 수업 연구의 날로 운영하며, 이날은 회의, 행사, 방과후수업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여 전 교사가 수업 연구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전 교사가 수업 연구와 관련된 교원학습공동체에 참여하며 각 공동체는 연 2회의 수업 공개와 나눔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각 학년부 교무실에는 수업 나눔 카페 및 회의실이 구축되어 있으며, 모든 교실에는 모둠활동을 지원하는 교구와 모둠칠판이 비치되어 있다.
8~9년 동안 학생 배움 중심 수업을 위한 교실의 자리 배치, 협의 공간, 교사의 연구문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잡히니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의 형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전엔 이 모임을 유지해야만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면 이제는 주제별, 학년별, 학년 내 주제별 모임 등 어떤 형태가 실질적인 연구 모임이 될 수 있는지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의 배움 중심’ 수업 연구 문화가 안착되면 ‘평가’ 영역이 다음 목표가 된다. 2020년부터는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에 ‘평가 개선’을 고민하는 팀이 생겨났다. 그러나 매년 교원 감축으로 인해 많아지는 행정 업무, 각종 민원, 분주한 학교 현장에서 우리가 추구해 온 수업의 철학과 연계되는 평가 개선은 쉽지 않았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수업의 개선보다 더 어려운 문제로 여겨졌다.
“수업과 일치하는 평가란 무엇인가?”
“성취평가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과정중심평가로의 전환이 얼마나 우리에게 피부로 와 닿는가?”
“‘평가계획서’ 작성 연수의 문서들이 얼마나 실질적 문서인가?”
“각 교과의 ‘수행평가’는 적절한가?”
여러 가지 고민을 했고, 신학년도 연수에서는 모든 교과 평가 연수와 컨설팅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학교 문화로의 정착은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의 노력이 옳은 방향인지도 애매했고, 솔직하게 다들 평가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일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떤 연수도, 어떤 예시도 ‘이거다!’ 하는 것이 없던 찰나, 2023년 5월 ‘IB 탐색학교’ 공문을 보게 되었다.
‘IB는 다 서논술형 평가래…….’, ‘IB는 학습자 주도성이 중요한 수업을 지향하고, 그렇게 평가한대.’ 라며 들리는 소문.
“정말 저 안에는 답이 있을까?”
우리는 한 걸음이라도 조금 더 나아가고 싶은데 IB에는 묘수가 있을지. 혁신학교의 수업과 평가 시스템을 보다 전문적으로 구축해 보자는 마음으로 ‘IB 탐색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를 이미 하나씩 하고 있었지만 추가로 모여보자는 선생님 10명과 관리자 2명이 모여 12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통한 IB MYP1 프로그램 이해하기
1) 첫 번째 질문: 교육과정, 왜 공부해야 하나요?
IB 탐색학교 사업은 어떤 측면으로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다. 6월에는 IB 탐색학교 맞춤형 연수 기초 과정 15시간, 2학기에는 2단계 기본 과정 15시간을 이수했다. 업무 담당자였던 나는 작년 IB 관련 연수만 온오프라인을 합하여 70시간 넘게 받았다.
“교학공인데 우리 자체적으로 원하는 공부를 하면 되지, 왜 이런 연수를 갑자기 강제로 받아야 하나요?”
학기 중에 몰아치는 연수 덕분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IB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IB가 기반을 둔 ‘교육과정’ 총론에 더 많은 초점을 둔 연수들을 받게 되었다. 총론은 어렵기도 하지만 빨리 배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관행상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교육과정 개정마다 각론은 성취기준 추가, 삭제, 병합에 대한 논의가 주이고, 교육과정 개정 연수에서는 성취기준의 변화에 관련된 것들이 다뤄진다. 그러다보니 총론 공부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닌,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거 다 좋은 말 아니에요? 백워드 이런 거 임용고사 때 다 외웠던 거죠.”
교원학습공동체가 아닌 분들 중 이렇게 이야기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맞다. 실질적 수업을 교실에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에게 총론은 너무 먼 이야기이다. 반면 IB 프로그램은 총론에 해당되는 교육과정 철학을 교실에서 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사들이 보다 쉽게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프레임워크(유닛 플랜 등)를 개발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교사는 아무것도 몰라도 우선 이 표를 채우며 총론에 따른 수업 형태를 배울 수 있다. IB 연수에서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왜 이런 표로 구성되었는지 배울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총론에 입각한 수업과 평가를 할 수 없었던 우리 문제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육과정 공부는 우리가 혁신학교 운영을 하며 실천적 지식으로서 갖게 된 전문성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해 주었다. ‘평가계획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문항을 출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어떤 평가를 해야 하는가?’, ‘왜 평가를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 보게 되고,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었다.
2) 두 번째 질문: 교사의 관점을 수업에 반영해도 되나요?
IB MYP에서의 유닛(Unit)은 대단원 수준의 수업으로 한 학기에 평균 2~3개의 유닛 플랜(Unit Plan)을 작성한다. 주당 4차시씩 편성되어 있는 중학교 1학년 수학의 경우, 유닛 하나에 20~25차시로 구성할 수 있다. 유닛 설계의 첫 번째 작업은 수업의 핵심개념과 관련개념을 선정하고, 이것을 왜 가르치는지를 한 문장의 진술문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탐구진술문을 쓸 때 제일 어려운 작업은 왜 가르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왜’가 어딨어요, 교육과정에 있으니까 가르치는 건데요.”
국가교육과정에서 가르치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을 가르쳐 온 기존 수업과는 달리, IB MYP 단원 설계에서는 그 지식을 가르치는 이유, 그것이 학생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총론의 교육목표와 어떻게 부합하는지, 어떤 “맥락” 속에서 그 “개념”을 학습하게 되는지에 관해 간결한 문장으로 기술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 관점, 내 관심사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수업을 설계해 왔다. 그런데 IB는 수업에 대한 교사 자신의 관점과 철학이 중요하며, 탐구진술문 작성이 어렵다면 위 그림에서와 같은 예시에서 골라보게 하는 등의 지원을 한다.
이 탐구진술문은 나의 수업목표이자 평가목표가 되고, 수업과 평가가 탐구진술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교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성취기준 재구조화보다 한 수준 위의 작업이다. 내가 초점을 둔 개념과 핵심개념이 성취기준보다 위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탐구진술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첫 번째 이유는 개념을 ‘선택’하는 것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현실적이지만) 각 단원에서 모든 역량을 다 습득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여기서는 한두 가지만 선택하게 한다. 핵심적인 개념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개념은 다른 교과·교사·학년에서 다룰 수 있도록 협의한다. 두 번째는 수업의 지향점에 교사의 철학과 관점을 반영해도 되는가의 문제였다. 내가 이러한 관점을 학생들이 학습하게 할 것이라고 선택해도 되는가, 이 단원을 가르치는 이유라고 만든 문장이 너무 개인적이지 않은가, 내 관점이 적절한가.
IB 프로그램은 수직적·수평적 교사 협의체를 주요하게 여긴다. 교사 간 협의를 통해 그 학교에 재학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지향점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교사들이 협의하도록 하고 있으며, 내 관점의 적절성도 협의를 통해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내 수업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학교 구성원 전체가 학생상에 부합하는 종합적인 인격체를 양성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수업의 목표를 중심으로 여러 교사의 수업이 연결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만들어 두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교사 간 그냥 대화하고 협력하고 소통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 교육과정 구성을 위해 반드시 소통을 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친목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논의하는 구조임을 엿볼 수 있었다.
3) 세 번째 질문: 기존에 해 오던 수행평가는 참평가(Authentic 평가)일까요?
IB 프로그램의 평가는 학생들이 학습했는지를 문제풀이가 아닌 삶에서의 전이 여부로 확인할 수 있는 평가로 실시하게 한다. 이를 참평가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 백워드 설계, 채점기준표가 아닌 루브릭, 성장중심평가와 같은 평가 연수를 추가로 기획했다.
IB의 유닛 플랜에서 평가 영역은 다음과 같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점을 둔 백워드 설계를 IB는 어떤 프레임워크로 접근하는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백워드 설계는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수업하는지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 IB와 평가에 대한 공부는 문제풀이가 아닌 ‘삶에서 살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앎’인지를 평가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기존에는 어떤 문항을 제작할 것이고, 어떻게 채점할 것인지 고민했다면 이제는 문항이 아닌 어떤 수행평가가 수업 목표에 적합한지 수행평가의 개념 자체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수행평가가 현장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수행’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기보다 우리는 배운 만큼을 실천하며 학생들이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보았다. 국어과는 ‘우리말 사랑 프로젝트’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여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우리말 사랑 캠페인 활동을 했다. 수학과는 삼각비를 이용하여 우리 학교 건물의 높이를 측정하여 최빈값을 골라 직접 현수막을 제작하여 걸었다. 배운 것을 학생들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평가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서로 의지할 곳이 된 IB 교원학습공동체
우리 학교는 지난 9년간 운영해 온 학생배움중심 수업을 보완하고 싶었고, IB를 매개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백워드 설계, 개념기반 교육과정, 학습자 주도성, 학습 목표와 평가의 유기적 관계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IB 탐색학교 사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단위 학교 자체 내에서 준비한 효과가 있었으며, 평가 개선을 위해 ‘평가에 대한 관점’부터 바꾸어 나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올해도 학교 전체는 아니더라도 국제 IB 교육 프로그램 탐색 결과를 서울형혁신학교의 수업혁신에 어떻게 적용하여 보완할지 고민할 것이다. 또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안착을 위해 교육청과 평가원의 연수에 기대는 것이 아닌 단위학교 내부적으로 체계적인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무엇보다 IB 탐색학교 사업은 약간의 매너리즘이 올 수 있는 시점에, 문제의식을 가진 선생님들이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이 매너리즘을 극복할 동력을 만들었다는 점이 의미 있겠다. ‘버티면 1년이 편하다’는 12월의 업무 분장과정에서 IB 교원학습공동체의 구성원은 2024년 자발적으로 자신이 속한 부서의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IB 프로그램을 많이 공부하고, 실천하고 이 글을 썼다고 할 수 없다. 1년간 우리가 애쓴 결과 무엇이 남았는지를 정리해 본 정도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현장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맡겨진 일에 다시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있다. 교육청은 이들이 소진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와 현장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립학교라는 한계, 공무원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