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 (사당중학교, 교사)
보통 학부모와 교사는 가까이 하기에도, 멀리 하기에도 어려운 평행선 관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7년 동안 함께한 이 동아리에서 만큼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동료이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아이가 졸업해도 부모는 졸업하지 않으며, 교사와 학부모가 밤새워 토론하고 사업을 구상하며, 실제로 추진하다가 어마어마한 결과에 놀라는 만남…….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해마다 학교와 함께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신기한 만남이었다.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사당중학교는 2학년 진로집중학년제 연구학교와 1학년 자유학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여느 학교들처럼 많은 진로교육과 체험활동이 1년 내내 활발하게 운영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학부모동아리이다.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학기제의 모태가 되었던 중1 진로탐색집중학년제 연구학교를 시작하면서 학부모 총회에서 대의원들과 회의를 하였다. 부모들은 ‘100세 시대, 우리도 우리 인생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10년 후를 고민할 때, 우리도 같이 고민해 가야한다.’는 생각에 공감을 표했다. 그래서 그해 어느 날, 학부모진로자율동아리가 생겼다. 현재 이 동아리는 자녀가 졸업했어도 여전히 함께하는 회원을 포함하여 13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담당 교사인 필자도 회원으로 회비를 내고 있으며 행정지원을 맡고 있다. 모든 건 철저히 동아리 회원들의 자율적인 운영으로 이루어진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 진로아카데미로 시작하다
2013년 연구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대의원들과 회의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진로를 고민하자는 필요성에 공감하며 학부모진로아카데미가 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를 학부모 임원들과 고민했다. 8회 연수를 진행하며 ‘미래사회대비 진로설계방향’을 배우고, 자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MBTI’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마지막은 ‘자기주도 학습설계’로 마무리를 지었다. 학부모들은 MBTI를 몇 주에 걸쳐 배우는 동안 웃고 울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녀를 이해했다. 이 연수가 끝나갈 무렵 부모들은 허전해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가 끝나면 뭐하지? 난 아직 배고프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부모자율동아리 ‘사당두드림’이 탄생했다.
2013년 6월 27일 학부모진로아카데미 수료식 겸 동아리 발대식을 열었다. 진로아카데미는 매년 4월~6월 사이에 5회에 걸쳐 10시간씩 꾸준히 지금까지 35가지 주제의 연수가 진행되었다. 모든 기획은 2월에 새로 구성된 동아리 임원진과 담당교사 간 회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학부모들은 공감대를 갖고 아이들의 진로를 고민하며 학교의 진로활동을 함께 지원한다.
매월 정기모임에서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다
동아리 회원 정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 10시, 진로교육지원 및 동아리 활동에 대한 회의를 한 후 자체연수를 한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맸지만, 점차 관심 있고 실용적인 연수를 스스로 기획하게 되었다. 해마다 냅킨 공예, 가죽공예 지갑, 꽃꽂이, 고추장 만들기, 이지배틀 목도리, 매듭 공예, 캘리그라피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니 매달 30명 정도가 꾸준히 연수에 참여했으며, 3학년 학부모가 되면 적어도 3~4가지는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학생 대상 공예체험의 날을 주관하며 강사로 서다
정기 모임에서 냅킨 공예 연수를 해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닌 분들이 많았다. 담당교사인 필자는 학생 대상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에 부모님들이 강사로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연수를 받은 회원 20여명이 1학년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으로 6개 학급 학생들을 위해 냅킨을 활용한 필통 제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강의가 처음인 회원들은 아이들 앞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지만 학생들의 격려와 호응 속에 매우 성공적으로 끝나 회원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듬해부터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확대했다. 매해 7월 기말고사 끝난 후 공예체험의 날을 정하여 전체 학년 대상으로 하루 종일 전일제로 운영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강의를 하면서 자부심을 가졌고 학생들은 그동안 쌓인 시험 압박에서 벗어나 세대 간 교감을 나누며 예쁜 공예품을 만들고 성취감을 맛본다.
학교 안 스토리텔링 벽화 그리기에서 동네 게릴라 가드닝으로 확대하다
2016년, 학교에서 벽화그리기를 하였다. 부모와 아이들은 매월 1회 토요일을 이용해 1학기 동안 학교의 이야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하여 주차장 벽에다 그림을 도안하고 색을 입혔다. 매번 50명이 넘는 가족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면서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동아리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잘 마쳤다. 지금도 학교의 주차장 담벼락에는 학교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벽화가 있다. 졸업하는 학부모들도 이 일이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했다. 학교 안 벽화그리기 대장정이 끝나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또 다른 큰 꿈을 꾸었다. 이제는 학교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이듬해 2017년부터 2년간 마을 게릴라 가드닝을 했다. 학부모동아리, 주민자치센터, 문화의 집, 이 세 기관들이 모여 게릴라 가드닝의 취지, 장소, 추진 절차 등을 꼼꼼히 검토하며 협의를 하였다. 회원들은 쓰레기 무단투기가 심한 장소를 물색하였고 프로그램 진행과정 등을 세심히 점검했다. 게릴라 가드닝은 자녀와 부모들이 함께 참여했다. 70여명이 모여 조경전문가 초청 강의를 들은 후 각 지역으로 흩어져 나무를 심고 미니 화단을 조성했다. 캠페인 문구를 만들고 팻말 달기, 나무 물주기 등을 하면서 꾸준히 사후 관리까지 하였다. 이를 계기로 참가자들은 길을 다닐 때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직접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는지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고 했다.
나눔으로 마무리하다
동아리 회원 한 분이 ‘이지배틀’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독특한 뜨개질법을 소개하였다. 회원들은 정기모임에서 이지배틀 뜨개질을 배웠다. 이지배틀로 가
방과 카네이션 브로치를 만드는 체험을 하였다. 이 브로치는 어버이날 주민센터에 전달하여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달아드렸다. 또한 사당3동 주민센터와 연
합하여 ‘희망온도 따뜻한 겨울나기’ 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회원들은 목도리를 뜬 후 예쁘게 포장하여 주민센터에 전함으로써 어려운 이웃들의 따뜻한 겨울나기에 도움을 드렸다.
학년별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회원 세분이 매듭 공예를 배워오셨다. 진로체험 준비 리허설 등으로 몇 차례 매듭 공예 연수를 하면서 좋은 일
에 쓰자는 의미로 회원들이 작품을 만들어 기부했다.
학교 축제기간에 작품전시가 있었는데, 교직원들이 좋은 취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구매에 동참해 주어서 꽤 많은 돈이 모금되었다. 그리고 11월 낙엽이 아름
답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방문하여 위안부 할머니들께 기부금과 선물을 전달하였다. 이후 매해 학생회 차원에서 할머니들께 편지보내기 캠페인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2018년에는 동작진로직업박람회 ‘동작하라’에서 동양매듭 팔찌 만들기 체험부스까지 운영하였다.
12월이 되면 마지막 정기모임에서 고추장 만들기를 한다. 학부모 동아리의 남은 활동비를 모아 재료를 구입하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배운 후,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다. 고추장의 절반은 조금씩 나누어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은 학교에 기부한다. 이 고추장은 어려운 아이들과 특별히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분들과 함께 나눈다.
동아리 회원은 졸업하지 않는다
중학교 학부모동아리는 초등학교와 달리 자녀가 3년 만에 졸업을 해서 계속 이어지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아리는 신기하게도 꾸준히 매달 30명 정도가 모이고 있다. 그리고 연말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고 인수인계 절차가 이루어진다. 2월에 학교 담당교사와 함께 1년간 운영계획을 수립한다. 이 동아리 모임은 7년째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자생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해답은 멘토의 역할이다. 해마다 임원진이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를 철저히 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자녀지도의 노하우, 진로교육의 의미, 동아리 활동의 유익점 등을 끊임없이 조언해준다. 공예 체험 기술도 계속 전수한다. 졸업생 학부모도 동아리에 남아 활동에 계속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4월에 있는 첫 신입회원환영회에서는 선배들이 동아리 활동 소감나누기를 통해 동기부여를 분명히 한다. 그동안 활동 보고와 1년간의 운영계획을 동아리 회장이 발표하면서 기대감을 높인다. 이 동아리는 온라인 밴드를 통해 활동 소식을 나누고 연수 신청자를 모집한다. 교사 회원인 필자는 학교 진로교육 소식을 공유한다. 또 좋은 진로교육 자료를 계속해서 제공한다.
특별히 여름방학 전날 실시하는 ‘진로의 밤’에는 졸업생과 학부모들을 초대하여 멘토-멘티의 밤을 운영한다.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나 자녀들도 참가할 수 있게 야간에 개최한다. 1부는 진로아카데미 연수를 듣고, 2부는 진로 멘토링을 한다. 2부에서는 고등학교, 대학교별로 미니부스를 운영한다. 섭외는 학교유형별로 졸업생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동아리회원들이 담당한다. 올해 3년째 운영 중인데 해가 갈수록 호응이 높아지고 멘토-멘티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연
결되고 있다. 관심 있는 학교의 선배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 진학 동기, 진학 준비, 실제 학교생활 등을 자세히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다.
공부하는 학부모, 역사 도슨트로 성장하다
동아리가 창단된 지 6년째 되던 2018년도에 새로운 변화를 찾게 되었다. 우리는 ‘공부하는, 존경받는 부모’가 되기를 꿈꿨다. 임원진들과 의논하여 접근하기 쉽고 무엇보다 아이들 미래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하다가 역사로 결정하였다.
주제를 ‘근현대사 인물 탐구’로, 장소를 덕수궁과 정동 일대로 정했다. 학생들이 근현대사에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인물상을 바로잡고, 미래를 꿈꿀 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사명도 함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학부모진로아카데미 연수에 전문가를 초청하여 ‘역사 속 인물들의 어머니 리더십’을 들으며 역사와 부모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며칠에 걸친 모집에 스물 한 분의 학부모님들이 도슨트 역할을 자원하셨다. 우리는 ‘사당어울림’이라는 팀을 만들고 밴드를 개설하여 자료와 소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근현대사개론’ 연수를 통해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집중 조명했다. 문화해설사인 회원님 지도로 현장답사, 리허설까지 최소 3번 이상 현장을 방문하며 연구를 하였다. 학급별로 장소가 동시에 겹치지 않게 시간차를 계산하며 경로가 모두 다르도록 치밀하게 짰다. 각자 해설할 장소를 분담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연습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는 부모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고, 시나리오를 수정하거나 녹음을 함께 들으며 모니터링을 해주었다고 한다. 역사교사와 필자는 근현대사 수업을 하고 체험활동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체험 후에는 교과세부특기사항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기다리던 10월 5일, 야속하게도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슨트팀은 2학년 학생들에게 해설을 진행하였다. 꾸러기로 유명한 아이들이 부모님 도슨트였기 때문일까? 다른 때보다 빗속이지만 더 집중하고 호감의 눈빛을 보이며 열심히 참여해 주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 열심히 설명하였다. 교사들도 해설 수준이 전문가 이상이라고 모두 칭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가 너무 심해져 중간에 멈춰야 했다. 끝난 후 인근 카페에서 만났을 때 모두 눈빛이 반짝이고 얼굴에 자신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제 인생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라는 한 분의 표현에 모두 공감했다. 이후 11월 말, 3학년 답사도 무사히 잘 마무리지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2년차인 올해도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해’를 기념하여 효창공원에서 1, 2, 3학년이 모두 참가하는 행사로 진행한다.
학부모자율동아리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도 새로운 동아리 임원진이 꾸려졌다. 어김없이 2월에 학교와 연간계획을 같이 협의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진정성 있게 매달 모임을 갖고 자체 연수와 준비를 하며 아이들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려면 교사와 부모들이 개인적인 삶에서 더 나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 해답은 그동안 학교 봉사자로만 여겨졌던 부모들이 함께 고민하며 진로를 찾아 스스로 기획하고 움직이는 학부모진로자율동아리가 아닐까?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본다.
“나의 모습이 2학년 아들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조금은 심어준 것 같아 뿌듯해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초등학교 학부형이 되어 나의 삶보다는 아이와 가족을 케어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점점 주체성을 찾아가는 아이에게 멀어지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와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올해 사당중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을 통해 학부모 덕수궁 역사 도슨트와 공예 연수를 들은 후 학생들에게 공예체험을 지도하는 교육 나눔 활동을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진로 체험을 통해 자신들의 진로를 찾아가듯 저 역시도 다양한 교육활동과 경험을 통해 나의 숨겨진 적성, 재능을 찾고, 또 사회에 그 재능을 기부도 해보는 소중한 2018년이었습니다. 역사 도슨트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덕수궁 일대를 자료조사하고 대본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를 하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역사답사기행을 한 후에 저희 아들이 엄마가 최고로 잘 했다고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의 모습이 준혁이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조금은 심어줄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참여 학부모 소감문, 사당중 3학년 학부모 김장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