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주(광성고등학교, 교사)
Q. 최근 교육계의 주요 화두는?
요즘 교육계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교육 과정’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공표되고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는 2025학년도부터 전국 모든 고등 학교는 ‘고교학점제’를 운영해야 한다. 새로 도입되는 이 제도는 실로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는데, 지난 10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 시안’과 맞물려 있는 까닭이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이에 따른 고교학점제의 시행, 대입 제도의 변화 등으로 인해 교육 현장은 앞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l.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교육과정이란 ‘‘교육 내용과 관련하여, 교과의 배열과 조직을 체계화한 전체적인 계획’’이자 ‘‘학교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교과 학습 및 생활 영역의 총체1”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담은 해설서의 풀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꼭 한번은 짚어 두면 좋을 내용이므로 다소 길게 인용해 본다.
오늘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은 학생이 경험하는 총체 또는 학교가 제공하는 경험의 총체라는 광의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교육과정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는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 목적 및 목표를 포함한다. 즉, 학교에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교육과정은 학교의 교육 목적 및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 내용 또는 학습 경험을 선정하고 조직하고 실천하고 평가하는 제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학교 교육에 적용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은 ‘교육 목표와 경험 혹은 내용, 방법, 평가를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 계획’으로 정의할 수 있다.2
이러한 정의 아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추구하는 인간상’을 네 가지로 설정하고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여섯 가지로 규정했다. 이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도식화해 나타냈다.3
위와 같은 개념 정의와 도식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교육과정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행위’ 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형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의도하고 계획하는’ 주체는 물론 교사이겠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대상은 당연히 학생이겠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2. 교양이란 무엇인가?
학교는 학생에게 교양을 가르치고 길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교사들은 첫 발령 학교에서 자신의 전공 교과목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양 교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많은 신규교사는 자신의 전공 교과목과 교양 교과목을 복수로 담당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전공이 아닌 교양 수업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다.
‘교양’은 독일어 ‘bildung’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여기엔 ‘형성’, ‘생성’, ‘조성’, ‘구성’ 등, 맥락상 비슷한 의미들이 담겨 있다. 영어 ‘building’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 단어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교양’의 의미도 그 맥락 안에 놓여 있다. ‘build’, 즉 밑에서부터 위로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올려 어떤 목표 지점에 도달한다는 뜻이 되겠다. 따라서 ‘교양’은 아무래도 활동의 결과보다는 활동하는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교양’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한다면, 그 의미를 조금 확장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다. 교양이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지혜를 나누는 일이다. 높은 점수를 획득해 내신 등급을 성취하는 공부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혜를 체득하는 일이다. 따라서 교양은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교과서 바깥 세상에 펼쳐진 삶의 이치를 스스로 탐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3. 교양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교육과정의 ‘생활·교양’ 교과(군) ‘논술’ 에 대해서 그 “내용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학교가 정한다4“고 명시해 놓았다. 교육 내용을 국가가 지정하지 않았으니 가르치는 교사가 재량껏 구성하라는 의미다.
교양 수업에 대한 필자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신규교사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교육과정 총론에서 밝힌 ‘의도하고 계획하는’ 주체인 교사로서 학생을 ‘교양있는 사람’으로 성장 시키기 위해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지정된 ‘교과서’와 정해진 수업 내용이 없는데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가? 게다가 교양 과목이기에 지필평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므로 학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고민했다. 이하는 필자가 지난 몇 년 동안 교양 과목인 ‘논술’ 수업을 맡아서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이러한 고민과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던 수업 과정에 대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가 생각하지 못했던 교양 과목을 담당하게 될, 그래서 더욱 당황할, 신규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가.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고등학교에서 ‘논술’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대입 수시 모집 전형 가운데 하나인 ‘논술’이다. 이는 오랜 시간 학습된 고도의 독해 능력과 자료 해석 능력을 바탕으로 반복적 글쓰기 훈련을 거친 뒤에 출제자가 원하는 ‘모범 답안’을 작성하여 대학에 합격’하는 절차로 마무리되는 과정이다5. 이는 학생의 읽기와 쓰기 능력을 변별하여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 도구는 될 수 있지만 ‘논술’의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먼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렇게 협소한 의미의 ‘논술’을 지양하고 자신의 의견을 객관적 근거를 통해서 뒷받침하고 적절한 글쓰기 형식을 갖춰 논리적으로 서술한다는 ‘논술’의 본래적 의미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구성했다. 모든 공부의 밑바탕이 되는 책 읽기와 글쓰기,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의 넓이 를 확장하고 사유의 깊이를 심화하며 나아가 마음과 마음을 잇는 수업을 진행하려 했다. 사진은 이러한 생각을 반영해 계획한 수업 일정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텍스트를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동서고금에 걸쳐 두루 읽히는 여러 고전(古典), 자신의 관심사 또는 진로와 관련된 도서, 사회적 현안을 다루고 있는 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학생이 읽고 싶은 책을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읽도록 했다. 단순히 읽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하여 책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내면화한 뒤에 이를 표현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했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강조된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만든 ‘세 주에 한 권 읽기’는 이를 위해 제작한 활동지다.
다음으로는 글쓰기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지문을 분석하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 뒤에 제시된 조건에 맞는 형식적 글을쓰는 일반적인 ‘대입 논술’ 은 아니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이나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쓸 기회를 주었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이를 둘러싼 여러 입장과 맥락을 파악한다. 이후 관련된 칼럼을 읽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본 뒤에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시간이었다.
위와 같이 교사가 자료를 준비하여 공유한 뒤에 학생들과 토론하며 논제의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파악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학생들은 논제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어우러진 글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난 뒤에는 교사가 피드백을 해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주제를 자유롭게 설정하고 이에 대해 심화된 탐구를 수행한 뒤에 수업 시간에 발표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탐구 주제를 설정할 때 어려움을 겪는데 이때 교사의 섬세하고 친절한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가 무엇이고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다음으로 학생이 최근 관심 있어 하는 사안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학생의 전공과 관련된 사회적 현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조사해 보는 것도 좋다. 이러한 대화 과정을 통해서 학생의 관심사가 좁혀지면 발표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 다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정한 학생들의 발표 주제를 정리한 것이다.
나. 수업의 결실을 엮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 필자는 교단을 학생에게 내어주고 학생이 탐구한 내용을 발표하도록 했다. 학생의 역할이 수업을 받는 대상에서 수업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학생이 교사를 대신해 교단에 섰을 때, 교사는 발표자가 떨지 않고 준비한 발표를 온전히 진행하도록 북돋우는 역할뿐만 아니라 청중인 동료 학생들도 발표자가 진행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생명과학과 공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응급 의료 현장에 꼭 필요한 ‘장기 이동 장치’에 대해 탐구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 PPT 자료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학생이 진행하는 발표를 들으며 깨달은 점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는 이제는 교사가 학생을 앞에서 이끄는 지도자(Leader)의 역할을 내려놓고 학생의 곁에서 학생이 나아갈 길을 안내해 주는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학생에게 낡고 오래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 방식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남은 것은 평가와 피드백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교양’ 교과는 지필 평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이 사실은 가르치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교사가 자유롭게 계획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학생을 집중시키기 어렵고 학생의 자발적 참여를 이끄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불 보듯 뻔하게 예상되는 이 상황을 막으려면 학기 초에 평가 방법에 대해 명확히 공지해야 한다. 이 수업은 교양 수업이라 지필평가는 실시하지 않지만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쓴 논술 문과 발표, 독후 활동지에 기록한 내용, 토론에 참여하는 태도 등을 매시간 관찰하고 섬세하게 기록하여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빠짐없이 기록할 것이라고. 다음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필자가 실제로 기록한 교과 세특 사례 중 하나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기록하는 것으로 평가까지 끝내고 나면 한 학기 수업이 마무리되는 단계에 접어든다. 사제동행(師弟同行), 줄탁동시 (陶家同時)라고 했던가. 학생 ‘앞에서’ 수업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학생 ‘곁에서’ 수업을 돕는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교사 역시 배우며 성장했음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의도했던 결실을 맺기도 하고 계획했던 것 그 이상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 소중한 결실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매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고등학교 때 자신이 쓴 논설문과 소논문, 발표문 등이 들어간 책을 발행하고 간직하는 게 큰 성취감을 주는 일이라 여겨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이렇게 책을 편집하고 발행해 배부했다.
4. 잉여와 여백의 시간을 채워서
이상은 지난 몇 년 동안 평범한 교사가 ‘교양’ 영역에 속한 ‘논술’ 과목을 지도하면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수업에 대한 회고이자 보고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교양’ 과목은 수능시험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교과 내신과도 무관한 과목이어서 잉여와 여백의 시간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한편으로는 수업이 입시라는 빈틈 없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을 때, 교육은 학생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어렵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할 여지도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창의적 발상은 언제나 잉여의 시간에 발생했고 세상을 바꾼 혁신적 아이디어도 여백의 시간을 통해서 얻었다는 사실을! ‘논술’을 비롯한 여타 교양 과목은 잉여와 여백의 시간을 활용해 학생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예외적 수업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제 교단에 처음 서시는 새내기 선생님들도 다양한 기획과 시도로 수업을 다채롭게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