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판-교과교육

[수업전문가 되기 Ⅱ-중학교 영어]
저는 7년 차 신규입니다

이민재 (염경중학교, 교사)

7년 전, 무심하기 짝이 없던 3월 첫 번째 주가 떠오른다. 발령받은 학교는 어마어마한 교육열로 유명한 학군지의 중심 학교. 맡은 업무는 48학급이라는 대형학교의 수업계. 모든 것이 낯선 때, ‘선생님’이라는 어색한 명분을 달고 들어간 인생 첫 수업, 삐걱이는 교실 문을 열고 교단에 성큼성큼 들어가 서기까지의 몇 초가 얼마나 떨리던지. 무표정한 아이들 앞에서 등에 땀이 흥건하도록 긴장하여 횡설수설, 일장 연설을 하고 나왔다. K-에듀파인 사용법도 모르는데 4단 결재를 어떻게 올리란 것일까. 결재판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종이를 달랑 들고 결재를 받으며 한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웃게 할 수 있을까, 퇴근 후에도 쉬지 않고 연구하고 고민했다. 임시 시간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평에 상처를 받고, 교단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에 자괴감이 들어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단했던 첫 주의 금요일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울컥하여 바라본 창가의 시린 풍경까지 생생할 정도이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첫 차시 수업은 떨리기도 하고,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때로 무겁지만, 그보다 더 자주, 수업하며 즐겁고 행복하다. 7년 전 출근길 버스에서 산더미 같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억지로 내딛던 발을 떠올리면 지금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고 산뜻할 수 없다. 나를 싫어하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이던 아이들은 실은 새로운 학급, 새로운 선생님 앞에서 꽁꽁 얼어있던 것 뿐이고 모든 걸 아는 베테랑처럼 보이던 선생님들도 첫 해 첫 수업만큼은 늘 긴장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빼고 다 잘하는 듯 보이던 발령 동기들도 알고 보니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우리 신규 선생님들께서 처음 겪을 한 해는 이보다 훨씬 편안할 수도 혹은 상상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교사의 한 해는 어떤 반을 맡고, 어떤 수업을 맡고, 어떤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맡아 어떤 선생님들과 일하는지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 만큼은 첫 해가 가장 힘든 해였고 한해 한해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은 수업하며 신이 나고 다음 수업이 기대되기도 한다. 심지어 마치고 나오며 ‘오늘 나 자신, 참 멋졌어.’라며 심취해 볼 때도 있다. 필자의 글은 어설픈 새내기 교사가 아이들과 학교를 내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수업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붙였는지, 어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바닥이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는지의 경험담이자 현재진행형 분투기이다.

우당탕탕 짬뽕 수업에서 나만의 시그니처 수업 만들기까지

PLLT, TEP, TG… 임용시험을 위해 두꺼운 원서를 읽고 수업 시연에서는 명연기를 펼쳤으면 무엇 하나. 열정만 넘치는 새내기 교사의 수업은 그야말로 우당탕탕. 좋아 보이는 거, 좋은 거, 좋아해 주는 거를 마구잡이로 섞어 넣은 짬뽕 수업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에 약간의 지루함만 스쳐도 죄책감이 들던 시절이라 매일같이 게임과 활동적인 수업을 준비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선생님이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강사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란 고민과 함께 ‘이게 맞나?’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중학교 활동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수업 형식과 자료는 무궁무진하다. 블로그와 카페 검색, 구글링만 해도 가공만 거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도래한 에듀테크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영어 수업 준비를 더 쉽게 만들었다. 퀴지즈, 카홋, 띵커벨, 패들렛 등 게이미피케이션의 접목과 디지털 교육의 전환으로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 뚝딱 수업 준비가 끝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수업에 꾸준히 사용하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실로 손에 꼽는다. 남들이 좋다고 해도 막상 내가 써보니 별로인 경우도 있고, 생각지 않게 의외로 교육적 효과가 뛰어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좋은 수업이란 결국 선생님과 가장 잘 맞고 재미있는 수업이란 것이다. 무조건 활동 수업이라고 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신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수업 목적과 방향에 맞고, 선생님이 신나서 하는 수업이라면, 결국 아이들도 재미있게 참여하기 마련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신나 하는 수업에서는 선생님도 덩달아 신이 난다. 수업이란 교사와 학생의 행복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완성하는 무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부터는 중학교 수업의 주요 차시인 단어, 문법, 읽기, 말하기&듣기의 4영역에서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수업 형식과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매해 더하고 빼며 수정을 거듭하는 유동적인 고민의 기록이기에 ‘누군가는 이런 수업을 하는구나.’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 지면 한계상 하나하나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는 식은 죽 먹기, 단어 수업

단어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해당 과의 목표 어휘 중 핵심 단어를 선정하는 일이다. 핵심 단어는 다른 단어를 포괄하는 단어일 수도, 쓰임상 중요한 단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래엔 5과 본문 내용은 심리학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인데, 목표 어휘 중 심리학을 의미하는 ‘psychology’가 있었다. 접사의 존재가 확실한 단어를 만나면 오랜 친구처럼 반가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접사 ‘psych’만 가지고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꺼내며 단어 수업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psych’의 어원이 정신적 사랑을 상징하는 프시케(psyche)이며 ‘psy’로 시작하는 여러 영단어들을 언급하며 ‘psy’가 ‘마음’, ‘정신’을 의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다. ‘자, 단어 공부하자.’라며 빽빽한 단어 리스트를 나눠주는 일이 기본값이지만 때론 스토리텔링으로 수업을 열며 재미있는 이야기꾼을 자청해보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의 패턴에 익숙해진 눈치 빠른 똑똑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에 속지 않는다. ‘또 오늘 공부랑 관련된 거죠? 안 속아요!’ 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그래도 귀를 쫑긋하며 들어는 준다.

전개 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어 수업 형식은 이곳에 다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하다. 주활동 및 에듀테크 수업도구로는 워드월(wordwall), 단어 로또, 클래스카드, 빙고, 픽셔너리(pictionary) 만들기, 단어 라임을 이용한 가사 만들기 등이 있다. 모두 약간의 가공만 거치면 되는 간단한 활동이기에 한 번씩 적용해보는 것을 권한다. 여러 가지 활동을 고루 경험한 뒤에 선생님만의 틀을 만들고, 선호하는 활동을 그때그때 짜깁기 한다면 단어 수업 준비야말로 어느새 식은 죽 먹기이다. 더하여, 아이들에게 단어 뜻을 줄 때는 되도록 빈칸보다는 ‘초성’으로 주는 편이다. 빈칸으로 주었을 때보다 훨씬 대답도 잘하고 참여율도 높다. 수업을 닫을 때는 중요했던 단어 4~5개 정도를 강조해주고, 다음 차시를 열며 배운 단어를 테스트하곤 한다. 수업의 열고 닫는 형테에 익숙해지면 어느덧 아이들이 먼저 ‘오늘은 단어로또 안해요? 시험 보죠?’라고 물어오기도 한다.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 말하기&듣기 수업

중학교 말하기&듣기 수업은 필자도 아이들도 만만히 보았다가 큰 코 다친 영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듣기 음원은 느리고 문장도 쉬운 편이라 아이들이 웬만하면 알아듣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알아듣는다는 것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첫째로, 내용은 알아들어도 막상 들은 문장을 쓰라고 하면 정확히 쓰지 못하거나 어처구니 없는 철자 오류를 범한다. 둘째로, 목표 표현을 들을 줄 아는 것과 표현할 줄 아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말하기&듣기 수업을 열 때 반드시 ‘notice the gap’의 원리, 즉 자신이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인지시키고 이를 메우는 것을 초점으로 한다.

기본적인 대화형 지문은 정보차(informa­tion-gap) 활동으로 수업을 여는 편이다. 테이프 음성을 일방적으로 듣기보다 직접 목표 표현을 발화해 본 이후 들으면 원어민의 발화와 자신의 발화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높일수 있다.

긴 지문의 경우에는 <음원 쪼개기를 활용한 조별 딕토글로스(dictogloss)>를 활용한다. 수업 준비가 조금 번거롭지만,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방법이다. 활동을 위해서 먼저 교과서 에니메이션을 다운 받아 음성을 제거한다. 음성을 제거한 동영상을 더빙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한국말 문장으로 더빙하는데, 네이버 클로바 더빙을 이용하면 쉽게 편집이 가능하고 성우를 고르거나 다양한 효과음도 삽입할 수 있다. 진지한 교과서 동영상에 우스꽝스러운 더빙과 효과음을 넣으면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인 보람이 있다. 그러나 한국말 더빙된 영상의 목적은 단순 재미만은 아니다. 가령, ‘Are you enjoying your meal?’을 못 알아 듣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식사 맛있게 하고 계신가요?”를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면 좋을까?라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즉, 더빙 영상의 목적은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지 미리 생각해보며 목표 표현에 대한 인지를 높이는 것이다.

다음으론 mp3 음원을 1~2문장 정도로 쪼갠다. 이 때, 몇몇 문장은 피치를 낮추거나 속도를 빠르게 조정하여 저장한다. 이렇게 하면 수업 준비는 끝이다. 수업 시간에는 조별로 빈칸이 있는 문장을 A3에 인쇄하여 나눠주기만 하면 된다. 조별 역할은 선생님들의 자유이다. 필자는 주로 Leader, Writer, Timer 등의 보편적인 역할에 Tape- Recorder를 추가한다. Tape-Recorder는 직접 교탁에 나와 선생님이 읽어 주는(혹은 보여주는) 목표 문장 중 하나를 외워가는 역할이다. 문장을 외운 후 조원들에게 돌아가 말해주어야 하므로 나름의 책임감이 막중하다. 이때, 중요한 발음이 포함된 문장을 선택하여 해당 부분은 강조하여 알려준다. 가령, ‘You won’t have to pay for the steak.’라는 문장을 Tape-Recorder에게 주며 won’t/ want의 차이를 인지시킨다. 딕토글로스의 변형은 무한하다. 음원을 편집할 때 애초에 삐一 소리 처리를 한 구간을 만들기도 한다. 배운 단어 중에 하나를 무음 처리하여 아이들이 문맥에서 스스로 추측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원 변형 딕토글로스를 통해 아이들의 듣기 집중도를 현저히 높일 수 있다.

규칙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문법 수업

문법 수업은 필자가 수업 준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영역이다. 실은, 최근까지도 제일 하기 싫은 수업이 문법 수업이었는데, 활동에 성공하기만 하면 규칙 설명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법 수업의 핵심은 해당 어법의 의미적, 구조적 특징을 가장 잘 살리는 활동을 활용하는 것이다. 새롭게 고안할 때도 있지만 홀륭한 선생님들께서 공유해주시는 자료가 이미 많기에 이를 찾아 선생님만의 것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최근 대성공을 거둔 문법 수업은 관계부사를 활용한 조별 라이어 게임1이다. 필자의 학교는 크롬북 수업을 하기에 포털 사이트의 영어교사 카페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구글폼을 활용해 만들었다. 게임 자체도 재밌지만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때 (when)’와 ‘장소 (where)’ 와 관련된 문장을 만들고 발화하며 관계부사의 쓰임을 익힐 수 있다. 모든 문법 활동의 성패 여부는 ‘자료’ 그 자체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자료를 살피며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가공을 거쳐야 한다. 라이어 게임은 근래 본 적 없는 열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종이 울리고 그만해도 된다고 하는데도 라이어를 찾을때까지 멈추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 지경이었다.

분사구문 시간에는 미드저니, 플레이그라운드AI 등의 인공지능 그림 사이트를 활용했다. 그리고 싶은 그림을 상상하고 좋아하는 그림 작가를 택한 뒤 분사구문으로 문장을 만들어 프롬프트로 집어넣게 했다. 본인이 상상하는 그림을 정확하게 그려줄 때 까지 부사절을 늘려가며 구체적인 프롬프트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분사구문 문장에 익숙해진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프롬프트를 만들어 넣은 작품을 아래 사진처럼 학교 로비에 동영상으로 전시했다. 한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우리 아이들 천재 아닌가요?” 하며 칭찬해주셨다.

해당 어법의 의미적, 구조적 특징을 드러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활동도 많다. 배틀쉽(battleship) 게임이나 잼보드를 이용한 문장 배열하기 (unscram­ble) 활동도 문법 형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좋은 활동이다. 강의식 설명을 할 때는 퀴지즈(Quizziz) 의 ‘instructor-paced’ 기능을 즐겨 활용한다. 수업을 닫을 때는 반드시 배운 어법으로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패들렛에 남긴다. 아이들에게는 개인화 (personalization)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문장은 진정한 자신의 문장이 아니라고도 말해주며 문장 만들기를 독려한다.

읽을 결심이 중요해, 본문 학습

본문 학습은 전시 학습의 효과가 가장 뚜렷한 영역이다. 사실 본문 내용이 흥미로우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동기 유발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본문도 많다. 아이들이 홍미를 보이지 않는 내용이면 관련 동영상으로 최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적절한 동영상이 없으면, 본문 내용을 기반으로 이정표 질문(Signpost Question)을 대체품으로 만든다. 질문을 만들 때마다 타고난 재치를 지닌 선생님들이 부럽다. 기발한 옵션을 섞어 만든 문제는 그 자체만으로 아이들의 웃음과 홍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재치가 부족하여 떠돌아다니는 아재 개그나 넌센스 문항을 참고한다. 때론 어처구니 없는 옵션을 섞기도 한다. 다빈치의 숨겨진 요리 열정에 관한 본문에서는 ‘다음 중 다빈치의 직업이 아닌 것은?’이라는 질문과 함께 l)inventor 2)musician 3)cook 4) you-tube creator를 제시했는데, ‘you-tube creator’ 에 많이들 웃어주었다.

전개 학습에서는 직소활동(jigsaw activity)이나 ‘둘 가고 둘 남기’를 즐겨 활용한다. 둘 가고 둘 남기는 떠나는 둘을 학생, 남는 둘을 선생님이라 칭하고 활동 후 강의 평가 및 학생 평가를 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발표 참여도가 낮고 내성적인 반이라면 둘 가고 둘 남기를 꼭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선생님이 알던 모습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재치 있게 역할을 수행해주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학년말 생활기록부의 과목별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에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본문 학습을 위한 에듀테크 수업도구로 니어팟(Nearpod)도 인기가 많다. 최근에는 캔바(Canva)를 활용하여 조별로 본문의 그래픽 오가나이저(Graphic Organizer)를 완성하고 갤러리 워크 방식으로 발표하였는데, 아이들이 아주 잘 따라주었다. 참고로 켄바(Canva)는 교사 인증을 하면 유료 프리미엄 컨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수업 준비, 담임 활동, 안내문 작성, 모두 캔바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어서 모두에게 가입을 권한다.

본문 학습의 맹점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해석이 식은 죽 먹기인 반면 영어가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개별 구문의 해석이 필수라는 것이다. 매번 수준차에 따라 다른 학습지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민 끝에 필자는 일부 초성이 있는 해석지를 반 전체에게 제공하고 혼자 읽으며 초성을 채워보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한다. 본문 학습 전 학생들의 학습 간극을 그나마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여전히 고민스러운 영역이다.

수업과 평가, 이제는 합칠 수 있다 – <전자책 출판하기> 수행평가

수업과 평가, 교육과정 연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매번 들어왔지만 신규교사 시절 필자에게 ‘교육과정 연계’ 란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인 이념이었다. 실상은 진도 나가기 급급하고, 수행평가 시즌이 오면 부랴부랴 수행평가 안내하고 평가하기 바쁘다. 한 학기에 두 번 지필평가를 치르고, 정신없는 학사일정 속에서 쓰기 · 말하기 · 듣기 영역의 수행평가를, 그것도 과정 중심으로 수업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이번에 진행한 <전자책 출판하기>는 최대한 수행평가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수행평가이다. 학년말 전환기 때 전자 그림책을 만들고 출품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업 시간에 미리 전자책 홍보 문구와 표지를 작성하는 것이 골자이다. 그림책 표지는 앞서 언급한 캔바(Canva)를 이용하면 그럴듯한 표지를 금방 완성할 수 있다. 소개 문구를 작성하고 이를 발표까지 하는 쓰기-말하기 연계 평가이므로 체계적인 차시 확보가 필수적인데, 브레인스토밍이나 동료평가 시간까지 포함하면 차시가 빠듯했다. 필자는 수업 시간 포트폴리오 작성을 수행평가 시간과 연계하여 활용하며 필요 차시를 단축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문법 시간에는 당일 배운 어법을 자신의 문장으로 정리하여 패들렛2에 올리게 한다. 이때 패들렛에 올리는 문장이 홍보 문구의 필수 문장이 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시간도 확보하고 수행평가 연계이므로 아이들도 포트폴리오 작성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된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not onlyA but also B’ 구문을 배웠으면 포트폴리오에 문장을 작성할때는, ‘The story is not only (magical/beautiful/creative/exciting/dynamic/powerful/amusing) but also (philosophical/touching/educational/ romantic), as it constantly deals with the theme of~.’ 의 문장을 쓰게 할수있다. 교사가 미리 책을 묘사할 수 있는 다양한 형용사를 제시하고 아이들이 골라서 쓰게 하면 콘텐츠에 브레인스토밍과 함께 어법이 녹아든 문장을 자연스럽게 수행평가에 활용할 수 있다. 패들렛 포트폴리오에 자신이 만든 그림책 표지를 올리면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거나 슬라이드 형태로 전환하여 발표도 가능하다.

신규교사 시절 내게는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교무실에 도착하면 노트북을 펼치고 방금 수업에서 반응이 좋았던 활동은 놀리고 반응이 미적지근하거나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롭게 바꾸기 바빴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라도 더 특별하게, 활동은 조금이라도 더 활기차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루는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 그야말로 대실패한 적이 있다. 평소에 반응도 좋고 다른 반에서 재미있게 한 수업이었는데, 기대와 달리 아이들의 참여도 바닥이고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시무룩해진 내게 한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선생님 수업이 최고라며 좋아해주는 아이였다.

“오늘 날씨도 별로고 오전에 수행평가도 많이 봐서 애들이 상태가 좀 안 좋아요.” 그제서야 살펴본 창문 밖은 비가 내려 음산하기 짝이 없었고 칠판 한 켠에는 그날의 수행평가 목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 아이는 마치 ‘선생님, 수업의 문제가 아니에요. 눈을 들어 밖을 좀 보세요! 애들 표정도 좀 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패한 수업이 실패한 교육은 아니다. 수업의 역동성은 매일의 날짜, 시간, 온도, 심지어는 그날의 학사 일정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그뿐이랴. 학생 한명 한명의 인격이 다르듯이 한반 한반의 인격도 다르다. 특정 반에는 그 반만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인격이 모두 모여 형성하는 반의 페르소나는 제3의 독자적인 인격체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반은 내성적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할 말이 많은 아이와 같고, 어떤 반은 매사에 활동적이고 자신감이 넘치지만, 속은 한참 여린 아이같기도 하다.

수업이란 결국 반의 페르소나, 날씨, 요일, 시간, 아이들의 기분, 일과, 심지어 선생님의 기분까지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쌍방향 연극 같은 것이 아닐까. (다만, 관객분들의 기분이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 삽시간에 바뀔 수 있는 예민한 사춘기 관객임을 감안해야 한다.) 최고의 수업을 위해 선생님들은 무대를 바꾸기도 한다. 맑은 가을날,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려가 예쁜 모양의 낙엽을 주워 다같이 책갈피를 만들 수도 있다. 때론 선생님이 학생에게 무대를 내어주기도 한다. 어느 날은 수업 대신 다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 관객들과 더 깊이 알아가는 모든 시간이 넓은 의미의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에 관한 모든 요소가 우연히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날이 있다. 이 순간, 선생님은 무대 연출자 혹은 배우로서 한 편의 완벽한 서사를 완성한다. 그런 수업을 한 날이면 교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기분마저 든다. 그날의 수업은 수업을 넘어선 한 편의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잊지 마시라. 바로 다음 무대에서는 똑같은 수업도 대실패작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절대 우리 신규 선생님 수업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1. 라이어 게임은 1명의 라이어만 제외하고 공통된 제시어를 받은 뒤 돌아가며 그 제시어에 대해 묘사하며 라이어를 추리하는 게임이다.
  2. 패들렛은 필자가 학습 정리 도구로 애용하고 있다. 한 눈에 모든 아이들의 활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다양한 게시 형태로 볼수 있는 점, 슬라이드로 전환하여 발표할 수 있고, 영상, 음성, 사진, 링크 등 다양한 자료를 업로드할 수 있는 등 장점이 수도 없다.